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다시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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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통신 연락선이 복원된 지난 27일 한 군인이 서해지구 군 통신선 시험통신을 하고 있다. ©국방부

북한이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 삼아 일방적으로 차단했던 통신 연락선이 13개월 만인 27일 전격 복원됐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부터 수차례 친서를 교환하면서 소통해 온 결과라며 남북 관계 개선과 발전에 긍정적인 작용을 할 것이라는 입장을 냈다.

이번 조치로 남북 간에 긴장이 완화되고 평화가 조성되는 계기가 된다면 분명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문재인 정부를 향해 온갖 막말을 쏟아내며 “봄날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큰소리치던 북한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일방적으로 끊었던 통신선 복원에 응한 배경이 무엇일지 자못 궁금하다.

외교가에서는 북한이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된 경제난과 코로나19 확산을 그 이유로 들고 있다. 코로나로 지난해 1월부터 꽁꽁 걸어 잠갔던 북중 국경을 다음 달에 개방하기로 한 것도 북한의 절박한 상황을 말해 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와 풀어야 할 문제를 위해 여전히 문재인 정부를 ‘징검다리’로 활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계산된 의도로 관측된다.

정부가 지난 4월에 이미 비대면 영상회의실을 구축하고 시연회까지 끝마친 상태라고 밝히자 벌써부터 화상으로 남북정상회담이 추진되고 있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고 있다. 외신도 잇따라 남북당국이 정상회담 개최를 논의중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논의한 바 없다”고 즉각 부인하고 나섰다. 통신선 복원 자체만으로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정작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이토록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고 의아하다.

문 대통령 임기 중에 남북 정상이 어떤 식으로든 다시 만나게 된다면 향후 남북관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자신의 임기 중에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라는 치적에 방점을 찍을 사실상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왜 전에 없이 차분한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아직 남북이 그런 정도로 신뢰 회복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한 원인일 수 있다. 북한은 최근까지 우리 정부에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해 왔다. 북한이 대북전단지 문제로 남북공동 연락소를 폭파하고 통신선을 일방적으로 끊은 것과도 연관이 있다. 그동안 남북이 친서 교환을 할 정도로 관계가 나아졌다고는 하나 이제 다시 첫걸음을 떼는 수준일 뿐이다.

또 정부가 여전히 북한의 눈치를 살피는 것일 수 있다. 북한의 목적은 초지일관 남한 정부를 이용해 미국과의 협상에서 제재 완화 등 요구조건을 관철하려는 것이다. 우는 아이 젖 주는 식으로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는 척하다가 수틀리면 언제든 쪽박을 깰 수 있는 게 북한이다. 정부로서는 늘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일 것이다.

내년 대선을 겨냥한 정치적 이벤트라는 야권의 공세도 청와대로서는 큰 부담이다. 국민의힘에서는 이전 남북 정상회담도 공교롭게 지방선거 전이었다며, 대선을 앞둔 정치적 쇼가 아닌지 의심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청와대가 아직은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문 대통령의 임기 중에 남북 정상회담 개최는 흔들릴 수 없는 목표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올 신년 기자회견에서 “뭔가 성과를 낼 수 있다면 언제든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며 정상회담 개최 의지를 분명히 했다. 그런 문 대통령의 간절한 의지에 비쳐 볼 때 통신선 복원과 함께 지난 4월에 이미 설치를 완료했다는 비대면 영상회의실도 단순한 전시용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아직은 아니지만 언젠가 남북 정상회담이 다시 성사된다면 반드시 짚어야 할 과제가 있다. 그 첫 번째는 북한의 비핵화다. 유엔 등 국제사회는 서울뿐 아니라 대한민국을 불바다로 만들지도 모를 북한의 가공할 핵 위협을 마치 눈감아주는 듯한 한국 정부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입장이다. 북한의 비핵화가 담보되지 못하는 그 어떤 회담도 눈속임일 뿐이다.

두 번째는 북한의 한미연합 훈련 중단 또는 축소 요구에 단호해야 한다. 한미연합훈련은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이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한 방어 훈련이지 침략전쟁 연습이 아니다. 북한이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해야 한다.

세 번째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것과 우리 민간인을 죽이고 시신을 훼손한 것에 대해 분명한 사과를 받아야 한다. 그렇지않으면 이런 사태는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 북한이 이 문제에 사과 표명을 해야만 사건 이전의 관계로 돌아갈 수 있고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그 다음이 국군포로와 납북된 국민 송환문제다. 이 문제는 문 대통령이 반드시 임기 내에 풀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이전 정상회담에서 단 한 번도 거론된 적이 없다. 그런 사실에 비춰볼 때 국가 최고 책임자로서 가장 중요한 의무를 방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정부와 청와대가 남북 간에 평화를 이룬 정권이라는 치적을 유권자인 국민 머릿속에 어떻게서든 각인시키고 싶은 것까지 뭐라 할 수는 없다. 정말 그런 성과가 있었다면 박수와 지지를 보낼 것이다. 그러나 이전처럼 아무 성과 없이 알맹이 없는 재탕 쇼로 끝나면 박수 대신 비난과 함께 허송세월한 책임에 따른 청구서가 날아올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언젠가 다시 열릴 남북 정상회담은 문 대통령과 현 정부에는 그동안 북한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며 ‘종속’ ‘굴종’으로 각인된 불편한 이미지에서 벗어날 절호의 마지막 찬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