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당장 ‘위드 코로나’를 선택할 수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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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부가 추석 연휴 기간 동안 한시적으로 풀었던 거리두기 4단계 지역 백신접종 완료자 가족모임 확대조치를 24일부터 8명에서 본래대로 6명 이내로 환원한다고 발표했다. 추석 연휴 기간 동안 이동과 모임이 증가해 수도권의 유행 규모가 커지고 있는 것을 우려한 데 따른 조치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는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수는 추석 연휴에 검사자 수가 줄었음에도 1,500명에서 2,000명 사이를 오르내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연휴 기간에 인구 이동과 가족·지인간 접촉 증가로 다음 주에는 확진자가 2,500명대로 폭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코로나19 4차 대유행이 두 달이 넘게 지속되면서 정부는 국민을 상대로 방역의 고삐를 조였다 풀었다를 반복하고 있다. 방역 당국으로서도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이겠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특히 도시 영세 자영업 종사자와 소상공인에게 돌아가고 있다. 정부의 코로나19 방역에 따른 통제 조치가 장기화하면서 생활고에 시달린 자영업자들의 극단적인 선택이 잇따르고 있으니 이런 비극이 어디 있나.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7일 “백신 접종 시작 204일 만에 전체 인구의 70%가 1차 접종을 마쳤다”며 “이는 OECD 국가 중에 아이슬란드를 제외하고 최단 기간에 달성한 놀라운 기록”이라고 K-방역을 자랑했다. 이에 대해 의사 출신인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문 대통령이) 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률 70%를 강조하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잘못된 정책 판단으로 백신 확보에 한참 뒤처졌던 우리나라가 숱한 시행착오 끝에 1차 접종률 70%를 기록하게 된 것은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1차 접종률만 가지고 대통령이 대단한 성과인 양 자랑하는 것은 아무리 봐도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1차 접종으로는 제대로 된 방어력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2차 접종까지 마쳐야 감염이나 중증, 사망을 최소화할 수 있다”며 대통령의 치적 홍보가 되려 국민의 방역에 대한 경각심을 느슨하게 만들 수도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문 대통령과 정부는 코로나19가 국내에서 확산된 지난 1년 6개월 동안 침이 마르도록 K-방역을 자랑해 왔다. 그런데 그 K-방역의 실체란 것이 따지고 보면 의료진의 헌신적인 노력과 국민의 고통 분담, 자발적 참여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우리의 현실에서 마스크 착용은 실내든 야외든 필수이고, 공공장소는 물론이고 모든 건물을 출입할 때마다 체온을 체크하고, 휴대전화로 인증을 하는 게 일상이다. 이런 통제의 결과로 만들어진 K-방역의 주역을 굳이 꼽자면 국민이지 정부가 아니란 말이다.

어디 그뿐인가. 종교의 자유가 법으로 보장된 나라에서 정부의 각종 행정 명령과 통제에 따라 비대면 예배를 드려야 했고, 좌석 수의 10% 20% 등으로 예배 인원을 허가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운영중단, 폐쇄명령 등의 행정조치가 뒤따른다. 민주주의가 아닌 사회주의 국가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다.

미국은 지난달 초 연방정부가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명령하자 텍사스주를 비롯한 8개 주 지사들이 이에 반기를 들었다. 아무리 정부라도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비록 초유의 감염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 정책이라도 개인에 대한 과도한 간섭이라고 판단되면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자유 민주주의에 기반한 미국의 인권 정신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야외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을 보기 힘들 정도다. 미국에서 마스크 쓰기는 병원이나 주요 시설의 출입자를 제외하고는 실내에서도 의무가 아닌 권고 사항이다. 매일 수만 명의 확진자가 나오는 영국에서도 축구경기장 등에서 수만 명의 관중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모습을 TV로 쉽게 볼 수 있다.

이처럼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주요 유럽 국가들은 올 8월부터 코로나19와의 공존, 즉 ‘위드(with) 코로나’로 빠르게 일상을 회복해 가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가 ‘위드 코로나’를 선택했다. 이들 나라는 코로나19의 완전한 종식을 기다리기보다는 백신 접종을 늘려 치명 환자를 줄이는 새로운 방역체계에 돌입한 것이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여전히 국가와 정부가 국민 개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간섭하고 통제하는 방역체계를 고수하고 있다. 다른 나라들보다 절대 가볍지 않은 방역 통제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으면 방역의 효과라도 즉시 나타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문제다. 최고 최후의 거리두기 4단계 하에서도 두 달이 넘도록 코로나19 4차 유행의 고비를 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무언가 잘못됐음을 의미한다.

문 대통령이 “터널의 끝이 보인다”, “짧고 굵게 끝내겠다”고 한지가 언젠데 끝이 보이지 않는 방역 전쟁에 국민은 골병이 들고 소시민의 삶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국가와 정부가 이토록 철저하게 국민 개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간섭하고 통제하는 데도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데 아직도 틈만 나면 자랑이니 답답하지 않겠는가.

이런 현실에서 우리도 당장 ‘위드 코로나’를 시행해 일상을 회복하자고 하면 성급하고 무책임하게 들릴 수 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고령층 90% 이상, 성인 80% 이상이 백신 접종을 완료하면 ‘위드 코로나’로 방역 전략을 전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방역 당국은 그 시점을 대략 10월말 경으로 보고 있다.

백신 접종률 때문에 당장 ‘위드 코로나’를 시행할 수 없다면 백신 접종자에게 주는 ‘인센티브’라도 확대해 모임 인원 제한을 완화하는 방안이라도 검토해야 한다. 거리두기 하에서 사적 모임 및 예배 제한 등의 획일적인 조치만이라도 과학적 통계를 기반으로 개선하면 국민의 고통은 지금보다는 훨씬 줄어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