[사설] ‘평화 타령’으로 지켜질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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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심상치가 않다. 새해 들어 벌써 네 차례나 쏜 데다 지난 20일 김정은이 정치국 회의에서 “전면 재고하고,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을 재가동하는 문제를 검토”하라며 핵실험과 ICBM 도발을 재개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런데도 정작 신속한 대응에 나서야 할 정부는 무사태평이어서 “강 건너 미사일 구경”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북한은 지난 1월 5일과 11일에 자강도 일대에서 극초음속 미사일을 쐈다. 이날은 유엔 안보리가 북한의 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해 긴급 소집된 날이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도 북한의 거듭된 미사일 도발에 새로운 대북 제재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러자 북한은 보란 듯이 지난 14일 평북 의주에서 KN-23,24 2발을 발사하더니 다시 3일 만에 평양 순안비행장 인근에서 단거리 미사일을 쏘아 올렸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게 어디 한두 번인가. 그러니 그냥 두면 잠잠해질 텐데 무얼 그리 호들갑이냐는 안보 무관심이 어느 때부턴가 우리 사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이 쏜 네 번의 미사일이 남한을 주 타격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또 2018년 싱가포르 미북회담 이후 중단했던 핵실험을 재개하겠다는 건 그냥 예사로 넘길 일이 아니다.

군사 전문가들은 북한이 쏜 극초음속 미사일의 사정권이 남한 전역이고 특히 KN-24는 경북 성주 사드 기지 등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쏠 때마다 발사 위치를 수시로 바꾸고 열차와 차량형 이동식 발사대 등 다양한 발사 실험을 하는 것만 봐도 단순한 성능시험 수준을 넘어 실전 타격에 목표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의 대응은 마치 내 일이 아니라는 듯 안이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일제히 규탄 성명을 내고 미국은 독자 제재 결정에 이어 유엔 안보리 차원의 추가 제재를 요구하는 등 대책에 부심하고 있는 데도 정부는 “우려” “유감”이란 똑같은 말만 되뇌고 있다.

이런 정부의 안일한 자세를 보며 마음 편히 잠들 국민이 얼마나 될까. 저러다 잠잠해지겠지 하는 국민도 없지 않겠지만 이들도 마음 한구석에는 정부가 동맹인 미국과 긴밀히 공조해 잘 대응해 나가리라는 막연한 믿음이라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발 뻗고 잠잘 수 있겠는가.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도발은 분명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다. 북한이 하루는 극초음속 미사일을 쐈다가 다른 날은 KN-23, KN-24 등 저고도 단거리 미사일을 섞어 쏘는 이유는 다른 말로는 설명이 안 된다. 즉 한미 미사일방어체계를 무력화시키는데 모든 목표를 두고 있다는 뜻이다. 이러다 “남한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저들의 호언장담이 현실화될지도 모르는 데 정부는 오히려 쉬쉬하고 있으니 이 무슨 근거 없는 자신감인가.

이런 정부의 대북인식에는 문 정부 출범 초기부터 유지해온 대북 유화(宥和) 기조가 바탕에 깔려있다. 문 대통령과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으로 남북 해빙무드가 조성되던 때뿐 아니라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북한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이런 기조에서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남북대화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로로 보인다.

그런데 ‘유화적’인 것과 ‘무사안일’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북한이 좀 심하게 나와도 너그럽게 대하겠다는 것과 ‘무사안일’은 천지 차이다. 잘못하면 주권국가로서 안보 위기대응 능력을 포기했거나 상실한 것으로 비칠 수도 있어 위험하다. 만약 북한이 문 정부의 이런 약점을 간파하고 거듭 미사일 도발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라면 머지않아 심각한 위기 상황에 맞닥뜨릴 수 있다.

문 대통령은 8일 간의 중동 순방길을 떠나 아랍에미리트 순방 중에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상황의 안정적 관리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을 뿐 북한에 대해 별다른 메시지를 내지 않았다. 북한의 미사일이 남한 전역을 사정권으로 두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명백한 도발행위다. 그런데도 경고는커녕 한 마디 주의도 주지 못하니 안타깝다 못해 열불이 날 정도다. 대통령의 이런 자세가 결과적으로 북한의 도발을 상습적이고 일상화하는 데 일조했다면 그 책임 또한 절대 가볍지 않다.

북한이 끊임없이 미사일을 발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국제사회로부터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려는 데 있다. 남한 전역은 물론이고 태평양 건너 미국 본토까지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온 힘을 쏟고 있는 것도 이런 목표를 미국과 국제사회에 내놓고 공인받으려는 데 있다.

반면에 우리 정부의 목표는 오로지 ‘평화’다. 그 뜻이 모든 인류가 지향하는 조화롭고 무탈한 세상이라는 매우 포괄적이고 의미심장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에도 평화가 지닌 거의 유일한 단점은 지킬 힘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데 있다. 그야말로 물거품, 일장춘몽에 지나지 않는다. 구호만으로는 어림없다는 뜻이다.

대통령과 정부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종전선언’에 목을 매고 있는 것을 탓할 생각은 없다. 이런 기대와 희망을 무참히 깬 건 북한이지 정부가 아니다. 그렇다고 임기 말까지 굴종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남북 유화 미련을 놓지 못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이런 기조가 차기 정부에까지 이어진다면 안보 위기가 상상하기조차 싫은 끔찍한 현실로 닥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정부의 사명은 첫째도, 둘째도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튼튼히 지키고 국민의 안위를 도모하는 것이다. 특히 다음 대통령과 차기 정부는 이 점을 가슴에 새기고 명심해야 할 것이다. ‘평화 타령’으로 지켜질 나라는 지구상에 어디에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