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노 칼럼]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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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기자
푸른교회 조성노 담임목사

그는 선천성 장애인이었습니다. 그의 불행은 모든 것을 앗아갔습니다. 그에게도 무슨 바람이 있다면 그저 그날그날 굶지 않고 구복을 채우는 것인데 다행히 어떤 사람들이 그를 날마다 성전 문 어귀에까지 메어다 주어 구걸하며 연명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인들 왜 한때는 자기 운명에 저항하는 몸부림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이제는 숙명론자가 되어 그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을뿐더러 희망에 대한 부질없는 충동 따위는 아예 그 자신이 용납하지 못하는 지경까지 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를 날마다 성전 문 어귀에까지 업어다 준 사람들은 누구였을까요?

불쌍한 사람에 대한 순수한 동정심의 발로였다면 가상한 일이나 그를 정말 제대로 도와주어야 할 자신들의 책임을 그런 식으로 모면하려 한 것이었다면 결코 아름다워 보이지 않습니다. 또 성전을 드나들며 몇 닢 동전을 던져 주는 것으로 자기들의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거나 이웃 사랑의 계명을 다 지켰다고 생각하는 성도들의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아무튼 베드로와 요한, 두 사도가 어느 날 성전으로 들어가려다 예의 그 앉은뱅이 거지를 만납니다. 물론 그 장애인은 돈 한 푼을 기대하며 그들 앞에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렇다면 베드로와 요한은 쓰다 남은 동전이나 몇 닢 던지고 가면 그만인데 뜻밖에도 <우리를 보라!>고 했습니다. 적선하는 한두 푼 동전을 볼 게 아니라 당신과 마주한 <우리를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지는 여전히 사람에게는 흥미가 없어서 <무엇을 얻을까>하는 데만 관심했다고 합니다.

사실 지금 앉은뱅이를 향해 <우리를 보라>고 하는 그 두 사도 역시도 한때는 갈릴리 호수에 손을 내밀어 낚은 몇 마리 물고기로 연명하는 것이 삶의 전부라고 여겼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님을 만나게 되어 고기 낚는 어부에서 일약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웅대한 꿈을 안고 새 삶의 발돋움을 시도하는가 했는데 어이없게도 잔인한 인간들이 그들의 희망이었던 주님을 로마 황제의 이름으로 처형해 무덤에 매장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별수 없이 떠났던 갈릴리 호수로 다시 돌아와 텅 빈 그물로 허무를 끌어올리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부활하신 주님이 그들을 찾아오셔서 다시 발과 발목에 힘을 얻어 새 출발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그들이 지금 앉은뱅이를 향해 우리를 보라며 인간의 낡은 욕망을 충족시키기보다 근본적인 구원문제에 집중합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그런데 그가 정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리와 발목에 힘을 얻어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했다고 합니다(행 3:8). 그렇습니다. 주님은 은이나 금을 구하는 자에게는 <내게 없다!>고 하시지만 당신이 죽음이라는 숙명을 깨고 부활하신 것처럼, 앉은뱅이가 그 불가항력적인 운명의 굴레를 벗고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한 것처럼 지금 자신을 얽어매고 있는 온갖 어두움의 세력으로부터의 자유와 해방을 얻고자 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참된 구원을 누리게 하신다는 겁니다.

이 시대를 지배하는 가장 합리적이고도 현실적인 설득법은 희망은 없고 오직 현재만이 존재한다는 논리입니다. 그리고 그 현재를 위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두 가지를 주장합니다. 하나는 기적은 없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절망도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요즘은 앉은뱅이가 걸으려는 희망을 갖는 것은 황당한 망상입니다. 기적은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 터무니없이 기적을 바라기 때문에 죄악이 됩니다. 그렇다고 그냥 드러누워 죽기를 각오하는 것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절망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현재가 상처를 입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앉은뱅이는 그저 남의 손에 이끌려 적당한 자리에 앉아 구걸하며 사는 게 가장 합리적이요 현실적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베드로와 요한은 달랐습니다. 몇 닢 동전을 뿌려주기보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외쳤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모진 운명을 바꾸어 주실 수 있는 구원자이심을 확신한 때문입니다.

이 화사한 봄, 꽃보다 아름다운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마음껏 걷고 뛰는 은혜가 있으시길 진심으로 빕니다.

/노나라의 별이 보내는 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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