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무산된 ’간첩법‘ 처리, 누구 눈치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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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법’ 개정안 처리가 또 무산됐다. 이번엔 더불어민주당이 ‘법 왜곡죄’ 처리 지연에 ‘간첩법’ 개정안을 한데 묶는 바람에 1월 국회 본회의 통과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간첩법’ 개정안은 간첩죄를 적용할 수 있는 대상을 기존의 '적국'에서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까지 넓히는 게 핵심이다. 이는 북한뿐 아니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스파이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토대를 마련한다는 의미다.

현행 형법은 ‘적국’을 위하여 간첩한 자,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 군사상 기밀을 ‘적국’에 누설한 자를 간첩죄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적국’이란 북한을 말한다. 이로 인해 첨단 기술이 중국 등 해외로 넘어가고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기밀 탐지 및 누설해도 북한과의 관련이 입증되지 않으면 강력한 처벌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간첩죄의 적용을 ‘적국’ 대신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로 확대해야 한다는 국민적 여론이 비등했다. 지난 윤석열 정부 때도 이 문제가 크게 대두됐지만, 여야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사이 공전과 표류가 반복됐다.

하지만 22대 국회 들어 여야가 개정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1월 본회의에서 처리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런데 민주당이 ‘법 왜곡죄’와 ‘간첩죄’를 하나로 묶으면서 또 다시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민주당이 대법관 증원과 법 왜곡죄, 재판소원 등 이른바 ‘3대 사법 개편안’을 이번에 처리하지 않기로 당론을 정하면서 ‘법 왜곡죄’와 한데 묶은 ‘간첩죄’ 처리까지 무산된 것이다.

문제는 ‘간첩죄와 ’법 왜곡죄‘가 완전히 다른 법이란 점이다. 정부·여당 마음에 들지 않는 수사나 재판을 하는 검사·판사를 처벌하는 법과 간첩을 처벌하는 법을 패키지로 묶은 것부터가 잘못이다. 야당이 ‘간첩죄’를 인질로 ‘법 왜곡죄’를 처리하려는 꼼수라며 비판하는 이유다.

‘간첩죄’ 처리는 화급을 다투는 사안이다. 중국인들이 군부대 등 안보시설을 무단으로 촬영하다 적발되는 사례가 빈번한데도 법의 부재로 손을 놓고 있다. 안보시설 불법 촬영과 해외 기술 유출 사건 대부분이 중국인과 연계돼 있다. 우리는 이들의 간첩 행위를 방치하고 있는 데 반해 중국은 지난 2023년 개정된 반(反) 간첩법에 의해 우리 국민을 처벌하고 있다.

OECD 38국 중 간첩죄를 ‘적국’으로 한정한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다. 민주당은 두 법을 분리해 여야 이견이 없는 ‘간첩죄’부터 처리해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중국 눈치 보느라 국익과 안보를 저해하는 간첩을 눈감아준다는 국민적 비판을 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