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노동자 및 산업재해 피해자에 대한 관심 높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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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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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나비, 논평 통해 주문

샬롬나비 김영한 상임대표(숭실대 명예교수, 전 숭실대기독교학대학원장, 기독학술원장) ©기독일보 DB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상임대표 김영한 박사, 이하 샬롬나비)이 노동자에 대한 안전보호를 촉구하는 논평을 23일 발표했다.

샬롬나비는 이 논평에서 “꽃다운 23세 대학생 (故)이선호 군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2달이 지난다. 그는 4월 22일 오후 용역회사 지시에 따라 평택항 내 컨테이너 이물질 청소작업 중, 약 300㎏의 개방형 컨테이너(FRC)에 깔리는 사고를 당해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정부와 많은 사회단체들이 노동자 안전보호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지만, 산업발전 및 경제발전이라는 명목 하에서 대한민국의 노동자는 여전히 안전을 보장받기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샬롬나비는 “모든 노동자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소중하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는 고용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며 “고용자와 피고용자, 사측과 노측은 결코 절대적 상하관계가 아니다. 고용자는 피고용자를 통해 더 많은 이윤을 얻을 수 있으며, 피고용자는 고용자가 제공한 노동의 기회를 통해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재정을 얻는다. 피고용자가 없이는 고용자는 자신의 사업을 유지할 수 없으며, 고용자가 없이는 피고용자의 삶은 힘들어진다”고 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사회 일부에서는 돈 있는 사람들, 힘 있는 사람들이, 천박한 자본주의와 물질주의를 가지고, 마치 높은 계급으로 태어나 마음껏 다른 이들을 이용할 수 있다는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으며, 또 다른 일부에서는 지나친 시장경제에 대한 반감을 가진 일부 극단적 진보세력이 자본을 가지고 경제를 운영하는 사람들에 대한 원한과 복수를 획책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

샬롬나비는 “그러나 모든 이들은 하나님 앞에서 각각 소중한 존재이며, 동시에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나약한 존재”라며 “이것은 고용인이 되었든 피고용인이 되었든 마찬가지이며, 모든 노동자 고용의 상황은 바로 이 원칙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근로기준법을 준수해 노동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문화가 필요하다”며 “근로기준법이 제대로 지켜질 때, 고용자와 피고용자 모두가 떳떳하고 안전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는 기업문화는 고용자와 노동자 모두의 의무이면서 동시에 권리”라고 했다.

또 “산업재해는 사회전체의 책임이며, 노동자 안전보호에 대한 정책 마련 및 점검은 전적으로 국가의 의무에 해당한다”며 “더 이상 개인의 능력으로 바꿀 수 없는 사항이 된 산업재해의 원인은 이념과 상관없이 정부가 보다 강한 통제력을 발휘해 기본적으로 점검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정부는 산업재해 노동자의 트라우마 치료와 생활을 보장하는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며 “국가는 산업재해 자체가 사회 전체의 책임이며, 국가전체의 책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일하다 상처받고 쓰러진 이들을 국가가 보호해주고 치료해주지 않는다면, 국가는 존재할 이유를 상실한다. 국가는 보다 강한 책임감으로 산업재해의 사건들을 조사하고 점검함과 동시에 산업재해 피해자들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한국교회는 고통당하는 노동자 및 산업재해 피해자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 한다”며 “마태복음 25장 34~46절에서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는 것, 즉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자에게 마시게 하며, 나그네 된 자를 영접하고, 벗은 자에게 옷을 입혀주고, 병든 자를 돌보아주며, 옥에 갇힌 자를 가서 보는 것을 곧 하나님께 하는 것이라고 가르치신다. 그리고 교회는 바로 이러한 말씀에 의지해 노동의 현장에서, 그리고 산업재해의 사건 안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모든 이들이 바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이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샬롬나비는 “그러기 위해 먼저 교회는 노동, 노동자, 노동운동이라는 단어에 대한 불편함을 떨쳐버리고 그들이 울부짖는 현장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며 “지금까지 보수적인 교회는 공산주의와의 이념적 대립 때문에 노동이라는 단어를 불편하게 생각해왔고, 노동운동의 현장으로부터 나타날 수 있는 폭력에 주눅들어왔다. 이와 정반대로 진보적 교회는 지나치게 노동의 현장에만 매몰되어 정치적 활동에 치우쳐왔던 한계를 지닌다. 그러나 이제 교회는 보수와 진보의 이념을 벗어버리고 ‘하나님께 하는 것’이라 하신 성경말씀을 따라 고통당하는 자들에게 직접 다가가 그들과 함께 동행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지금 교회에 명령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노동자의 아픔을 배척하라는 것도, 또한 그렇다고 구시대의 노동운동에 무조건 동참하라는 것도 아니”라며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자기를 비우고 오셔서 자신을 내어주는 삶과 죽음을 행하셨듯이, 구원받은 우리로 하여금 고통당하고 아픔을 당하는 이들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삶과 죽음을 행하라 명령하실 뿐”이라고 했다.

샬롬나비는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모든 고통과 폭력을 예수께서 하신 것처럼 대신 짊어지는 자가 되어야 한다”며 “그리고 교회는 이처럼 모든 이들의 고통과 폭력을 종결시키기 위해 그들과 함께 동행하며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고통과 폭력을 나누어 짊어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그리스도인도, 또한 그리스도의 교회도 아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이웃을 사랑하는 자이며 특히 지극히 작은 소자에 공감하고 이들과 소통하며 이웃이 되는 자”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