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가지 장면으로 보는 오병이어

목회·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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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건 기자
haeil2021@gmail.com
주낙현 신부, 비대면 성창례 강론 '오병이어-봉헌과 감사의 신앙'
오병이어 기적 사건 ©주낙현 신부 페이스북 캡처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 주임사제 주낙현 신부가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대면 성찬례 강론 '오병이어- 봉헌과 감사의 신앙'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주 신부는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을 하시는 분들의 처지가 딱하다 못해, 절망스러울 지경입니다. 여러모로 애쓰시는 우리 교우들을 생각한다"며 "염려와 응원의 전화에, 언제나 환한 목소리로 화답하시며, 다른 분들의 처지까지 염려해 주시는 마음이 참으로 너그럽고 고맙다"고 운을 뗐다.

주 신부는 그러면서 "이제 막 방학을 맞은 우리 아이들을 기억한다. 제대로 친구들과 뛰어놀지도 못하는 처지다. 들쭉날쭉한 일정에 따라 집과 학교를 오가는 불편이 참 답답하다. 그래도 사랑하는 자녀들은 우리가 염려하는 모습보다 더 아름답게 자라나고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또 "이 상황에서 여전히 묵묵하고 성실하게 삶을 이어나가는 여러분을 기억한다. 때로는 실망과 좌절을 경험하기도 한다"며 "마음대로 풀리지 않은 삶이 답답하기도 하다. 그런데도 함께하는 사람들을 보살피고, 가정을 지켜나가고, 교회마저 염려하시며 땀 흘리는 여러분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감사의 마음과 함께 기도로 응원한다"고 했다.

주 신부는 "성서에서 보여주는 놀라운 기적 이야기에는 이 봉헌과 예배가 밑에 깔려 있다. 그 성서의 기적들은 덮어놓고 믿어야 할 이야기가 아니다"라며 "그렇게 되면 상식으로 보아도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믿는 사람으로 취급받기 쉽다. 그렇다고, 대놓고 의심하자니 신앙의 덕이 모자란듯하여 입 밖에 내기 부담스럽다. 다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놓는 봉헌의 행동과 사람보다 크신 하느님 앞에 겸손하게 무릎 꿇는 예배 안에서 우리는 기적을 경험하고 은총을 나누는 신앙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오늘 우리가 목격한 '오병이어'의 기적이야말로 그 분명한 사례다.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이야기는 복음서 네 권에 모두 나오는 유일한 기적이다. 그만큼 예수님의 삶과 선교의 핵심을 보여준다"며 "오병이어 기적에는 앞으로 다섯 주일에 걸쳐 요한복음이 전하는 '생명의 빵' 이야기를 이해하는 열쇠가 들어 있다. 우리가 주일마다 드리는 성찬례의 뜻이 녹아 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신앙인으로 살아가야 할 덕목이 마련되어 있다. 우리가 마침내 지상의 삶을 마치고 다다라야 할 하느님 나라를 향한 자세와 희망이 들어 있다"고 했다.

주 신부는 그러면서 본문의 이야기에 담긴 중요한 장면을 다섯 가지로 나눠 살폈다. 주 신부는 첫째로 이 이야기의 무대인 '산'(山)을 기억해 달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이야기는 산에서 펼쳐진다. 요한복음서는 늘 구약성서 이야기를 머리에 담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산이라고 하면, 모세가 산에 올라 하느님을 만나고 계명을 받던 모습이 떠오른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백성을 억압과 노예의 사슬에서 끌어낸 해방자 모세를 닮은 것이다.

주 신부는 "산은 하느님과 가장 가까이 할 수 있는 곳을 상징한다. 수고롭게 그 산에 올라서 하느님을 만난다. 그러므로 이 산은 여러분이 주일마다 오르는 성당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지금은 비대면 상황으로 어쩔 수 없지만, 여러분이 몸과 마음을 단장하여 오르던 이 곳을 기억해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모세가 하느님을 만나고, 주님께서 거룩하게 변모하고, 주님께서 고뇌의 기도로 결단하고, 결국에 인간을 죄에서 풀어주시려고 십자가에 달리신 곳이 모두 산이었다"며 "우리에게 성당은 바로 그 산을 의미한다. 하느님을 만나고, 괴로움을 털어놓고, 자신을 희생하여 새로운 일이 펼쳐지도록 하는 곳이 바로 성당이다"라고 했다.

둘째로 주 신부는 제자들의 행동에 주목할 것을 당부했다. 주 신부는 "예수님은 배고픈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라고 제자들에게 지시한다. 그런데 제자들은 곧바로 자신의 상식에 따라 만든 손익계산서를 들이민다. 실행이 곤란하다고 머리를 젓습니다. 현실을 나 몰라라 하는 무리한 요구라고 불평한다. 아니, 예수님의 명령이 비현실적인 요구라고 빈정대는 듯한 모습으로도 보인다. 어쩌면 빠듯한 살림에 다른 사람을 보살피거나 선교에 힘쓸 겨를이 없다는 우리의 걱정이 겹쳐지는 장면이기도 한다"고 했다.

이어 주 신부는 "변화와 희망을 마련하는 신앙인은 그것을 넘어서서 밖을 향해 도전하는 사람이다. 제자라는 말에는 늘 배워서 희망을 일구어 나간다는 뜻이 있다"라며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변명하거나 불평하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 신앙인은 상식과 현실을 무릅쓰고, 새롭게 배워서 상식을 확장하고 현실을 고쳐나가는 사람이다. 이렇게 희망을 만들어나가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주 신부는 셋째로 뜻밖에 끌려 나온 듯한 '소년의 작은 도시락'에서의 전환 사건을 주목했다. 그는 "예수님의 현실 감각이 못마땅했던 제자들은 명백한 사례를 보여주겠다며, 작은 소년의 도시락을 보여준다. 이름 있는 어른 제자들과 이름 없는 어린 소년이 비교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큰 어른의 손익계산에 따른 거절과 그저 있는 그대로 바치는 작은 소년의 봉헌이 대비된다. 마련해야 할 엄청난 양의 음식과 작은 도시락의 차이가 뚜렷하다"고 했다.

주 신부는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손익계산서가 아니라, 무명의 소년이 지닌 작은 도시락의 정성에서 새로운 일을 펼치신다. 우리 신앙인은 크기와 관계없이 어떤 헌신과 봉헌에서도 새로운 일이 펼쳐진다고 믿는다. 자신을 내어놓는 작은 봉헌의 결단과 행동이 사태의 전환을 열어준다"고 했다.

주 신부는 넷째로 예수님의 감사의 기도 장면을 꼽았다. 그는 "예수님은 이 작은 봉헌에 고마워하시는 분이었다. 이 소년을 보내주신 하느님께 감사하셨다.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과 주위 사람들에게 늘 감사하며 살라는 당부다. 베푸시고 이끄시는 하느님께 감사하며 살라는 부탁이다"라고 했다.

이어 "이야말로 우리가 주일 예배를 '감사성찬례'(Eucharist)로 드리는 이유이기도 한다. 감사성찬례의 성서 원어인 '유카리스티아'는 '감사하다'는 뜻이다. 신앙인은 작은 것에 감사하는 행동에서 새로운 축복이 널리 펼쳐지는 기적을 믿는다. 우리는 이 예배 안에서 작은 사람을 축복하시고, 작은 봉헌과 헌신을 축복하셔서 더욱 넓고 크게 쓰시는 하느님을 경험한다. 이로써, 오천 명이 배불리 먹는 사건이 일어났다"고 했다.

주 신부는 "오천 명이 넘는 사람이 먹는 사건을 보고서야 제자들이 움직인다. 제자들은 그 배움의 본분을 회복하여, 소년에게서 배우고, 주님에게서 가르침을 듣고, 감사의 행동이 마련하는 사건을 목격하며, 새로운 행동을 하게 되었다"며 "남은 열두 광주리 분량의 음식은 제자들이 그전에 흔들었던 손익계산서 한 장과 좋은 비교를 이룬다. 삶에 감사하는 모든 행동은 풍성한 변화를 낳고, 그 내부를 채울 뿐만 아니라, 넘쳐흘러서 외부에도 널리 펼쳐진다. 이것이 선교다"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을 기억할 것을 주문했다. 주 신부는 "우리가 아무리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을 받았다 해도 우리 삶은 여전히 세상의 풍파와 사나운 파도 속에서 위태로운 시간을 겪는다"라며 "은총과 위기를 번갈아 겪으며 우리는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 빠질듯한 물과 삼킬듯한 풍랑 위로 주님께서 걸으신다. 주님께서 그 삶에 함께하시니 '두려워 말라'고 용기를 주신다. 그러는 동안 '어느새' 우리는 '목적지에 닿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 들려온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