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화 목사 고별설교] 은혜가 족하도다 (눅 2: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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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동교회 주일예배ㅣ2015.12.27ㅣ눈크 디미투스

 ▲성경본문 (새번역)

◇이사야서 63:7-8, 15-16
 나는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변함없는 사랑을 말하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여 주신 일로 주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베푸신 은혜, 그의 긍휼과 그의 풍성한 자비를 따라서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크신 은총을 내가 전하렵니다. 주님께서 이르시기를 “그들은 나의 백성이며, 그들은 나를 속이지 않는 자녀들이다” 하셨습니다. 그런 다음에 그들의 구원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하늘로부터 굽어 살펴 주십시오. 주님이 계시는 거룩하고 영화로우신 곳에서 굽어보아 주십시오. 주님의 열성과 권능은 이제 어디에 있습니까? 이제 나에게는 주님의 자비와 긍휼이 그쳤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여도, 오직 주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옛적부터 주님의 이름은 ‘우리의 속량자’이십니다. 아멘.

◇요한1서 1:1-3
 이 글은 생명의 말씀에 관한 것입니다. 이 생명의 말씀은 태초부터 계신 것이요, 우리가 들은 것이요, 우리가 눈으로 본 것이요, 우리가 지켜본 것이요, 우리가 손으로 만져본 것입니다. 이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영원한 생명을 여러분에게 증언하고 선포합니다. 이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우리는 여러분도 우리와 서로 사귐을 가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또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귐입니다. 아멘.

◇누가복음서 2:25-32
 그런데 마침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므로, 이스라엘이 받을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고, 또 성령이 그에게 임하여 계셨다. 그는 주님께서 세우신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할 것이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은 사람이었다. 그가 성령의 인도로 성전에 들어갔을 때에, 마침 아기의 부모가 율법이 정한 대로 행하고자 하여, 아기예수를 데리고 들어왔다. 시므온이 아기를 자기 팔로 받아서 안고, 하나님을 찬양하여 말하였다. “주님, 이제 주님께서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이 종을 세상에서 평안히 떠나가게 해주십니다. 내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이것을 모든 백성 앞에 마련하셨으니, 이는 이방 사람들에게는 계시하시는 빛이요,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아멘.

▲박종화 경동교회 담임목사(평통기연 상임공동대표)

▲설교전문

우리가 예배드리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특히 먼저 하나님께 찬양드릴 때 기뻐하십니다. 기도도 찬양이고, 노래도 찬양이고, 말씀 듣는 것도 찬양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우리 예배와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몇일 전에 성탄절이 있었습니다. 성탄절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주님이시지요. 이분 때문에 경동교회가 생겼고, 우리가 신앙을 갖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분이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찬양도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에 보면 특별히 누가복음서에 보면 아주 재미있는 기록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태어나신 25일을 중심으로 하여, 그 전에 두 가지 아주 진지하고, 깊은 뜻을 담은 성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세례요한의 아버지가 예수님 전에 길을 예비하는 세례요한을 낳을 때 감사해서 드린 찬양입니다. 또 하나는 성탄절 직전에 예수를 잉태한 마리아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찬양입니다. 예수가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8일 후에 할례도 받으셨고, 조금 더 있다 정결예식이 있어서 성전에 올라가셔서 정결예식을 하러 갔습니다. 그때 한 아저씨가 등장합니다. 이름은 시므온입니다. 예수의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닙니다. 전혀 다른 분이 등장합니다.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의 찬미, 예수 어머니인 마리아의 찬가, 동네 아저씨인 시므온의 하나님 찬가, 이 세 찬가가 기독교 성가의 원조입니다. 세례요한의 아버지인 사가랴의 찬가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감히 아내인 엘리사벳과 함께 예수님을 맞이할 세례요한을 잉태시키다니! 이 아이는 정말 복된 아이로다. 하나님, 진실로 찬양합니다. 복된 아이 주심을 찬양합니다.”

이 찬양을 라틴어로 번역할 때 ‘복되도다 주님께 찬양합니다’고 했습니다. ‘베네딕투스’라고 합니다. 질문이 있었지요.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임신한 중에 낳기 직전에 하는 찬가가 있습니다. 그 찬가를 하나님 너무도 감사합니다. 광대한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 진실로 찬미 받으소서 하는 말을 찬미 받으소서를 라틴어로 ‘마니피카트’라고 이야기 합니다.

오늘은 성탄이 지나고 예수가 커서 정결예식을 받습니다. 예수의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 신실한 시므온이 있었습니다. 직업이 무엇인지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대인 종교지도자 이었을 것이다 등의 추측만 있었을 뿐입니다. 이 아저씨는 이미 성령을 통해서 약속 받은 것이 있습니다. 메시아를 기다리는 아저씨의 마음을 하나님이 살피셔서 네가 죽기 전에 반드시 메시아를 볼 것이다. 메시아 보기 전에 네가 결코 죽음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이 아저씨가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성탄이 지난 오늘 시므온에게 정말 놀랄만한 사건이 생겼습니다. 메시아로 오신 아기 예수를 엄마와 아빠가 안고 왔는데, 성전 정결예식에 따라서 아기를 가슴에 끌어안을 수 있는 특권과 축복을 받았습니다. 성령이 말씀하시기를 메시아를 안아 보기는 네가 죽지 않을 것이다. 메시아를 안으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다.

오늘 시므온이 아기를 끌어안습니다. 메시아를 끌어안았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 하나님 정말 고맙습니다. 이제는 제가 가도 되겠지요. 제가 세상을 떠나도 되겠지요. 이 땅을 떠나도 되겠지요. 이제는 하는 말이 노래의 시작입니다. 라틴어로 ‘눈크 디미투스’라고 합니다. 시므온의 고별설교입니다. ‘이제 여한이 없습니다. 은혜가 충만합니다. 풍성히 받았습니다. 하나님 이제 여한 없이 평화 속에 떠나겠습니다.’ 마침, 성탄 이후의 마지막 노래입니다. 시므온이 읊은 백조의 노래, ‘눈크 디미투스’.

요한 1서에 보면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시므온이 안고 있는 아기 이름은 속량자, 구원자, 온 세상의 기쁜 소식을 전할 메시아. 내용은 태초로부터 선포된 아주 옛날 옛적에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생명의 말씀입니다. 이 뜻은 앞으로 마지막에 이루어질 영원한 생명, 최초로 주어진 생명의 말씀, 그 말씀을 읽어서 영원한 생명에까지 이릅니다. 예수 그리스도, 생명의 말씀은 태초의 구세주, 마지막의 구세주입니다. 예수는 알파와 오메가의 주님입니다. 이분을 끌어안은 것입니다. 그러면 여한이 없지요. 은혜가 족한 것이지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나는 갑니다. 그것도 평화롭게!

요한 1서가 이렇게 말합니다. 생명의 말씀은 이제 신앙을 가지는 사람은 예수를 통해서 손으로 만져보고, 눈으로 보고, 입으로 증거하고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는 그런 사람입니다. 만지고, 보고, 느끼고 선포하고 끌어안는 것입니다.

요한 1서의 말씀은 사랑하는 여러분, 생명을 가진 여러분,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게 살라고 생과 명을 주신 여러분, 생명의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부탁합니다. “생명을 가진 모든 사람들은 모이십시오. 공동체를 이루십시오. 이루어서 여러분들끼리 생명을 받았으니 서로서로 안에 거합시다. 나는 당신 안에 당신은 내 안에.”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당신들끼리만 서로서로 하나 되지 말고, 생명을 주신 나 하나님과 함께 서로서로 안에 있자.”

우리는 하나님 안에, 하나님은 우리 안에. 나의 분신인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났으니 생명을 가졌으면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 안에 당신들이 그리고 예수는 당신들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의 능력이 다 합해서 우리를 서로서로 안에 있기로 하십시다. 서로서로 안에 있으면, 생명을 나누고, 그것을 신학적으로 ‘사귀자’라는 말로 합니다. 우리 사귑시다.

여러분 사람 사귈 때요, 그냥 사귀지 마시고, 서로서로 안에 둥지를 트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성경말씀이 말하는 사귐이 아닙니다. 사귐이라는 말은 원어로 ‘코이노니아’입니다. 서로서로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생명을 가지신 여러분, 생명의 주가 오늘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느끼십니까? 보이십니까? 만져 지십니까? 감사할 수 있습니까? 찬양할 수 있습니까? 그 하나님이 오늘 기뻐서 춤을 추고 계십니다. 내가 창조할 인간들과 있으니 기쁘다. 하나님께 영광, 우리에겐 기쁨, 이것이 사귐입니다.

생명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 엮어서 살아야 합니다. 서로서로 엮여 있습니다. 그래서 생명은 우리에서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옆으로 이어져 있는 것만이 아니라 서로 이 모든 것이 엮여져 있는 상태입니다. 그것이 사귐입니다. 그 사귐을 갖으십시오. 생명은 홀로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생명은 서로 살아야지요. 왜?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은 사랑이시거든요. 사랑은 나누는 것이지요. 사랑은 같이 즐기는 것입니다. 사랑은 같이 갖는 것이지요. 사랑은 서로 주는 것입니다. 생명이 바로 그렇습니다. 생명은 사랑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생명입니다. 사랑이 없는 생명은 저도 원치 않습니다. 사랑이 없는 생명은 말라 비틀어져 있습니다. 모든 생명은 반드시 하나님의 사랑을 먹고 살아갑니다. 나누며 살아갑니다. 그것이 서로 엮어진 코이노니아 사랑입니다.

제가 일상 속에서 이런 걸 많이 경험했습니다. 혹시 길 가시다가 사거리 앞에 서 보시지요. 차를 몰고가다 사거리에 서면 불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빨간불이 있으면 신이 나지 않으시지요. 파란불은 우리보고 가라고 그럽니다. 생각을 바꿉시다. 파란불은 우리보고 가라고요, 빨간불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가라고 나는 기다립니다. 파란불은 열심히 일하라고, 빨간불은 안식하라고. 그래서 서로 가고 서로 바꾸자고, 사랑은 베푸는 것이고, 사랑은 배려하는 것이고, 사랑은 나누는 것입니다. 생명은 서로 나누고, 살아갑니다. 교통질서, 합의한 질서는 아름다운 질서입니다. 사랑과 배려의 질서입니다. 그리고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교통 신호가 그런데 하물며 우리 인생은 함께 가고, 배려해서 가게하고, 또 가고 배려하고 이렇게 해서 우리는 코이노니아처럼, 얽히고 얽힌 것처럼 살아갑니다.

오늘 시므온이 이런 상황을 보고 하나님 생명 감사합니다. 사랑도 감사합니다. 은혜 풍성히 받았습니다. 여한이 없습니다. 이제 가겠습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께 마지막 단에 섰습니다.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제가 오늘 시므온이 되고 싶습니다. 16년 동안 경동에서 목회하면서 저는 제가 이제 떠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지금 눈크 디미투스. 떠나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하고 떠나겠습니다.

여러분 저는 이제 떠나겠습니다. 성령이 함께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제가 라틴어로 인사하겠습니다. 눈크 디미투스! 저는 떠나지만 사람은 가지만, 남아 있는 분은 아기예수, 속량자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남아서 생명의 역사를 여러분과 우리와 함께 계속하십니다. 그리스도가 계시는 곳마다 교회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계시는 곳마다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가고 없지만 그리스도는 항상 남아계십니다. 여러분과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 그분께 찬미 드리십시다. 주님의 축복을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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