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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6 (월)

[말씀묵상] 그리스도와 연합된 나의 무덤, 현세적 해피엔딩의 종결

기독일보 편집부 기자

입력 2014. 12. 22 08:41  |  수정 2014. 12. 22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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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7:57~66

1. 말씀 : 마 27:57-66

(62) 그 이튿날은 준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이르되
(63) 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64) 그러므로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속임이 전보다 더 클까 하나이다 하니
(65)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에게 경비병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지키라 하거늘
(66) 그들이 경비병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키니라

2. 묵상

"아버지, 오늘도 내 안의 생명은 목마르나이다. 값없이 돈없이 나아가오니 마시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나이다. 영원한 언약, 무덤의 복음으로 새롭게 하소서. 아멘"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분리되는 '유기(遺棄)의 절규' 끝에 죽으셨다.
그러자 지성소를 가리던 휘장이 찢어졌다.
그의 죽음은 진실로 죄인을 대신한 죽음이었으며, 죄인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죽음이었다(벧전 3:18).

십자가에 달리신 채 죽어계신 주님, 그리고 '그 날'이 저문다.
이 때 여태껏 드러나지 않은 주의 제자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에게 간다.
그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하자, 빌라도가 허락한다.
요셉은 깨끗한 세마포로 예수의 시체를 싸서 자기의 새 무덤에 넣고 큰 돌로 무덤 문을 막는다.

이튿날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빌라도에게 간다.
그들은 예수가 살아있을 때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리라'고 한 말을 빌미 삼는다.
만일 예수의 제자들이 그의 시체를 훔쳐가서 그 말을 사실로 퍼트리면 사태는 이전보다 더 심각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청구한다.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소서"(64절).
하지만 빌라도는 이 일을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로 하여금 하도록 한다.
이에 그들은 경비병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킨다(66절).

예수께서 무덤에 장사지낸바 되시고, 그 무덤은 굳게 닫혀 있다.
그의 장사지냄과 무덤의 사건은 일찍이 그가 예표하신 말씀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마 12:39-40)
이것이 악하고 음란한 이 세대에 요청되는 유일한 '표적'이라고 하신다.
하나님과 분리되어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즐거워하는 세대는 반드시 '무덤'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성경에서 '표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사건이다!
무덤이 표적인 것은 무덤이 구원과 관련된 하나님의 사건이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초대교회 사도들에 의해 전승된 복음은 그리스도의 장사됨, 곧 그의 무덤을 내포한다(고전 15:3-5).
교회의 대표적인 신앙고백인 사도신경은 이를 '장사된 지'로 고백한다.
칼 바르트는 사도신경에 나오는 '장사되다'(buried)를 이렇게 쓰고 있다.
'한 사람이 장사됨으로써 그에게 더 이상 미래는 물론이고 현재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말 그대로 과거가 된다...(중략)... 그리고 모든 사람의 현재가 그것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미래가 바로 그것, 곧 장사되는 것, 무덤이다'

그리스도의 장사됨은 '그의 모든 인성'(His whole personality)이 '이 세상'에서 제거된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우리도 그와 함께 장사되었다는 것이며(롬 6:4), 따라서 '우리의 인성'(our personality)도 장사되었다.
부활하심으로써 죽음을 정복하신 그리스도는 죽음을 정복하기전 먼저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었다.
우리 역시 먼저 죽고, 먼저 장사되어야 죽음을 정복하고 '새 생명'(영원한 생명)을 획득하고 영생을 살게 된다(롬 6:4).

우리의 무덤은 본래적인 생명, 낡은 생명, 옛 사람이 죽고 장사되어 거하는 곳이다.
나아가 그것들이 추구하는 생의 목적, 곧 '보란듯하고 성공하고 풍요로운 3A'(Appearance, Achievement, Affluence)가 죽고 장사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영생을 사는 참된 신자에게는 일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현세적 해피엔딩'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새로운 생명은 낡은 생명(옛 사람)의 완전한 종말 없이 나타날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낡은 생명)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영원한 생명)이 되었도다"(고후 5:17).

*******

나는 30여년 가까이 예수를 믿었으나 주님의 장사됨과 무덤을 간과하였다.
이에 대한 사도신경의 고백을 무시로 하였으나 '다시 살아나사'의 결말을 알고 있기에 무의미하게 홀대하였다.
그런 나는 주님이 말씀하신 바, '무덤의 표적'과는 상관없는 자였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무덤에 두시고 사람들에 의해 굳게 지킨다는 오늘의 말씀도 남의 이야기처럼 대하였다.

그의 장사됨(무덤)이 복음이라는 것을 지식으로 알았으나 영으로 내 복음이 되지 못하였다.
그러다보니 오직 십자가 복음에만 착념하였다.
사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가 죽는 것은 그와 함께 장사되기 위함이다(롬 6:4).
그리하여 새 생명, 영원한 생명으로 살기 위함이다(롬 6:4).
그런데 십자가 죽음에만 머물러 있었으니 어찌 새 생명, 영생으로 살 수 있었겠는가!

내가 무덤에 들어가지 않으니 내 신앙은 현세적 목적, 곧 '3A'의 해피엔딩을 갈구하였다.
경건의 모양을 내었으나 내 중심은 바로 현세적 해피엔딩에 있었다.
'열심히 믿으면 언젠가 잘되겠지'라고 하며 막연한 희망을 붙들고 신앙생활에 매진하였다.
그러나 내적 공허는 깊어지고, 내적 번민은 심화되고, 신앙의 열정은 점차 사그라졌다.
이렇듯 낡은 생명으로 행하는 신앙생활은 그만큼 보상이 돌아오지 않으면 지치고 무기력해지는 법이다.

그런데 내게 무덤의 표적이 일어났다.
하나님은 외적으로 경건하나 내적으로 공허와 탐심에 사로잡힌 나를 심판하셨다.
나는 고난의 불속으로 던져짐을 당하였다.
그나마 취했던 현세적 성과들은 불타버렸고, 나는 죽은 자가 되어 광야에 버려졌다.
나도 나를 포기하는 자리에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도 포기한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참된 신앙은 '무한한 자기체념'에서 시작된다는 키에르케고르의 말은 참이었다.

무한한 체념의 자리에서 죽기를 구하던 나를 하나님의 손이 붙드셨다.
매일 말씀 앞에 나아가게 하셨다.
어느 날 시편 88편을 읽으며 눈물이 흐르고 또 흐르고, 하염없이 울었다.
시편 88편은 무덤에 갇힌 자의 노래이다. 그 노래가 나의 노래가 된 것이다.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진실로 무덤의 표적을 경험하고 있었다.
거기 무덤에 장사되신 그리스도가 함께 거하셨다.

무덤은 진실로 복음이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무덤에서 홀로 있음의 고통(외로움)은 홀로 있음의 영광(고독)으로 변한다.
하나님은 그 고독의 자리에서 현세적 해피엔딩을 종결시키셨다.
그리고 새 생명, 영원한 생명, 하나님의 생명으로 사는 자가 되게 하셨다.
나의 무덤은 그리스도의 무덤이요, 하나님이 영생을 주신 표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옛 사람, 곧 육신을 갖고 있다.
그래서 매일 십자가로 가서 죽고, 매일 무덤으로 들어간다.
나의 무덤은 불신앙의 사람들에게, 세속적인 신자와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굳게 갇혀 있다.
오해도 받고 비난도 받고 지탄도 받는다.
가까운 이들도 말한다. 아니 내 속에서 말한다. '언제 무덤에서 나올 것인가...'
고진감래라..., 이전의 영광을 되찾아야 할 것이 아니냐고 속삭인다.
현세적 해피엔딩의 주문(呪文)을 건다.

이 아침, 말씀은 다시 한 번 나의 실존, 영원한 실존을 확증한다.
"무덤을 굳게 지키니라"
그렇다! 나는 날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나아가야 살 수 있는 자이다.
날마다 나의 옛 사람을 주님이 달린 십자가에 못박는다(갈 5:24).
나는 날마다 그리스도의 무덤에 들어가야 살 수 있다.
거기서 현세적 해피엔딩을 종결시켜야 영생으로 살 수 있다.

오늘도 심판의 무덤에서 하나님을 찬양한다. 할렐루야!(시 48:11).

3. 기도

아버지...
저는 오랫동안 주의 장사됨과 무덤을 알지 못한 자였습니다.
이 땅에서 해피엔딩을 꿈꾸며 구하던 자였습니다.
한편으로 자의식, 낡은 생명, 옛 사람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고통당하던 자였습니다.
언제나 나의 문제, 관계의 문제, 상황의 문제, 세상의 문제로 시달렸습니다.

그런 나에게 현세적 재앙이 임했습니다.
죽음의 자리, 심판의 자리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그 곳은 바로 무덤의 표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사건이었습니다.
거기서 영생을 얻고 창세전 성자가 성부와 함께 한 영광을 보았습니다.
이제 더 구할 것은 없습니다. 더 원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제 안에 육신의 소욕이 여상합니다.
'혹시나' 하는 현세적 해피엔딩을 따라갑니다. 공상과 몽상이 일어나곤 합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무덤에 갇힌 자가 됩니다.
아, 나의 실존이 무덤이요, 나의 상황이 무덤입니다.
또다시 나로 살지 않도록 무덤을 굳게 지키나이다.
무덤에서 영생으로 살리시는 이, 오직 아버지이십니다.
오늘도 주님과 연합하여 무덤에서 잠잠하나이다.
죄와 육신, 세상에 대하여 죽은 자요, 오직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가 되나이다.
나를 아버지께 바치나이다. 나를 받으소서. 주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서형섭 목사는...

서 목사는 하나님의 검증을 마친 영적지도자다. 한국외대에서 경영학(B.A.)와 연세대 경영대학원 경영학(MBA)를 졸업하고, 서울신대 신학대학원 목회학(M. Div.)을 공부했다. 논문 '말씀묵상을 통한 영적 훈련'(Spriritual Training through Meditiatioin on the Word)으로 풀러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D. Min.) 학위를 받았다.

그는 지난 2000년 반석교회를 개척하고, 치유상담연구원에서 6년간 수학 후 겸임교수를 지내며 동시에 한국제자훈련원에서 8년간 사역총무를 역임했다.

현재 서형섭 목사는 말씀묵상선교회 대표로 섬기며 특히 '복음과 생명', '말씀묵상과 기독교 영성'에 깊은 관심을 갖고 저술과 세미나 사역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말씀묵상이란 무엇인가>(갈릴리, 2011년)과 최근 출간된 <복음에서 생명으로>(이레서원, 2013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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