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혁 목사 설교] “종교개혁이 한국교회에 주는 교훈”

목회·신학
‘한국교회, 세속화를 경계한다’ 종교개혁 특별포럼 설교

시편 22편 1-2절

▲김명혁 목사가 격려사를 전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우리는 모든 것을 성경에서 배워야 하지만 동시에 기독교 역사에서 배워야 합니다. 기독교 역사는 성경 말씀을 기초로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아간 믿음의 선배들의 역사인 동시에 하나님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고 랄프 윈터 박사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두 권의 책이 있는데 제 1권은 성경책이고 제 2권은 라토렛 교수의 교회사 책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성경 자체가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라”고 명하면서도 동시에 지난 역사에 나타난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을 바라보며 배우라고 분부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한국교회는 극심한 세속화와 인간화에 치우치게 되었고 그 결과 극심한 분쟁과 분열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한국교회가 언제부터인가 너무 세상의 유행을 따르게 되었고 너무 정치 경제 문화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성장주의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교회가 더 커지고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 온갖 성장 프로그램과 전도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한국교회는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게 되었고 물욕과 정욕과 명예욕과 자리 욕에 사로잡히게 되었으며 주님과 주님의 신실한 제자들이 지녔던 순수한 영성과 도덕성을 많이 상실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한국교회는 실망과 염려와 비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한국교회는 세상과 유행에 대해서는 소경과 귀머거리가 되어야 하고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그리고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역사적인 믿음의 증인들을 바라보며 배워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종교개혁자들을 바라보면서 “종교개혁이 한국교회에 주는 교훈” 이라는 제목으로 강의와 같은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성경과 교회 역사에 나타난 믿음의 선배들은 모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생생하게 만나고 체험하는 하나님 만남의 체험으로 저들의 삶과 운명이 변화되었고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들로 사용되었습니다. 사실 하나님 만남의 체험은 기독교 신앙의 출발이고 과정이며 종착이고 완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들의 하나님 만남의 체험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이루어졌고 기도와 경건으로 이어졌으며 저들의 삶과 사역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생생하게 만나므로 그의 삶과 운명이 변화되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야곱도 요셉도 모세도 이사야도 모두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생생하게 만나므로 저들의 삶과 운명이 변화되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들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배신자 시몬 베드로도 핍박자요 포행자였던 사울도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로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인격적으로 생생하게 만나고 또 만나므로 저들의 삶과 운명이 변화되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들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32살 때 무화과 나무 아래서 롬13:12을 읽으므로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인격적으로 생생하게 만났고, 마르틴 루터는 31살 때 비텐베르그 어거스틴 수도원 탑 속에서 시편 22편을 읽으므로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인격적으로 생생하게 만났습니다. 그리고 기도와 경건의 삶을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들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위의 말을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하나님 만남의 체험이 가장 중요하고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가 너무 중요하고 셋째는 기도와 경건의 삶을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다. 사실 이와 같은 세 가지 중요한 요소들이 종교개혁자들의 삶과 사역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종교개혁이 한국교회에 주는 교훈” 이란 제목으로 강의와 같은 설교를 시작합니다.

첫째로,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1483-1546)의 하나님 만남과 체험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마르틴 루터는 “탑 속의 체험”을 통해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까지는 비록 종교적인 삶을 살았지만 죄 의식과 어두움과 불안과 두려움 속에 사로잡힌 불행한 삶을 살았습니다. 루터는 몇 단계의 종교적 체험을 통해 비로서 죄 사함과 밝음과 평안과 기쁨에 넘치는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루터가 인격적으로 생생하게 만난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은 지금까지 루터가 관념적으로 알았던 진리와 심판의 두려운 하나님과 예수님이 아니었습니다. 루터 대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시고 끊어짐을 당하신 긍휼과 용서와 사랑과 은혜의 예수님이셨고, 루터 대신 아들을 버리시고 끊어지게 하신 긍휼과 자비와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이셨습니다.

루터가 경험한 첫번째 종교적 체험은 1505년 7월 찌는 듯이 무더운 여름 어느 날 슈토테른하임의 뇌성벽력 가운데 죽음의 공포로 임했습니다. 루터가 경험한 두 번째 종교적 체험은 에르푸르트 수도원의 수도사가 된 후 2년 동안의 견습수도생활을 한 다음 사제로서 첫 미사를 집행했을 때 소멸하는 불과 같은 또 하나의 벼락에 맞는듯한 죽음의 공포로 임했습니다. 루터가 경험한 세 번째 종교적 체험은 비텐베르그 어거스틴 수도원 탑 속 서재에서 소위 “탑 속의 체험” 이라고 불리는 복음적 체험으로 임했습니다.

루터는 1513년 혹은 1514년 가을 어느 날 비텐베르그 어거스틴 수도원 탑 속 서재에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만나는 복음적 체험을 가졌습니다. 시편 22편을 읽고 있었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루터는 자기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그려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이 시편이 자기 자신의 모습을 묘사한 글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한 글이었음을 생각했을 때 이해할 수 없는 놀라움에 사로잡혀 다음과 같이 부르짖었습니다. “어째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버림을 당해야 한다는 말인가? 나 자신이 버림을 당하는 것은 얼마든지 타당한 일이다. 나는 약하고 불순하고 불 경건하니 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약하지도 불순하지도 불 경건하지도 않으신데…. 어째서? 어째서?”

다음 순간 루터는 벼락에 맞은 듯한 놀라움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끊어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는 나 루터 대신 그리스도가 친히 하나님으로부터 끊어버림을 당했다! 죄 없으신 그리스도가 내 대신 죄를 담당하시고 나 대신 죄가 되셨다.” 루터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모습은 이제는 더 이상 무서운 심판자가 아니라 사랑과 용서로 가득 찬 구주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모습도 전혀 새로워졌습니다. 진노와 심판의 하나님이 자비와 사랑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은 인간의 어떠한 노력이나 성취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단순한 믿음으로 이루어진다는 복음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은 성취가 아니라 선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연구함으로 얻어지는 선물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루터는 또한 1515년 또는 1516년에 로마서 1장을 읽으며 하나님의 공의와 창의와의 관계를 바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루터는 “탑 속의 체험”으로 십자가의 주님을 인격적으로 생생하게 만났고 로마서를 읽으므로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들의 믿음으로 우리 죄인들을 의롭다고 여기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보다 깊이 체험했습니다. 결국 루터가 십자가의 주님을 인격적으로 생생하게 만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였고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의 긍휼과 용서와 사랑과 은혜를 통해서였고 자가 자신의 공로나 성취가 아닌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단순하고 순수한 믿음을 통해서였습니다. 루터는 이제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오직 믿음”(Sola Fide) 이란 모토를 내 세우는 종교개혁의 횃불을 들 준비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1517년 10월 31일 종교개혁의 봉화를 높이 들었습니다.

루터는 개혁의 봉화를 들기 전인 1515년에 이미 “나의 신앙은 그리스도의 말씀에 사로잡힌 포로”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루터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성경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루터는 “성경 전체는 비록 겉으로는 달리 보일지라도 그 속 뜻을 헤쳐보면 오직 그리스도에 대한 관심을 두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루터는 기도와 경건의 삶을 계속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그의 생애를 모두 바쳤습니다. 루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하루에 3시간을 기도합니다. 너무 일이 많아 분주할 때는 4시간을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더 많은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하나님의 은총과 도우심을 구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제네바의 종교개혁자 요한 칼빈(1509-1564)의 회심의 체험과 하나님 중심적 개혁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칼빈은 자신의 회심의 체험을 그의 시편 주석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정확한 년대는 알 수 없으나 칼빈이 24세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는 내가 신부가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후에 아버지는 그의 생각을 바꾸었다. 내가 법률에 종사하면 명성도 얻고 돈도 벌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로 하여금 법률 공부를 하게 했다. 나는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법률 공부를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섭리를 비밀리에 수행하시면서 나의 가는 길을 바꾸어 놓으셨다. 하나님께서는 갑작스런 회심(sudden conversion)을 하게 하므로 내 생각을 완전히 고쳐 버리셨다.

그래서 나는 참된 경건에 대한 지식을 맛보게 되었고 내 마음은 곧 참된 경건 가운데서 발전하게 되기를 원하는 강한 소원으로 불붙게 되었다.” 우리가 만난 종교개혁자들은 (루터와 쯔빙글리와 칼빈 등) 한결같이 그 방식은 조금씩 달랐지만 하나님 만남의 체험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생생하게 체험했던 사실을 발견합니다.

칼빈의 종교개혁 운동의 초점은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두었는데 이는 세속화와 인간화로 치닫고 있는 한국교회에 주는 귀중한 도전과 가르침이라고 하겠습니다. 칼빈은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기독교강요」제1권 제1장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을 취급했습니다. 이 두 가지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을 모르면 나를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가 하나님의 영광을 본 후 자기 자신에 관하여 알았듯이, 욥이 하나님을 본 후에 구더기와 같은 자신을 발견했던 것처럼, 하나님을 알아야 자신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본 후에야 추악한 죄에 쌓여있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또한 나의 추함을 알 때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됩니다. 여기서 앎이란 인격적 교제를 말합니다.

제2장에서는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는데 그치지 않고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종교적 경건이 없이는 이와 같은 하나님 지식을 얻을 수도 없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알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중보자 그리스도가 오셔서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시키므로 비로서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제6장에서는 창조주 하나님에게 오기 위한 안내자와 교사는 오직 성경임을 지적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시는 실제적인 지식을 오직 성경 안에서 주셨다고 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혼란을 일으킬 수 밖에 없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밝히 가질 수 있으며 참 하나님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성경을 참 사랑하는 제자가 되지 않고는 바른 교리의 조그마한 부분도 맛볼 수 없다. 성경 없이는 모두 오류에 빠진다. 인간의 마음은 성경의 도움 없이 결코 하나님께 도달 할 수 없다.”

제7장에서는 성령의 조명에 의해서 성경을 바로 알 수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성경의 권위는 하나님의 성령으로부터 기인되는 것이지 사람이나 교회에 의해서 오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대한 확신을 인간의 이성이나 판단이나 추리보다 더 높은 곳인 성령의 신비한 증언에서 찾아야 합니다. 성령의 조명은 모든 이성보다 뛰어납니다. 말씀이 성령의 조명에 의해 인쳐질 때 비로서 말씀이 사람의 가슴 속에 받아 드려집니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을 다시 요약하면 칼빈의 종교개혁 운동의 초점은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교제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두었는데 죄인들이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교제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는 성경의 가르침과 성령의 조명과 중보자 그리스도의 오심과 종교적 경건이 절대로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결국 칼빈의 종교개혁의 중심과 종점은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었고 그 방편은 말씀과 성령과 그리스도와 종교적 경건이었습니다.

끝으로 칼빈의 기도와 경건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칼빈은 루터와 마찬가지로 기도와 경건의 주요성을 강조했고 이를 실천한 기도와 경건의 사람이었습니다. 칼빈은 그의 기독교 강요 제3권 20장에서 기도의 필요성과 특성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기도의 은총으로 우리는 하늘의 보화를 얻는다. 기도를 통해 사람이 하나님과 교제하게 되는데 하늘 보좌에 들어가 하나님께 간구하므로 믿음의 내용들이 헛된 것이 아님을 실제로 체험하게 된다.

즉 우리는 복음에 의해 제시되었고 믿음의 눈이 바라보았던 보화들을 기도로 파내어 얻는 것이다. 기도의 필요성을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으며 기도의 실천이 얼마나 많은 유익을 가져오는지 다 지적할 수 없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요새임을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그의 섭리가 나타나 우리를 보살피시며 그의 능력이 나타나 우리를 붙드시며 그의 선하심이 나타나 우리를 은혜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즉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시고 임재하시기를 간구한다. 그래서 우리는 특별한 평안과 안식을 경험한다.”

칼빈은 결국 말씀과 성례와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칼빈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기도를 위해서는 기도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가다듬으며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고 구하는 것에 대하여 신실한 마음을 가져야 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서서 우리 자신의 모든 허영을 버리고 하나님께 온전한 영광을 돌려야 하고,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리라는 확실한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여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칼빈의 처절한 회개와 감사의 기도는 그의 생을 마감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졌습니다.

칼빈은 1564년 5월 27일 5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는데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인 4월 25일 다음과 같은 고백과 기도의 글을 유언으로 남겼습니다. 그런데 그의 고백과 기도 가운데 “나는 망할 자”라는 고백이 두 번이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나 요한 칼빈은 여러 가지 질병으로 고통과 압박을 당하는 가운데 주 하나님께서 나를 이 세상으로부터 조만간 부르실 것이라고 생각되어 다음과 같이 유언을 남기기로 했다. 무엇보다 먼저 내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은 나를 불쌍히 여겨 우상숭배의 깊은 어두움 속에서 건져내어 복음의 빛 가운데로 인도하여 구원의 도리를 받아들이게 하시고 나의 모든 허물과 죄를 담당하신 일인데 나는 그런 은혜를 받을 아무런 가치가 없고 거절을 당해 망해야만 할 마땅한 자였다.

내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두 번째 이유는 같은 긍휼과 자비로 나를 사용하셔서 설교를 하게 하고 복음의 진리를 전파하게 하신 일이다. 내가 증거하고 선언하는 것은 생명이 남아 있는 한 그의 복음으로 나에게 맡겨주신 같은 신앙과 같은 경건 가운데 계속 머물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구원을 위해서는 나를 변호해주고 보호해줄 다른 아무것도 없고 오직 은혜로운 선택 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의 온 영혼을 다해 나는 하나님이 자비를 붙잡는 것뿐이다. 내가 증거하고 선언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구속주가 흘리신 피로써 나를 씻기고 정결케 하시기를 비는 것이며 그의 그늘 밑에서 내가 심판대 앞에 설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내가 또 선언하는 것은 나를 향한 주님의 은혜와 선하심을 따라 나의 설교와 저술과 주석들을 통해 그의 말씀을 순수하게 전파하려고 노력했으며 성경을 충실히 해석하려고 노력한 것이다. 내가 또 증거하고 선언하는 것은 복음의 원수들과의 모든 논쟁에서 내가 거짓이나 악함이나 궤변을 사용하지 않았고 진리를 변호함에 있어서 솔직하고 진실하게 행동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망할자로다! 나의 열성과 열심은 그렇게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전부 부주의하고 힘이 없는 것이어서 나의 직분을 수행하는데 수없이 실패를 반복했다. 그의 도움과 은혜가 없었다면 모든 것이 공허한 헛수고였을 것이다. 유해에 대해서는 내가 세상을 떠나면 나의 시체가 교회의 습관과 형태로 땅에 묻히게 하여 영화로운 부활의 날이 올 때까지 기다리게 하기를 소원한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우리는 신앙의 선배들로부터 그리고 종교개혁자들로부터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고 어떠한 사역을 하여야 할 것인지를 배우게 됩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영적으로 그리고 인격적으로 생생하게 만나는 만남의 체험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가 너무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를 떠난 운동이나 현상들은 모두 헛것이란 사실입니다. 셋째는 기도와 경건의 삶을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이와 같은 세 가지 중요한 요소들이 종교개혁자들의 삶과 사역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한국교회의 신앙의 선배들도 그와 같은 귀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역사가 보여주는 사실은 그와 같은 귀하고 아름다운 삶이 오랫동안, 대부분의 경우 80여 년 이상, 계속되지 못한 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죄성 때문입니다. 때로는 채찍이 필요합니다. 결국 회개와 영적 각성운동이 반복해서 일어나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용서와 사랑과 은혜가 절대적으로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용서와 사랑과 은혜를 받아 삶이 변화되어 하나님의 쓰임을 받을 수 있는 그릇들과 도구들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부족하고 부족한 우리들을 그런 그릇들과 도구들로 만들어주시고 써 주시기를 감히 소원하며 기도 드립니다. “주여!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들을 주님의 그릇들과 도구들로 써 주시옵소서.”

#김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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