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회퍼 "불가시성이 우리를 파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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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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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독연구원 '디트리히 본회퍼' 강독 세미나 '세번째'…장신대 고재길 교수 강의

[기독일보 오상아 기자]현대기독연구원 '디트리히 본회퍼 강독 세미나' 세번째 모임이 4일 합정동에 위치한 100주년기념교회 사회봉사관 2층에서 진행됐다.

▲고재길 교수(장신대 기독교윤리)   ©오상아 기자

매주 화요일 오후 7시 30분부터 2시간여 진행되는 세미나인데, 이날은 3시간이 넘게 진행됐다. 그럼에도 애초 계획했던 분량이었던 300여페이지를 다 보지는 못했다. 이에 한 수강생은 이달 18일까지로 예정된 수업 일정을 2주간 연장해서 진행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까지도 본회퍼를 알고자 하는 열정은 강사로 초청된 장로회신학대학교 고재길 교수(장신대 기독교윤리)나 수강생들이나 마찬가지였다.

에버하르트 베트게의 '디트리히 본회퍼'는 150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다. 강사로 초청된 고재길 교수는 "본회퍼가 정말 열심히 살았더라. 영국에서도 독일에서도 교회에서 설교할 때도 , 에큐메니칼 운동을 할 때도... 39세의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살아내는 열정과 일의 내용들 보니 마치 80세를 살다 간 것 같다는 얘기를 지인과 나누기도 했다. 그는 80세를 살고 간 사람만큼 열정을 쏟아 부어 사람들 만나고 글을 쓰고 설교하고 기도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책의 두께는 고재길 교수의 말처럼 본회퍼의 '삶의 치열성'을 보여주는 듯 한다.

이렇듯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을 통해 나타나기 마련이다. '가시성'과 '불가시성'의 관계는 절연된 듯 보이기도 하지만 연결되어 이런 저런 '형상'으로 나타내 보여진다.

이날 고재길 교수는 베를린 훔볼트대학에서 공부할 때 찍은 본회퍼와 관련된 사진 자료를 보여주었다. 그는 "베를린은 본회퍼의 본 고장"이라며 "전기를 읽을 때 나오는 장소들"이라고 소개했다.

▲본회퍼는 실업자들이 많이 모이는 빈민가 베딩에서 무산자 계급 어린이들에게 시온교회에서 견신례 교육을 했다.   ©현대기독연구원

실업자들이 많이 모이는 빈민가 베딩에서 무산자 계급 어린이들에게 아이들 견신례 교육을 한 시온교회, 요하네스 라우 전 독일 대통령, 헤겔, 피히테, 브레히트, 본회퍼 등 등을 추모하는 베를린 도로텐 추모공원, 본회퍼가 교목을 역임했던 지금 훔볼트대학교의 전신인 베를린신학교와 베를린 공대, 본회퍼가 목사안수를 받은 성 마태 교회, 본회퍼가 청소년기를 보냈다는 본회퍼하우스, 본회퍼가 유년기를 보낸 그루네발트의 자택, 본회퍼가 히틀러 암살 쿠데타 음모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붙잡혀 정치범으로 부리며 재판 받던 곳,  본회퍼가 5000명 이상의 사람들과 함께 화장 당한 곳이라며 그곳을 기념해놓은 곳의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고재길 교수는 "본회퍼의 부모님이 본회퍼가 어떻게 죽었는지 몰랐는데 영국 BBC 라디오 방송을 통해 본회퍼의 죽음을 알게 됐다. 런던 삼위일체교회에서 본회퍼를 추모하는 예배가 있었는데 본회퍼의 동역자였던 조지 벨(George Bell) 감독이 인도한 그 예배가 BBC 방송을 통해 유럽 전역에 방송됐다"며 "조지 벨 감독은 그때 5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죽었고 이 중의 한명으로 본회퍼가 화장을 당한다는 얘기를 한다"고 전했다.

고 교수는 또한 나치 정권에 희생된 유대인들과 독일인들을 추모하는 추모판과 상징물들을 사진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훔볼트대학교를 보여주며 이 학교의 교수이자 학생으로 나치에 저항하다 죽었던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놓고 애도하는 설치판을 보여주며 여기에 본회퍼 이름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본회퍼가 초등학교때 이사 와 1916년부터 1935년까지 살았다는 집이라며 그루네발트 지역에 있는 집을 소개하면서는 이 근처에는 문인, 신학자, 정치인이 많이 살았다고 했다. 그는 "'발트'는 숲이라는 뜻으로 좋은 이름을 가진 곳인데 이 곳에 4만 5천 유대인들이 아우슈비츠로 끌려가는 그루네발트역이 있다"고 말하며 '1944년 10월 12일 31명 끌려갔다', '1941년 10월 1945년 2월 사이 5만명이 끌려갔다' 라고 쓰인 표지 등을 보여줬다.

그루네발트역의 입구 쪽은 현대적으로 세련되게 디자인 됐지만 기차가 들어오는 내부는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글라이스(GLEIS) 17', 플랫폼 17번이라고 쓰인 역명은 당시의 모습 뿐 아니라 아우슈비츠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어야했을 유대인들의 처참함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듯 했다.

그는 또 "유대인들을 기억하고 나치의 잔학상을 잊지 않겠다는 예술가들의 표시로 고난의 크기와 고난의 심각성을 나타낸 하나의 상징이다"며 성인의 몸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와 깊이만큼 사람의 모습으로 벽을 파놓은 상징물을 보여주기도 했다.

고재길 교수는 "독일은 역사적 과오를 인정하고 보존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한다는 의미로 이렇게 보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독일은 건물의 벽에, 길에, 발길이 닿는 베를린의 여기저기에 '과거'를 새겨 놓았다. 잊고 싶은 과거이지만 '현재'에 공존시켜 늘 참회하고 애도하려는 그들의 노력으로 보여졌다.

고재길 교수는  "본회퍼 신학에서 처음과 마지막까지 일관되게 흐르는 것은 '신학의 구체성'에 관한 이야기다. 그가 계시의 구체성에 관해서 그 중요성에 관해서 언급하는 한 문장이 있다. '불가시성이 우리를 파괴하고 있다'는 것인데 직역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우리를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어 원어로 볼 때 '파괴한다'는 의미로 쓰인 단어는 '산산조각 낸다'는 뜻이다"고 했다.

이어 "히틀러 상황 속에서는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거짓 메시아가 나타나서 내가 메시아라고 나를 따르라고 할 때 정말 참된 메시아를 따르는 것을 눈으로 보여줄 교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본회퍼 당시 참된교회가 독일제국교회냐 고백교회냐 할 때 고백교회가 참된 교회면 사람들 눈에 확인될 정도로 참된 교회를 보여줘야된다는 뜻이다"며 "참 제자임을 눈으로 증명해보여야 된다. 남이 나를 볼 때 '너는 그리스도의 제자구나, 참된 교회군요' 말할 수 있게 보여줄게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디트리히 본회퍼   ©현대기독연구원

'구체성'에 관한 얘기였다. '역사의 과오'를 인정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독일, 그것은 '독일'의 회개의 구체성을 보여주며 베를린국립도서관의 로비 입구에 설치된 본회퍼의 흉상은 행동하는 지성인의 '구체성'의 상징이며 그의 정신을 따르고자 하는 독일 지성인의 이상의 '구체성'이 아닌가 싶다.

이어 고재길 교수는 본회퍼의 설교를 이야기하며 "어떤 사건이 터지면 예를 들어 히틀러가 총통으로 부임하면 본회퍼는 그에 관한 설교를 바로 한다. 히틀러를 빗대어서 하는 설교 원고를 쓰고 직접적으로 말을 한다. 예언자적인 설교를 많이 하는 것을 보게 된다. 1931년 추수감사절 설교를 할때도 '...700만이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독일에서만 1200-2000만 사람이 굶주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쓴 것처럼 현실성과 구체성을 담아냈다"며 "지금 한국에서 본회퍼와 같이 설교를 하면 당장 당회에서 다음주에 나오지 못하게 할 것이다"고 말했다.

또한 '신학자에서 그리스도인으로' 부분을 설명하며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며 "'당시에 일어난 것은 상투적인 것으로부터 현실적인 것으로의 전환이었다'는 글을 인용하며 본회퍼는 눈에 보이는 것을 찾아서 운동을 했다. 계시의 구체성이 등장하는 것이다"며 "그래서 공동체다. 공동체로 존재하는 그리스도였다"고 했다.

고재길 교수는 "본회퍼는 신학적 개념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 삶 가운데 실험을 해보는 것이 중요했다"며 "시온교회에서 실업자 아이들을 견신례 교육을 하면서 (공동체를)실험해보는 것이다. 그들과 가끔식은 주말에 집을 빌려서 함께 살기도 하면서 말이다"며 '불가시성'을 '가시성'으로 '구체성'으로 바꾸어내려던 "그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구체성'을 요구했던 본회퍼의 정신은 '평화주의'를 배우기 위해 인도의 간디를 만나러 가야 한다는 이야기에도 잘 함축되어 있지 않은가 싶다. 고재길 교수는 "본회퍼가 인도 간디를 만나야 된다고 이야기 하는 장면이 서너번에 걸쳐서 나온다. 인도로 가서 평화주의 비폭력저항운동을 배워야되는데 하면서 산상수훈을 계속 이야기한다. 비폭력저항운동이 산상수훈의 원리라는 것이다"며 "실제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서 본회퍼는 평화주의 운동을 한다. 이 운동을 기독교를 모르는 인도의 사상가가 앞서고 있다고 하면서 동양으로 가서 배워야되지 않느냐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부분은 본회퍼가 히틀러를 죽이려는 쿠데타에 가담하는 것을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내용들이다. 이런 비폭력무저항 운동에 대한 내적인 확신이 있었던 사람을 히틀러 암살 운동에 투신하게 한 사상적 계기가 무엇이었을까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재길 교수는 이것에 대해서도 몇가지 이론들이 있다고 말하며 그러나 "1939년 이후에 스위스 친구였던 주츠와 편지를 주고 받는데 거기에는 '2차 세계대전 터졌다. 더 이상 문자적 평화주의 운동은 의미가 없다. 다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 분명히 나온다"며 "본회퍼를 있는 그대로 봤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본회퍼의 생각을 볼 수 있게 하는 그의 글을 통해 그를 보자는 얘기다. 또 하나 '그의 글'을 통한 그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한 대목이 있었다. 고재길 교수는 "'나를 따르라'는 본회퍼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바르트의 격찬을 받는다. 칼 바르트는 본회퍼가 살아서는 이 책을 보고 너무 세상으로부터 도피하는 수동적인 경건의 모습이고 세상의 이슈와는 거리를 둔 소극적인 형태의 경건생활이 지배하고 있지 않느냐는 혹독한 비평을 쓰기도 하는데 죽고 난 이후에는 좀 다르게 평가한다"고 말하며 "이 부분에 대해서 본회퍼가 편지를 주고 받았던 사람 주츠와 주고받은 편지 속에 수도원 훈련에 대한 본회퍼의 속 마음 담은 글들이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본회퍼 사상을 연구할 때 제일 중요하게 여겨야 되는 것은 우리가 가진 전제를 가지고 본회퍼를 해석하려고 하는 것은 두번째 문제다. 첫번째 중요한 것은 본회퍼와 친구들과 주고 받은 문헌들 거기에 기록되어 있는 역사적 기록에 기초해서 일단은 해석을 한번 하고 신학적이든 정치적이든 사회학적인 해석이 필요하지 않는가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날 고재길 교수의 독일 훔볼트대학 유학 시절에 만난 칼 바르트 제자였던 노교수를 통해 '가시성', '구체성'의 힘을 알 수 있었다. 고재길 교수는 이 교수는 자신의 스승이었던 칼 바르트를 회상하며 아주 행복한 표정을 지었고 고 교수는 그 표정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 노교수가 실제 눈으로 보고, 들은 그 구체적인 '칼 바르트'의 경험은 힘있게 가슴에 전달됐다

'가시성'과 '구체성'의 힘, '불가시성'의 무력함을 강조한 본회퍼의 신학적 통찰력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보이는 세계에 '가시성'과 '구체성'으로 바꿔내 보여주는 기독교인의 치열한 노력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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