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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2 (금)

[출애굽기 특강] 이선규 목사 ‘왜 여호와 인가?’

기독일보 편집부 기자 (editor@cdaily.co.kr)

입력 2017. 06. 29 12:15  |  수정 2017. 06. 29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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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 : 이선규 목사(대림 다문화선교센터 대표)
■본문 : 출애굽기 3:13-18

(출3: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출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출3: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출3:16) 너는 가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돌보아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확실히 보았노라
(출3:17)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면
(출3:18)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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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규 목사
▲이선규 목사(대림다문화센터 대표ㅣ대림중국교포교회 담임)

[기독일보=목회] 사람이 살다 보면 남에게 오해를 살 때도 있고 본인이 오해를 할 때도 있습니다.

무전여행을 떠난 대학생이 어느 산골을 지나다가 밤을 맞게 되었습니다. 인가가 드문 곳이라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멀리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반가워서 단숨에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방문을 두드리려는 순간 모자간의 걱정스런 말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어휴’ 먹을 게 없는데 당장 어쩌나 어머니 할 수 없잖아요 똥이라도 드셔야 지요 먹을 게 없다고 굶으실 수는 없잖아요? 정말 그렇구나 할 수 없이 ‘똥이라도 먹어야겠구나’ 아니 도대체 얼마나 가난했기에 그것을 먹는단 말인가?

문 밖에서 이 소리를 듣고만 있던 이 학생은 너무나 모자가 불쌍해서 도저히 그냥 갈 수가 없었답니다. 그래서 주인을 부르고 문을 열어 보았습니다.

뭐 했겠습니까? 화투판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완전하지를 못해서 이렇게 오해를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사람이 가장 답답할 때가 언제 입니까? 자신이 오해를 받으면 가슴이 답답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고 어떻게 하나님을 바로 섬길 수 있으며 올바른 신 앙 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누구냐? 하는 질문은 유사 이래로 계속 되어온 인류의 질문 입니다.그러나 인간으로서는 그 누구도 명쾌하게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조차도 ‘무엇이 하나님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무엇이 하나님이 아닌지는 안다’는 지극히 피상적인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 속에서 하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지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이 누구신지 분명히 성경 속에서 분명히 밝히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이 누구신지 묻는 모세의 질문에 하나님께서 답하시는 장면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 나님은 한 마디로 말해서 알파와 오메는 분이신 데 전에도 계시고 이제도 계시고 장래에도 앞으로 영원 까지 계신 하나님 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의 철학적 산물도 아니고 도덕적 대리자도 아니고 영원히 살아 계 신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그 종교의 기원을 보면 대개 인간의 두려움을 내어 쫒기 위해서 즉 액운을 없애 보려고 어떤 것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무속 신앙 이란 것이고 또는 인간의 마음을 바르게 해서 인간사회에서 질서를 잡아 보려는 데서 생긴 수양 종교가 있는데 그런 것은 인위적 종교 즉, 사람이 만든 종교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계시 종교로 이는 영원한 하나님이 스스로 자신을 알려 주시고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만나 주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 하신 후에 성령으로 오셔서 지금도 우리와 동행해 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이십니다.

1. 본문은 하나님은 자신을 ‘여호와’라고 하셨습니다

이 이름의 뜻은 영원한 자존자 즉, 스스로 계신 분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광야에서 양을 치고 있던 모세를 호렙산 가시덤불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바로의 수중에서 해방 시켜내라고 명령을 내리십니다.

이 때 모세가 말하기를 그러면 바로가 내게 묻기를 ‘네가 누구의 부르심을 받고 왔느냐고 물으면 무어라고 말하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말씀 하시기를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시며 ‘나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모두 피존적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존자이심으로 공간과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시고 못하실 것이 없으신 전능자 이십니다. 스스로 있는 자라는 이 말씀은 이해하기 좀 힘든 대답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하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속성을 밝히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피조물인 인간이 결코 자존 하시는 하나님을 평가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르지 자존하심에 겸손히 머리 숙이고 그 분께 경배 드려야 할 것입니다 .

3장에서만 너희 조상의 하나님임을 네 번이나 강조 하셨는데 그 이유는 언약의 하나님 이 심을 강조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언약(출2:24)을 기억 하셨다는 것은 곧 언약을 어기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민수기에서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모든 언약은 영원 히 불변 하시다는 뜻으로 소금 언약(민18:19)으로 맹세의 언약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믿을 때에 우리는 큰 위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에게 언약 하신 것을 이루신 것처럼 우리와 맺은 언약도 성취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인이 되어 모든 믿는 자의 조상(롬4:11)이라는 일컬음을 받았습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는 야훼라고 하는데 킹제임스 성경에는 주님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2. 하나님은 구원자 이십니다

이는 하나님은 구원 하시는 분이시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사12:2) 그 분이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시라면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함 받아 가나안의 젖과 꿀을 맛보고 참 안식을 누리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가서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라고 하신 이유는 하나님은 애굽과 완전한 분리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이시기도 합니다. 길에 머물러 세상 근처에서 주님을 섬기고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애굽왕에게 혹독하게 압제 당하는 처참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이처럼 당신의 이름을 여호와로 소개하시는 것은 언약의 백성을 구원 하시는 구원자로서 거룩한 성호를 밝히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이 바로 이러한 구원자이시기에 오늘 우리들은 용기와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름은 대게 상대방의 성품과 인격을 나타냅니다. 그러기에 여호와의 이름은 결국 하나님 의 속성과 본질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거룩한 품성을 훼손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그 이름이 거룩하게 하시며’(마태 6:9)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의 첫째 문구 하나님께 돌리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이 차지하려 하거나 헛된 우상 에 게 돌리려는 세상 속에서 구원 받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온전히 영광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세상에 드러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 달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온 세상에 가득 차 있지만 인간 들이 죄로 인해 그 영광을 차지 하려하거나 헛된 우상에게 돌리는 세상 속에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온전히 영광을 돌릴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라고 <그랜드 주석>에 나와 있습니다.

3. 그 이름을 알라(시 91:14)

그가 나를 사랑하였음으로 내가 그를 구해 낼 것이요 그가 나를 알았으므로 내가 그를 높이리라. 여기서 사랑 한다는 히브리리어 ‘하사크’로 이는 ‘달라 붇다’는 뜻으로 하나님께 대한 전 적인 의뢰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그 분을 절대 적으로 신뢰가 필요함을 말씀 합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잇듯이 하나님과 연합 되어 있는 자만이 그 분의 긍휼을 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4. 그 분을 존중히 여기라(말 3:15)

자녀들이 부모의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것과 같이 성도들은 하나님의 아버지의 이름을 존중히 여겨야 합니다. 존중히 여긴다는 말은 그 분의 인격을 존중히 여기고 경외함을 뜻합니다.

5. 그 이름을 널리 선포 하라(출 9:16)

하나님이 우리를 안다는 것은 그 이름이 무엇을 의미 하는지를 배우고 그 이름을 가지신 하나님을 경배하는 동시에 그 이름이 온 세상에 높임을 받도록 선포하기를 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지는 곳까지’의 이방 종족 중에서 그의 이름이 크게 되기를 널리 선포해야 합니다. (말1:11)

내가 주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극히 높은 신이여 내가 주의 이름을 찬양 하리이다(시9:2).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며 감사함으로 그를 높이리니(시69:30), 주 하나님 곧 홀로 의로운 일들을 행하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송축하며 그의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송축 할 지어다 온 땅에 그의 영광을 충만할 지어다(시 72: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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