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규 교수   ©기독일보 DB

[기독일보 오상아 기자] 최근 세월호 참사로 인해 수백명의 고귀한 생명이 희생되고, '윤 일병 구타 사망 사건' 같은 믿기 어려운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우리 사회가 과연 얼마나 생명을 가볍게 생각했는지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크다.  

지난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도렴동 종교교회(담임 최이우 목사)에서 진행된 생명신학협의회 '제27차 전문위원 세미나'에서 '오늘날의 생명위기에 대한 신학적 대안'을 주제로 발제한 장로회신학대학교 박성규 교수는 먼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생명경시 문화'에 대해 통탄했다.

박 교수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양상을 한마디로 정의하라고 한다면 생명위기의 상황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을 것이다. 생명의 존엄과 가치는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고 개탄하며 "탑승자 476명 중 구조자 172명 사망실종자 304명으로 36%의 구조율이라는 기록을 남기고 아직 진상파악을 위한 준비도 못하고 있는 세월호 사건을 시작으로 군부대 병사들의 집단 구타로 인한 윤일병의 사망 사건 외에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병사들의 타살 및 자살 사건들, 심지어 날로 늘어나고 있는 청소년들과 노인들의 자살 사건들, 최근 일어나는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고 하여금 뭐라고 할 말을 상실하게 만든다"고 우려했다.

그는 최근 세계보건기구(WHO)의 보고를 인용해 한국이 전 세계에서 키프로스에 이어 자살 증가율 세계 2위라며 '사회가 심각하게 곪아터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박성규 교수는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성서의 가르침이 설 자리를 잃어버릴 정도로 이 사회는 생명 존엄의 정신을 잃어가고 있다"며 "다른 사람의 생명에 대해서는 냉혈한처럼 무관심하다가도 정작 자신의 생명에 위협이 오거나, 자신의 생명의 존엄이 손상을 입었다고 생각될 때에는 가능한 모든 법적인 조치와 물질과 권력을 다 동원해서라도 지켜 나가려고 한다. 생명에 대한 가치도 점점 이기적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며 이러한 '극단적인 생명 위기'에 대한 신학적인 대답을 모색하는데 이 발제의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세월호 사건 이후 한국교회의 수많은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은 가슴에 노란 리본과 함께 심정적인 참여의지를 보여 주었고, 또 수많은 구호들과 플래카드의 진심어린 문구들을 통하여 그들의 아픔과 고통과 고난에 참여의 의지들을 보여 왔다"며 그러나 "'도대체 왜?'라는 질문을 들고 그에 대한 대답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듣고자 교회를 찾아오는 그리스도인들이 오늘날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철학적인, 정치적인, 경제적인, 사회적인 대답이 아니라, 단순한 구호나 안타까워하는 동정심이 아니라, 바로 신학적인 대답일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 점에서 오늘날 한국 땅에서 신학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로 이 생명에 대한 '왜?'라는 질문과 씨름하여야 할 것이다"며 신학자 '칼 바르트 신학에 기대어' 답을 찾아 나갔다.

그는 먼저 "사실 종교사적으로 볼 때 모든 종교적인 의식들과 제의들은 근본적으로 차안과 피안의 생명과 삶을 중심으로 삼고 있다"며 "여기서 여러 가지 관점들이 있겠으나 항상 다시 대두되는 일관된 주요관점이 있다. 그것은 삶과 생명이란 그 신적인 기원(창조)으로 인하여 언제나 '빚진' 삶이요 생명이라는 것이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고대 근동의 창조기사에서는 인간의 생명에 대한 평등한 사상을 찾아 볼 수 없고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한 생명이라는 생명이해는 오직 구약의 창조기사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사상이다"며 "다른 신들은 태양신과 각각의 신들을 섬기는 왕이 그 신들의 아들이 되어 실제로 다른 생명과는 절대적인 계급적 차별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구약에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을 생명의 하나님으로 이해한다"며 "모든 생명 즉, 하임(hajjim, 상황에 따라서는 네페쉬)은 하나님 안에 그 근원을 지닌다.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 안에 있다. 생명은 창조주 하나님의 선물로 여겨진다. 또한 하나님이 그 숨을 거두시면, 생명체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간다(시 104:29)"고 강조했다.

박성규 교수는 "그 밖에도 구약성서의 이해에 따르면 생명은 단순한 육체적 존재 그 이상의 무엇이다"며 "생명은 구원의 중심대상에 해당하며 단지 '살아있는 것 또는 생명에 머물러 있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의 대부분이 장수하며 충만하게 채워진 삶으로서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했다.

박 교수는 "구약성서에서 생명 개념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 찬양이며 하나님과의 연합이다. 생명은 곧 찬양을 의미한다"며 "폰 라드에 따르면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이 살아 있음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이 된다' 그와 반면에 죽음 안에는 하나님 찬양이 침묵하게 된다(시 6:5, 88:11 등)"고도 설명했다.

그는 "생명은 하나의 관계개념이다. 다시 말해서 오직 하나님과의 연합 안에서만 그리고 오직 사회적인 관계들 안에서만 생명은 가능하다"며 "이러한 생명 공동체가 고독으로 인하여, 또한 하나님을 떠남으로써 파괴된다면, 육체적인 죽음의 경계를 건너기도 전에 이미 '죽음'이라는 것이다(시 88)"고 덧붙였다.

이어 "신약성서의 생명이해에 따르면, 고대 유대교 전통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원시 기독교에서는 생명 개념(조애, 자오)은 피조물에게 출생과 사망 사이에 주어진 시간을 의미하였다"며 "신약성서의 생명이해는 구약성서의 생명이해를 이어받고 있다. 즉, 신약성서에서도 창조주 하나님이 생명과 사망의 주로 이해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그러나 신약성서의 생명이해는 구원론의 차원에서 기독론 중심으로 전개된다는 점이 구약성서의 생명이해와 차이점이다"며 "신약성서의 생명이해는 구약성서의 생명이해보다 더 미래지향적인 강조점을 지닌다는 사실이 또 하나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원시기독교의 케리그마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부활은 참된 생명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준다"고 했다.

그는 "구약과 신약의 관점에서 한마디로 생명에 대한 이기적 태도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생명의 주인, 생명의 창조주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인간의 생명은 모두가 빚진 생명이기 때문이다"며 :그런 생명에 대하여 무관심과 이기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것은 생명의 본질을 올바로 파악하지 못한 무지의 소치이다"고 강조했다.

▲칼 바르트의 육성이 담긴 '비디오 테이프'   ©자료사진

박성규 교수는 "실제로 바르트는 '생명에 대한 경외(die Erfurcht vor dem Leben)'를 가르치는 곳에서(KD III/4, 370f.)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며 "그에 따르면 우리 인간의 생명은 단순히 주어진 것 또는 알려진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인간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또 직적접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바르트에 따르면 그것은 인간의 오해요 착각일 뿐이다"고 했다.

그는 또 "그렇게 생각한 결과 인간은 다른 생명에 대해서도 동일한 착각을 하게 된다. 자신의 생명뿐만 아니라, 동료 인간의 생명과 동물의 생명 또는 식물의 생명에 대해서도 그러한 태도가 가능하리라 착각한다"며 "결국에는 인간이 자신의 생명뿐만 아니라, 생명 그 자체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왜냐하면 인간이 생명에 대하여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제로 생명 그 자체가 아니라, 생명의 현상들(Phanomene)일 뿐이기 때문이다"며 "이러한 현상들은 인간이 현존하고 있음을 지시해 주며, 인간을 인간이라는 생물로 특징지어 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인간의 현존을 지속적으로 인간적인 것으로 성격지어 준다. 그러나 그러한 인식의 근거는 너무도 불확실하다. 특히 신학적 윤리를 위해서 그 근거는 너무도 불확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따라서 바르트에 따르면 하나님이 창조주요 주로서 인간에게 말씀하심으로써,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현존하는 것임을 하나님은 분명하고도 결정적으로 계시하시며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며 "생명의 주되시는 하나님이 인간의 창조주요 주님이 되어 주심으로써만, 인간은 그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인정받는 것이다. 피조물은 창조주를 앞서 갈 수 없다. 그렇게 되면 피조물은 더 이상 피조물이 아니다. 피조물은 창조주의 자리에 앉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바르트의 화해론에 의하면,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의 자리에 오르려는 '교만'이 바로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죄 중의 하나이다"며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다가와서 스스로를 피조물의 창조주라고 말씀해 오실 때, 비로소 피조물은 창조주의 피조물로서 생명을 살게 되고 인정받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러한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요구하는 계명은 '생명 앞에 경외감'을 가지는 것이다"며 "오늘날 온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생명에 대한 이기적 무관심과 생명에 대한 이기적 욕심에 대한 신학적인 해답은 다름 아닌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에 대한 경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창조주를 창조주로 인정함이 없이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다"고 거듭 강조했다.

또한 '왜 질문'에 대해서는 몰트만의 신학을 언급하며 "몰트만에 따르면, 고난을 당하는 가운데 일어나는 '왜라는 질문'에 대하여는 그 어떤 설득력 있는 대답도 없다"며 "이 '왜-질문'은 고난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왜-질문'은 새로운 삶이 시작될 때에만 '바로 그것 때문에'를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들의 죽음에 대한) 왜 질문에 대한 하나님 아버지의 대답은 그의 죽음에 대한 해석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생명으로 부활시키는 것이었다. 그 생명은 죽음 즉, 세계의 하나님 어둠과 영혼의 어두운 밤을 이겨 승리한 생명이다(고전 15:55)"고 강조하며 "부활이 없다면 겟세마네와 골고다는 단지 인간 삶의 무수한 비극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골고다가 없다면 부활절은 단지 자연의 봄축제일 뿐이다"고 했다.

이어 "바르트에 따르면 오늘날의 생명의 위기의 재난에 직면하여 재난 그 자체로부터 시작해서는 문제의 해결책을 얻을 수 없다. 오히려 하나님의 구원계획의 관점에서 그 재난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며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이다"고 말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을 초월적인 힘으로 구원해 내는 슈퍼 히어로가 아니다. 오늘날 세상은 히어로 망상에 빠져 있다.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 맨과 같은 슈퍼 영웅을 기대한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 그런 슈퍼 히어로는 아무런 구원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절망감과 상실감을 더해줄 뿐이다"며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아파하는 자와 함께 아파하고, 죽은 자들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신다"고 했다.

이어 "희생자들만이 억울하게 죽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도 아무 죄 없이 십자가에 희생당하셨다. 인간만이 죽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도 죽으셨다. 나아가 우리 하나님은 생명의 하나님으로서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다. 인간만 자식과 아들을 잃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자신의 아들을 잃으셨다. 인간들만 자신들의 부모님을 잃은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도 십자가에서 하나님을 잃으셨다"며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바로 이 연약한 십자가에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으로부터 인간의 생명위기의 재난을 바라볼 때 비로소 인간에게는 구원의 희망이 다가온다"며 "우리 인간에게 삶과 죽음의 세계의 분리가 절망이요 고통이지만, 하나님의 세계에서는 삶과 죽음의 세계가 모두 주님의 통치 아래 있다.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인간 생명의 희망이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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