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칼럼] 산돌 손양원과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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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기자
▲박종수 교수(중원대‧전 러시아 공사)

[기독일보=평화와통일을위한기독인연대] 광복 70주년, 분단 70주년의 해에 만감이 교차한다. 2차대전 종전이후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분단국의 오명(汚名)과 비명(悲名)을 안고 있다. 한때 복음의 통로였던 평양이, 믿음의 자손이었던 김일성 일가가 우상숭배와 폭정으로 얼룩진 흑암의 세계로 전락했다. 이러한 상황으로 치닫기까지 우리는 과연 무엇을 했는가?

반공이데올로기가 국시였던 냉전 당시에는 적대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선이었다. 남은 남대로, 북은 북대로 상대진영을 편리한 방식으로 정권안보에 마음껏 활용했다. 선거 때만 되면 북풍이 불고 선거판도가 뒤바뀌던 시절이 있었다. 역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금방 대북관계가 개선되어 통일이 이루어질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그렇지만 대통령 임기 5년 단임제 하에서 남북한 관계는 신뢰의 연속성보다는 단절의 골이 더 깊어졌다. 여의도 정가에서는 고성이 오가는 난투극 속에서도 구두선처럼 외치는 것이 '국민통합'이요, '남북통일'이었다. 심지어 앞 정권의 정책은 무조건 백지화되는 흑백논리에 빠지기도 했다. 다시 한 번 묻지 않을 수 없다. 누구를 위한 통일논의였느냐고...

동구권이 붕괴되고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이 붕괴되었으니까 북한 정권도 당연히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이 있었다. 절대 독재자인 김일성.김정일만 사망하면 북한 사회는 혼란에 빠지고 스스로 붕괴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가설도 있었다. 철부지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받자마자 내부 분열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두 허구였다. 김정은은 중고 잠수함과 비행기에 탑승해 호령하는 호기를 부리면서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 일각에서도 북한 정권이 가까운 장래에 붕괴될 것이라는 신념을 신봉했다. 그런 정권도 이젠 레임덕이 시작되는 듯하다. 해방 후 70년간 정부가 대북문제의 전권을 행사해 왔고 국민은 관(官) 주도의 통일정책에 그저 끌려다녔다. 결과적으로 남북한 정권이 모두 통일문제를 체제유지의 명분으로 활용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정부 주도의 제도적 통일논의가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대안은 없는가? '있다!'

미국 하버드대 조셉나이 교수는 한 때 정치.경제.군사력에 바탕을 둔 하드파워(Hard power)로 북한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가, 최근에는 문화.예술, 즉 소프트파워(Soft power)로 접근해야 한다고 입장으로 바꿨다. 그러나 그가 간과한 것은 독일이 통일을 이루기까지 기독인들의 뜨거운 기도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뜻, 즉 성령파워(Holy spirit power)만이 현실적 대안이다.

그래서 순교자의 삶을 살았던 산돌이야 말로 이 시대 통일의 아이콘이다. 첫째, 너무나 인간적인 손양원이었다. 부모와 자녀에 대한 애틋한 사랑은 보통의 아버지와 다를 바 없었다. 둘째, 환우의 친구 손양원이었다. 입으로 한센병 환자의 고름을 빨았던 소외된 자의 친구였다. 셋째, 작은 예수 손양원이었다. 원수사랑을 실천한 행동하는 믿음이었다. 넷째, 일제에 저항한 독립투사 손양원이었다. 끝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감옥생활을 택했다. 다섯째, 남남갈등 극복의 손양원이었다. 경남 함안 출신으로 전라도로 와서 지역갈등과 이념갈등을 온 맘과 몸으로 맞섰다. 여섯째, 남북 화해를 위해 순교한 손양원이었다. 6.25 전쟁 때 섬으로 피난할 것을 권유했지만 끝까지 남아 북한군의 총탄에 맞아 순교했다. 산돌은 테레사 수녀나 킹 목사와 비견되는 인류평화의 화신임을 결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기독인은 위기 때 마다 국난극복의 선봉에 서서 순교자의 길을 택했다. 북한땅 회복을 위해 지금도 사선을 넘나들며 헌신하는 믿음의 용사, 순교자들이 적지 않다. 산돌의 순교정신만이강팍한 북한땅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제도적 통일은 그 다음 단계일 뿐이다.

글ㅣ박종수 교수(중원대‧전 러시아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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