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코로나 방역, 국민의 ‘무한 희생’ 말고 다른 대책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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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매일 500~700명대를 기록하며 4차 대유행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방역 당국이 뚜렷한 대책도 마련하지 못한 채 ‘거리두기’ 준수만을 외치고 있어 불안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게다가 백신 수급마저 차질을 빚고 있어 이러다 우리 사회가 코로나19에 완전히 갇히게 되는 건 아닌지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정부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기존의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와 5인 이상 모임 금지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정세균 총리는 지난 9일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그토록 피하고자 했던 4차 유행의 파도가 점점 가까워지고 더 거세지는 형국”이라며 “정부는 기존 거리두기 단계와 5인 이상 모임 금지는 유지하되 방역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앞으로 3주간 강도 높게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 총리가 언급한대로 제4차 대유행의 높은 파도를 거리두기와 5인 이상 모임 금지만으로 막아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조차 회의적인 분위기다. 효과가 확실한 백신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애를 먹는 상황에서 오로지 국민의 자발적인 방역 희생에 기대야 한다는 것은 바퀴 빠진 수레를 억지로 굴리는 격이다.

정 총리는 “4차 유행의 목전에서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간곡히 호소드린다”며 “나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다시 한 번 멈춰야 할 때”라고 했다. 그러면서 “불가피한 경우 외에는 모임과 외출, 여행은 최대한 자제해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런데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불가피한 모임과 외출, 여행 자제”를 요청한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앞으로 2주가 고비”라는 말과 함께 지난 1년여 동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말이다. 국민들에게 방역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의도겠지만 한두 번도 아니고 1년이 넘도록 똑같은 말을 반복해서 들어야 하는 국민 입장에서는 피로와 인내심에 한계가 올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백신이 개발되기 전이나, 접종이 시작된 지금이나 매번 똑같은 메시지를 내고 있는 현실이 국민 입장에서 정부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려 ‘임기응변’, ‘땜질’ 대응 정도로 느끼게 만들 것이란 점을 지적하고 있다. 세계 각국이 이미 백신 접종의 효과를 보고 있는 마당에 아직도 정부가 오로지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에 모든 것을 기대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자체가 사실상 방역 실패를 자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2월 26일 시작된 국내 백신 접종은 지지부진하다 못해 답답한 실정이다. 4월 4일 0시 기준 96만2083명이 백신주사를 맞았는데 이는 전체 인구의 1.86%에 불과하다. 이 속도대로라면 모든 국민이 접종을 마치는데 5년이 넘게 걸릴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당초 정부가 정한 백신 접종 계획은 9월까지 전 국민 70% 정도 접종을 완료해서 집단면역을 달성하겠다는 것이었다. 백신주사를 놓을 의료 인력이나 시설 인프라가 충분한 상황에서 정부가 백신 수급만 원활하게 했다면 결코 불가능한 목표는 아니었다. 그러나 현실은 정부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의 모든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할 태세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4일 대국민 담화문에서 “코로나 수칙 위반 업소는 무관용 원칙으로 엄벌에 처하겠다”고 했다.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도 5일 “집중 단속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19 확산세를 꺾기위해 정부가 보다 강력한 의지로 방역 대책을 밀고나가는 것을 뭐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민 입장에선 백신 확보에 실패한 정부가 과연 모든 책임을 국민에게 돌릴 수 있는지,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은 시키는 대로 참고 견디고 희생했는데 정부는 도대체 그동안 무엇을 했기에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지고 있나.

한 때 정부는 백신 확보를 소홀히 하고도 “남들 먼저 맞는 걸 보고 접종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자기 합리화로 면피했었다. 그러고 나서 겨우 뒤늦게 들여온 것이 혈전 부작용 의심 사례가 있어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있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다.

백신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나라들은 이제 서서히 코로나에서 해방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누적 접종률이 116%나 돼 군인들부터 마스크 벗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미국은 한 때 수 만 명의 확진자가 나오는 등 심각한 상황이었으나 1억 명의 국민이 접종을 완료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4일 현재 백신 접종률 1.86%로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이것이 한때 K방역을 자랑하던 대한민국 코로나19 방역의 현주소다.

접종률이 앞서가는 나라들 사이에선 접종을 증명하는 ‘백신 여권’을 지닌 상대국 국민에게 입국 시 자가격리를 면제해주는 조치를 논의하는 상황이다. 우리에겐 너무나 부러운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 여권만 가지면 전 세계 189개 나라를 비자 없이 자유롭게 갈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에서는 이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4차 대유행기에 접어들게 되면 그만큼 코로나 위기에서 벗어날 기회에서 더 멀어지게 되고, 우리 사회 곳곳에 더욱 심한 고통과 희생이 초래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그 피해가 국민 모두에게 돌아오게 되는 만큼 모두가 힘을 합해 이 위기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코로나19에 관한 한 이대로 간다면 점점 고립무원의 ‘외딴섬’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것이 정부의 무능과 오판이 빚은 참사라 하도라도 지금의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또 다시 국민 모두의 희생과 고통 감수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인정하기 싫어도 직시해야 할 우리의 현실인 걸 어쩌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