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 블랙홀...박 대통령 '거부권' 행사

국회·정당
편집부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사실상 국회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에 야당은 강하게 반발, 즉각 보이콧을 선언하고 나섰다. 여당은 대통령의 뜻을 존중한다는 공식 입장을 표했지만, 박 대통령이 사실상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를 촉구, 당청 갈등이 표면화되면서 하루종일 혼란이 이어졌다.

여당은 이날 4시간 이상 동안의 의원총회를 열고 개정안 재의결에 참여하지 않고 자동 폐기시키는 것으로 결론을 냈지만 정의화 국회의장은 절차대로 할 재의에 부치겠다는 입장이고, 야당 역시 재의를 주장하고 있어 향후 정국도 안갯속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국회법 개정안으로 행정업무마저 마비시키는 것은 국가의 위기를 자초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국회의 시행령 수정 권한을 강화한 내용의 국회법에 대해 위헌 소지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줄곧 불쾌감을 표했던 박 대통령이 끝내 국회법 개정안을 거부하며 다시 국회로 개정안을 돌려보낸 것이다.

박 대통령은 "정부의 입법권과 사법부의 심사권을 침해하고 결과적으로 헌법이 규정한 3권 분립의 원칙을 훼손해서 위헌 소지가 크다"면서 "정치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고 국민을 위한 일에 앞장서야 함에도 불구하고 과거 정부에서도 통과시키지 못한 개정안을 다시 시도하는 저의를 이해할 수가 없다"고도 말했다.

이 같은 박 대통령의 입장이 공개되자 국회 관계자들 사이에선 "발언이 너무 세다" "작심한 것 같다"는 반응이 먼저 나왔다.

◇ 새정치 "朴, 국회와 싸우자는 것"…의사일정 보이콧

이에 새정치민주연합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야당과 국회와 국민들과 싸우자는 것"이라면서 "우리 당은 단호하게 맞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 대표는 "박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정치를 꼭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인지 정말 답답하다. 국민의 고통을 들어드리는 것이 정치지, 이것은 정치가 아니다. 정치는 사라지고 대통령의 고집과 독선만 남았다"며 "대통령의 거부는 야당에 대한 거부뿐 아니라 여당에 대한 거부기도 하고 국민에 대한 거부"라고 일갈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도 "대통령이 국회와 국민을 공격했다"며 "오늘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헌법정신을 흔들고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것이다. 메르스 위기를 극복하고 민생을 지키자는 국민들의 간절한 요구를 헌신짝처럼 내버렸다"고 비판했다.

이 원내대표는 새누리당을 향해서도 "여야 합의된 국회법 개정안을 대통령에게 적절히 건의하지도 못하고 거부권 행사에 대해서도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비난했다.

특히 새정치연합은 정의화 국회의장이 개정안을 본회의에 재부의하는 구체적 일정을 잡을 때까지 모든 의사일정을 중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날 본회의에서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와 관련한 법안만 처리하고, 나머지 계류 중인 법안은 처리하지 않기로 했다.

새정치연합은 국회법 개정안을 재부의할 것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이종걸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과 오후 늦게 정 의장을 찾아가 이 같은 입장을 전달했다.

◇새누리 "대통령 뜻 존중"…속내는 '복잡'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대통령의 뜻을 존중한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이날 오전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논의한 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는 대통령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이것은 처리 시한이 있기 때문에 그 처리 시한에 맞춰 정부의 입장을 정할 수 밖에 없고, 정부는 법제처에서 위헌성 여부를 검토해 결론을 내리면 대통령은 방법이 없다"면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여야 협상을 주도해 국회법 개정안에 합의한 당사자인 유 원내대표 거취에 촉각이 곤두선 상황이다.

특히 박 대통령이 이날 발언에서 직접 "원내사령탑"이라고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를 겨냥해 사실상 사퇴를 압박했다는 분석이다.

박 대통령의 모두발언을 보면, "여당의 원내사령탑도 정부 여당의 경제 살리기에 어떤 국회의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 간다"며 "정치는 국민들의 민의를 대신하는 것이고, 국민들의 대변자이지, 자기의 정치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이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무성 대표는 '원내사령탑' 언급에 대해 "그것은 국회 전부에 대해 하는 이야기"라고 일축했지만, 이에 당 일각에선 유 원내대표가 자진 사퇴할 거란 전망도 나왔다.

이날 의총에서도 유 원내대표 거취 문제에 대한 논란이 이어졌지만, 유 원내대표가 그간 청와대와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 사과를 표명하면서 유임, 거취 논란은 일단락됐다.

새누리당은 또 국회법 개정안 후속 대응방안에 대해서도 이견이 상당한 상황이었지만 재의에 부치지 않으면서 자동 폐기시키는 것을 당론으로 결정했다.

이에 새정치연합이 강하게 비판하고 나서면서 여야 관계는 더욱 경색될 것으로 보인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새누리당 결정에 대해 "여당이 국회 지키기를 포기한 날이자, 의원이 직위를 포기한 날"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을 배신한 정치를 했다"고 비판했다.

#거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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