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일 가능”… 영 김 의원의 신앙과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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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인터뷰] 12살 이민자 소녀에서 연방하원의원까지, 믿음과 기도로 걸어온 길
영 김 캘리포니아 40지구 연방 하원의원 ©미주 기독일보

미주 기독일보가 오프라인 발행 1천호를 넘어 새 이정표를 세웠다. 이민교회와 함께 걸어온 23년, 미주 기독일보는 이민의 삶 한복판에서 믿음으로 길을 열어 온 우리 주변의 신앙인들의 이야기를 싣고 있다. 낯선 땅에서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고, 가정과 교회, 일터와 공적 영역에서 자신의 자리를 감당해 온 이들의 삶은 미주 한인 이민사의 또 다른 간증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12살 이민자 소녀로 미국에 건너와 연방하원의원에 오른 영 김 의원의 신앙과 도전의 여정을 들어봤다.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괌과 하와이, 캘리포니아를 거쳐 미국 정치의 중심에 섰다. 2020년 연방의회에 입성한 뒤 3선 의원으로 활동해 온 그는 현재 하원 외교위원회 동아시아·태평양 소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한미동맹과 북한 인권, 지역구 민생 현안을 주요 의정 과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영 김 의원이 자신의 정치 여정을 설명할 때 가장 먼저 꺼낸 말은 성과가 아니라 신앙이었다. 영 김 의원은 “이 자리에 선 것은 제가 잘나서 된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며 “하나님께서 이 자리에, 이때에 저를 통해 이루고 싶으신 계획이 있으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마태복음 19장 26절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는 말씀을 붙들고 있다며, 의회 안팎의 어려움과 선거의 부담 속에서도 기도로 매일의 싸움을 감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괌 해변의 캔과 병, 어머니의 기도가 남긴 신앙의 기초

영 김 의원의 출발점은 한국이었다. 1962년 인천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한국에서의 유년기는 길지 않았지만, 훗날 그가 한국과 미국, 한인사회와 미국 주류사회를 잇는 역할을 자신의 사명처럼 받아들이게 된 배경에는 이 뿌리의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의 삶은 1975년 가족이 미국령 괌으로 이민을 떠나면서 크게 바뀌었다. 어린 영 김 의원은 부모보다 6개월 먼저 미국에 왔다. 한국과 미국의 학제와 학교 시작 시기가 달랐고, 당시 언니가 미군으로 괌에 있었기 때문에 먼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자라던 소녀가 하루아침에 낯선 언어와 문화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영 김 의원은 “처음 왔을 때는 굉장히 신나기도 했지만 동시에 매우 큰 도전이었다”며 “그때는 말도 제대로 못하던 때였고, 겨우 ‘헬로’ 하는 것도 무섭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도 가족이 더 큰 희망을 안고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 온 길이었기 때문에, 힘들면서도 희망이 있었다”며 “가족을 도우면서 제 자리를 찾아가야 했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 시간을 지탱한 것은 어머니의 기도와 믿음이었다. 영 김 의원은 자신의 어머니를 누구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기억했다. 이민자의 삶은 쉽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기도와 자신의 믿음이 낯선 땅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이 됐다고 했다. 부모는 미국에 온 이민자들이 그러했듯 힘든 노동을 마다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빌딩을 청소했고, 조금씩 모아 가족의 삶을 세웠다.

영 김 의원은 “주말마다 어머니가 저를 데리고 해변에 가서 쓰레기봉투를 주시면서 캔과 병, 깡통을 모으라고 하셨다”며 “그때는 해변을 깨끗하게 정리하는 일을 도와달라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그걸 재활용하신 것이었다. 많은 이민자 가정이 그랬듯 저희 부모님도 정말 치열하게 삶을 일구셨다”고 말했다.

그 작은 노동은 현지 교회를 세우는 헌신으로 이어졌다. 영 김 의원은 “그 재활용한 것으로 50여 년 전에 괌에 한인 장로교회를 세우는 데 보증금을 낼 수 있을 정도였다”며 “그 조그마한 행동이 오늘날 괌의 한인 교회를 세우는 데 크게 일조했다는 것을 커서 느꼈다”고 말했다.

어릴 적 어머니에게서 배운 신앙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보여 준 믿음과 성실함, 그리고 교회를 세우는 마음은 오늘까지 그에게 엄마로서, 할머니로서, 연방하원의원으로서 가정과 공직을 감당하게 하는 밑거름이 됐다.

괌에서 하와이, 다시 캘리포니아로

괌에서 중학교를 마친 영 김 의원은 하와이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미군에 입대한 언니의 주둔지가 하와이였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부모를 설득해 섬을 떠나 미국 본토의 대학에 지원했고, 남가주대학(USC)에서 회계학을 전공했다.

하와이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뒤 캘리포니아로 향한 것은 영 김 의원에게 또 하나의 도전이었다. 섬을 떠나 본토 대학에 진학한다는 것은 1.5세 이민자 청년에게 새로운 환경으로 들어가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길을 자신의 미래를 넓히는 과정으로 받아들였다.

대학 졸업 후 그는 금융기관에서 재무분석가로 일했다. 이후 스포츠 의류업체에서 경험을 쌓았고, 숙녀복 브랜드 분야로도 발을 넓혔다. 매장 안에 직접 쇼룸을 만들고, 어깨너머로 디자인을 배우며 사업 현장도 익혔다. 이 시기의 경험은 훗날 그가 소상공인과 근로자 가정의 어려움을 자신의 정책 언어로 설명하는 배경이 됐다.

영 김 의원은 이번 인터뷰에서 생활비 부담 완화와 세금 인하, 지역 일자리 창출, 소상공인 지원을 지역 주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꼽았다. 그는 “처음이나 지금이나, 10년 전이나 10년 후나 우리 지역 주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는 생활의 부담을 줄이는 것”이라며 “열심히 일하는 캘리포니아 주민들, 특히 우리 한인 가정과 한인 상공인들이 높은 육아비와 주거비, 생활필수품 가격 상승으로 정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주의회와 연방하원 선거에 나서기까지 그의 길에는 적지 않은 고비가 있었다. 그러나 영 김 의원은 그 모든 과정을 단순한 우연이나 개인의 성취로만 보지 않았다. 영 김 의원은 “그때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이유가 있어서 저를 이 자리에 세워 주셨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고 밝혔다.

한인사회 활동 속에서 열린 정치의 첫 문

남편 찰스 김 씨와 함께한 모습. 영 김 의원은 인터뷰에서 남편의 격려가 정치의 길에 들어서는 데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영 김 의원 페이스북

영 김 의원의 공적 활동은 한인사회와 가정의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확장됐다. USC 졸업 후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시민단체 한미연합회 활동을 하던 찰스 김 씨를 만나 결혼했고, 네 자녀를 키우며 가정과 일터를 함께 감당했다. 남편 찰스 김 씨는 오렌지카운티 한인사회와 비영리 활동에 깊이 관여했고, 한미 관련 활동을 이어가며 에드 로이스 의원과도 가까운 관계를 맺었다.

정치와의 첫 접점도 이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당시 캘리포니아 주 상원의원이던 에드 로이스가 영 김 의원에게 의원실 일을 제안했고, 남편의 격려 속에 그는 정치 현장에 발을 들였다. 처음에는 파트타임으로 시작했지만, 실제로는 풀타임처럼 일했다. 이후 에드 로이스가 연방하원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영 김 의원은 정식 보좌관으로 합류했다.

당시 그는 이미 두 딸을 두고 있었고, 셋째 아들이 태어나 자녀가 셋이 됐을 때였다. 가정과 공직의 책임을 동시에 감당해야 했지만, 이 시기는 그가 미국 정치의 실제 작동 방식과 한미 현안을 깊이 익히는 결정적 시간이었다.

영 김 의원은 훗날 자신의 역할을 두고 한국과 미국, 한인사회와 미국 주류사회를 잇는 다리로 설명해 왔다. 한국을 ‘친정’, 미국을 ‘시집’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번 인터뷰에서도 그는 지역 주민을 위한 의정 활동과 한인 커뮤니티, 한미관계를 함께 언급하며 “한국과 미국의 다리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미동맹과 북한 인권, 23년 보좌관 시절에 다져진 의정의 뿌리

영 김 의원은 에드 로이스 의원실에서 20년 넘게 일하며 미국 정치와 한미 현안을 동시에 배웠다. 한미관계, 북한 인권, 통상, 독도 문제 등 여러 한반도 현안을 가까이서 다뤘다. 에드 로이스 의원이 한미의원연맹 미국 측 의장을 맡았을 때는 미국 측 실무자로 일했고, 탈북자 인권 문제를 다루는 세계의원연맹이 조직될 때도 미국 측 실무 역할을 맡았다. 오늘날 영 김 의원이 한미동맹과 북한 인권 문제를 자신의 의정 활동의 주요 축으로 삼는 데에는 이 보좌관 시절의 경험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

영 김 의원은 초당적 지지를 이끌어내는 법안 처리 방식도 이 시기에 배웠다고 했다. 그는 “연방하원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법안의 필요성을 어떻게 설명하고, 어떻게 미리 공동발의자를 확보해야 하는지에 대한 노하우를 배웠다”며 “그것이 저의 성공적인 의정 활동의 결실이 아닌가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의원실에 따르면 그는 제118대 의회 입법효과성 평가에서 캘리포니아 출신 연방 상·하원의원 중 1위를 기록했고, 하원 전체 10위, 하원 공화당 8위에 올랐다. 그는 제119대 의회에서도 37개 법안을 하원에서 통과시켰고, 이번 회계연도에만 3개 법안이 대통령 서명을 거쳐 법으로 제정됐다.

그는 한때 KBS월드와 아리랑TV 토크쇼 진행자로도 활동했다. 매주 토요일 한국어로 방송을 진행하며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을 만났고, 한국어로 한인사회와 한국 관련 현안을 설명하는 경험도 쌓았다. 이는 미국 정치 현장과 한인사회를 동시에 이해하는 그의 이중적 감각을 키운 또 다른 통로가 됐다.

낙선과 재도전 사이에서 붙든 마태복음 19장 26절

영 김 의원의 정치 여정은 한 번에 열린 길이 아니었다. 그는 2014년 캘리포니아 주하원의원에 당선되며 공화당 소속으로는 캘리포니아주에서 주하원의원이 된 첫 한인 여성 정치인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2016년에는 패배했고, 2018년 연방하원 선거에서도 근소한 차이로 고배를 마셨다.

당시 그는 선거 당일 개표에서는 당선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후 부재자 투표 개표가 이어지면서 최종적으로 낙선했다. 김창준 전 의원 이후 첫 한인 연방하원의원 탄생을 기대했던 한인사회에는 아쉬움이 컸다. 그러나 그는 그 실패 앞에서 멈추지 않았다. 2020년 다시 도전해 연방의회에 입성했고, 2022년과 2024년 재선에 성공했다.

영 김 의원은 자신의 정치 여정에서 패배의 시간이 오히려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특히 지금 4선 도전을 앞둔 상황에 대해서도 “어느 때보다 정치 인생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솔직히 밝혔다.

영 김 의원은 “정치 생활을 하면서 어려움은 매일매일 있다”며 “더군다나 지금 힘든 싸움을 하면서 어느 때보다 정치 인생에서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라면을 끓일 때 빨리 달아오른 냄비가 빨리 식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단련의 기간을 통해 하나님께서 저를 더 힘 있고 강인하게 만들어 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때마다 붙든 말씀은 마태복음 19장 26절이었다. 영 김 의원은 의정활동 중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는 말씀을 늘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솔직히 쉬운 일은 아니다. 연방의회에는 435명의 당선된 연방하원의원들이 있는데, 그중 한인으로서는 하원에서 2명밖에 없고, 공화당으로서는 더군다나 여성으로 저 하나밖에 없다”며 “이것이 과연 제가 잘나서 된 것인가. 저는 아니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하나님께서 이 자리에, 이때에 저를 통해 분명 이루고 싶으신 계획이 있으신 것 같다”며 “연약한 인간 영 김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주신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그에게 반복된 낙선은 오히려 기도의 과정이었다. “하나님께서 마음속으로 ‘포기하지 마라. 내가 너를 인도해 줄 것이다. 옆에 많은 분들이 기도와 힘으로 도움을 줄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지금 4선 도전을 앞둔 시간도 다르지 않다. 영 김 의원은 “하나님께서 제 마음속에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내가 너를 지켜주겠다. 내가 너를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고, 옆에 많은 동료들이 함께 너를 도와주겠다’는 마음을 매일매일 기도할 때 주신다”며 “제가 최선을 다하면서 하나님께 간구하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저의 간곡한 목소리를 들어주실 것이라고 믿는다”고 고백했다.

의회 안에서, 거리 위에서 이어진 기도의 힘

영 김 의원의 신앙은 의정 생활 속에서도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는 캘리포니아 주의회 시절 기도 모임을 시작한 경험이 있으며, 연방의회에 들어온 뒤에도 의원들과 함께 기도하고 서로를 격려하는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수요일 아침 의원 기도 모임, 주간 초당적 기도 모임, 월례 간증 모임 등은 그에게 의회 안에서 어려움을 나누고 다시 힘을 얻는 신앙의 자리다.

영 김 의원은 “연방의회가 아무래도 더 어려운 곳”이라며 “서로의 어려운 점과 의정 활동을 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나누고, 서로 격려하는 시간이 있다”고 말했다. 하원 본회의장에서도 의원들이 토론과 투표에 앞서 서로의 기도 제목을 챙기는 일이 있다고 했다.

그는 최근 뜻밖의 기도 동역자를 만난 이야기도 전했다. 워싱턴 D.C.의 거처 앞에서 하원 에너지·상무위원장을 지낸 캐시 맥모리스 로저스 전 의원의 보좌관을 우연히 만났을 때였다.

영 김 의원은 “그분이 저를 알아보시고 제가 힘들게 의정 활동을 하면서 선거도 치르고 있는데 기도를 해도 되겠느냐고 물어보셨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그 보좌관은 곧 휴대전화 속 사진을 보여줬다. 2018년 영 김 의원이 처음 연방하원에 도전하던 당시, 여성 후보자들을 위해 기도하던 명단이었다. 그 명단 안에 영 김의 이름이 있었고, 그 이름에 동그라미를 치고 기도했던 사람이 바로 그날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보좌관이었다.
“그 분이 ‘제가 2018년 영 김 후보를 두고 기도했던 사람입니다’라고 이야기하자 정말 울컥했습니다. 서로 울먹울먹하면서 그렇게 아파트 앞 길거리에서 껴안고 기도했죠”라고 말했다.

이 만남은 영 김 의원에게 큰 위로가 됐다. 그는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께서 저를 지켜주신다는 사인을 보내주시는 것 같았다”며 “정말 힘이 필요할 때 하나님께서 저에게 기도의 용사를 보내주셨다”고 밝혔다.

이어 “하나님께서 제 주위에 기도의 용사들로 요새를 세워 주시고, 힘을 잃지 말고 용기를 잃지 말고 일하라는 말씀을 주시는 것 같았다”며 “그래서 다시 힘을 얻고 계속 싸워 나갈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효과적으로 일하는 의원” 평가, 숫자로 드러난 3선의 성과

영 김 연방하원의원이 선거 캠프에서 자신의 선거 포스터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미주 기독일보

한국계 미국인임에도 영 김 의원의 의정 활동 성과는 늘 최상위권에 올라 있다. 그의 의정 활동에서는 세금 부담 완화와 지역 예산 확보, 정부 예산 낭비 방지, 한미동맹과 북한 인권 문제가 주요 축이었다.

입법 성과 외에도 민원 해결도 매우 적극적이다. 의원실은 지역구 민원 상담을 통해 3,300만 달러를 주민들에게 되돌려 줬고, 2026 회계연도에는 공공안전·교통·수자원·인프라 사업과 관련해 4,400만 달러 이상의 연방 예산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영 김 의원은 특히 원 빅 뷰티풀 법안(One Big Beautiful Bill)에 포함된 근로자 가정 감세 조치를 주요 성과로 꼽았다. 그중에서도 캘리포니아처럼 세 부담이 높은 주의 주민들에게 직접 영향을 주는 주·지방세 공제(SALT) 한도를 1만 달러에서 4만 달러로 올린 점을 강조했다. 또 팁 소득 비과세, 초과근무수당 비과세, 고령자 세액공제 등을 통해 근로자 가정과 은퇴자들의 부담을 줄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법안 통과의 비결로 초당적 관계를 들었다. 다만 초당성을 원칙 없는 타협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영 김 의원은 “제일 중요한 것은 저의 신념과 원칙을 결코 타협하지 않는 것”이라며 “공화당 의원으로서 공화당 안에서 추진하는 원칙이 있고, 그것은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법안을 통과시키려면 민주당 의원들도 설득해야 한다고 했다. 영 김 의원은 “하원에서는 218표를 받아야 법안이 통과되는데, 지금 공화당만 하더라도 한두 표 차이의 아슬아슬한 의석 구조”라며 “한두 명이라도 저의 법안에 찬성하지 않으면 결국 민주당 의원들을 설득해서 218표를 얻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본회의장에서도 민주당 의원석 쪽 출입문으로 들어가 먼저 인사를 건네는 등 적극적으로 관계를 쌓아 왔다. 필요한 순간에는 전화를 걸어 법안의 취지를 설명하고, 공동발의 참여와 찬성표를 설득해 온 것도 그 연장선이었다. 영 김 의원은 이 같은 초당적 관계 형성의 비결을 “꾸준함”이라고 했다.

한국 안보의 최전선, 한미일 협력과 북한 인권

영 김 의원의 의정 활동에서 한미동맹과 북한 인권은 빼놓을 수 없는 축이다. 그는 하원 외교위원회 동아시아·태평양 소위원장으로서 동아시아 정세의 긴장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밝혔다.

영 김 의원은 “동아시아에서는 현재 중국의 악의적 영향력으로부터의 도전, 또 러시아와 더 동맹을 맺으면서 더욱 위험해지고 있는 김정은 정권, 더 대담해진 북한, 그런 여러 가지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의 유화 정책이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것을 절대적으로 인식해야 한다”며 “일본과 같은 다른 동맹국들과 더 함께 강력한 한미 공동 억지력을 구축하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한미일 3국 협력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영 김 의원은 한반도의 불안정성과 대만해협 긴장을 함께 거론하며 “한국과 미국, 그리고 일본 3국 협력 관계를 통해 견제해야 한다”며 “이 억지력 요소가 동아시아·태평양 소위원장으로서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비핵화와 인권을 분리해서 다룰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영 김 의원은 “북한을 대할 때 인권이 반드시 최우선 순위에 놓여야 한다”며 “북한의 끔찍한 인권 유린 실태를 문제 삼는 것이 북한 정권으로부터 검증 가능한 약속 이행을 이끌어내고, 한국과 미국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라고 했다.

이어 “북한의 인권 문제는 핵무기 문제와 인권 문제를 따로 분리해서 다루는 것이 아니라, 북핵 문제와 연계시켜 하나로 말해야 하는 것”이라며 “인도주의적 문제에 관한 진전은 미국과 한국이 중요하게 여기는 일들을 실행에 옮기는 데 필수 요소”라고 강조했다.

영 김 의원은 최근 워싱턴 D.C.에서 11명의 북한 탈북민들을 초청해 증언을 듣는 자리를 가졌다. 그는 특히 탈북 여성들의 증언이 마음에 깊이 남았다고 했다.

“벌써 몇 주 전에 들은 것인데도 아직까지도 제 마음에 계속 남아 있어요. 그래서 가슴이 아픕니다. 이분들은 그나마 한국에 정착했고, 또 미국에 와서 저희와 만나 증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도 그 사연들에 가슴이 미어지는데 지금 얼마나 더 많은 분들이 북한과 중국에서 강제 노동과 심각한 학대를 겪고 있을지 상상조차 하기 힘듭니다”

그는 이런 증언들이 북한 인권 문제가 반드시 협상 테이블 위에 올라와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 줬다고 밝혔다. 특히 최근 탈북민의 증언을 들으며 김정은 정권 아래 북한의 실상이 오히려 더 악화됐다는 점을 절감했다고 했다.

영 김 의원은 “아주 최근에 탈북한 분은 4개월 전이었다”며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변한 것이 하나도 없구나, 오히려 더 악화됐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추진 중인 북한인권재승인법안의 통과 필요성도 강조했다. 영 김 의원은 “그 안에는 북한에 방송하는 자유아시아방송이라든지 자유북한방송 같은 방송 예산을 지원하는 내용이 다 들어가 있다”며 “한시도 늦추지 않고 빨리 이것을 통과시킬 수 있게 모든 분들이 각자 영역에서 미 의회가 움직일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요청했다.

다시 선거의 시간, 기도로 서는 자리

그에게 선거는 정치적 경쟁인 동시에 신앙의 연단이다. 매일 이어지는 선거 광고와 상대 진영의 공격, 현역 의원과의 어려운 경쟁 구도 속에서도 그를 붙드는 힘은 기도였다.

영 김 의원은 “하나님께서 오늘까지 인도해 주셨다는 사실을 매일매일 끊임없이 되새기고 있다”며 “이 모든 어려운 과정 속에서도, 제 삶의 힘든 순간마다 하나님의 손길이 저를 인도하신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다시 의회에서 감당하고자 하는 일을 지역 주민과 한인 커뮤니티, 한미관계를 잇는 책임으로 설명했다. 영 김 의원은 “제가 계속해서 이 일을 하고, 우리 지역 주민들뿐만 아니라 한인 커뮤니티를 위해서, 또 한국과 미국의 다리 역할을 충실히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선거를 치르는 현실 속에서 자원봉사자와 후원의 필요성도 언급했지만, 그의 마지막 말은 선거를 앞둔 호소라기보다, 지금까지 자신을 이끌어 온 하나님에 대한 신앙 고백에 가까웠다.

“돌아보면 하나님께서는 제가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오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 길이 쉽지 않았던 순간들이 더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제 삶의 모든 시기마다 변함없이 방향을 제시해 주시고, 힘을 주시고, 축복해 주신 것을 계속 믿고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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