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관식 칼럼] 속삭이는 세미한 소리

오피니언·칼럼
편집부 기자
▲신관식 목사ㅣ시애틀형제교회 원로

구약성경에 보면 능력을 크게 행하는 엘리야라는 선지자가 있었는데 큰 능력을 행하는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이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의 무리를 기손 시내에다 끌어넣어 모두 죽인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바알 신을 섬기며 나라를 호령하는 아합 왕의 처 이세벨이 바알 선지자들을 죽였다는 말을 듣고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렇게 능력의 선지자인 엘리야가 어찌 된 일인지 이번에는 이세벨을 피신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자기는 광야로 들어가 하루 종일 걸어서 로뎀나무 아래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하나님! 지금 내 생명을 취하소서. 이는 내 열조보다 못하나이다." 그러다 잠이 들었을 때 천사가 먹을 것을 갖다 주며 말하기를 "이것 먹고 힘을 얻어서 밤 낯을 가리지 말고 호렙산에 가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40 주야를 걸어서 하나님의 산 호렙산에 다달았습니다. 이렇게 호렙산 굴속에 은신하여 있을 때 엘리야는 여호와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이 열왕기 상 19:9-14 에 나와 있습니다.

먼저 바람이 지나갔습니다.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크고 강한 바람입니다. 태풍보다도, 더 강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너무 세차게 불어와서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는 맹렬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았습니다. 사실 엘리야의 지난 시절을 볼 때 그 자신이 크고 강한 바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일시에 지나간 바람 같은 일이요, 크고 강한 바람을 떨치던 엘리야가 오늘에 와서 일개 이방의 여인 이세벨 앞에 무서워 도주해서 차디찬 굴속에 초라한 신세가 되었으니 너무나 극한 비극이 아니었던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 다음 지진이 지나갔습니다.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엘리야의 시야 속에 두 번째로 보인 것은 지진이었습니다.

L. A.의 지진을 T.V.에서 보신일이 있을 것입니다. 이 위력도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그 지진 속에도 여호와는 아니 계셨습니다.

또 그 다음에 불이 있었습니다.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서도 여호와께서는 계시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지진 후에 만만치 않은 불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그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는 계시지 아니했습니다.

열왕기 상 18:36-38절을 보면 갈멜산 꼭대기에서 바알 선지들과 450대 1의 대결을 할 때도 불로써 승리했고, 엘리야가 산에 있을 때에 아하시야 왕이 50부장과 50인을 보냈으나 그들을 다 태워죽였습니다. 왕의 무리를 도중에서 두 차례나 하늘의 불을 청하여 태워 죽였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엘리야에게 재교육을 시키는 기회가 되게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속삭이는 세미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있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엘리아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엘리야는 바람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진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불이 지나가는 것도 보았습니다. 이제 자기가 걸어 온 한 시절 한 시절을 회상해 보았습니다.

세미한 소리는 영문으로 보면 a still small voice(KJV;RSV) 또 다른 성경은 a gentle whisper(NIV;Liv)라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속삭이는 작은 소리입니다. 바람이나, 지진이나, 불을 외적인 힘으로 말했다면 세미한 소리는 내적으로 역사하며 보이지 않는 힘을 말합니다.

우리는 어떤 악한 죄인이 외부적 압력이나 폭력에 강요를 받아 변화를 받았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 마음을 고요히 가다듬고 말씀을 듣는 순간 성령께서 그 마음을 변화 받는 일은 너무도 많습니다.

기독교는 일시적 흥분, 기분, 열정, 광란 그리고 군중심리로 만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는 철두철미 속삭이는 고요 속에 회고와 반성과 침착한 판단이 필요한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속삭이는 세미한 종교입니다. 힘과 사람의 눈을 놀라게 하는 이적의 시위는 하나님의 계획에 위기가 닥쳐올 때에 필요한 것이며, 하나님 나라의 장기적인 성업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님을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분명히 이해하세요. 예수님의 성업이야말로 세미한 소리에 의해서 사람의 생명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현대인은 매스콤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 많은 방송국에서 송신된 음파와 영상들이 온 우주에 그리고 내가 있는 이 자리에도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많은 소리를 들을 수 없고 그 많은 영상들을 육안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방 안에서 레이디오나 텔레비젼 수상기를 잘 조절하여 주파수를 맞추고 다이얼을 채널에 잘 맞추기만 하면 음악 소리와 말소리를 들을 수 있고 아름다운 화면의 영상을 직접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안 그렀습니까?

이 우주에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친히 기록해 주셨습니다. 우리들이 듣지 못하고 보지 않는 것은 우리들 마음이 병들었든지 고장이 났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세상의 소리로 너무 꽉 차서 무디어졌기 때문입니다.

독자 여러분! 그 소리가 무엇인지 듣고 싶지 않습니까?

개인에게 들려오는 신령한 소리는 요란한 가운데서는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자기 집에 골방을 만들어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어떤 이는 기간을 정하고 금식을 하면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 세미한 음성을 듣습니다.

매일 시시때때로 주님 앞에 귀를 기울이세요.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마다 세상의 잡념을 버리고, 마음을 안정하고, 주님 앞에 나아와 고요히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오늘도 속삭이는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내 심령이 먼저 변화되고, 내 이웃과 내가 사는 주변을 변화시키며 살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심관식목사 #심관식칼럼 #시애틀형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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