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방역실패, 지금은 엄중히 책임을 물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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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 기세가 무섭다. 지난 17일에만 확진자가 62만여 명, 사망자는 무려 429명으로 폭증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방역패스를 전면 중단하고 사적 모임 제한을 완화한 데 이어 또 다시 방역 완화조치를 발표해 아예 방역을 포기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최근 일주일간 인구 대비 하루 평균 확진자 규모는 올 초 미국, 영국 등의 정점 도달 상황보다 2배 이상 많다. 전 세계 신규 확진자 3명 중 한 명이 한국에서 나오고 있어 한때 문재인 대통령이 침이 마르게 자랑하던 K-방역은 확진자 수 세계 1위라는 시궁창에 빠진 상태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의료 체계다. 위중증 환자가 연일 역대 최다를 기록하면서 중환자를 받아야 할 병실이 태부족이다. 위중증 환자 치료에 전념해야 할 일선 병원들이 코로나19 검사와 확진 판정까지 떠맡는 바람에 의료 서비스는 이미 과부하가 걸린 상태다. 매일 수백명씩 나오는 사망자의 시신을 화장하는 화장장 시설까지 비상이 걸려 어쩔 수 없이 5, 6일장을 치르는 비극이 연출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대선을 앞두고 ‘방역패스’를 전면 중단하는 등 방역조치를 완화한 그 기조를 그대로 밀고 나가고 있다. 확진자가 늘어나면 조이고 줄어들면 풀던 이전의 방역수칙은 아예 종적을 감추었다. 이젠 폭발적으로 확진자가 늘어도 거리두기를 푸는 이해할 수 없는 방역정책으로 의료 현장의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지난 16일 1급 감염병으로 지정돼 있는 코로나19의 등급 완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현재 1급으로 지정된 코로나19의 감염병 등급을 변화된 상황에 맞게 조정하겠다는 뜻인데 그럴 경우, 코로나는 계절에 따라 유행하는 독감과 비슷한 수준으로 취급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일선 전문가들은 정부가 이런 이유로 방역을 완화하는 것을 심각하다 못해 위험천만하게 보고 있다. 방역을 포기한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감염을 부추긴다고 느낄 정도다. 최재욱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계절 독감이 하루 40만명씩 생긴 적이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의료 체계가 마비되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이런 팬데믹 상황에서 독감처럼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는 건 국민을 실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정부의 방역정책을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단순히 독감의 치명률과 비교해 별 게 아니라는 식으로 여기게 하는 것이야말로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코로나에 감염돼 재택치료를 하는 이들 중엔 “침도 삼킬 수 없을 정도로 목이 아파서 고통스럽다”고 호소하는 일들이 적지 않은데 정부가 단순 독감 감기 수준으로 여기는 바람에 “걸리면 그만”이라는 경계심마저 사라지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때 K-방역이란 이름의 통제 위주의 엄격한 방역시스템을 자랑하던 나라에서 벌어지는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외신들마저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뉴욕타임즈는 최근 보도에서 “가장 엄격한 코로나 방역정책을 펼쳤던 한국이 오미크론 변이 유행으로 최근 세계 최다 일일 확진자 수를 기록하는 상황을 맞았다”고 했다.

정부가 오미크론의 대확산을 별거 아니라고 여기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확진자 수가 어느 정도 폭증해도 곧 정점에 도발할 것이란 낙관론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확진자 수는 62만 명을 기점으로 33만 명대로 줄어드는 등 다소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코로나 사망자가 연일 3백명 대에서 줄어들지 않고 있고, 위중증 환자도 열흘 넘게 1천 명대를 유지하고 있는 점이 불안감을 키우는 요소다. 미국처럼 오미크론보다 전파력이 더 강한 스텔스 오미크론이 국내에서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 것도 커다란 변수가 될 수 있다.

지난 2년여 코로나 대 유행 기간에 온 국민은 통제든 규제든 다 순응했다. 한국교회는 제아무리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켜도 어쩌다 확진자 한두명 만 나와도 “교회발 코로나19 확진”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채 집합금지 시설 폐쇄명령에 군소리없이 따라야 했다.

그런데 아무리 정치방역이라도 대선을 앞두고 뭐가 그리 급하다고 정점에 이르기도 전에 빗장부터 풀고 있는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가 쉽지 않다. 이 모든 부담을 떠안고 있는 의료 현장의 불만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정부는 뭔가에 홀린 듯 방역을 풀고 있지만, 스텔스 오미크론의 전 세계적인 확산 등 변수로 예상했던 정점이 점점 더 늦어질 경우, 그 대가는 위중증 환자뿐 아니라 국민 모두의 고통과 희생으로 전가된다는 사실을 정부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동안 코로나19 대응에 있어 정부의 예측이 빗나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도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다른 나라들처럼 정점에 도발한 후에 방역을 완화해도 늦지 않다고 수없이 말해도 정부는 아예 귀를 닫은 모양새다. 이럴 거면 뭐하러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승격하고 청와대에 방역기획관이란 자리를 두었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외신에서도 지적했듯이 정부는 이번에도 국민을 상대로 안전한 길 대신 아슬아슬한 모험을 선택했다. 그렇다면 그 결과에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지난 16일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참존교회 서울에스라교회 예수비전교회 은평제일교회 등을 상대로 낸 소송비용 담보 제공신청을 기각했다. 이는 정부의 과도한 방역 지침에 피해를 본 교회들로부터 소송을 당한 문 대통령이 해당 교회에 소송비용 담보 제공 등의 부담을 안겨 소송 자체를 막겠다는 의도가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린 것이다.

국민을 대상으로 정부가 시행하는 정책이 다 옳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이랬다저랬다 손바닥 뒤집듯 하는 정부의 정책이 다 면죄부를 받을 순 없다. 그러기엔 마음의 고통과 상처가 너무나 크다. 지금은 정부가 그동안 한 일에 국민이 엄중한 책임을 묻고 정부 또한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