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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3 (목)

[설교] 정기영 목사 '기도 그 이상의 사랑과 은혜'

기독일보 편집부 기자 (press@cdaily.co.kr)

입력 2017. 04. 10 00:08  |  수정 2017. 04. 10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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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학술원 제61회 월례기도회 및 발표회 설교

희망을노래하는교회 정기영 목사
▲정기영 목사(희망을노래하는교회).

[기독일보=설교]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수로 오셨을 때 사람들이 귀먹고 말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32절에 보면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말을 전혀 못하는 사람이다. 원어로 보면 “mogilalos(모길라로스)”라고 되어 있는데, 이 뜻은 어려움, 힘듬, 불가능한 이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말을 못하고 그저 ‘어어...으으..그그그..’하면서 소리를 내는 정도였던 겁니다. 어찌 되었던 듣지 못했고, 그 결과 말을 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사람을 치유해주셨고, 그러자 혀가 풀리면서 말을 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저희 집사람이 ‘언어치료사’입니다. 한 동안 대학병원 이비인후과에서 근무하면서 인공와우 수술한 아이들이 말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했습니다. 청각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선천적으로 듣지 못합니다. 그러면 귀 안쪽에 인공적으로 만든 와우를 귀와 뇌를 연결합니다. 그러면 놀랍게도 듣지 못한 아이들이 소리를 듣게 됩니다. 한 번은 10살된 아이가 병원에 왔습니다. 인공와우 시술을 아이에게 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소리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소리가 들리는데, 자기 이름을 불러도 가만히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소리가 자기 이름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귀가 들린다고 해서 바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귀가 들리면 이제 말을 배워야 하는 겁니다. 즉 소리와 그 소리의 뜻을 배워야 합니다. “야옹 하면 이것은 고양이 소리. 칙칙폭폭하면 이것은 기차 소리, 엄마는 바로 저 분” 이렇게 소리와 정보를 연결해서 완전히 새롭게 한 단어, 한 단어를 배워야 합니다.

그러니까 완전히 새롭게 외국어를 습득하는 것과 같은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사람이 어떤 발음을 하려면 그냥 되는 것이 아니고, 수천, 수만번 그 발음을 해야 구강 근육이 자연스럽게 움직여서 정확한 발음을 하게 되는 겁니다. 또 수천번 반복해서 발음을 해야 정확한 음성, 공기의 양, 음의 길이, 그리고 발음이 되는 혀의 위치를 알게 되는 겁니다. 여기에는 상당한 훈련과 시간이 필요한 겁니다.

그런 다음에 문장을 배웁니다. 주어, 목적어, 동사. 영어라면 주어, 동사, 목적어. 아람어라면 주동사, 목적어, 소유격, 목적격. 1인칭, 2인칭, 3인칭, 단수 복수 과거, 현재, 미래, 현재진행형, 미래진행형, 과거진행형, 불규칙동사 등등 엄청난 양의 문법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죠. 언어는 문화의 산물입니다. 그 나라마다, 마을마다 독특하게 쓰는 표현들이 있습니다. 언어는 사실 대부분 문화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관계자와 출입금지’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Staff only'입니다. 즉 “관계자만 허락됨” 이런 뜻이죠.

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당장 말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상당한 시간 동안 듣고, 이해하고, 훈련하고, 말을 하고, 또 사람들 사이에서 대화를 해야 제대로 된 말을 하게 되는 겁니다.

예수님이 듣지 못하고 말 못하는 사람을 치유해 주셨을 때, 그 사람이 들을 수 있게 되었고 말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지 아세요? 그러니까, 예수님은 귀를 들을 수 있게 기능적인 것만 치유하신 것이 아니라, 말을 할 수 있도록 그 사람 안에 엄청난 양의 단어, 언어의 능력, 문장 구사력 그리고 구강 근육까지 다 완벽하게 채워주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말을 하게 되어, 정상인과 똑같이 되었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듣는 기능만 치유해 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이 이 세상에서 정상적인 사람으로 살아가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도록 모든 능력을 다 회복시켜 주신 겁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필요 그 이상을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것이 필요한지도 몰라서 구하지도 않았는데, 주님은 그 이상을 다 채워주시는 겁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소풍을 간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그 옛날 어머니께서 우리들에게 김밥을 싸주신 것을 생각하며, 새벽 일찍 일어나 김밥을 말았습니다. 그리고 혹시 몰라서, 아이가 목마를까봐 음료수를 넣어 주었습니다. 또 김밥 먹을 때, 손에 기름이 묻을까 하여 항균비닐장갑을 넣어주었습니다. 또한 쓰레기를 잘 처리할 수 있도록 비닐종이백을 넣어주었고, 휴지, 과일, 보온병을 다 챙겨주었습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이것 저런 필요하다 생각되는 것을 다 챙겨주었습니다. 아이는 단지 김밥만 말아달라고 했는데 말이죠.

이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기도 그 이상으로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하늘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의 사랑을 믿고 오늘도 믿음으로 전진해 봅시다!

/글=기독교학술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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