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 인간 정약용의 고뇌가 담긴 최고의 잠언집’
들어가기(서론): “다산은 아들을 이렇게 가르첬다” (책 소제목)
AI는 엄청난 가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시대이다. 수전 전까지 만해도 상상도 못했던 새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이 땅의 아버지는 어떻게 자녀를 가르쳐야 할까?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은 조선후기 문신이자 실학자, 500권의 저술가, 시인, 정치인이다. “다산은 어떻게 자녀들을 가르쳤을까?” 서평자는 그것이 평소에 궁금하였었다.
“자식들에게 참 삶의 길을 가르치는 인간 정약용의 목소리. 아버지의 고뇌가 고스란히 담긴 최고의 잠언집으로 만난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자식들에게 편지를 썼다. 한 사람의 아버지로서 경제적으로 힘들어하고 사회적으로 외통이가 된 자식들을 어떻게 든 일으켜 세워주고 싶었다. 편지에는 모진 세상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며, 무슨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조언과 함께 정의로운 삶의 길을 가르쳐주는 선비정신이 깃들어 있다. 편지를 읽다 보면 자식들을 참 삶의 길로 안내하는 인간 정약용의 목소리가 쟁쟁하게 들리는 듯하다. 이제 다산 정약용이 자녀들에게 남긴 편지를 한 권의 잠언집으로 다시 만나자” (뒤 표지)
다산 정약용은 자녀들에게 아버지 입장에서 교육용으로 읽히고 싶은 바램으로 쓴 것이다.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공부에 대해, 사회에 대해, 친구에 대해, 돈에 대해 알려주고 싶은 내용은 시대를 초월해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이 세상의 많은 아버지들이 짊어진 자녀교육의 수고를 덜어주고, 자식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게 돕는 지렛대가 되었으면 한다.” (p. 8, 서문)
<아버지 정약용의 인생강의>(오세진 편역, 홍익출판사, 2020). 편역자 오세진은 연세대 철학과 동 대학원 졸업. 전 다산학사전팀 보조 연구원, 한국고등교육재단 한학 연수과정을 수료했다.
<징비록>(공역), <율곡의 상소>, <인간답게 산다는 것>, 논문으로 ‘대학연의에서 수양론과 결세론의 관계연구’. 조선과 중국의 역사와 사상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현재 관련 서적을 집필하며 강의하고 있다.
차례 전체 4장, 제목만 읽어도 다산의 마음이 읽을 수 있다. 제1장: 집안을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은 공부뿐이다. 제2장: 자식들에게 경제생활을 이야기하다. 제3장: 남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다면 바라지도 마라. 제4장: 제사상을 차리기보다 나의 책을 읽어다오. 서평자는 각 장의 핵심내용을 독자들에게 소개하면서 ‘간단히’ 서평 할 것이다.
1. 집안을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은 공부 뿐이다. “너희들은 폐족의 자식들이다”
다산은 28세의 급제하여 정조대왕의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하였으나, 하루 아침에 천주교를 믿었다는 혐의로 전남 강진에 18년간 유배되었다. 유배 당시 다산은 40세, 큰아들은 학연(學淵)은 19세, 둘째 아들 학유(學遊) 16세, 막대딸은 9세였다. 다산의 가문은 폐족(廢族, 연좌제의 일종)이 조상이 죄를 지어 형을 받으면 자손들은 과거시험을 볼 수 없었다. 양반에게 과거시험은 신분과 생계유지를 위해 중요 공직에 나가는 길이 완전 차단된 것이다.
“이 책은 다산 문집에서 자식들에게 보낸 편지, 가계(家戒, 가훈)을 주제별로 나누고 행설을 붙였다. 한 편의 편지 글이 여러가지 상이한 주제에 대해 서술하고 있기에 주제별로 쪼개어 해설을 달았다. 따라서 누구나 읽기 쉽고 다산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금방 알아 낼 수 있을 것이다” (p. 7, 오세진 편역자는 다산의 자녀교육에 관한 책들은 ‘별도 해설’이 없어 입체적 이해에 도움을 주지 못한 것을 주목하며 본서를 출판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부와 권력을 가진 집안의 자제에게는 공부의 참 맛이 허락되지 않는다”
“폐족이 된 집안의 사람으로서 제대로 처신하는 방법은 무엇이겠느냐? 오직 공부 뿐이다. 공부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중에서 가장 고아(雅)한 일이지만, 아무나 그 참맛을 아는 것은 아니다. 부와 권력을 가진 집안의 자제에게는 공부의 참맛이 허락되지 않는다. 또한 시골의 가난한 천재에게 공부의 심오한 경지가 쉽게 허락되는 것도 아니다. 반드시 벼슬하던 집안에서 자라 어려서부터 견문을 넓히고, 커서는 온갖 어려움을 겪은 너희들 같은 사람만이 깊이 있는 공부를 할 수 있는 법이다” (p. 19, 서평자는 굳게 믿는다. 이 땅의 모든 부모는 자녀에게 공부 환경을 마련해 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단지 읽기만 한다고 해서 공부라고 부를 수 없다” ‘폭 넓은 경험이 먼저 필요’
“다산에게 독서란 무엇이었을까? 그는 진정한 독서는 폭넓은 경험을 필요 한다고 보았다.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독서를 하면 의미를 더 깊이 이해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고생 한번 하지 않고 곱게 자란 부잣집 자제들은 세상을 보는 안목이 좁으니 깊이 있는 독서를 하기가 어렵다고 보았다.” (p. 21, 부잣집서 자란 자녀들은 의지력이 나약하기 쉽다)
-“먼저 독서의 근본이 무엇인지 고민해라” ‘독서의 근본은 효도와 공경’
“독서를 하려면 반드시 먼저 근본을 세워야 한다. 배움의 뜻을 두지 않았다면 진정한 독서를 할 수가 없다. 배움에 뜻을 두려면 반드시 먼저 근본을 세워야 한다. 근본이란 무엇인가? 효도와 공경이다. 먼저 효도하고 공경하는 하는 일을 힘써 실천한 후에 근본이 세워진다면 배움은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이다. 배움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들었다면, 독서의 단계를 별도로 찾지 않아도 된다” - 두 아들에게 부치다[기이아(寄二兒)] (p. 24)
다산은 부모에게 효도와 공경하는 마음이 독서의 근본이라고 가르친다. 얼핏 보기에는 독서와 효도는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이지 않는가? “최소한의 가정 윤리가 몸에 밴 후에야 배움에 진정한 뜻을 둘 수 있다고 본 다산은 그 진정성을 토대로 책을 읽을 때에만 독서가 깊이 있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p. 27, 다산의 통찰과 지혜에 감탄하게 된다)
-“문화사대주의를 버리고 우리 것을 찾아야 한다”
“최근 십 수 년 동안 학인들 사이에 이상한 풍조가 있어서 우리 문학을 호되게 배척하고, 우리 선현의 글이나 문집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으려 한다. 이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다. 사대부 집안의 자제가 우리나라에 있었던 옛일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선배들의 학설을 보지 않는다면 고금 학문을 통틀어 두루 익혔다 하드라도 배움에서 서툶과 빠진 부분이 있을 것이다. 선현들이 쓴 것들 중에서 시 같은 경우는 먼저 들여다볼 필요까지는 없으나 신하가 임금께 올린 상소문, 묘비에 새긴 비문, 선비들의 편지 같은 것은 꼭 읽어서 안목을 넓혀야 한다”. (p. 28)
다산이 上疏文(상소문)/碑文(비문)/선비들 書簡文(서간문) 추천하는 이유다 이렇다. 상소문은 신하가 임금에게 올린 글로 조언이나 정책, 비평을 담고 있기에 압축적이고 그 시대의 지식을 제공하는 명문장이 많기 때문이다. 비문은 묘비에 새긴 글로 당대의 최고의 문장력이 좋고 고인을 잘 알며 칭송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지만, 무척 신중하게 쓰기 때문이다. 선비들의 편지는 지식인들의 사이의 친교를 맺으며 자신들의 생각을 서로 치열하게 나누기에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이다. 다산은 자녀들에게 이렇게 실제적인 조언을 하고 있다.
2. 자식들에게 경제생활을 이야기하다: ‘비옥한 논밭보다 좋고 평생 써도 끝이 없는 것’
-‘부지런함 과 검소함’ “’근’과 ‘검’을 제외하고는 어떤 더 좋은 규율 없다”
“나는 벼슬을 통해 너희들에게 논밭을 물려주지는 못했지만 오직 ‘두 글자로 된 영험한 부적’을 너희에게 주려는 데, 이 부적이 있으면 틀림없이 생계를 유지하고 가난을 면할 수가 있을 테니 너희는 이것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마라. 내가 주는 한 글자는 ‘근(勤)’이고, 또 다른 글자는 ‘검(檢)’이다. 이 두 글자는 비옥한 논밭보다 좋은 것이고 평생 써도 끝이 없는 것이다” (p. 70, ‘근검’을 경제생활의 근간임을 자세히 자녀들에게 설명하였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부지런 할 勤(근)’ 강조한다. 집안에 男女老少(남녀노소) 모두 놀고먹는 사람이 없도록 하고 한순간도 한가함이 없는 것이 勤(근)이라 하였다. 儉(검)은 儉素(검소) 곧 검소하고 절약하라는 뜻이다. 의복은 몸을 가리기에만 충실하면 된다는 것이다. 고운 비단으로 만든 옷을 입다가 해어지면 볼품이 없어지지만 투박하고 값싼 옷은 해어지더라도 크게 나빠지는 것이 없다. 음식을 먹는 것도 굳이 값비싼 것만 말라는 것이다.
“음식을 먹는 것은 목숨을 보전하려는 것이다. 아무리 맛있는 소고기나 물고기라도 일단 입안에 들어가면 더러운 것이 되어버린다. 더럽다는 것을 인지하면 목을 넘기기도 전에 게워낼 것이다” (p. 71, 서평자는 食道樂(식도락)을 무시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허상과 실상’: 의복/음식/재물은 허상이요, 가난한 자에게 베풀어 주는 것만 영원히 남는다
“세상의 의복, 음식, 재물은 모두 허상이자 헛된 것이다. 옷은 입다보면 해어지게 마련이고 음식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재물은 자손에게 남겨주면 결국은 탕진되어 흩어지고 만다. 한미한 집안이나 가난한 친구에게 베풀어주는 것만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p. 77, 우리는 베푸는 삶, 주는 것으로 인생을 만들어 간다)
3. 남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다면 바라지도 마라: “인격 수양은 효도와 우애가 근본이다”
다산이 큰 아들이 다산초당(강진)에 왔을 때, 시험삼아 술 한 잔을 마시게 했는데 취하지 않을 보면서 놀란 나머지 둘째, 학유의 주량을 물어보았다. 동생의 주량은 나의 배도 넘는다는 것을 들었다. 아버지의 독서벽은 계승하지 않고 술만 잘 마시는 아들들을 보면 억장이 무너졌다. 당장 둘째 아들(학유)에게 편지를 썼다.
“너의 외조부 절도사공(節度使公)은 술을 일곱 잔이나 마셔도 취하지 않으셨지만 평생 술을 멀리하셨다. 노년에 이르러 수십 방울 용량의 작은 술잔 하나를 만드시고 입술을 적실 뿐이셨다. 나는 지금껏 술을 크게 많이 마셔본 적이 없어 주량을 알지 못한다. (중략) 너처럼 배우지 못해 학식이 낮고, 더구나 폐족이 된 사람이 술주정뱅이라는 악명까지 더해진다면 장차 어떤 부류의 사람이 되겠느냐?
술을 완전히 끊어라. 먼 타향에서 노심초사 걱정하는 아비의 말을 따르도록 해라. (중략) 이 아비가 너에게 빌고 또 빈다. 술을 끊고 입에도 대지 마라” (pp. 136-138, 둘째 아들에게 술을 완전히 끊어라고 단호히 명령하는 다산의 단호함)
“이 늙은 아비는 세상 경험이 많고, 또한 어려운 일을 두루 겪었기 때문에 인정(人情)에 대해 알만큼 안다. 부모자식 관계나 형제관계의 도리에서 소홀한 사람은 가까이해서는 안 되고, 함부로 신뢰해서도 안 된다. (중략) 세상에서 제일 깊은 은혜와 가장 돈독한 도리로 부모형제 관계를 넘어서는 것이 없다. 부모와 형제의 은혜와 도리를 소홀히 한 사람이 친구에게 어떻게 하겠느냐? 이는 쉽게 알 수 있는 이치다. 너희들은 반드시 이것을 기억하여 불효자를 가까이하지 말고, 형제간에 극진히 아끼지 않는 사람도 가까이하지 마라. 사람의 진면목을 보려면 먼저 그 사람이 가정에서 하는 행실을 관찰해야 한다” (pp. 140-141)
4. ‘제사상을 차라기보다 나의 책을 읽어다오’: 자신의 학문이 자녀에게 계승되기 염원…
다산은 자기관리에 관한 한 철두철미한 위대한 인물이었다. 그는 18년 유배생활 중에도 다양한 분야의 책을 500여권 저술을 남겼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다산의 자녀들은 학문에 흥미가 없었고 역량도 부족했다. 총명한 조카 학초가 있었 그에게 기대를 걸었지만 그는 일찍이 (17세에)요절하였다. 유가 경전/한의학/기술/문학/지리학/역사학 등 백과사전과 같은 다양한 분야의 연구와 저술을 남겼다.
“나는 나라의 은혜를 입어 실낱 같은 목숨을 보전하며 빈궁하게 여러 해를 살면서 저술한 책이 제법 많다. 하지만 한스러운 것은 너희들이 곁에 없어서 미묘한 언어의 뜻을 전할 기회가 적고, 너희들의 문리가 트이지 못하고 학문에 흥미를 붙이지 못하는 점이 너무 아쉽다 (중략) 내가 죽은 후에는 아무리 훌륭하고 정갈한 제사상을 차려준다고 해도, 그보다 내가 더 즐거워할 일은 너희들이 나의 책 한 편을 읽고 나의 문장을 옮겨 적는 일이다. 너희 들이 이 점을 명심하여라” (P. 236, 237, 두 아들에게 보여준 가훈[示二子家訓])
다산은 혼신을 다해 자신의 책들을 썼지만 세상에 알려지지 못할까 걱정했다. 두 아들은 학문에 역량이 역부족임을 알았기에 어찌하든지 공부를 다그치기도 하였다. 다산은 자식들의 제사상을 받는 것보다 아비지의 책을 읽고 옮겨 적는 일을 더 반기겠다고 쓰고 있다.
나가는 말(결론): ‘자식들을 참삶의 길로 안내하는 인간 정약용의 생생한 목소리’
다산은 한양에서 천리 길이 되는 강진에서 유배생활 중에도 두 아들의 공부를 꼼꼼히 챙겼다. 두 아들의 공부가 어느 수준인지 정확하게 판단하고 거기에 맞는 학습을 시키려 독려하였다. 다산 정약용의 자녀교육의 열성과 세심함은 세상의 어느 아버지 못지 않다.
다산은 큰 아들, 학연이 전라도 강진까지 내려와 공부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눈치챘다. 가장 가까운 아버지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경우에 따라 싫은 소리도 들어야 할 상황을 알며 강진에 내려와 공부할 이유를 제시하며 설득하였다. 오랜 유배생활 중에 이제 몸이 많이 나약 해져서 중풍기미마저 보일 때 아들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나는 지금 중풍이 심해서 수족이 마비가 오고 있으니 오래 살 것 같지 않구나. 단정하게 지내면서 몸을 돌보고 몸에 해가 가지 않도록 하면 혹여 조금 더 살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세상일은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 좋으니 오늘 내가 너희들에게 몇 가지 일러두겠다” (p. 250)
다산은 몸이 점점 약해졌을 때, 큰아들 학유에게 내가 유배지에서 죽는다면 나를 이곳 강진에 묻어달라고 부탁하였다. 혹시 나라에서 나의 죄를 씻어줄 때를 기다렸다가 나의 묘를 고향 땅(경기도 마현)으로 옮겨 반장(反葬, 이장)해 달라고 당부하였다. 다산은 다행히 죽기 전에 유배생활을 마치고 죄에서 벗어나 고향에서 18년간 더 살다가 삶을 마감하였다.
서평후기
“우리 집안에 글 짓는 전통이 너희 세대에 더욱 창대해지도록 노력해라”
다산은 역시 큰 그릇의 위대한 인물이요 학자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다산은 자신이 죄인으로 유배생활로 인해 자식들이 자존감을 읽고 살아가는 것을 염려하였다. 자식들이 혹시 스스로를 천시하는 자기비하 행위를 할까 걱정했다. 다산은 저술 작업을 통해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하는 길을 자녀들에게 제안한다. 집안에 글 쓰기 전통을 이어받는 일에 대대로 이어지던 벼슬보다 ‘이 맑고 귀한 전통’과 바꿀 수 없다고 하였다. 서평자도 다산과 꼭 같은 마음이다. 나의 아들, 며느리와 여덟 손주들 중에서 출중한 글쓰기의 통달한 자들이 일어나, 하나님 나라와 인류문명사에 크기 기여하는 자녀손들아 일어나길 기도 올린다. 아멘 아멘.
#배안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