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일상회복 ‘STOP’에 ‘병상대란’까지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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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크론 변이가 또 다시 전 세계를 코로나 팬데믹의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미 워싱턴 의대 연구팀이 내논 전망에 따르면 오미크론 변이의 강력한 전염력으로 인해 내년 초에 전 세계에서 30억 명이 넘는 새로운 확진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말 심각한 문제는 단순한 확산세가 아니다. 지금까지 개발된 코로나19 백신으로는 그 어느 변이 바이러스보다 전염력이 강한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를 막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미국 컬럼비아대 의과대학 연구팀도 지난 23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서 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AZ) 등 기존 코로나19 백신은 물론 추가 접종(부스터샷)으로도 오미크론의 침투를 막기엔 역부족이라고 했다.

이런 연구 결과를 감안할 때 우리 사정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국내는 오미크론 변이가 본격 유행하기 전인데도 좀처럼 확진자가 줄지 않는 데다 위중증 환자가 1000명을 넘어서면서 ‘병상대란’이 벌어지는 등 연일 심각한 위기 상황에 맞닥뜨리고 있어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현실을 의식한 듯 지난 21일 국무회의에서 “시련이 성공을 만든다”며 “잠시 멈추는 지금 이 시간을 앞으로 전진하기 위한 기회의 시간으로 만들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정부의 방역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정면 돌파하겠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오늘의 위기 상황을 ‘일시적 시련’으로 가볍게 여기는 한 실패를 만회할 기회를 영영 놓치게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사실 정부의 방역정책은 코로나19 확산 초기부터 구멍이 나 있었다. 일본 등 주변국에서 확진자가 폭증한 것을 단순 비교해 ‘K방역’을 자화자찬할 때부터 불안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K방역은 없다’의 대표 저자인 이형기 서울대 임상약리학 교수는 “K방역은 그 실체가 없다”며 “있다면 그것은 정부의 공로가 아니라 국민의 희생이 뒷받침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K방역’은 의료진의 헌신과 국민의 희생으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를 정부가 가로채 방역을 과학, 의학이 아닌 정치로 끌어들임으로써 그 가치가 공중 분해되고 말았다. 정부·여당이 유럽과 미국 등 서방 선진국보다 단지 확진자 수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K방역’의 성공을 말하는 논리라면 확진자와 위중증 환자, 사망자가 폭증하는 지금은 분명 실패를 인정하고 고개 숙여야 할 때다. 그런 점에서 “시련이 성공을 만든다”고 한 문 대통령의 발언이 과학적인지 정치적인지는 국민이 판단하리라고 본다.

정치방역 실패의 첫 단추는 지난해 초 정부가 중국 우한에서 입국하는 여행객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데서 시작됐다. 의료계는 우한에서 첫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하고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해외발 전염병 유입을 조기에 차단하기 위해 항공편 입국·검역을 보다 철저히 통제 관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싹 무시했다. 입국 금지가 외교·경제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였는데 만약 그 대상이 중국이 아닌 일본이었어도 마찬가지였을까.

감염병 방역에 있어 초기 대응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대만이 산 교과서다.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우리만큼 높은 대만은 지난해 1월 말경 중국 우한에서 오는 모든 여행객에 대해 입국 금지조치를 내렸다. 그리고 2월 초에는 아예 중국발 입국을 전면 차단했다. 그 결과가 오늘 대만 국민 모두가 누리는 일상과 중단 없는 경제활동의 밑바탕이 됐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정치방역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보여주는 다른 예도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올 연초까지 이어진 3차 대유행 때 처음으로 하루 확진자가 1000명대를 돌파하면서 감염원을 알 수 없는 N차 감염이 속출했다. 이때도 정부는 “앞으로 2주만 더”를 외치며 고강도의 거리두기를 유지하면 곧 코로나나 종식될 거라고 했다. 전문가들이 고위험군 보호를 중심으로 현실적인 방역으로 전환할 것을 거듭 요청했으나 정부는 귀를 닫고 거꾸로 갔다.

결국, 코로나 위기가 단기간에 끝날 것이라는 정부의 낙관론은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이 되고 말았다. 다른 나라에 비해 확진자 수가 적다는 걸 성과로 내세운 ‘K방역’의 모래성도 파도에 쓸려 떠내려가고 말았다. 그 피해는 삶의 절벽으로 몰린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그리고 비대면 예배라는 통제가 일상화된 한국교회에 고스란히 전가됐다.

그게 끝이었다면 오늘은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전 세계가 백신 확보에 사활을 걸때 정부와 여당은 지금은 효능이 검증되지 않은 비싼 백신을 들여올 필요가 없다며 한가한 소리만 했다. 백신 확보 늑장 대처는 정부의 방역정책이 얼마나 주먹구구식이고 비과학적이었는지를 국민에게 들키는 계기가 됐다.

백신을 조기에 확보하지 못한 이유를 “백신이 비싸서”, “효능이 검증되지 않아서”라고 대는 구차한 변명이다. 국산 백신 개발에 근거 없는 기대를 걸다 뒤늦게 현실을 파악하게 된 결정적인 정책 판단 미스라고 해야 맞다. 결국, 뒤늦게 계약에 뛰어드는 바람에 효능 검증도 제대로 되지 않은 AZ 백신을 들여올 수밖에 없었고, 지금 그 백신을 주로 맞은 고령층에서 위중증 환자가 다수 발생하고 있는 상관관계는 언젠가 반드시 밝혀져야 할 문제다.

확진자와 위중증 환자, 사망자가 폭증하고 의료 체계가 마비되면서 44일 만에 일상회복(위드 코로나)은 급 멈춤으로 막을 내렸다. 만약 “후퇴할 수 없다”던 문 대통령의 결연한 의지가 정치적 정무적 판단이 아닌 과학과 의학에 근거했더라면 어땠을까. ‘위드 코로나’는 일시 멈추더라도 일상회복에 대한 기대감과 희망까지 멈추지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코로나19 중환자가 산소마스크를 단 채 입원한 지 20일이 지났다는 이유로 강제 퇴원 당하고, 확진된 만삭의 임신부가 병상이 없어 119구급차에서 출산하는 사태가 세밑에 벌어지겠는가. 그런데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게 더 큰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