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우리 안의 '타자'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게 하는 것"

"은총이라는 것은 늘 사소한 일에서 부터 경험된다."

10일 저녁 한국기독교100주년선교기념관에서 '양화진목요강좌'가 열렸다. 이날은 황현산 문학평론가가 '문학에는 어떤 특별한 것이 있는가?'란 주제로 강의했다.

황현산 문학평론가   ©양화진문화원 사이트

먼저 그는 자신이 기독교인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무신론적인 사람임에도 이런 자리에 초대해줘 감사하다고 말하며 강의를 시작했다.

지난 해 그는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를 출간한 바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책의 표지에 대해 "당신은 왜 얼굴 없는 사람들만 수집하느냐라고 농담으로 물었다"면서 "그러고보니, 내가 얼굴 없는 사람에 대해 관심이 있구나 하는 것을 비로서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해당 표지의 그림은 옛 동독 출신의 화가 '팀 아이텔'의 약간 옆 모습의, 뒷 모습을 보이고 있는 늙은 이의 그림이다. 그는 프랑스의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가 쓴 '알코올'이라는 시를 번역하기도 했는데, 이 표지 또한 어떤 중절모를 쓴 사내가 뒤를 보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르네마그리트가 그린 그림이다.

그러면서 그는 '얼굴'이라는 건 자기 표현이고 자기 주체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황 평론가는 "얼굴은 항상 어떤 얼굴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것인가 신경쓰고 준비한다"며 "대인 관계에 얼굴로 처신한다"고 했다.

그는 "얼굴 표정이라는 건 '인위적'이라고 했다. 이는 여러가지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황 평론가는 "깨어 있을 때와 잠 잘 때 얼굴이 다르다. 어떤 사람이 있느냐에 따라 또 얼굴이 달라진다. 친구들과 놀 때와 면접 볼 때 얼굴이 다르다"며 "이목구비를 어떻게 세상에 내보이느냐 하는 것이 사람의 문제 중 가장 큰 문제에 해당하리라고 생각한다. 얼굴은 자기 주체를 표현하는 것이다. 뒷모습은 특별히 뭘 표현한다기 보다 표현이 없는 이면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겉으로 내보이고 있지만 내보일 수 없는 것을 우리 안에 무수히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투명하고 단정한데, 나만 왜 이렇게 불투명하고 이 모양인가 하고 한탄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고 황 평론가는 전했다.

황 평론가는 자동차 본네트를 열면 복잡한 모습이 펼쳐지듯, 인간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부분을 가르켜 현대 인문학에서는 '자기 안의 타자'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떤 주체가 자기라고 내세울 수 없는 부분이다. 타자는 밖에만 있는게 아니라 안에도 있다"라며 "타자는 여러 층위가 있다. 프로이트가 정신 분석을 해도, 그렇게 고백해도, 마지막 하나 고백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한다"라고 전했다.

이어 황 평론가는 사회적으로도 마찬가지이며 국가적으로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떻게 해야하는 그와 같은 것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여기에서 '문학'이라는 것이 오히려 자기 안의 타자건, 사회적 타자건 간에 이 타자와 교섭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 방법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기를 내세우고 항상 자기에게서 떠나 줄 모르는 모습이 아닌, 자기 안에 감추었던 것들, 드러내려 하지 않으려 했던 것을 드러내고 또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쓰게 된다고 말했다. 황 평론가는 "꼭 그려려는 게 아니라 구조적으로 그렇게 하게 돼 있다"며 "이렇게 될 때 읽을 가치가 있는 소설이 만들어진다"고 전했다.

그는 소설이 왜 이 감추어 두고 사는 것을 겉으로 드러내려 하는지, 감추어 두면 되지 왜 끄집어 내려 하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꼭 그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불편하기 때문이다. 내내 불편하다는 것"이라며 "사람들에게 자신이 이러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은지 말하고 싶은 것이다. 숨어 있는, 부정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이것이 없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황 평론가는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수학자인 파스칼을 들며 "그는 확률을 만들어 낸 사람인데, 그가 가장 정열을 바친 건,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것을 증명하는 일에 온 힘을 바쳤다"고 했다. 그는 "파스칼은 철저한 장세니스트(네덜란드 신학자 얀센의 사상을 추종하는 사람들)였다. 스스로는 구원을 받지 못하며 하나님의 예정에 의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면서 "그러니, 철저히 기도하고 있을 수 밖에 없다고 했다"고 전했다.

황 평론가는 '문학의 힘과 매력'에 대해 전하며 "이것을 만들어 내는 건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타자, 원죄, 부정적인 것"이라며 "이것이 그것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반대로 이런 인간이 아닌, 의식의 밑바닥 까지 투명하고 긍정적으로 돼 있는 인간이라면 어떻게 될까"라면서 "조선 시대에 가장 긍정적 인물은 삼강오륜을 가장 잘 지키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날, 유교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안에 가장 부정적이라 생각했던 그것이 가지고 있는 부정의 힘에 의해 실제로는 한 사회에서 다른 사회로 옮겨올 수 있었다"며 "파스칼 같은 사람은 그렇게 열심히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고 했음에도 인간 존재에 대해 또 다시 밑바닥 부터 다시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작가의 자질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작가는 알고 싶은 것만 알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이것을 넘어서는 것은 우리 안에 억누르고 있는 것을 내어내야 한다"며 "억누른 것이 나와야 사물을 바라볼 수 있다"고 황 평론가는 설명했다.

황 평론가는 '시적 순간'이라는 것에 대해 전하기도 했다. 그는 "이런 순간은 우리 안에 있는 부정적 힘들이 긍정적 힘들과 맞부딪혀 어떤 질적 변화를 일으킬 때 바로 이런 순간이 오는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문학에서는 이렇게 믿고 있다. 문학은 우리 안에 감춰져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겉으로 표현될 때는 정말 사소한 계기이다. 은총이라는 것은 늘 사소한 일에서 부터 경험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문학이라는 것은 자기 안의, 타자 속의 일을 하는 게 문학"이라며 "이 주체 아닌 것들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미래가 결정될 수 밖에 없고, 문학이 가장 그것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그것을 가장 탁월하게 운동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강의가 끝난 후 질문이 이어졌다. 한 참여자는 비평가의 '끼'에 해당하는 것이 뭔지 물었다. 황 평론가는 "공감하는 능력"이라며 "저는 지금도 잘 운다. 나이가 70세가 다 돼 가는데 눈물을 흘린다"라고 답했다.

또 다른 참여자는 "문학에 구원이 있다고 생각하나? 자살한 헤밍웨이와 버지니아 울프는 문학에서 특별한 것을 못찾은 걸까?"라고 질문했다. 이에 대해 그는 "문학에는 구원이 없다"며 "문학 자체는 구원을 못 준다. 힐링도 못 준다. 늘 상처를 준다"고 답했다.

또한 우리 나라에서 아직도 노벨 문학상을 받지 못한 이유에 대한 질문에 대해선 "여러 이유가 있다. 한국이 세력이 약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작품의 질에 문제가 있다. 승리의 경험이 우리 역사에 부족해 이것으로 인해 서사에 약하다"면서 "그리고 번역된 것을 보면 범죄 수준으로 번역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황 평론가는 1945년 생으로 아폴리네르를 중심으로,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로 대표되는 프랑스 현대시를 연구하고, 문학비평가로서 활동하는 가운데 '시적인 것', '예술적인 것'의 역사와 성질을 이해하는 일에 오래 집착해 왔다.

저서에는 얼굴 없는 희망(1990), 아폴리네르-'알코올'의 시 세계(1996), 말과 시간의 깊이(2002), 말라르메의 시집에 대한 주석적 연구(2005), 잘 표현된 불행(2012), 밤이 선생이다(2013) 등이 있다. 번역과 관련된 여러 문제에도 특별한 관심을 지니고 이와 관련해 여러 편의 글을 발표했으며, 한국번역비평학회를 창립, 초대 회장을 맡았다.

#황현산 #양화진목요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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