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역사 진실까지 비트는 ‘문화 권력’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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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다룬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역사 왜곡 논란이 격화하고 있다. 확인되지 않은 가설과 자의적 해석이 역사적 사실의 빈틈을 메우는 수준을 넘어 피해자인 실존 인물을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바람에 정치적 ‘프로파간다’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 영화는 재일교포 문세광이 조총련의 사주를 받아 고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려 한 역사적 사건을 그대로 가져왔다. 그런데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이면서 당시 육 여사 피격 사망 사건의 배후에 마치 박 전 대통령과 중앙정보부가 개입한 것처럼 암시한 게 문제다.

당시 사건에 드러나지 않은 배후가 있었다는 건 이 영화가 주장하는 가설이다. 아무리 가설이라도 실제 일어난 사건의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고 아픈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유족과 국민 가슴에 음모론의 불을 지핀 건 설명이 안 된다.

이 영화는 당시 현장 목격자의 증언 하나 없이 떠도는 풍문과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선택적으로 짜깁기해 영화를 완성했다. 그래놓고 논란이 되자 영화적 상상력에 의한 창작의 산물로 봐 달라는 거다.

그런데 이 사건은 지난 2002년 방북한 박근혜 당시 한국미래연합 대표에게 북한 김정일이 “하부 조직이 벌인 일”이라고 사과함으로써 북한의 소행이 밝혀졌다. 북한 최고 지도자가 인정하고 사과한 사실에 무슨 가설이 더 필요한가. 북한이 과거에 이 사건을 호도할 목적으로 만든 선전물과 거의 똑같은 내용을 관객에게 주입시키면서 이걸 ‘상상력’과 ‘창작’의 영역으로 이해하라는 건 폭력이다.

역사에 대한 인식이나 사실에 대한 해석이 대하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사실과 가설을 뒤섞으면 안 된다. 역사를 확인되지 않은 음모 수준으로 격하하는 것도 문제지만 ‘표현의 자유’의 정도가 역사를 비트는 수준이라면 국민이 용인할 수 없다.

아무리 상상력으로 만들어 낸 창작물이라도 역사적 사건을 다룰 때는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겉모양은 역사물인데 알맹이를 모두 허구로 도배해 피해자를 욕보이는 짓은 창작이 아니라 악취 나는 쓰레기일 뿐이다.

우리 사회에서 소위 좌파 지식인, 예술인들이 소위 ‘문화 권력’을 등에 업고 누려 온 그들만의 ‘창작의 자유’ 세계가 임계치를 넘은 지 오래다. 이들은 빨치산을 영웅화하고 천안함 음모론은 정당화하지만 5.18 말만 꺼내도 집단 린치를 가하려 달려든다. 이런 자들이 국가적 비극마저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해 진실을 비트는 행위를 우리 사회가 언제까지 용인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