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시상식 사상 처음으로 흑인 감독의 영화가 작품상을 받았다. 스티브 매퀸(45) 감독의 '노예 12년'이다.
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 극장에서 코미디언 엘런 드제너러스의 사회로 열린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노예 12년'은 데이비드 O 러셀의 '아메리칸 허슬', 마틴 스코세이지의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스티븐 프리어스의 '필로미나의 기적', 알렉산더 페인의 '네브래스카', 스파이크 존스 '허',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 장 마크 발레의 '댈러스 바이어스 클럽', 폴 그린그래스의 '캡틴 필립스'를 제치고 오스카를 품에 안았다.
'노예 12년'은 1840년대 미국 흑인 음악가인 '솔로몬 노섭'이 음모에 휘말려 노예로 팔려가 12년을 살다가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다.
치웨텔 에지오프(37)가 주인공 '솔로몬 노섭'을 맡았다. 노섭을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주인 '포드' 역은 베네딕트 컴버배치, '노섭'을 괴롭히는 주인은 마이클 패스벤더가 연기했다. 노섭이 가족으로 돌아갈 수 있게 힘이 돼주는 '베스'는 브래드 피트가 맡았다.
'노예 12년'을 제작한 브래드 피트는 "이 영화를 함께 만든 모든 분들과 같이 작업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전했다.
연출자 스티브 매퀸 감독은 "모든 사람은 생존하는 것이 아닌, 살아갈 자격이 있다"며 "노예 제도로 고통 받은 모든 분들에게 이 상을 바친다"고 밝혔다.
'노예 12년'은 어느 날 갑자기 납치돼 노예가 돼버린 남자가 12년의 세월을 보내며 느끼게 되는 절망을 생생하게 담아낸 수작이다. 불행한 시절을 희망을 잃지 않고 견뎌내는 주인공을 관객이 천천히 따라가게 하면서 결국은 감동을 느끼게 한다.
백인을 악인으로, 노예제를 겪어야 했던 흑인을 선인으로 나누는 대신 노예 제도 자체의 인간성 상실을 고전적이면서도 우아하게 화면에 담아냈다.
치웨텔 에지오프, '팻시'역의 루피타 니용고(31) 등 흑인 노예의 절망을 눈물과 울부짖음으로 표현하는 대신 그들의 꾹 다문 입과 멍한 표정으로 표현해낸 매퀸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영화 중반, 나무에 목이 매달린 채 버둥거리는 '노섭'과 '노섭'을 돕지 못하고 일을 해야 하는 다른 노예들이 가만히 응시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다.
이번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니용고를 비롯해 에지오프, 패스벤더 등 출연 배우 모두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매퀸은 '헝거'(2008) '셰임'(2011)에 이어 '노예 12년'으로 장편영화 연출 세 작품만에 최고 권위의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상인 작품상을 차지했다.
매퀸은 자신이 연출한 세 작품 모두 다른 연출 방식을 선보이며 새로운 거장의 출현을 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