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말씀묵상] '내가 문이니...' 만물 위 하늘의 문이 열리다

목회·신학
편집부 기자

1. 오늘의 말씀 : 요 10:1-10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2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4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6 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2. 시작 기도
아버지! 육신의 자기주장 의지는 스스로 하나님같이 되고자 합니다.
이 새벽, 종이 구하는 것은 가난하고 통회하는 심령이며 상한 마음이옵니다.
어찌하여 스스로 선하며 거룩하여 하나님을 멀리할 수 있사오리이까?
존재물이 있다한들 사망의 몸에 매인 자, 누가 나를 구원하리이까?
존재이신 하나님, 당신이 보내신 아들 외에 소망이 없는 자이옵니다.
내 속에 도사리고 있는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습니다.
내 뜻대로 되고자 하는 교만을 십자가에 못박습니다. 간절히 비오니 보혈로 씻어 정결하게 해주소서.
새 영과 새 마음을 주사 진리의 영이 임하게 하소서.
나로 진리 가운데로 이끄소서. 그 진리는 아버지 품이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 본문 주해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관계는 목자와 양으로 예시되었다(시 23;1).
또한 하나님은 영적 지도자를 목자로 삼아 자기 백성을 인도하게 하셨다.
그러나 악한 목자들은 자기를 배불리기 위해 양들을 유린하고 착취하였다(겔 34장 참고).

신약시대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는 목자의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의 계명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백성들을 오도하였다.
이들의 패역한 행태는 참 목자로 오신 그리스도로 인해 빛을 본 눈뜬 자를 내쫓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목자가 아니라 진리에 눈먼 자요 도둑이요 강도일 뿐이다.
예수께서는 '우리도 맹인인가?'라고 묻는 그들에게 본다고 하니 죄가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목자와 양의 비유를 통해 그들의 실체를 밝히 드러내신다(1-18절).
그들은 분명히 드러난 실체 앞에 도리어 예수를 미친 사람 취급을 한다(20절).

예수께서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신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양의 우리에 들어갈 때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올라가는 자는 도둑이요 강도이다(1절).
문으로 들어가는 자가 양의 목자이다(2절).

문지기는 그에게 문을 열어주고 양들은 그의 음성을 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내어 데리고 나간다(3절).
자기 양을 다 불러낸 후에 그는 앞서가고 양들은 뒤따라간다. 그 양들이 그 목자의 음성을 알기 때문이다(4절).
양들은 결코 다른 사람을 따르지 않고 도리어 그를 피하여 달아난다. 양들이 다른 사람의 음성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5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무슨 뜻으로 하시는지를 깨닫지 못하였다(6절).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의 문이다(7절).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모두 도둑이요 강도여서 양들이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8절).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얻고 들어오고 나가며 꼴을 얻을 것이다(9절)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 하고 죽이고 파괴하려고 오는 것뿐이요, 나는 양으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고 온 것이다(10절).

양과 우리, 양의 문과 양의 목자는 비유이다(6절).
이 비유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에 의해 다시 해석된다.
예수께서는 양의 문이시며(7-10절), 동시에 양의 목자가 되신다(11-18절).

양이 우리에 들어가는 것은 오직 '문'을 통해서이다.
다른 곳으로 '올라가는 자'는 도둑이요 강도이다.
여기 '올라간다'(헬, 아나바이네인)는 말씀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인자가 다시 올라가는 것을 예시한다.

문은 예로부터 인간을 가리키는 원(源)상징이며 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넘어가는 통로를 상징한다(안셀름 그륀, 요한복음 묵상).
예수께서 친히 문이시며 양의 문이시다.
그를 통하여 지상에서 천상으로, 땅에서 하늘로, 만물 안에서 만물 위로 들어간다.
세상 임금의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로 옮기어진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로부터 오신 중재자요 계시자이시다.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요 1:51).

이 문으로 들어가지 않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이다(1절)
이들은 아들보다 먼저 온 자이나 다 도둑이요 강도이다(8절).
이들은 직접적으로 눈뜬 자를 내어 쫓은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이다.
그리고 모든 시대 스스로 구원자를 자처하며 영혼들을 자기에게로 이끄는 거짓 선지자와 목자들을 말한다.

문지기는 양의 목자를 위하여 문을 연다.
여기서 문지기는 참 목자인 하나님의 아들을 증거한 선지자들을 말하며(롬 1:2), 최후 선지자로서 세례요한을 뜻한다(마 11:13).

문이자 목자 되신 아들은 우리로 들어가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는다.
아들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그들을 우리에서 인도하여낸다.
이 말씀은 우리에는 다른 양들도 끼어 있음을 암시한다.

하나님의 아들은 '유대 공동체'의 우리에서 자기 양들을 불러낸다.
그들 중에서는 그의 음성을 듣고 그를 따르는 제자가 있고 그의 음성을 깨닫지 못하고 그를 배척하는 이들도 있다.

목자가 양들을 불러내어 인도하는 것은 구원을 상징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문이시다. 누구든지 그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는다.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는다.
아들 외에 구원 얻는 다른 문은 없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 외에 구원 얻을만한 이름을 사람에게 주신 적이 없다(행 4:12).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다.
하지만 아들이 오신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함이다.
9절에서 말하는 '구원'은 '생명을 얻는 것'으로 설명된다(10절).
요한복음에서 구원은 아들을 믿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으로 강조된다(3:15-16).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와 사귐이다(17:3).
이 사귐은 영생 얻은 자가 아들이 있는 곳에 그와 함께 있어 창세전 아버지가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주신 영광을 보는 것이다(17:24).
이것이 영생을 얻고 더 풍성이 누리는 신앙의 실재이다.

아들의 문은 십자가를 표상한다.
그가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모든 사람, 곧 자기 양들을 그리로 이끄신다(12:32).
양들은 그 문(십자가)을 통해 아버지 집(하나님 나라)로 들어간다(벧전 3:18).
그래서 양들을 자기 자신에게로 이끄는 자는 도둑이요 강도이다.
아들의 음성을 듣고 진리를 아는 자는 도둑과 강도 같은 거짓목자를 분별하여 더 이상 그를 따르지 않는다(5절).

빛이 어둠을 드러낸다.
빛으로 오신 예수께서 유대 종교체제의 어둠을 드러내신다.
유대인들은 그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신앙과 운명을 결정하려 들었다.
자칭 목자노릇을 하였으나 그들은 도둑이요 강도이다.
그들은 하늘로부터 오신 인자, 하나님의 아들을 알지 못하며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하나님의 백성들, 주님의 양들을 자기들의 종교체제에 예속시키는 도둑과 강도들이다.

바울은 참 사도요 참 목자였다.
그는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정결한 처녀로 하여 한 남편, 유일한 문인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였다(고후 11:2).
땅에서 하늘로, 만물 안에서 만물 위로, 아래에서 위로 이끌었다.

반면 지극히 큰 사도로 칭함 받는 거짓 목자들은 온갖 계교를 부려 신자들을 자기에게로 이끌었다.
마치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신자들을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하게 하였다(고후 11:3).
문제는 신자들에게도 있었다.
그들은 한 남편 그리스도의 신부로 살기보다 지극히 큰 사도라 칭하는 도둑과 강도들에게 쉽게 예속되고 말았다.

4. 나의 묵상
이 시대 교회 안에도 어둠이 있다.
이는 양과 우리, 양의 문과 양의 목자를 분별하지 못하는 어둠이다.
그래서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문'(the gate)을 찾지 못한다.
하늘로 들어가는 문을 찾지 못해 만물 안에서, 결국 없어질 것들에 매여 다람쥐 쳇바퀴처럼 맴돈다.
이 프로그램 저 프로그램, 이 목사 저 목사, 이 설교 저 설교를 들어보지만 만물 위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다.
결국 되돌아오는 자리는 현세적 신앙, 자기 인생을 위한 신앙으로 귀착되고 만다.

목사들도 만나면 보이는 교회자랑, 자기 자랑, 사역자랑, 성공담을 정신없이 주절거린다.
그들은 진리에 대해 고민하지 않으며 만물 위로 올라가는 그 문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도리어 목회하면서 자기 배를 채우는 도둑과 강도로 돌변한다.
문제는 신자들에게도 있다.
세상적인 설교에 웃고 떠들고 장단을 맞추며 정신 줄을 놓는다.
그들의 참 목자 누구인지,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 어디인지 알지 못하며 관심도 갖지 않는다.
그들 중에 있는 주님의 양은 가슴을 치고 피눈물을 쏟는다.

어제도 안산지역을 지나는데 수백억 들여 화려하게 지은 교회 건물을 보았다.
그 담임목사는 교회건물을 자랑하고 목회성공을 우쭐거릴지 모르나 성도들의 헌금은 대부분 은행 빚과 이자로 쓰여진다.
그런 건물은 제자들에게도 미혹거리가 되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의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 성전을 보고 놀랐다(막 13:1).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돌이 하나도 남김없이 다 무너진다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말씀으로 이미 무너뜨린 건물성전을 다시 짓고자 신앙을 탕진하고 있으니 가슴을 칠 일이다.

더 이상 말해서 무엇 하랴!
티끌과 재를 무릅쓰고 엎드려 자복할 자는 바로 나 자신이다.
나 또한 거짓목자의 반열에서 으뜸이 되기 위해 달리는 자였다.
목회를 하여 현세적인 욕망을 채우고 내 인생을 얻고자 하는 자였다.
양의 탈을 썼으나 이리와 맹수 같은 자였다.

성도들을 '아들의 문'으로 인도하지 않았고 나의 문으로 인도하였다.
문도 아닌 자가 문으로 행세했으니 담을 넘은 도둑이 아니었던가!
진리를 안다고 확신하고 본다고 맹신하는 자였다.
내가 전하는 메시지는 성도들을 올바르고 확고한 신앙으로 인도한다고 믿는 자였다.
그래서인지 성도들이 '은혜 받았다' '목사님 설교로 삶이 변했다'는 말을 들으면 겸손한 체했으나 내심으로 기뻐하였다.
자기주장 의지를 만족시키면서 조악한 재미에 빠진 자였다.
그런데 어찌 도둑이요 강도가 아니었겠는가!

무엇보다 진리에 눈먼 자였다.
지상에서 천상으로, 땅에서 하늘로, 만물 안에서 만물 위로 가는 문을 알지 못한 자였다.
땅에서 뒹굴고 만물 안에서 성공하고 누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그것을 가르치는 몰각한 목자였다.
문을 자처하는 유명하다는 목사들의 가르침을 통해 신앙성숙을 도모하고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려던 자였다.

구원의 내용은 죄 사함에 그치고 십자가에서 그쳤다.
궁극적으로 영생을 얻고 하나님과 사귐에 들어가고 풍성한 삶을 누리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생명의 실재 없는 신앙생활, 열심이 할수록 파행적이 되어갔다.
마치 죄의 나무에 거름을 주면 더 많은 죄의 열매가 맺히듯이 말이다.

공의의 심판이 임하고 모든 것이 휩쓸려갔다.
아, 그런데 심판 중에 긍휼이 임하였다. 황폐한 땅에 언약의 무지개가 떠올랐다.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신 하나님의 행동하심이 나타났다.
강고한 종교체제에 속하여 죄의 종노릇하던 자, 주님이 불러내셨다.
그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그를 따르게 하셨다.
그가 문이 되어 만물 안에 갇힌 나를 만물 위 영원으로 이끄셨다.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께 세세에 찬양이 있으리로다"(롬 9:5).

오늘도 말씀 앞에서 깨달은바 진리를 증거한다.
그리고 나처럼 도둑과 강도 같던 자, 혹여 우리에서 주의 음성을 듣기를 간절히 원한다.
도둑과 강도의 기만에 빠져 만물 안에 갇힌 이들이 우리에서 주의 음성 듣기를 원한다.
그리하여 문이 되신 그리스도로 인해 흑암의 권세에 갇힌 자들이 하나님 나라로 옮기어지기를 간구한다.

5. 묵상 기도
아버지...
문이 아니나 문처럼 착각했습니다.
만물 위,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문을 알지 못했습니다.
영혼들을 유린하고 착취하는 도둑이요 강도였나이다.
그들을 내게로 이끌고자 전심을 다한 거짓목자였습니다.
제게 임한 심판은 진실로 참되고 의로웠습니다.
한 영혼도 감당하지 못하는 비참한 자가 된 것, 당신의 공의입니다.

아버지여...
심판의 자리에서 문을 보았습니다.
아들의 죽음과 무덤이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었습니다.
생명 얻는 구원이 임하고 더욱 풍성한 삶이 주어졌습니다.
그 문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영생의 사귐으로 하늘의 기쁨이 임하나이다.

아버지...
하오나 다른 문들도 많습니다.
숱한 존재물이 문이 되어 제 영혼을 손짓합니다.
일과 그 성과들이 문이 되어 즐거움을 약속합니다.
사람들과 그들에게 받는 인정이 문이 되어 존재감을 줍니다.
오, 주여! 이런 문들을 닫아주소서. 내게는 오직 아들만이 문이옵니다.
아들을 힘입어 당신께 나아가는 팔레시아의 특권, 이것만이 나의 일상이며 기쁨이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서형섭 목사는... 한국외대에서 경영학(B.A.)와 연세대 경영대학원 경영학(MBA)를 졸업하고, 서울신대 신학대학원 목회학(M. Div.)을 공부했다. 논문 '말씀묵상을 통한 영적 훈련'(Spriritual Training through Meditiatioin on the Word)으로 풀러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D. Min.) 학위를 받았다.

그는 지난 2000년 반석교회를 개척하고, 치유상담연구원에서 6년간 수학 후 겸임교수를 지내며 동시에 한국제자훈련원에서 8년간 사역총무를 역임했다.

현재 서형섭 목사는 말씀묵상선교회(http://cafe.daum.net/wmmission) 대표로 섬기며 특히 '복음과 생명', '말씀묵상과 기독교 영성'에 깊은 관심을 갖고 저술과 세미나 사역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말씀묵상이란 무엇인가>(갈릴리, 2011년)과 최근 출간된 <복음에서 생명으로>(이레서원, 2013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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