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자연 논평] 부모의 신앙을 자녀에게 전할 때 신중해야 하는 이유

오피니언·칼럼
편집부 기자
아이의 삶에 치유할 수 없는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

최근 어린이집 등에서 아동학대 사건이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교육부가 각 교육청에 보낸 <아동학대 예방 및 신고의무자 교육실시> 공문과 관련하여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아동학대 중 정서학대의 구체적인 행위로 '보호자의 종교행위 강요'를 적시한 것을 두고 일부 개신교계가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는 이러한 일부 개신교계의 문제제기에 어떠한 의견수렴이나 사회적 합의 절차도 없이 관련 내용을 삭제하는 일이 벌어졌다. '보호자의 종교행위 강요'라고 분명히 밝혔는데, 부모가 자녀에게 하는 종교교육을 막는 것이라고 확대 해석하는 일부 개신교계의 속내를 알 길은 없다. 차제에 이와 관련한 국민적 토론을 제안하고 싶다.

가족관계가 아무리 원만하다 하더라도 가족구성원의 역할과 기능을 볼 때,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상당한 정도로 위계가 분명한 것이 사실이다. 자녀의 의사가 부모의 의해 무시될 개연성이 높은 이유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자녀는 부모의 종교를 따라 믿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이게 된다. 이런 경우, 자신의 경험과 이성적 판단에 의해 종교를 갖거나 갖지 않을 기회를 갖기가 쉽지 않다.

물론 부모가 자신이 신앙하는 종교에 자녀가 귀의토록 노력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하나, 자녀의 인생에서 더 중요한 것은 부모의 종교를 자신의 종교로 받아들이는 교감의 과정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무리한 종교의 강요는 오히려 자녀의 무한한 종교적 심성과 영적 성장의 가능성을 막고, 편협한 종교편식주의자로 만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종교가 인류의 발전에 기여한 것 못지않게 갈등의 진원지 또는 전쟁의 도화선이 된 사실이 있고 지금도 지구상에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살인과 파괴가 자행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과일이나 채소도 자연스럽게 키우지 않고 모양이든 보관이나 배달의 편의성이든 특정한 목적을 위해 틀에 넣어 키우면 본연의 자연스러운 모양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처럼, 자칫 종교적 독단과 배타성의 그늘에서 또 다른 세계로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아이가 될 수도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아이가 가진 무한한 영성 가운데 아이의 심장을 울리는 그 무엇을 찾아내 삶의 지침으로 삼게 해주되 가능한 균형 잡힌 종교적 시각을 갖도록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거쳐 스스로의 종교를 선택하게 되었을 때 그 아이는 가장 행복한 인생을 살 것이다.

결론적으로 부모는 자신의 신앙을 자녀에게 전할 때 '안내, 소개, 권유'까지는 할 수 있어도 '강요'(육체적, 정신적)는 안 되며, 나아가 이런 기준은 사회적 합의도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2015. 4. 25

종교자유정책연구원

* 외부 기고와 논평 등은 본지의 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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