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의 시와 음악은 경건성, 복음가는 대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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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엽의 교회음악 이야기 8
김명엽 교회음악아카데미 원장 ©김명엽 교수 제공

성 어거스틴이 정의한 ‘찬송의 3요소’(‘찬미’, ‘노래’, ‘하나님께 드려짐’) 중 둘째 요소인 ‘노래’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노래는 가사와 곡조가 있지요.

가사 비교

먼저 찬송가(Hymn)와 복음가(Gospel Song)의 가사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 시는 가장 아름다운 언어이어야 합니다. 시편은 물론이고, 누가복음에 나오는 송가(頌歌, canticle)를 비롯해 ‘모세의 노래’, ‘한나의 노래’, 사도 요한의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성경의 모든 노래들은 아름다운 시어(詩語)입니다.

‘시’(詩)란 한자는 말씀 ‘언’(言)변에 절 ‘사’(寺). 시는 말로서 절을 짓는다는 뜻입니다. 감동이나 생각이 가장 간결한 언어로 표현된 아름다운 문학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찬송이 아름다운 시문학이고 보면 시로서 찬송하는 우리는 시인들인 셈입니다.

예컨대 성 프란시스(St. Francis of Assisi)가 지은 찬송 시 ‘온 천하 만물 우러러’(찬 69장)를 보십시오. 이탈리아어 시가 영어를 거쳐 우리말로 번역되었는데도 이렇게 아름다우니 원문은 어떨까요.

“1.온 천하 만물 우러러 다 주를 찬양하여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저 금 빛나는 밝은 해, 저 은빛 나는 밝은 달, 하나님을 찬양하라.
[후렴]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찬 69장 1절)

찬송시가 문학적으로 가치가 높은 언어인데 반해 복음가는 문학적으로 높은 수준이 아니어도 됩니다. 복음가는 본디 주님을 모르거나 떠난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부르는 노래이기에 시이기보다는 이해하기 쉬운 말, 직설적이며 더욱더 실감 나는 일상어입니다. 복음은 교양이 높은 사람에게도 필요하겠지만 못 배운 사람, 힘이 없는 사람, 병든 사람 같은 모든 이들에게 전해져야겠기에 언어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대중의 눈높이이어야 합니다. 복음의 긴급성이라 할 수 있겠지요.

예컨대 커크패트릭(W.J.Kirkpatrick)이 지은 ‘나 주를 멀리 떠났다’(찬 273장)를 보십시오.

“1.나 주를 멀리 떠났다 이제 옵니다. 나 죄의 길에 시달려, 주여, 옵니다.
[후렴] 나 이제 왔으니 내 집을 찾아, 주여, 나를 받으사 맞아 주소서.”(찬 273장 1절)

찬송가 악보 오른편 상단의 8.5.8.5.는 가사의 운율(韻律, meter)을 나타낸 것입니다. “나 주를 멀리 떠났다”의 8음절, “이제 옵니다”의 5음절의 표시입니다. 마치 기성복의 치수와 같아서 찬송 시에 곡조를 붙이기 위한 치수입니다. 가사는 몸이요, 노래는 옷이니까요. 복음가는 노래를 부르기 위하여 정해진 운율이 있어 최소한의 시의 형태는 갖추었을지라도 문학적으로 수준이 높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일상의 언어이기에 접근하기 쉽고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감성적인 호소가 짙습니다. “이제 옵니다” “주여 옵니다” 같이 반복이나 후렴형식을 취하여 더욱 감정적이고 감상적이기까지 합니다.

멜로디 비교

다음은 찬송가와 복음가의 음악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찬송 시가 하나님께 드려지기에 가장 아름다운 말, 곧 시이어야 하듯이 멜로디와 화성을 비롯한 음악도 가장 아름다운 예술이어야 합니다. 찬송에 대한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개념은 순음악(純音樂, 혹은 고전음악, Classic Music)입니다. 음악은 크게 순음악과 경음악(輕音樂, Light Music)으로 분류합니다. 순음악(클래식)은 ‘예술적 가치가 높은 음악’이라고 정의합니다. 아름다움의 창작과 표현이 예술입니다. 가장 거룩하고 수준 높은 예술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시편 96편에 그 성소에 거룩함과 아름다움이 있다고 했습니다.

“존귀와 위엄이 그의 앞에 있으며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의 성소에 있도다”(시96;6)

면류관 벗어서 (찬 25장)

예컨대 엘비(G.J.Elvey)가 작곡한 ‘면류관 벗어서’(찬 25장)를 보십시오.

이 영국찬송은 멜로디 못지않게 화성도 아름답습니다. “면류관 벗어서 주 앞에 드리세”를 노래하는 1-8마디까지만 보아도 정3화음인 I도(도미솔), IV도(파라도), V(솔시레) 뿐만 아니라 매 박자마다 부3화음인 iii도(미솔시), vi도(라도미), vii도(시레파), 그리고 변화화음, 비화성음까지 다양합니다. 그러다 보니 베이스 선율까지도 ‘도도도라라파/ 파미파레도솔/ 솔도시라도레도시/ 라솔도레레솔’하며 멋있습니다. 이 곡은 웬만큼 훈련받지 않고선 합창으로 노래하기 어렵습니다. 복음가 같으면 노래하기 쉬운 정3화음과 베이스 진행도 근음(根音)만을 사용할 텐데 말입니다. 왜일까요? 보다 예술적으로, 보다 심미적(審美的)으로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복음가는 재미있습니다. 대중이 좋아하는 모든 요소들을 수용하다 보니 다분히 세속적입니다. 복음은 어느 누구에게나 전파되어야 하기에 그렇습니다. 멜로디와 리듬은 보다 자유로워 경건한 찬송가처럼 4분음표나 2분음표로 음절식이 아니어도 되고, 화성도 대중음악처럼 I도, IV도, V도의 정3화음 등 단순한 화성을 기본으로 합니다. 기타나 악기의 반주가 쉽고, 드럼 같은 타악기 반주로 박수 쳐가며 흥을 돋웁니다.

복음가가 처음 나타난 초기는 순수한 미국적 성격을 지닌 ‘오, 수재너’ ‘스와니 강’ 같은 포스터(Stephen Collins Foster, 1826-1864)의 가곡이 애창되던 때입니다. 그의 가곡은 미국 남부 흑인의 민속음악이나 그들의 생활에서 나온 것이 많아 따뜻한 정서와 정감이 있습니다. 또 19C 말부터 20C 초 미국의 남부, 뉴올리언스 변두리의 흑인과 크리올(Creole, 흑인과 프랑스인과의 혼혈)들 사이에서 춤이나 퍼레이드를 위해 불린 재즈도 한몫을 했습니다. 이런 대중음악 분위기는 복음가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289장)

예컨대 경쾌하여 엉덩춤이 절로 나오는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289장)를 보십시오. ‘변하여 새사람’을 시작으로 후렴의 ‘예수 내 맘에’ 등 ♪♩ ♪ 리듬인 당김음(syncopation)이 주를 이루지요.

찬송가는 시어로 된 클래식이요, 복음가는 일상어로 된 팝음악입니다.

*** 이 글은 필자가 진행하는 유튜브 ‘김명엽의 찬송교실’ 동영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김명엽(교회음악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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