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제사장 교리와 목사 제사장 신념, 그리고 교회의 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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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구 장로(바른구원관선교회)
김병구 장로 ©바른구원관선교회

종교개혁의 심장부에는 **만인제사장(Priesthood of All Believers)**이라는 혁명적 신학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동일한 신분을 가진 영적 제사장이며,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선언이었다. 루터가 이 교리를 외칠 때 그는 중세교회의 성직자 중심 구조, 곧 ‘제사장 계급’을 해체하고자 했다. 교회 권력의 독점은 성경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복음 자체를 가리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이 개혁의 정신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했다. 목사를 제사장처럼 여기는 왜곡된 신념, 나아가 성직자 중심주의의 강화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타락한 구조적 문제의 핵심 중 하나가 되었다. ‘목사=제사장=영적 중개자’라는 사고방식은 성경의 권위를 약화시키고, 성도들의 영적 주체성을 붕괴시키며, 결국 교회를 성경적 공동체가 아니라 종교적 조직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첫째, 성직자 신격화와 권위주의 문제가 있다. 한국교회는 목회자를 영적 지도자 이상으로, 거의 하나님의 뜻을 독점적으로 해석하는 존재로 떠받들어 왔다. 이 과정에서 ‘목사 무오류’의 신화가 조용히 자리 잡았고, 성도들은 자신의 양심과 말씀에 근거해 판단하기보다 목회자의 개인적 견해를 하나님의 뜻으로 수용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명백한 우상화이며, 종교개혁이 피 흘려 무너뜨린 중세 교권주의의 재현이다.

둘째, 성도들의 신앙적 무력화가 나타난다. 만인제사장은 성도들이 말씀을 직접 연구하고, 스스로 기도하며, 각자의 직업과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는 강력한 사상이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교회에서 성도는 ‘목사를 돕는 조력자’ 혹은 ‘지시를 따르는 수동적 신자’로 격하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교회는 건강한 ‘신앙의 주체’들을 길러내지 못하고, 단지 교회 프로그램을 유지하는 소비자만을 양산하게 된다.

셋째, 교회의 세속화와 권력화가 촉진된다. 목사-제사장 신념이 강화될수록 교회 권력은 성도에게서 멀어지고 소수에게 집중된다. 그 결과는 부패 구조의 고착화다. 재정 투명성 부족, 세습 문제, 교회 정치의 파벌 싸움, 도덕적 실종은 모두 구조적 병폐다. 만인제사장 교리가 실제로 기능했다면 이런 타락은 초기에 견제되고 교정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권력이 집중된 조직은 언제나 타락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의 회복은 만인제사장 교리의 회복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는 목사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목회자의 역할이 ‘중개자’가 아니라 ‘말씀을 열어 주고 성도를 성숙하게 하는 교사의 역할’임을 회복하는 것이다. 교회는 모든 성도가 말씀을 직접 연구하도록 돕고, 신앙적 판단 능력을 길러주며, 각자의 자리에서 사명을 실천하도록 격려해야 한다. 목회자는 성도 위에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성도를 세우는 자, 은혜의 통로일 뿐이다.

한국교회가 진정한 개혁을 원한다면 더 이상 성직자 중심주의와 수도원적 제사장관을 붙잡아서는 안 된다. 교회의 권위는 제도에서 오지 않고 오직 말씀에서 나온다. 교회의 거룩함은 소수의 성직자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 성도의 영적 각성에 달려 있다. 만인제사장의 회복은 단지 교회 구조를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는 일이다. 이제 한국교회가 잃어버린 개혁의 정신을 다시 붙잡을 때다.

#김병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