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김여정 말 한 마디면 다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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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출신의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가 ‘대북전단금지법’ 발효 이후 처음으로 대북전단 등을 북한으로 날려 보냈다고 스스로 밝혔다. 그런 직후인 지난 2일 김창룡 경찰청장이 일선 경찰에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통해 엄정 처리하라”는 특별수사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경찰청장이 ‘대북전단금지법’과 관련해 ‘김여정 하명 수사’ 지시를 내린 것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박상학 대표는 지난달 30일 인터넷 자유북한운동연합 홈페이지에 ‘대북전단 살포는 계속된다’라는 제목으로 성명서와 사진을 게재했다. 그러면서 “4월 25일부터 29일 사이에 DMZ와 인접한 경기도와 강원도 일대에서 2차에 걸쳐 대북전단 50만장, 소책자 500권, 1$ 지폐 5000장을 10개의 대형애드벌룬을 이용해 북한으로 날려 보냈다”고 직접 밝혔다.

그런 직후에 통일부는 “경찰이 전담팀을 구성해 조사하는 만큼 ‘남북관계발전법’ 개정 법률이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과 안전 보호를 위한 취지에 부합되게 확실히 이행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경찰청장도 신속한 수사와 엄정 처리를 지시했다. 대북전단 살포 시 최대 징역 3년 형에 처할 수 있는 ‘대북전단금지법’이 시행되고 있는 만큼 경찰 총수가 관련법에 따라 수사를 지시하는 것이 별문제가 될 수는 없다.

그런데 경찰청장의 ‘엄정 수사’ 특별지시가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남조선 당국은 탈북자 놈들의 무분별한 망동을 또 다시 방치해 두고 저지시키지 않았다”는 내용의 담화를 내놓은 직후에 나와 문제가 되고 있다. 김여정은 박상학 대표가 대북전단지 등을 북한을 향해 살포한 사실을 밝힌 직후에 낸 담화에서 “탈북자 쓰레기들이 또 다시 기어 다니며 반공화국 삐라를 살포하는 용납못할 도발을 감행했다”고 비난하면서 우리 정부를 향해 “남조선 당국은 무분별한 망동을 방치해두고 저지하지 않았다. 상응한 행동을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김여정이 대북전단을 날린 탈북단체를 처벌하지 않으면 상응한 행동을 검토하겠다고 한 것은 사실상 우리 정부를 향한 협박이나 다름없다. 지난해 정부와 여당은 김여정이 “그 쓰레기들의 광대놀음을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라”는 내용의 담화 발표 직후에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전격 폭파하자 서둘러 ‘대북전단금지법’을 발의, 통과시켰다. 이런 전례가 있으니 또 협박성 발언으로 으름장을 놓은 것이다.

일각에서 ‘대북전단금지법’을 소위 ‘김여정 하명법’이라고 비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이번에 또 다시 김여정이 남측이 ‘대북전단금지법’을 만들어 놓고도 제대로 단속을 안 한다고 불같이 화를 내자 곧바로 경찰총수가 “조속히 수사해 엄정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북에 전달한 꼴이 됐으니 ‘김여정 하명법’에 이어 이번엔 ‘김여정 하명 수사’라는 조롱과 비난이 쏟아지는 것이다.

지난해 말 거여의 입법 폭주로 국회에서 통과돼 3월부터 발효된 ‘대북전단금지법’(개정 남북관계발전법)에 이어 정부가 한 걸음 더 나아가 대북 전파 방송까지 통제하려는 듯한 움직임이 있어 우려스럽다. 민간인이나 단체가 대북 반출·반입을 하려면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최근에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대북 반출·반입 항목에 ‘정보통신망을 통한 송·수신’을 포함하는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이에 대해 대북 인권단체들은 대북전단지 금지에서 더 나아가 대북 라디오 방송 송출까지 막으려는 의도가 아닌지 벌써부터 긴장하고 있다.

‘대북전단금지법’은 국내외적으로 최악의 반인권법이란 오명을 쓰고 있다. 한변 등 27개 시민단체들은 헌법재판소에 이미 헌법소원 및 효력정지 신청을 한 상태다. 미국은 이 문제로 지난 4월 15일 의회 내 톰 렌토스 인권위원회 청문회를 개최한 데 이어 지난 4월 22일에는 킨타나 북한인권 특별보고관, 아이린 칸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등 4명의 특별보고관들이 처음 합동으로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는 등 보다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문제가 오는 21일 미국 바이든 행정부 들어 처음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 정식 의제로 다뤄질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의 비핵화뿐 아니라 인권 문제에 비상한 관심을 표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영향이 전혀 없으리란 것도 장담할 수 없다. 정부로서도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는 대목이다.

미국은 지난달 30일 박상학 대표의 대북전단 살포와 관련해 “미국은 북한 주민들의 정보 접근을 증진하기 위해 비영리 및 탈북민 단체들과 협력을 지속하고 있다”며 국무부 대변인 명의로 지지 의사를 밝혔다. 또 지난 제18회 북한자유주간 기간에는 “김정은 정권에 대한 책임을 촉진하기 위해 유엔, 그리고 뜻을 같이하는 동맹들과 함께 협력할 것”이라며 “탈북민들과 인권단체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하며, 이러한 중대한 불의를 집중 조명하려는 그들의 노력을 항상 지지할 것”이라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북한의 3대 세습정권의 폭정을 견디지 못해 탈북해 대한민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에게 있어 대북전단지는 북에 두고 온 부모와 형제에게 진실을 알리고 자유에 대한 희망을 전하는 편지와 같은 특별한 의미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사명으로 여기고 있는 일을 법으로 막고 있으니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북한에 전단지를 보내는 것이 잘못인지, 그런 행위를 금지하는 법이 잘못인지는 국민 각자의 생각과 판단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 침해 등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면서까지 강제하는 법은 이미 법 자체가 위헌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런 법을 구실로 경찰 총수까지 나서 북한 김정은 정권의 심기를 살피고, 지시에 따르는 모양새가 됐으니 한숨이 절로 나오지 않겠는가. 미국과 국제사회가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내정간섭’이라며 발끈했던 여권이 북한 실권자가 한 마디 하자 바로 법을 만들고, 또 즉각 수사 지지를 내리는 굴종적인 자세에 대해서는 어떤 이유와 구실을 댈지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