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영원한 생명을 주는 성경의 본질을 호도한 자, 심판이 마땅하다

목회·신학
편집부 기자

1. 오늘의 말씀 : 요 7:14-24
14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15 유대인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1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1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18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19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20 무리가 대답하되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하매 너희가 다 이로 말미암아 이상히 여기는도다
22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행했으니 (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행하느니라
23 모세의 율법을 범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한 것으로 너희가 내게 노여워하느냐
24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 하시니라

2. 시작 기도
아버지! 새벽마다 불청객이 되어 찾아오는 비존재 세력 앞에 흔들리는 자 되옵니다.
공허와 무의미의 파도가 나를 삼키려 하나이다. 내 영혼이 잠잠히 주의 구원을 기다립니다.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힘이시요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 되십니다.
나를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장막 은밀한 곳에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옵소서.
이곳은 아들을 힘입어 나아가는 아버지 집, 당신의 품이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 본문 주해
예수께서 초막절 중간에 예루살렘에 나타나 가르치셨다(14절).
유대인들이 그의 가르침을 보고 놀라 "이 사람이 배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저런 학식이 있을까?"라고 말하였다(15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나의 가르침은 내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다(16절).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사람은 누구나 이 가르침이 하나님에게서 난 것인지 내 마음대로 말하는 것인지 알 것이다(17절).

자기 마음대로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만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사람은 진실하고 그에게 거짓이 없다(18절).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 중에 그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어찌하여 나를 죽이고자 하느냐?(19절).

무리가 예수께 대답하였다.
"당신은 귀신이 들렸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고 한단 말이오?"(20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한 가지 일을 했는데 너희가 모두 놀라고 있다(21절).
이 일 때문에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제도를 주었다(실상 할례는 모세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조상들에게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너희는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주고 있다(22절).

모세의 율법을 어기지 않으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다면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온 몸을 성하게 해 주었다고 해서 왜 그렇게 분개하느냐?(23절).
겉모양을 보고 판단하지 말고 옳게 판단하라(24절).

예수께서 유대로 올라가지 않으신 것은 유대인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이다(1절).
그 발단은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쳐준 일이다.
유대인들은 예수가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준 일을 시비하여 그를 박해하였다(5:16).
이에 예수께서 아버지의 일을 하신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친아버지라고 말하자 유대인들은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5:17-18).

그런데 예수께서 초막절 중간에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그가 배운 일이 없는데 어찌하여 이런 학식이 있느냐로 놀란다.
여기서 '배운 일'은 정통성을 가진 랍비로부터 배우는 것을 말한다.
이에 예수께서는 자신의 가르침은 랍비로부터 배운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자력으로 터득한 가르침도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그를 보내신 의의 가르침이라고 하신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가르침이다.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12:50).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자는 그의 가르침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그가 스스로 말한 것인지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윤리적인 복종을 말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전적으로 믿는 것이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이것이니..."(6:40).

유대인들은 예수의 가르침이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보내신 이들, 그래서 영생을 얻은 이들은 그의 가르침이 스스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인 줄 안다.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의 영광을 구한다.
서로 영광을 구하는 자는 보내신 이를 믿지 않는 불신앙의 상태에 있는 자들이다.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5:44).

그러나 예수께서는 스스로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신다.
오직 보내신 이, 아버지의 영광을 구한다. 이로써 그는 참되시고 불의가 없으시다.
만일 그가 스스로 영광을 구하였더라면 자신의 주장이 우세하도록 최선의 수단을 강구하였을 것이다.

이제 예수께서는 가르침이 내용에 대해 반박하신다.
모세가 그들에게 율법을 주었으나 그들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다.
그것은 모세의 율법이 증거하는 그리스도인 자신을 죽이려하기 때문이다.
모세의 율법이 그 중심인 구약성경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목적이며 오직 그리스도를 증거한다(5:39).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의 뜻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의 가르침의 기원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가르침의 기원을 아는 자는 그 가르침을 믿어 하나님의 뜻이 영원한 생명을 얻어야 한다.
모세의 율법이 바로 이것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무리들은 자신을 죽이려한다는 예수의 말을 반박한다.
예수를 귀신들린 자 취급을 하며 언제 그를 죽이려했느냐고 반문한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를 고쳐준 일을 상기시킨다.
그가 안식일에 한 일로 인해 그들이 놀라고 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대로 안식일에 할례를 행한다.
물론 할례는 모세가 정한 것이 아니라, 조상 아브라함때 하나님이 정하신 법이다(창 17:10-12).
이에 따르면 남자의 경우 태어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아야 한다. 이것이 언약의 징표이다.
당시 할례의식은 안식일법보다 우월하여 안식일에 태어난 아이는 다음 안식일에 할례를 해야 했다.
곧 할례는 안식일의 엄격성조차 넘어설 정도로 중대한 의식이었다.

왜냐하면 할례는 인간을 완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랍비(유다족장, A.D. 164-200)는 이렇게 말한다.
"할례는 중대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조상 아브라함은 그가 모든 종교적 의무들을 이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할례를 받기 전에는 '너는 네 앞을 떠나지 말고 흠없이 살아라'(창 17:1)라고 기록된대로 '완전한' 사람이라는 칭호를 받지 못했다"(Nedarim).

그러므로 할례행위는 안식일 법을 범하나 실상은 인간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 율법(할례)을 지키는 것이다.
이렇게 모세의 율법(할례)을 범하지 아니하려고, 곧 사람을 완전하게 하려고 안식일에도 할례를 행한다.

랍비전통에서 사람의 몸은 248개의 지체들로 구성되어 있다.
할례는 그 중의 한 부분에 행해지는 의식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사람의 전신을 온전하게 하는 치료를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어찌하여 분개하는가 말이다.

그러므로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지 말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수가 안식일을 범했다고 성급하게 결론내리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믿음을 통해서 예수의 행위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내려야한다.
그 핵심은 사람이 온전하게 되는 것은 그가 영원한 생명을 얻어 하나님의 뜻이 그에게 성취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스스로 행하지 않으시고 보내신 이의 뜻대로 행하셨다.
그의 가르침은 창세전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에 대한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명령하신 것은 영원한 생명이며 아들은 그 명령대로 행하신다.
이것은 종교적 전통이나 유산을 초월하여 창세전 아버지께 기원을 둔 가르침이다.
기독교 진리, 그 기원은 바로 창세전 약속된 영원한 생명에 있는 것이다.

이것을 은혜와 믿음으로 알기까지 기독교는 바리새적 가르침으로 치닫는다.
성경말씀을 인간의 삶에 적용시키는 교훈으로 사용하며, 그것을 통해 사람들끼리 영광을 주고받는다.
그들은 성경의 어떤 구절에 집착하며 성경전체의 본질을 비껴간다.
곧 성경이 약속하는 영원한 생명에 무지한 채 종교적 전통과 신학, 유산에 천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겉모습을 보지 말고 그 본질을 볼 것이다.

성경은 영원한 생명을 주어 인간을 완전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아담은 피조된 생명으로(made of God), 아들의 생명으로 태어날 자였다(born of God).
아담은 만들어진 생명으로서 생령(생물)이며 마지막 아담 그리스도는 생명을 주는 영이다(고전 15:45).
영생의 말씀을 영으로 깨닫는 자, 그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런데 나는 이 같은 성경의 본질을 호도한 자였다.
아들의 생명이 아닌 아담 안에서 죽은 자의 생명을 유지하고 번성하고자 하였다.
죄악과 문제와 상처투성이의 옛 사람과 씨름하며 치유하고 변화하기를 목적하였다.
그것도 성경의 표면적인 말씀만 붙들고 그리하였다.

성경은 적용이 목적이 아니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영생 얻은 자는 날마다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과 사귐에 이르게 된다.
곧 성경이 말씀하시는 죄악된 존재를 발견하고 아들의 구속의 은총을 힘입어 아버지 품으로 들어간다.
이것이 영원한 생명의 삶인 것이다.

오늘도 많은 목사들과 성도들이 성경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
인간의 삶, 세상의 삶에 대한 적용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좋은 설교는 적용중심의 설교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하고 있다.
그것은 예수님 당시 서기관들의 가르침에 다름 아니며 결국 영생의 도를 멸시하는 데에 이르고 만다.

한편 적용중심의 설교는 서로 영광을 취하는 자리에 이르게 한다.
예수님과 성경의 가르침의 기원은 오직 창세전 아버지에게 있다.
아버지가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의 성취와 삶에 있는 것이다.
이것을 알지 못하니 아버지께로부터 오는 영광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끼리 서로 영광을 주고받는 것이다.

4. 나의 묵상
나는 자칭 타칭 성경박사로 불리웠다.
신대원에 들어간 후, 매월 일독을 목표로 세우고 매진하였다.
전도사 시절에는 300구절을 넘게 암송하면서 성경에 매달렸다.
아침마다 큐티를 하되 17년간 율법적으로 수행하였다.
그러나 성경의 겉만 알았지 그 본질은 알지 못한 자였다.

어디 그 뿐인가?
공적인 설교에서 인간의 삶을 위한 적용에 매달렸다.
땅의 것, 인간의 것, 세상의 것을 위해 온갖 성경 구절을 들이대며 열정을 다해 설교하였다.
그 절정은 치유사역을 할 때이었다. 성경에서 상한마음은 죄를 깨닫고 통회하는 심령이다.
그러나 나는 그 말씀의 뜻은 전혀 알지 못한 채 성장과정의 상처를 상한마음으로 호도하였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얼마나 자신 있게 외쳐댔는지.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뜨뜻해서 견딜 수 없다.
만일 하나님의 공의로우시다면 어찌 심판이 임하지 않았으리.

공의의 심판이 임하고 깊은 어둠이 임하였다.
무덤에 누운 자 되었고 갇힌 자 되었다.
심판의 자리에 심판의 말씀이 임하였다.
내가 행한 모든 일들이 심판에만 합당하였다.
주의 심판이 참되고 의로운 것임을 아멘하였다.

심판의 자리에 구원이 임했다. 아들의 죽음과 무덤 안에 연합된 것이다.
말로만 알던 영원한 생명, 그 기원을 알게 되었다.
창세전 아버지가 아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아들 안에 있게 하셨다.
그리고 아들 안의 생명이 우리에게 약속되었다.
아들을 믿어 영원한 생명을 얻음으로써 그 약속이 내게 성취되었다.
아들 안에 거하고 아버지 안에 거하여 온전함을 이룬다.
힘으로 능으로 될 수 없고, 오직 영으로만 되는 구원이 임한 것이다.
오늘도 그 은혜로 인하여 하나님 아버지를 송축한다.

5. 묵상 기도
아버지...
말씀의 본질에 무지한 자였습니다.
그것은 아버지께 기원을 둔 영원한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니 표면적 자구에 매달렸습니다.
그것으로 세상 것, 인간의 것, 땅의 것을 설파하였습니다.
무지할수록 용감한 법,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설교했습니다.

아버지여...
제게 임한 심판, 참되고 의로운 심판이었습니다.
말씀 앞으로 이끄사 그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죽음만이 삯인 자에게 당신의 선물이 주어졌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 아들의 생명이 주어졌습니다.
날마다 아들 안에 거하고 아버지 안에 거하여 온전함을 이루게 하셨나이다.

아버지...
무엇을 더 바라리이까? 진실로 더 원하는 것은 없나이다.
다만 이 땅의 교회, 목사, 성도들로 인해 눌리고 염려합니다.
여전히 말씀의 표면만 붙들고 그 본질인 영원한 생명에는 무지합니다.
가르침의 본질과 기원이 영생에 있는데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서로 사람의 영광을 취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불쌍히 여기소서. 주의 영을 보내소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보내사 당신을 알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서형섭 목사는... 한국외대에서 경영학(B.A.)와 연세대 경영대학원 경영학(MBA)를 졸업하고, 서울신대 신학대학원 목회학(M. Div.)을 공부했다. 논문 '말씀묵상을 통한 영적 훈련'(Spriritual Training through Meditiatioin on the Word)으로 풀러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D. Min.) 학위를 받았다.

그는 지난 2000년 반석교회를 개척하고, 치유상담연구원에서 6년간 수학 후 겸임교수를 지내며 동시에 한국제자훈련원에서 8년간 사역총무를 역임했다.

현재 서형섭 목사는 말씀묵상선교회 대표로 섬기며 특히 '복음과 생명', '말씀묵상과 기독교 영성'에 깊은 관심을 갖고 저술과 세미나 사역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말씀묵상이란 무엇인가>(갈릴리, 2011년)과 최근 출간된 <복음에서 생명으로>(이레서원, 2013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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