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도를 마칠 게 아니라 다시 시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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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해 파면한 지난 4일 밤 기독교인들이 밤을 새워 한국교회와 나라를 위해 기도했다. ‘거룩한 방파제’ 통합국민대회 준비위원회가 오산리금식기도원에서 연 철야기도회에 참석한 이들은 그 이튿날 새벽까지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이날 금요 철야기도회는 동성애와 퀴어축제, 차별금지법에 반대하고 대한민국 거룩성을 회복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6월에 있을 동성애 퀴어축제를 대비해 영적 전열을 가다듬는 의미다.

예장 합동 직전총회장 오정호 목사는 “대한민국이 거룩한 나라가 되려면 우리 자신과 가정, 그리고 우리가 속한 교회에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이뤄져야 한다. 우리는 만민을 위해, 그들이 보고 따라올 수 있도록 진리의 깃발을 높이 들어야 한다”라고 했다. 박한수 목사(제자광성교회 담임)도 “우리가 우리 죄를 회개하고 이 땅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이 땅을 고쳐주실 것”이라며 “이 땅의 반국가·반민족·반성경적인 세력들이 돌이키고, 모든 죄와 악들, 악하고 위험한 계획들이 다 드러나 바벨탑처럼 무너지기를 기도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동성애 퀴어축제에 대응해 2015년부터 시작한 ‘거룩한 방파제’ 철야기도회는 올해로 벌써 11회째다. 퀴어축제는 그 이후로도 계속되고 있지만 ‘거룩한 방파제 기도회’를 통해 온 국민이 동성애의 폐해를 알게 되고 경각심이 생긴 게 사실이다. 교계 또한 이 기도의 힘으로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동성결혼 합법화를 막아 냈다.

동성애 반대를 위한 기도의 불이 다시 타오른 날인 4일, 기도의 불을 끈 곳도 있었다. 지난 4개월여간 전국에서 대통령 탄핵 반대와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아스팔트를 달구며 뜨겁게 기도했던 ‘세이브코리아 국가비상기도회’가 문을 닫은 것이다. 기도회 측이 헌재가 윤 대통령 파면을 전원일치로 선고한 것을 수용하는 뜻에서 기도회의 여정을 모두 마무리했다.

기도회 측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세이브코리아 국가비상기도회’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와 민주당과 이재명의 입법독재를 우려하는 국민의 뜻을 알려왔다”며 “비록 대통령은 탄핵되었지만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국민과 함께 대한민국의 위기를 알리고 나라를 깨워온 것에 대해 감사하며, 이 모든 과정에 함께 해주신 모든 성도와 국민께 감사드린다”는 인사의 말을 전했다.

이들이 지난 4개월여 전국 각지에서 뜨거운 눈물로 기도한 내용은 대통령 탄핵 반대와 자유민주주의 수호, 두 단어로 집약된다. 대통령 탄핵 반대가 수십 건의 국회 탄핵 소추 남발로 국정 발목잡기에 몰두한 야당에 대한 국민적 저항의 표시였다면 자유민주주의 수호는 12.3계엄에서 시작된 탄핵정국의 끝에 마주하게 될 국가적 위기에 대한 영적 각성에서 비롯됐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헌재가 이 문제에 최종 판단을 내린 이상 그 결과에 승복하는 게 국민된 도리라는 게 기도회 측의 판단이다. 기도회를 이끌었던 손현보 목사도 “설령 정치적 판결이라 할지라도 국가 시스템 안에서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했다.

‘세이브 코리아 기도회’는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국민적 목소리를 한데 모으는 1차 목표를 달성했다. 전국 각지를 순회하며 개최한 기도회를 통해 기독교인뿐 아니라 많은 젊은 세대들의 의식이 깨어나게 만든 게 가장 큰 소득이다. 하지만 헌재의 탄핵 인용으로 바라던 결과물을 얻어내지 못한 데 따른 실망감을 지울 수 없다.

‘세이브 코리아 기도회’ 측은 당초 탄핵이 기각되든 인용되든 헌재 판결까지로 활동 시한을 정했다. 그러니 이 시점에서 마무리하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다만 탄핵이 기각될 줄 믿고 그 이튿날 감사예배 후 활동을 접으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을 뿐이다.

안타까운 건 헌재의 탄핵 인용 결정에 탄핵 반대 측이 수용하는 것과 동시에 보수진영의 향후 방향과 결집이 눈에 띄게 와해되는 듯한 분위기로 변하는 부분이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반대가 최종 목적이라기보다 목표에 다가가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모든 게 끝난 게 아닌데 패배 의식에 사로잡혀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건 곤란하다.

탄핵이 정리되자마자 정치권에선 조기 대선 체제 전환과 함께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 실시가 거론되고 있다. 제안자인 국회의장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헌법을 통해 작동되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며 “승자독식의 위험을 제거하고 국민주권으로 가기 위해 권력을 분산하기 위해 개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우리 정치에 ‘승자독식’이 문제였다면 현직 대통령이 두 번씩이나 국회에서 탄핵 소추돼 파면되는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또 권력 분산이 문제라면 거대 야당의 입법독재를 막을 방안부터 강구하는 게 순서라고 본다.

국민 모두가 아는 데로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문제의 상당 부분은 오로지 권력을 쥐려는 자와 그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정당의 폭주가 원인이다. 이들이 종북·친중 정책에 기울어져 한미동맹을 와해시키고 궁극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무너뜨리고 나면 대한민국은 지금의 모습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져 있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한국교회는 기도를 마칠 게 아니라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전보다 더 뜨겁게 금식하며 재를 뒤집어쓰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매달려 간구해야 할 시간이다. 한국교회 주요 교단들이 탄핵 정국에서 보여준 어정쩡한 태도로는 앞으로 교회에 닥칠 파국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거룩한 방파제’, ‘세이브 코리아’ 할 것없이 모두가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정도가 아니라 온갖 불의와 탄압에도 눈감고 침묵하는 신세로 전락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