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말씀: 누가복음 12장 13~31절
[서론] 거꾸로 된 인생의 저울추와 주님의 경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 우리는 날마다 눈을 뜨면 세상이 우리 귓가에 속삭이는 거대한 질문 하나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묻습니다.
"너는 통장에 잔고가 얼마나 있느냐? 너는 몇 평짜리 집에 사느냐? 너는 이번 시험에서 몇 점을 맞았고, 너의 창고에는 남들보다 자랑할 만한 것이 얼마나 가득 차 있느냐?"
세상은 이 '소유의 크기', 즉 손에 쥔 물건의 많고 적음을 가지고 한 인간의 가치를 매깁니다. 많이 쥐고 있으면 ‘성공한 사람, 행복한 사람’이라 박수를 치고, 손에 쥔 것이 적고 환경이 가난하면 ‘실패한 사람, 불쌍한 인생’이라고 낙인을 찍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 본문 속에서 예수님을 찾아온 한 사람의 모습을 보십시오.
본문 13절 말씀입니다.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눅 12:13)
이 사람은 온 우주의 왕이시며,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구주 예수님을 눈앞에 마주하고도 오직 머릿속에 '돈' 생각뿐이었습니다. "예수님, 영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어떻게 해야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까?"를 물은 것이 아닙니다. "저 괘씸한 우리 형에게 명령해서 부모님이 남겨주신 유산과 밭뙈기를 공평하게 반으로 뚝 잘라 내 주머니에 넣어 주십시오!" 하고 재산 분할 청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 주님께서 그를 향해 차갑게 꾸짖으십니다.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눅 12:14-15)
주님은 단칼에 거절하십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겨우 땅 위의 썩어질 흙덩어리와 동전 몇 닢을 공평하게 분배해 주는 하급 재판관 노릇을 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폭탄과 같은 절대 진리를 선포하십니다. "사람의 생명은, 사람의 참된 가치와 행복은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세상은 소유가 넉넉해야 생명이 안전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산법은 정반대입니다. 소유는 껍데기일 뿐이며, 생명은 오직 하나님과의 연결에 달려 있습니다.
# [쉬운 예시 1] 배터리가 0%가 된 최신 스마트폰 이야기
성도 여러분, 한번 머릿속으로 상상해 보세요. 여러분 손에 오늘 아침 막 상자에서 꺼낸 반짝반짝하고 값비싼 최신형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습니다. 가격이 200만 원이나 하고, 카메라도 최고급이고, 케이스도 황금으로 둘렀습니다. 친구들이 보고는 "우와, 부럽다!" 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런데 그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딱 0%가 되어서 화면이 까맣게 꺼져 버렸습니다. 충전기 선도 없고 충전할 수 있는 콘센트도 아예 없습니다. 자, 화면이 꺼져서 켜지지도 않는 이 200만 원짜리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할 수 있나요? 누구에게 전화를 걸 수 있나요? 유튜브를 볼 수 있나요? 아무것도 못 합니다. 그냥 번쩍거리는 무거운 유리 플라스틱 덩어리에 불과합니다.
반대로, 겉에 흠집도 좀 나고 오래된 낡은 휴대폰이지만 충전기 선에 꽉 꽂혀 있어서 배터리가 100% 충전되어 있는 전화기가 있다면 어떨까요? 그 낡은 폰은 전화를 걸 수도 있고, 길을 찾을 수도 있고, 불을 켤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인생도 똑같습니다. 최신 스마트폰처럼 좋은 옷을 입고, 큰 아파트에 살고, 통장에 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도(소유의 넉넉함), 생명의 전기를 끊임없이 부어주시는 하나님이라는 콘센트에서 전깃줄이 툭 끊어져 있으면 그 사람은 살아있는 것 같으나 영적으로 완전히 방전되어 죽은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반대로 겉모습은 조금 가난하고 아파도, 생명의 하나님께 딱 붙어 있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이 펄펄 넘쳐나는 복된 사람입니다!
# [본론 1] 어리석은 부자의 비극: 자아 주격화와 터진 웅덩이
# 1. 성경 본문 강해: 본문 16절~19절의 '나' 중심의 독백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한 부자의 비유를 들어 하나님과 끊어진 인간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착각 속에 빠져 살아가는지를 폭로하십니다.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눅 12:16-19)
이 부자의 독백을 성경 원문과 문맥으로 아주 깊이 들여다보십시오. 이상한 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부자의 짧은 혼잣말 속에 '나(I, My)'라는 단어가 무려 여섯 번이나 반복됩니다. "내 곡식", "내 곡간", "내 모든 곡식과 물건", "내 영혼!"
그의 생각 속에는 하나님이 계실 자리가 단 1밀리미터도 없습니다. 그 밭에 비를 내려주시고, 햇볕을 비추어 주시며, 곡식을 자라게 하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감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또한 자기 주변에서 굶주리고 헐벗어 울부짖는 가난한 이웃과 형제들의 자리도 전혀 없습니다.
오직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 ‘탐욕스러운 자기 자신(자아 우상)’만 존재할 뿐입니다. 그는 곡식이 넘쳐나자 "이 하나님의 선물을 어떻게 이웃과 나누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까?"를 고민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창고를 때려 부수고 더 거대한 메가톤급 창고를 지어 나 혼자 다 틀어쥐고 영원히 떵떵거리며 놀고먹자!"고 결심했습니다.
# 2. 구원론 주석: 피조물의 주격화(主格化)와 참된 어리석음
이 어리석은 부자의 독백을 가리켜 "인간이 하나님을 밀어내고 자기가 자기의 주격(主格, 주인)이 된 무서운 원죄의 발작"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창조될 때부터 스스로 존재하는 자가 아닙니다. 만물의 주격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인간은 그 주인이신 하나님께 "하나님, 이 물질을 제게 왜 맡기셨습니까? 어디에 쓰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묻고 순종하는 ‘청지기(대리자)’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부자는 스스로 왕의 자리에 앉아 피조물인 곡식과 물건을 자기 영혼의 구원자로 삼았습니다. 물질이라는 흙덩어리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영혼의 안식을 사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소경이요, 미련함의 극치입니다.
# 3. 하나님의 심판과 섭리적 폭로: 본문 20절~21절
이 부자가 거대한 신축 창고 설계도를 그리며 흐뭇해하고 있을 때, 하늘에서 벼락같은 하나님의 음성이 떨어집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눅 12:20-21)
하나님은 그를 향해 "성공한 경영인아, 유능한 부자야"라고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어리석은 자여(You fool)!"라고 부르셨습니다.
헬라어 본문의 "도로 찾으리니(아파이투신, apaitousin)"는 사법적으로 '빌려준 채권을 강제로 회수해 간다'는 뜻입니다. 생명은 부자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잠시 맡겨두신 빌려온 대여품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오늘 밤 숨을 거두겠다" 하시며 코끝의 호흡을 훅 불어 끄시는 순간, 그가 평생 밤잠을 설치며 모아둔 거대한 창고의 곡식들은 단 1그램도 자기 것이 되지 못하고 허공으로 흩어집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는 자는 결국 흙으로 돌아갈 썩을 것을 위해 인생 전체를 배팅한 가장 불쌍한 도박꾼에 불과합니다.
# [쉬운 예시 2] 바닷가 모래성 쌓기 놀이 이야기
우리 성도님들 어릴 때, 여름에 해수욕장 모래사장에 가본 적 있지요? 바닷가 모래밭에서 모래를 손으로 영차영차 긁어모아 커다란 성을 만듭니다. 성벽도 높게 쌓고, 모래로 깃발도 꽂고, 조개껍데기를 붙여서 멋지게 꾸밉니다. 친구가 다가오면 "저리 가! 이거 내 성이야! 내가 왕이야!" 하면서 소리를 칩니다.
몇 시간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며 엄청나게 큰 모래성을 완성했습니다. 그런데 해가 뉘엿뉘엿 지고 저녁 6시가 되자 바다에서 "쏴아아" 하고 시커먼 밀물 파도가 밀려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쾅! 파도 딱 한 번에 그 거대했던 모래성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평평한 바닷물이 되어버립니다. 조개껍데기 깃발도 파도 속에 다 쓸려가 버립니다.
하나님 없이 이 땅에서 쌓아 올린 돈, 1등 성적표, 명예의 창고가 바로 이 바닷가 모래성과 똑같습니다. 죽음이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의 파도가 들이치는 순간, "어, 잠깐만요! 나 모래성 열심히 쌓았단 말이에요!" 하고 울부짖어도 단 1초 만에 흔적도 없이 쓸려 내려갑니다. 영원한 천국에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모래성 같은 세상 물건이 아닙니다!
# [본론 2] 까마귀와 들풀의 복음: 상대적 환경의 도구성과 염려의 해체
# 1. 성경 본문 강해: 본문 22절~28절
예수님은 부자의 비유를 마치신 후, 고개를 돌려 가난과 생활고에 찌들어 하루하루를 불안해하는 제자들을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시며 말씀하십니다.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눅 12:22-24)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그런즉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능치 못하거든 어찌 그 다른 것을 염려하느냐" (눅 12:25-26)
주님은 날아가는 미물인 '까마귀'를 가리키십니다. 까마귀는 레위기 율법상 부정한 새요, 사람들에게도 미움받는 새입니다. 창고도 없고, 농사지을 트랙터도 없습니다. 그런데 굶어 죽지 않고 하늘을 날아다닙니다. 누가 먹이십니까? 창조주 하나님이 매일 아침 먹이를 챙겨주십니다.
이어서 들판에 피어 있는 '백합화'를 보라고 하십니다.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눅 12:27-28)
오늘 피었다가 내일이면 시골 아궁이 불길 속에 땔감으로 던져질 이름 없는 잡초 하나도 하나님께서 최고급 비단옷을 입히십니다. 당대 최고의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 왕의 금빛 찬란한 왕포도, 하나님이 지으신 백합화 꽃잎 하나의 우아함과 생명력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물며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흘려 사신 하나님의 친자녀인 우리를 하나님께서 굶기시겠습니까? 헐벗겨 방치하시겠습니까?
# 2. 구원론 주석: 고난과 평강의 절대 단일성과 환경의 수단성
여기서 우리는 앞서 선포했던 깊은 구원의 신비를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먹을 것이 많고 옷이 화려하면 '행복과 평강'이라 하고, 먹을 것이 떨어지고 옷이 남루하면 '불행과 고난'이라며 가슴을 칩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서의 신앙 체계는 이를 정면으로 깨부숩니다. "성도에게 주어지는 모든 외적 환경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를 거룩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내기 위한 성화(건설구원)의 가변적 연습 도구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 어떤 때에는 우리에게 까마귀처럼 아무것도 없는 가난과 질병의 환경(고난)을 주십니다. 왜 주실까요? 우리를 미워해서 망하게 하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썩어질 세상 지푸라기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만 100% 신뢰하는 '단단한 믿음의 거인'으로 키우시기 위함입니다.
또 어떤 때에는 밭의 소출이 풍성한 부요와 성공의 환경(평강)을 주십니다. 왜 주실까요? 창고 크게 짓고 혼자 뒹굴며 죄지으라고 주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 물질로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고, 굶주린 이웃을 돌보며, 충성스러운 청지기의 열매를 맺으라고 주신 훈련의 기회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믿음의 눈으로 보면, 부요함도 훈련 도구요 가난함도 훈련 도구입니다. 건강함도 주를 위해 충성할 도구요, 아픈 것도 교만을 깨뜨리고 기도할 도구입니다. 환경 자체는 아무런 영원한 실상이 없는 껍데기입니다.
그 환경을 통해 "내가 주님을 더 닮아갔는가? 주님과 더 깊이 연결되었는가?" 이것만이 영원한 하늘나라 심판대에 남는 유일한 보석입니다. 따라서 고난과 평강은 우리를 천국 백성으로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동일한 사랑의 양손'인 것입니다.
# [쉬운 예시 3] 연필을 깎는 연필깎이 칼 이야기
학교에서 공부할 때 뾰족한 연필이 필요하지요? 새 연필을 샀는데 심이 뭉툭해서 글씨가 안 써집니다. 그러면 엄마나 선생님이 날카로운 칼이나 연필깎이를 가져와서 연필을 깎기 시작합니다. 연필 입장에서 생각해 보세요. 시퍼런 칼날이 다가와서 자기 몸통의 나무를 슥슥 베어냅니다. 껍질이 벗겨지고 깎여 나갈 때 얼마나 아프고 괴롭겠습니까? "으앙! 주인님, 날 왜 이렇게 아프게 칼로 깎아내나요? 나를 미워하시나요?" 하고 소리칠지 모릅니다.
하지만 주인이 연필을 미워해서 깎는 것인가요? 연필을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자르는 것인가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뭉툭한 연필의 나무껍질을 깎아내야만 시커멓고 단단한 연필심이 뾰족하게 밖으로 드러나서, 아름다운 글씨도 쓰고 멋진 도화지 그림도 그릴 수 있는 훌륭한 연필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에 찾아오는 실패, 몸의 질병, 성적이 떨어지는 아픔, 집안의 어려움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깎으시는 사랑의 연필깎이 칼날입니다. 우리 속에 들어있는 못된 이기심, 잘난 척하는 교만, 게으름이라는 나무껍질을 깎아내셔서, 예수님을 닮은 거룩하고 반짝이는 하나님의 자녀로 쓰시기 위한 하나님의 지혜로운 손길입니다!
# [본론 3] 우선순위의 혁명과 만유의 통치권 회복
# 1. 성경 본문 강해: 본문 29절~31절의 대선언
이제 예수님께서는 본 설교의 결론이자, 성도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위대한 인생의 대헌장을 선포하십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눅 12:29-31)
주님은 명확하게 선을 그으십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며 평생 발을 동동 구르고, 돈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 즉 영적 고아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우리는 고아가 아닙니다! 온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의 '친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는 자식에게 지금 당장 밥이 필요한지, 신발이 필요한지, 학비가 필요한지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인생 목적은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도의 유일한 최우선 순위는 오직 하나입니다.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하나님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내 생각, 내 고집, 내 욕망의 왕국을 때려 부수고, 내 마음과 내 가정과 내 일터 속에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와 주권이 임하시도록 나를 온전히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주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말씀대로 나를 다스려 주옵소서!" 하고 하나님 중심의 질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영적 우선순위가 똑바로 서면 어떤 기적이 일어납니까?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가 목을 매달고 쫓아다니던 모든 세상의 필요(의식주, 건강, 재물)는, 하나님께서 덤으로 우리의 발아래 풍성하게 얹어주시는 보너스가 됩니다.
# 2. 구원론 주석: 신적 위계질서와 만물의 회복
고린도전서 3장 21~23절과 본문을 연결하여 구원의 가장 웅장한 승리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고전 3:21-23)
타락하기 전 인간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온 세상을 다스리는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반역하고 선악과를 따먹은 후, 인간은 물질의 지배를 받는 비참한 종이 되었습니다. 돈에 울고, 건강에 떨고, 죽음의 공포 앞에 무릎 꿇는 노예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고 하나님과 다시 수직적으로 연결해 주셨습니다(기본구원). 이제 우리가 하나님께 100% 순종하여 "나는 하나님의 것, 나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거룩한 위계질서 속에 굳게 서기만 하면(건설구원), 과거 우리를 위협하고 짓누르던 온 우주 만물은 우리 발아래 엎드려 우리의 구원을 돕는 심부름꾼으로 돌아옵니다.
돈도 성도를 섬기고, 지식도 성도를 섬기며, 평강도 성도를 돕고, 심지어 우리를 괴롭히던 질병과 고난과 마귀의 핍박마저도 우리를 천국의 왕 같은 자녀로 훈련시키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훈련 조교’로 복종하게 됩니다. 하나님 한 분께만 항복하면, 온 세상 모든 것이 우리를 유익하게 하는 축복으로 탈바꿈하는 것입니다!
# [쉬운 예시 4] 기차와 기찻길(레일) 이야기
성도 여러분, 시속 300km로 엄청나게 빠르게 달리는 KTX 고속열차를 타본 적이 있지요? 그 거대한 쇠로 만든 기차가 어떻게 그렇게 안전하고 빠르게 달릴 수 있을까요? 바로 땅바닥에 단단하게 깔려 있는 두 줄의 '기찻길(철로, 레일)' 위에 얹혀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KTX 기차가 달리다가 갑자기 교만해져서 말합니다. "아이 답답해! 왜 나는 맨날 이 좁은 쇠 레일 위로만 다녀야 해? 내 마음대로 저 푸른 들판도 달리고, 시내 도로도 마음대로 질주할 거야!" 하면서 기찻길을 쿵 하고 벗어나면 어떻게 될까요?
'탈선'입니다! 기차는 그 순간 전복되어 부서지고, 안에 탄 사람들은 큰 부상을 입고 불타버립니다. 레일을 벗어난 기차의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 끔찍한 죽음입니다. 기차는 오직 궤도 위에 얹혀 있을 때만 가장 안전하고 가장 강력합니다.
인간도 똑같습니다. 인간이 달려야 할 유일한 영적 레일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 뜻'입니다. "내 마음대로 살 거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기찻길을 튕겨 나가는 순간, 죄와 사망의 시궁창에 처박힙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 풍파가 심해도 하나님의 뜻이라는 레일 위에 딱 붙어 달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인생의 종착역인 영원한 천국까지 가장 안전하고 완벽하게 인도하십니다!
# [쉬운 예시 5] 나무에 단단히 붙어 있는 사과 이야기
과수원에 가보면 가을바람에 탐스럽게 익어가는 사과나무가 있습니다. 사과나무 가지 끝에 빨간 사과 한 알이 조롱조롱 매달려 있습니다. 어느 날 늦가을에 무서운 태풍이 불어옵니다. 비바람이 "휘이잉" 몰아치고 나뭇가지가 사정없이 흔들립니다.
나무에 딱 붙어 있는 사과는 바람이 불 때마다 이리저리 흔들리고 빗방울을 맞아 춥고 아픕니다. 그러나 사과 꼭지가 나무 원줄기에 단단히 연결되어 있는 한, 사과는 결코 떨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바람을 견뎌내면서 껍질은 더 단단해지고, 가을 햇살을 받아 속은 꿀처럼 달콤하게 익어갑니다.
그런데 교만해서 꼭지가 툭 부러져 땅바닥 진흙탕에 떨어진 사과는 어떻게 될까요? 바람이 불지 않아도, 땅바닥에 떨어지는 즉시 지나가는 사람의 발에 짓밟히고 흙탕물이 묻으며, 며칠도 못 가 하얗게 곰팡이가 피고 썩어서 벌레들의 밥이 되고 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나무에 붙어 있는 사과입니까, 땅바닥에 떨어진 사과입니까? 세상이라는 거센 태풍이 불어 닥쳐도,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딱 붙어 있는 성도는 망하지 않습니다. 그 고난의 바람을 통과하며 더 탐스럽고 거룩한 영생의 열매로 영글어 갈 뿐입니다!
# [결론 및 맺는말] 창고를 헐고 주께로 직결되는 결단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누가복음 12장의 거울 앞에 서서 우리 자신의 영혼을 깊이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속을 꽉 채우고 있는 가장 큰 생각과 고민은 무엇입니까? 어리석은 부자처럼 "어떻게 하면 창고를 더 크게 짓고 내 재산을 불려 편안히 먹고 마실까?" 하는 썩어질 세상 모래성 쌓기입니까? 아니면 제자들처럼 "내일은 뭘 먹고 살아야 하나, 우리 아이 학비는 어쩌나, 내 노후 대책은 어떻게 하나?" 하는 이방인들의 불신앙적 염려와 근심입니까?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단호하게 명령하십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시간, 썩어질 세상의 헛된 창고를 의지하던 손을 놓으십시오. 통장의 잔고가 나의 하나님이 아니며, 높은 아파트 평수가 나의 구원자가 아닙니다. 오늘 밤 하나님이 내 영혼의 호흡을 거두어가시면 그 모든 것은 단 1초 만에 남의 것이 되고 맙니다.
세상의 행복과 불행, 건강과 질병, 평강과 고난에 더 이상 속지 마십시오. 그것은 우리를 예수님 닮은 거룩한 사람으로 깎아내시기 위해 하나님이 잠시 쥐어주신 훈련의 도구에 불과합니다. 환경이 좋을 때는 교만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십시오. 환경이 고통스러울 때는 낙심하지 말고 내 안의 옛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께 더 바짝 엎드리십시오.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포도나무 원줄기에 여러분의 전 인격과 생활을 단단히 접붙이십시오. 하나님을 나의 진짜 머리로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내 목숨을 걸고 순종하십시오.
그리하여 세상의 물질에 끌려다니는 가련한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함으로 만유를 다스리고 영원히 불타지 않는 금과 은과 보석 같은 영생의 인격을 건축해 나가는 복되고 승리하는 모든 주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김정부 목사(한국교회법학회 이사, 찬송하는 교회 담임)
#김정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