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경제·통상 사령탑들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25% 상호관세 부과 유예시한으로 정한 8월 1일을 하루 앞두고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과 막판 협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 워싱턴 D.C에서 한국의 기획재정부 장관과 산업통상부장관. 통상교섭본부장 등 관련 부처 수장들이 미국 측과 벌이고 있는 막판 통상 협상이 원만하게 마무리되지 못할 경우 한국은 미국 관세 폭탄을 피할 수 없게 돼 경제 전반의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한 모습이다.
방미 길에 오른 정부 통상협상단은 한국의 상황을 잘 설명하고, 조선업 등 중장기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해서 미국과 잘 협의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나름 준수한 성적표를 받아든 일본·EU와 같은 수준의 결과를 이끌어 내주길 기대하고 바랄 뿐이다.
일본은 지난 7월 22일 (현지시간) 미국과 15% 기준 관세율 적용 타결을 이뤘다. 미국이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려던 25%의 '상호 관세'가 15%로 낮아졌는데 이는 대미 무역 흑자국 중 가장 낮은 관세율이다. 대신 일본은 미국에 5,500억 달러(약 760조 원) 규모의 신규 투자를 안겼다. 일본 정부 관련 금융기관이 출자, 융자를 보증하는 형태로, 반도체, 의약품, 철강, 조선, 주요 광물, 항공, 에너지, 인공지능(AI) 등 경제 안보 분야 투자를 강화하겠다는 내용이다. 또 미국산 쌀 수입을 75% 늘리기로 합의했다.
EU는 일본보다 5일 늦은 지난 27일, 대부분의 EU 상품에 15% 관세를 부과하는 무역 협정에 합의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당초 20% 또는 30~50%의 고율 관세를 적용하겠다고 엄포했던 것보다는 낮은 수준이지만, 기존의 평균 1%대 관세율에 비해서는 크게 높아진 결과다. 대신 EU는 7,5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에너지 제품을 구매하고, 대규모 군사 장비도 구매하기로 하고 대미 투자도 6,000억 달러(약 830조 원) 규모의 추가 투자에 합의했다.
앞서 관세 협상을 매듭지은 일본과 EU는 25%~30%의 관세율을 15%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큰 출혈을 감수해야만 했다. 쌀 등 농산물 개방과 수천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등 미국에 통 큰 선물 보따리를 안긴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런 선행 결과치가 우리나라에 어떤 요소로 작용할지가 관건이다. 일단 긍정적인 건 미국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점이다. 미국이 쥔 협상카드의 윤곽이 일본·EU와의 협상 과정에서 어느 정도 드러난 이상 우리의 대응을 좀 더 집중하게 만든 측면이 있다.
그렇다고 불확실성이 가신 건 아니다. 한국은 이들 국가에 비해 정치·외교적 상황이 불리한 위치에 있는 게 현실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G5 정상회의에 초대받고도 트럼프 대통령의 급거 귀국으로 첫 한미정상회담이 무산되고, 이후 나토정상회의에 이 대통령이 불참하는 등 한미 간에 전에 없는 외교적 냉기류가 흐르는 게 원인이다.
지난 25일엔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릴 예정이던 한미간 ‘2+2 통상 협의’가 돌연 취소돼 구윤철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인천공항에서 출국 직전 발길을 돌려야 하는 일이 있었다. 관세 협상 마감 시한을 앞둔 시점에서 예정된 중요한 협상 테이블이 불시에 취소된 건 아무리 미국 측의 사정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통상적인 일이 아니다. 더구나 미국 측이 이메일을 통해 협의 취소를 일방 통보하고 그 사정조차 밝히지 않았다는 건 단순한 외교적 결례라기보다 의도적인 행동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런 일련의 장면은 미국 측이 관세 협상에서 절대적인 우위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미국이 주요 동맹국이자 교역국인 일본, EU와 잇따라 협상을 매듭지으면서 한국과로 협상에서 높은 고지에 올라서게 된 반면에 우리 협상단은 수세에 몰리는 상황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이 막판 관세협상의 불확실성을 더욱 키우고 있다. 협상 데드라인을 앞두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재계 인사들이 급히 방미 길에 오른 것도 경제·통상 부처 수장들만으론 어려울 수 있다는 재계의 불안감을 방증한다.
지금 시점에서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해야 할 사람이 이 대통령일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심각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의 ‘컨트롤 타워’ 역할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필리핀은 지난 20∼22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하지만 필리핀보다 관세율이 높은 한국은 이와 비슷한 소식조차 들을 수 없다. 정부·여당의 위기의식도 찾아보기 어렵다. 당정 회의, 비상경제 TF 등의 중심 의제가 물가·전력이고, 관세 협상 관련한 의제는 다뤄지지 않고 있다. 미국과의 막바지 협상 내용을 공개하기 어렵겠지만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당정 간에 위기의식도, 전략도 안 보이는 건 문제다.
정부 협상단이 유예 시한 내에 협상을 타결하면 다행이지만 그러지 못하면 20~25% 사이에서 상호관세가 확정될 것이다. 아니 일부 품목은 50%의 관세 폭탄을 맞을 수 있다. 그러면 수출과 무역에 의존해온 재계와 우리 경제 전반에 엄청난 후폭풍이 몰아치게 될 것이다.
이제 더 끌 시간도 없고 그런다고 우리에게 유리한 건 하나도 없다. 대신에 경제·안보 측면에서 데미지만 증대될 것이다. 협상 마감시한 직전에 온 국민이 고대하던 소식이 들려오길 바라면서 지금이라도 이 대통령이 앞장서서 험난한 고지를 넘은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것이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마땅한 임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