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진에 묻힌 선교사들, 한국교회가 복음의 빚 지다"

교회일반
교단/단체
이수민 기자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제32차 및 한국교회사학회 제125차 공동학술대회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와 한국교회사학회가 "양화진 선교사들의 삶과 사상"을 주제로 공동학술대회를 열었다.   ©조현진 교수 제공

"내게 천개의 목숨이 있다면: 양화진 선교사들의 삶과 사상"이란 주제로 28일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대강당에서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제32차 및 한국교회사학회 제125차 공동학술대회'가 열렸다.

이상규 박사(고신대)는 "근대선교운동과 내한 선교사들"이란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개항 이전 한국에서의 기독교 접촉 혹은 개항 이후 선교사들의 내한은 18세기 이후 전개된 근대선교운동의 결실이었다"고 했다.

이 박사는 "18세기 말 윌리엄 케리로 시작되는 근대 혹은 현대선교운동은 국제사적 전개를 통해 선교부 간의 상호 연쇄가 이뤄졌고, 이를 통해 아시아로 확산되어 기독교는 한국으로 전파됐다"고 설명한 후, "1812년 미국이 해외선교운동에 동참한 이후 미국선교사들의 진출이 현저했고, 1830년대 이후 선교영역의 변화는 성직자만 아니라 평신도 동참을 가져왔다"면서 "이는 전문인 선교를 확대해 여성도 선교의 동반자란 점을 보여줬다"고 했다.

이어 그는 "미국에서 일어난 복음주의 부흥과 학생자원운동(SVM)은 미국교회 해외선교의 동력원이 되어 1900년 이후 미국이 세계선교운동을 주도했고, 한국 선교를 주도하게 된다"고 설명하고, "내한 선교사들 70%가 미국 국적의 선교사였다는 점이 이 점을 확인시켜 준다"고 했다.

더불어 "내한 선교사들은 서구문화의 전파자 역할을 감당해 서구적 가치를 전수했고, 선교사 인력의 절대다수를 점했던 미국 선교사들은 초기 한미관계의 전개, 근대한국의 형성에도 영향을 끼쳤다"면서 "피선교지 교회는 선교지 교회의 영향 하에 있게 됨으로 초기 한국교회의 신학 예전 신앙형태는 미국장로교회에 의해 주형됐다"고 설명했다.

임희국 박사(장신대)는 "양화진의 역사와 외국인 묘지"란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양화진에 잠든 선교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려는 사명을 안고 우리나라에 왔고 복음의 열정으로 헌신적 삶을 살았다"고 말하고, "물론 그들이 하늘에서 온 천사가 아니었기에 인간적 약점과 허점을 드러낼 때가 종종 있었지만, 때때로 이를 통해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더욱 강하게 드러났다"고 했다.

임 박사는 "그들은 떠나갔지만 우리에게 하나님이 사랑으로 말미암은 복음의 빚을 남겨 줬고, 우리 또한 그 복음의 빚을 안고 있다"면서 "우리는 그 빚을 갚고자 세계 선교를 위해 온 세상에 복음 전하러 나가야 할 것"이라 강조했다.

한편 행사에서는 두 사람의 발표 외에도 이은선 오지원 이영식 양현혜 김준철 이정구 박사 등의 논문발표가 이뤄졌으며, 총평자로 박명수 소요한 박용규 박사가 수고했다. 개회예배 설교는 정영택 목사(예장통합 총회장)가 했으며, 행사는 마포교회협의회와 예장통합 양화진문제대책위원회가 공동후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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