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이겨낸 어미까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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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취현 변호사(행동하는프로라이프 사무총장)

우연히 ‘까치와 여우와 왁새’라는 전래동화를 하나 읽고, 그 내용이 이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있어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대략의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까치가 여러마리의 새끼를 낳아 키우고 있는데 어느날 여우가 나타나 새끼 한 마리를 내놓지 않으면 모두 다 잡아먹는다고 위협하니 겁에 질린 어미 까치가 한 마리를 골라 내어줍니다. 그런데 까치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매일 와서 어미를 위협하고 겁에질린 까치가 새끼들을 자꾸만 내어줍니다. 그러던 어느날 왁새가 까치에게 여우는 나무를 올라올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어 이에 용기를 낸 까치가 여우로부터 남은 새끼를 구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엄마까치의 마음을 생각해보았습니다. 다른 새끼를 살리기 위해 어떤 새끼를 희생시켰을까? 가장 마지막에 나온 새끼? 연약해 보이는 새끼? 한 마리를 골라 내어주는 엄마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우리가 엄마까치라면 어떻게 했어야 할까요? 현재 우리의 모습은 어리석은 엄마까치의 모습은 아닌가요?

그리고 비록 내 새끼가 아니지만 모른척 하지않고 엄마까치를 일깨워준 왁새는 도대체 왜 그랬던 걸까요? 여우가 쫓아와 해코지할 것이 분명한데도 말입니다. 저 스스로에게 계속적으로 묻게 되는 이 물음을 같이 나누어 보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생명을 스스로 포기하고, 스스로 조율하고, 스스로 선택하기 원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다른 생명을 위해서라고, 나의 생존을 위해서라고, 내 자아가 살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들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사실은 나무에 오를 수 없는 여우의 위협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 이야기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나와있는 해설에 이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을 그렇게 만든 건 여우도 하늘도 아니었어요. 문제는 자기 자신한테 있었지요. 까치를 사로잡은 ‘두려움’을 두고 하는 말이예요. 나는 도저히 여우를 이길 수 없다는 두려움, 여우를 거스르면 모든 걸 잃는다는 두려움, 그 두려움에 갇힌 탓에 까치는 앞뒤 상황을 가리지도 못하고 스스로 덫에 걸렸던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의 어미까치들이 같이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진정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력을 가지고 대응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베드로전서 5:8)”

다행히 동화에서는 까치가 왁새의 말을 듣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두려움을 이기고 담대하게 여우에게 호통을 쳤고, 남은 새끼라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고비를 이겨내는 일입니다. 거기서 꺾여 버리면 아무 일도 못하게 되지요. 하지만 그 고비를 넘기면 세상은 180도로 달라집니다. 억압은 자유가 되고, 절망은 희망이 되지요. 그렇게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마치 우리시대 교회에 주는 메시지 같습니다. 비록 우리안에는 이 고비를 이겨낼 힘이 없지만 하나님 주신 미약한 힘을 모을 때 180도 달라진 세상을 꿈꾸어봅니다.

낙태죄 입법공백이 4개월이 넘어갑니다. 그간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희생되었을까요? 어떤 때는 아무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현실에 화가 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은 언제나 “사랑”입니다. 아무의 사랑도 받지 못한 그 생명들을 예수님은 천국에서 사랑으로 키우고 계시겠지요? 그리고 아가들은 언제나 부모님을 사랑하겠지요? 예수님이 주신 사랑의 본성을 따라서요.

이번주 토요일인 4월 17일 우리나라에서 10번째 진행되는 생명대행진 비대면 컨퍼런스가 온라인으로 진행됩니다. 국회가 정치권이 움직이지 않는 한 법으로는 생명을 보호할 수 없지만, 우리의 마음이 담긴 한걸음 한걸음, 그 마음들이 모여 사랑의 힘이 될 줄 믿습니다. 종교와 정치를 넘어선 사랑의 화합의 울림이 이 땅 가득 울리기를 기도합니다.

연취현 변호사(행동하는 프로라이프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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