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회 목사 시리즈 설교] 인정하는 말

오피니언·칼럼
편집부 기자
사랑의 언어시리즈(1)
▲예능교회 담임 조건회 목사ㅣ예배목회연구원 원장   ©예능교회

어느 시골 작은 천주교회 주일 미사 때, 신부를 돕던 소년이 실수하여 성찬용 포도주그릇을 떨어뜨렸습니다. 그러자 신부가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고 있는 소년의 빰을 때리며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시는 제단 앞에 나타날 생각도 하지 말아라" 그 말을 들은 아이는 성당과 하나님에 대해서 무섭고 사랑이 없는 분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 그 소년은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 아이가 자라서 결국 유고의 무자비한 독재자 티토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성당에서 똑같이 포도주를 엎질렀던 다른 아이는 그 성당 신부로부터 위로와 격려를 받았습니다. 실수를 정직하게 인정한다며 오히려 칭찬을 들었습니다. 이 아이는 커서 유명한 대주교가 되었습니다. 이 소년이 미국의 풀턴 쉰이라는 신부입니다. 그래서 지혜의 왕 솔로몬은 혀의 권세를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잠 18:21) 영어로 보면 이해하기가 더 쉽습니다. "The tongue has the power of life and death" 혀에는 사람을 살리는 능력, 죽이는 능력, 두 가지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교육학에서는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로젠탈이라는 심리학자가 발견한 이론입니다. 이 이론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에서 로젠탈은 새 학기가 시작할 무렵 담임선생님에게 학생 명단을 넘겨주며 말했습니다. "우리가 검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 학생들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잘만 교육시키면 큰 인물이 될 것입니다. 눈 여겨 보십시오" 자연스럽게 그 담임 선생님은 명단에 적힌 학생들을 1년 동안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잠재력이 드러날 때마다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1년 후 이들의 성적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습니다. 성적뿐만 아니라 대인관계나 학습태도에 있어서도 확연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로젠탈이 선생님에게 넘겨준 명단의 학생들은 실제로 어떠한 뛰어난 능력도 갖추지 못한 평범한 학생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로젠탈은 학생들을 선발할 때 무작위로 선발했고, 학생들이 남다른 성적과 태도를 보인 것은 선생님의 지속적인 칭찬과 격려의 말이 나타낸 효과였던 것입니다. 그 학생들은 지극히 평범하거나 혹은 평균이하의 성적과 능력을 갖고 살 수도 있었지만, 선생님이 지속적으로 칭찬하고 격려하자 뛰어난 모범생으로 자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칭찬보다는 문제를 지적하는 비난과 책망에 익숙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대체로 칭찬에 인색한 편입니다. 자식도 속사랑으로 키워야지 겉으로 사랑을 표현하면 망친다고들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실상은 칭찬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칭찬은 사람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줍니다. 칭찬은 새로운 일을 하게 합니다. 칭찬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그리고 칭찬을 받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이나 모두 긍정적인 성품으로 변화됩니다. 그렇게 보면, 말은 우리 인생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핸들과 같습니다. 자동차의 핸들을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목적지가 달라지듯이 사람은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제자가 될 사람을 부르시는 과정에서 그 사람의 허물과 약점을 보기보다는 좋은 점을 보아 주시며 그를 인정하고 칭찬하며 격려하십니다. 그 대상은 바로 빌립의 친구인 나다나엘입니다. 빌립은 친구 나다나엘에게 찾아가서 성경에 기록된 메시아를 만났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46절)라며 반문을 합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달동네 같은 곳에서 무슨 메시아가 나타나겠느냐고 의심합니다. 그래도"와보라"는 빌립의 전도를 받고 그는 예수님 앞에 나아갑니다.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47절) 예수님은 그의 겉을 본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속을 보셨습니다. 현재 그가 어떤 사람인지 한 순간에 그의 중심의 좋은 일면을 말하고 계십니다.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헬: 발레이토스 이스라엘리티스)- "너는 진짜 이스라엘이다. 너는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 너는 간사한 사람이 아니라 진실한 사람이다"라고 칭찬을 해주십니다.

사람들 중에는 자기를 포장하고 과장하면서 허풍 떨며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면에서 나다나엘은 양심의 거리낌 없이 진실한 마음으로 살려고 애썼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다나엘이 결코 완벽한 사람은 아닙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고 비꼬는 말투를 보면 그에게도 편견과 고집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의 내면에 가장 좋은 일면을 보시고 인정하고 칭찬하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47절) 그 때 나다나엘이 이렇게 질문합니다."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48절)

그 때 우리 주님이 두 번째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48절) 간사함이 없다는 것이 나다나엘의 현재의 내면의 모습이었다면,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보았다는 것은 그의 외적인 과거의 행동을 보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무엇을 하는 것을 보았다는 것일까요?

이스라엘의 나사렛, 이 사막지대는 몹시 뜨겁습니다. 그늘이 아쉽습니다. 그런데 무화가 나무는 그늘이 큽니다. 무화과나무 그늘 아래는 이스라엘의 랍비들이 말씀을 가르치거나 또 명상하는 장소로 쓰이곤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나다나엘의 모습을 보신 것은 율법을 묵상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을 보셨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나다나엘은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명상하고 기도하며 메시아의 예언을 기다립니다. 이처럼 경건한 시간의 규례를 그는 꼭 지켰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모습을 멀리에서 보셨습니다.

나다나엘은 주님이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는 이 한마디에 무릎을 꿇습니다."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49절) 왜 이렇게 반응할까요?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 자신의 가장 좋은 모습을 보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 주님께서 나를 알아주시고, 내 경건을 알아주시고, 내 조그마한 진실을 알아주시는구나!'라며 감격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생각해보세요."나다나엘아, 네가 술집에서 노닥거리고 있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네가 누구와 싸우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네가 외간 여인하고 딴 짓하는 것을 보았노라."나다나엘이라고 다 좋은 일만 한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의 지나온 삶을 주님이 들여다보고 말씀하신다면, 어떤 모습을 가지고 칭찬 또는 책망의 말씀을 하실 것 같습니까? 다 의롭고 진실하지 못했어도 어디 한 가지라도 주님의 마음에 흡족함을 드릴 수 있는 시간과 장소가 있었다면, 우리 주님은 바로 그 장점 하나만을 가지고도 크게 여기시고 다른 부족함은 잊지 않으시겠습니까? 예수님은 나다나엘의 과거조차도 좋은 일면을 보아주시고는 잘했다고 인정해주고 계십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은 나다나엘의 미래까지도 내다보고 계십니다.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함으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일을 보리라.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51-52절) 이 말씀은"나다나엘아, 너는 장차 많은 영혼을 하늘에 있는 나에게로 인도하는 영적인 사다리가 될 것이다"라는 의미입니다."나다나엘 너도 주님의 뒤를 이어 영혼의 중보자가 될 것이다"라는 귀한 격려의 말씀인 것입니다. 나다나엘이 앞으로 놀랍게 하늘과 땅을 잇는 중보자의 위대한 사명을 감당한다는 격려는 계시적 칭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의 과거, 현재, 미래의 가장 좋은 점을 들여다보고 그를 인정하고 칭찬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말을 구체적으로 해야 할까요? 사람을 어떤 말로 인정하고 칭찬해야 다른 사람이 살맛이 나겠습니까? '좋은 생각'이란 잡지에 난 어느 조사에 따르면, 자녀들이 가장 상처를 많이 받는 말은 "네가 제대로 하는게 뭐 있어?"(43%)였고, 부모가 자녀들로부터 가장 많이 상처 받는 말은, "나한테 해준 게 뭐 있어요?"(73%), "엄마 아빠 때문에 창피해 죽겠어요"(47%)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즉, 자녀는 부모가 인정해 주지 않고 무시할 때, 그리고 부모는 자녀에게 인정받지 못할 때 가장 큰 상처를 받게 됩니다.

반대로 '가장 힘이 되는 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자녀들은 "이 세상에서 네가 가장 소중하단다"라는 말을 부모에게 듣는 것이었고, 부모들은 "누구보다도 우리 부모님을 존경해요", "부모님을 사랑해"라는 말을 자녀들에게서 듣는 것이었습니다. 또 남편들은 "당신밖에 없어요. 당신이 최고예요"라는 아내의 말을, 아내들은 "당신을 만난 것이 가장 큰 축복이야"라는 남편의 말을 꼽았습니다. 조사 결과 모두가 '인정하는 말'을 힘이 되는 말로 꼽았습니다. 인정받는 말이야말로 가장 힘이 되고, 듣고 싶은 말입니다. 그런 말은 듣는 사람 뿐 아니라 하는 사람도 행복하게 만듭니다. 사실 우리가 축복의 말을 할 때에는 스스로 행복해져서 밝은 표정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가족이나 이웃에게 부정한 말 대신에 끊임없이 인정하고 칭찬하며 격려하는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말의 근원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눅 6:45) 말이 입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있는 생각이 말이 되어 입으로 나옵니다. 그 나온 말이 곧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그 행동들이 모여 습관을 이루고 그 습관들이 모여 인격이 됩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생각-말-행동-습관-인격-인생'. 이렇게 볼 때 인생의 가장 안쪽에 생각이 있습니다. 세상은 교육을 통해 사람들의 행동을 교정하려고 합니다. 인격을 바꾸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늘 사람의 마음을 주목하십니다. 하나님은 마음의 생각과 행동을 동일한 비중으로 다루십니다. 생각과 말과 행동 사이에는 시차만 있을 따름입니다. 말 전에 생각이 있고 말 다음에 행동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고, 잠시 후 그가 하게 될 행동도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긍정적인 생각과 말이 좋은 것임을 알면서도 왜 쉽게 부정적이게 될까요? 그것은 원천적으로 인류의 조상 아담의 타락으로 우리 인간은 죄로 인해 생각의 DNA가 이미 타락했기 때문이며, 부정적인 세상의 환경에 계속해서 노출되어 마음의 상처와 더불어 부정적인 생각의 틀 안에 갇혀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타락한 인간의 생각을 바로 잡고 긍정적인 생각과 말을 사용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먼저는 우리의 생각의 밭에 말씀을 심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 밭에 하나님의 생각의 씨를 뿌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말씀을 나의 생각에 심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을 받아들여 우리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생각, 영의 생각으로 무장하면 우리는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위대한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주님께 말씀을 구하고 주께서 말씀을 주시면 우리의 생애 속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두번째로 주의 말씀과 더불어 항상 기도로 무장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권면한 적이 있습니다.『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성령께서 기도 가운데 지키십니다.

말씀과 기도로 충만한 가운데 긍정적인 생각과 인정하는 말로써 위대한 삶의 기적을 함께 이루어가지 않으시겠습니까?"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이 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요1:4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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