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주께서 악하다 하신 세상의 일을 하던 자를 심판하시다

목회·신학
편집부 기자

1. 오늘의 말씀 : 요 7:1-13
1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2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3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4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5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7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아니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함이라
8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나는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9 이 말씀을 하시고 갈릴리에 머물러 계시니라
10 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에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은밀히 가시니라
11 명절중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찾으면서 그가 어디 있느냐 하고
12 예수에 대하여 무리 중에서 수군거림이 많아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무리를 미혹한다 하나
13 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므로 드러나게 그에 대하여 말하는 자가 없더라

2. 시작 기도
아버지여! 육신의 생각은 몸의 고단함을 빌미로 무위의 시간속에 빠지게 합니다.
헛된 일로 분요케 하여 시간 죽이기에 몰입하여 주를 멀리하게 만듭니다.
몸은 깨었으나 순전한 마음으로 말씀 앞에 나오는 것이 어찌 이리도 힘이 드는지요!
이 시간,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경주하기 원합니다.
이는 나의 원함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오니 다만 당신의 긍휼을 바라옵니다.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습니다.
갖가지 육신의 생각으로 오염된 영혼을 보혈로 씻어 정결케 해 주소서.
상한 마음의 제사를 드리오니 불쌍히 여기사 멸시치 마옵소서.
오늘도 제가 있어야 할 곳, 아들을 통해 들어가는 아버지 품이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 본문 주해
공관복음서에서 예수께서는 갈릴리를 중심으로 사역을 펼치신다.
이에 반해 요한복음에서는 유대와 갈릴리 지역을 오가며 사역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더 이상 유대에서 사역하는 것을 그치는데 이는 유대인들이 그를 죽이려했기 때문이다(1절).
그러다가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워졌다(2절).

예수의 형제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이 지방을 떠나 유대로 가서 당신이 하는 큰 일을 거기 있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보이시오. 세상에 드러나기를 바라면서 숨어서 일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당신이 이런 일을 하는 바에는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십시오"(3-4절).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형제인 그들도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나 너희의 때는 언제나 와 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이 나를 미워하는 것은 내가 세상에 대해서 그 하는 일이 악하다고 증거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명절을 지키러 올라가라. 나는 아직 내 때가 차지 않았으므로 이번 명절에는 올라가지 않겠다"(6-8절).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갈릴리에 그냥 머물러 계셨다(9절).

그러나 예수의 형제들이 명절을 지키러 올라간 후에 예수께서 알리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 올라가셨다(10절).
명절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찾으면서 '그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11절).
그리고 무리 중에서 예수에 대하여 말이 많았다. 어떤 사람은 그를 좋은 사람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그가 대중을 미혹하는 사람이라고 말하였다(12절).
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므로 아무도 예수에 대하여 드러나게 말하지는 못하였다(13절).

예수께서는 위험한 유대지역보다 더 안전한 장소인 갈릴리에서 사역을 하셨다.
그러나 그의 갈릴리 사역은 초막절 축제가 가까워지자 중단되었다.
예수의 형제들은 믿지 않는 자들이었고, 그래서 예수께 이런 제안을 한다.
순례축제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초막절 축제에 많은 무리들이 모일 텐데 그 때 자신을 드러내라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가 잘 알려지지 않는 곳에서 활동하는 것이 어리석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제안을 단호히 거부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때에 자기가 원하는 방법으로 일한다.
그것을 통해 자기를 알리고 자기의 명성을 얻어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오직 그를 보내신 아버지의 때에, 아버지의 방식으로 일하신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5:17).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5:19).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5:20).

예수께서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들의 때는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다.
'때'(헬, 카이로스)라는 말은 '어느 시점'을 지칭하는 것으로 요한복음에서는 7장 6, 8절에서만 나온다.
이 말은 자주 나오는 '때'(헬, 호라)과 그 의미가 구별 없이 사용된다.
반면 인간의 시간인 '크로노스'는 어느 시점이 아니라 양적인 시간을 의미한다(5:6; 7:33; 12:35; 14:9).

예수께서 말씀하신 '나의 때'는 그 자신의 영광을 나타낼 때이다.
그리고 그 때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 곧 능력을 행하여 자기를 드러내는 그런 때가 아니다.
그의 때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아버지께로 가는 그 때이다.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헬, 호라)에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12:27-28).

예수께서는 보내신 이의 뜻에 따라 유대로 올라가실 것이다.
곧 그의 죽음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올라가신다.
이에 반해 형제들은 아무 때고 자신이 원하는 때(너희 때는; 헬-카이로스)에 예루살렘을 방문한다.

예수께서는 다시 몰각한 형제들에게 말씀하신다.
형제들은 예수가 유대에서 사람들의 인기를 얻어 자기를 드러내기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사람의 인기가 아니라 그들의 증오를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 하고 세상을 심판하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갈릴리에 머물러 계셨다.

그러나 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에 예수께서도 은밀히 유대로 올라가셨다.
형제들의 권고나 충고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조용히 올라가신 것이다.
그가 유대로 간 것은 '나는 올라가지 아니하노라'(8절)는 말씀과 모순되어 보인다.
이 같은 모순은 물을 포도주로 만든 표적사건에서도 병행구가 나온다.
예수께서는 어머니의 요구를 '나의 때'가 아니라고 하면서 거절하였다가 결국 수락하였다.
이는 죽을병이 든 나사로의 소식을 듣고 반응한 말씀에도 반 복된다(11:6).

예수께서는 사람들의 요구나 충고를 따르지 않는다.
정확하게 보내신 이의 뜻과 명령대로 행하신다.
그러므로 '나는 올라가지 않겠다'는 말은 불신앙의 상태에 있는 형제들의 말을 거절한 것이다.
곧 예수께서는 인간적인 타협과 불신앙의 충고를 거절하며, 인간에 대해서는 완전히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행하며 오직 아버지께 순종한다.

형제들은 숨어서 일하지 말고 드러내놓고 하라고 조언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기를 나타내지 않으시고 은밀히 올라가셨다.
예수께서는 무작정 자기를 드러내지 않으신다.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보내신 이들, 그들에게만 자기를 드러내신다(6:44).

이후 예수께서는 대중에게 감추어진 존재로 계신다.
그래서 명절에 유대인들은 예수를 찾는다. 이것은 적대감으로 인해서이다.
요한복음에서 '유대인들'은 보통 예수의 대적자로 언급된다(1:19외).
무리들중 몇 사람은 예수에 대하여 좋은 견해를 가지고 있으나(12절), 어떤 이들은 그가 무리를 미혹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무리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함으로 예수에 대하여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였다.
유대인들은 예수는 물론 그의 추종자들에 대해서까지 적대감을 품고 있었다.

아버지께 보냄받은 아들은 아버지의 때와 방식으로 일하신다.
그의 일은 하나님의 일이며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그는 십자가에 죽으셔야 하며, 이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그의 때이다.

그러나 불신앙의 상태에 있는 육신의 형제들은 그에게 충고한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명절에 일하여 자기를 나타내라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일은 외적으로 보이는 표적이다.
그것을 통해 세상의 인기와 영광을 얻으라고 말한다.

하지만 예수의 일은 하나님의 일로 세상 일과 대척점에 서 있다.
도리어 세상을 악하다 하고 세상을 정죄하고 심판하는 일이다.
그가 자신의 때에 할 일은 세상 임금을 심판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12:30-32).

그의 십자가 죽음은 세상 임금의 지배를 받는 모든 사람을 위한 죽음이다.
아담 안에서 세상에 속한 자는 그와 함께 죽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는 더 이상 세상에 속하지 않으며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그치고 영원한 생명을 양식으로 삼는다.
세상과 그 정욕은 지나가되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은 영원히 거한다(요일 2:17).

4. 나의 묵상
말씀 앞에 나의 죄악상과 그 참상이 드러난다.
나는 누구였던가? 참으로 세상에 속한 자였다.
불신앙의 사람에 속하여 하나님의 일(?)로 나를 나타내고 드러내려는 자였다.
평신도 시절, 은사를 체험하고 교회에서 열심히 활동하니 이내 내가 주목받고 드러났다.
나는 거짓 겸손의 옷을 입고 나를 드러내는 그 일들을 교묘히 즐겼다.
수천 명의 성도들 중에 담임목사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게 되니 하늘을 나는 듯 기뻤다.

세상에서 채울 수 없는 명예욕이 고스란히 채워졌다.
소아시절의 열등감은 보상되었고 수치심은 사라지는듯 하였다.
나를 알아보고 칭찬하는 이들로 인해 교회 생활은 신바람(?)이 났다.
그 큰 교회의 재정을 책임질 때는 교회직원들 앞에서 주인행세를 하기도 하였다.

주님이 악하다 하신 세상 일을 통해 나를 드러내던 자!
목사가 되어서는 본격적으로 그러하였다.
나는 나의 때에 내가 원하는 일, 사람들이 원하는 일들을 하면서 나를 드러냈다.
사도적 직무인 생명 얻게 하는 복음을 전하는 일은 뒷전이었고 사람들의 인기몰이를 하는 상담과 치유사역에 전념하였다.
거기에 교묘히(?) 복음을 섞으니 뭇 사람들에게 특효약이 되었다.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그들의 반응을 보며 나의 교만은 하늘을 찔렀다.

아, 나는 나를 사치하고 영화롭게 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한 비참한 자였다.
그런 내게 심판이 임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공의는 거짓이었으리라!
하나님께서 진리대로 나를 심판하셨다. 명성은 치욕으로 성공은 파멸로 끝이 났다.
종말에 임할 심판이 미리 임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은혜중의 은혜이다!

심판의 자리에 말씀이 찾아오고 성전이 지어졌다.
이제는 헛된 것이 아니라 참된 것을 전한다.
원사도 아들이 행한 바 영생의 복음을 전한다.
하지만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는 보내신 이, 아들의 뜻대로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육신의 생각이 나를 점령하면 견디지 못한다.
다시 나의 때와 나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한다.
어느 것 하나 내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 먹먹하다.
물론 뒤돌아보면 한 치의 오차 없이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다.

나의 때를 접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림은 지루하다 못해 고통스럽다.
나의 방식을 접고 하나님의 방식을 따름은 인내를 넘어 절망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를 십자가에 못박는다.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다 십자가에 못박는다.
십자가에 못박힌 자 되어, 주의 때와 주의 방식을 기다린다.
주의 자비와 긍휼만이 나의 양식이다. 내 영혼이 소생되니 하늘의 평화가 임한다.

5. 묵상 기도
아버지...
신앙이 무엇이고 목회가 무엇이었습니까?
돌아보니 고통스런 회한만이 가득합니다.
생명 없는 이들의 조언과 충고를 따르며 나를 나타내는 자였습니다.
보내신 이의 뜻인 영생에 무지한 채 사람들이 원하는 일을 하며 나를 영화롭게 하던 자였습니다.
당신이 살아 계시다면 어찌 그런 자를 심판하지 않았으리요!

아버지여...
진리대로, 공의대로 심판이 임했습니다.
나를 드러내던 자, 수치와 경멸속에 나를 감추어야 했습니다.
무덤에 누운 자, 갇힌 자 되어 심판의 칼을 받았습니다.
당신의 심판은 진실로 참되고 의로운 것이었습니다.
심판의 자리에 성전이 세워지고 영원한 생명이 실재되었습니다.
심판에서 생명으로 이끄신 그 은혜, 참으로 기이하고 놀랍습니다.

아버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넘어지는 자입니다.
생명의 복음을 전하면서 내 때에 내 뜻대로 하고자 하는 마음이 솟구칩니다.
때가 급하나 내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로 인해 곤고한 자가 되고 맙니다.
주께서 정하신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습니다. 주여 그런 자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당신의 때에 당신의 방식으로만 일하기 원합니다.
그 일은 세상에 영원한 생명을 주는 일이며, 나의 죽음으로만 되는 일입니다.
주여, 나를 아들의 고난과 죽음 안에 두소서. 이는 부활의 권능에 참여하기 위함입니다.
당신의 때에 당신의 방식으로 쓰여지는 도구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서형섭 목사는... 한국외대에서 경영학(B.A.)와 연세대 경영대학원 경영학(MBA)를 졸업하고, 서울신대 신학대학원 목회학(M. Div.)을 공부했다. 논문 '말씀묵상을 통한 영적 훈련'(Spriritual Training through Meditiatioin on the Word)으로 풀러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D. Min.) 학위를 받았다.

그는 지난 2000년 반석교회를 개척하고, 치유상담연구원에서 6년간 수학 후 겸임교수를 지내며 동시에 한국제자훈련원에서 8년간 사역총무를 역임했다.

현재 서형섭 목사는 말씀묵상선교회 대표로 섬기며 특히 '복음과 생명', '말씀묵상과 기독교 영성'에 깊은 관심을 갖고 저술과 세미나 사역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말씀묵상이란 무엇인가>(갈릴리, 2011년)과 최근 출간된 <복음에서 생명으로>(이레서원, 2013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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