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상웅의 선교역사칼럼] 현거선 교장과 강석교

▲시드선교회 연구실장 손상웅 목사(풀러신학교 선교역사 전공·철학박사)

해롤드 핸더슨(Harold H. Henderson·미국 북장로교 소속) 선교사는 한국인에게 '현거선'으로 불렸다. 그는 1893년 11월 23일에 미국 인디아나 주 폴트 웨인에서 출생했다. 그 후 1918년 5월 28일에 푸시 선교사와 결혼한 그는 그해 9월 10일에 내한하였다. 동료 선교사의 고사에 힘입어 대구 계성학교 교장이 되던 때가 1920년 10월 30일임으로 내한한 지 2년 차다. 당시 계성학교는 여러 가지 면에서 힘들고 어려운 선교 사역임에는 분명했으나 그만큼 의미가 있고 도전할 만한 사역이기도 했다. 그가 1941년 5월 20일에 강제 추방되기까지 20년 넘게 교장으로 사역했다는 것은 대구 주재 선교사들 사이에 '헌신'으로 통할만 하다. 그가 1984년 10월 1일에 소천할 때 그의 유언대로 그의 시신이 미국 마사츄세츠 의과대학에 기증됐다니 그의 헌신적인 삶은 죽어서도 입증된다.

▲해롤드 핸더슨(Harold H. Henderson) 선교사 가족사진

현거선 교장의 계성학교 제자 중 강석교가 있었다. 일제의 구두 발에 강제 추방되었던 현거선 교장에게 1941년 7월 19일에 편지를 쓴 자가 바로 강석교였다. 추방된 지 2개월이 지난 때에 쓴 그의 편지를 읽다 보면 미국에 잘 도착했는지, 자녀들이 모두 안녕한지에 대한 단순한 문안 편지로만 보이지 않는다. 현거선의 후일 사역을 살펴보면 문안 편지 이상임을 쉽게 알게 된다.

20년 간의 애착을 떨치고 떠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인가? 특별히 20년 간 키워낸 제자들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다는 생각이 앞설 때 발걸음이 쉽게 떨어졌겠는가? 대구 역까지 따라 나선 제자들이 있었는가 하면 부산까지 내려온 제자들도 있었다. 강석교의 편지는 이런 의미에서 현거선에게 위로와 격려가 되기에 충분하고, 재기하여 분발하라는 제사장적인 말씀임에 틀림없다. 현거선이 미국 노스필드 마운트 허몬 고등학교에서 영어와 성경을 가르치는 교육 사역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을 때 마운트 허몬 고등학교는 현거선에게 계성학교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강석교가 쓴 2장의 세로로 쓴 편지에서 스승을 염려하고 아끼는 제자의 끈끈한 사랑과 배려가 묻어나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글ㅣ손상웅 목사(SEED선교회 연구실장·풀러신학교 선교역사 전공·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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