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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8 (월)

백석대 주도홍 교수의 롤모델은 칼빈과 손봉호 박사, 김명혁 목사

기독일보 편집부 기자 (press@cdaily.co.kr)

입력 2016. 05. 13 23:41  |  수정 2016. 05. 13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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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협 5월 월례회 '내가 닮고 싶은, 존경하는 신앙의 선배는'

주도홍
▲주도홍 박사(백석대 역사신학 교수)

존경하는 김명혁 목사님께로부터 위 주제에 대해 발제할 것을 들으며, 순간 당황이 되며 얼떨떨했다. 없다면 나는 무례한 인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나는 어떤 분을 존경하는 신앙의 선배로서 꼭 집어 말할 수 있을까? 세 사람을 생각하게 되었다. 요한 칼빈, 손봉호 박사, 그리고 김명혁 박사가 떠올랐다.

칼빈이 내게 전해 준 것은 경건·학문으로서의 신학이다. 칼빈(1509-1564)은 나(1954-)와는 출생연도로 볼 때 445년의 차이를 가진다. 그와 만난 적은 전혀 없다. 그러니 물론 대화를 한 적이 없다. 그렇지만, 곰곰 생각해 보니, 칼빈과 나는 수도 없이 만났고, 그 횟수를 셀 수 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물론 제네바를 방문했고, 그가 목회하던 생 삐에르 교회의 그의 의자에도 살짝 앉아 보았고 슈트라스부르의 칼빈의 교회 강단에도 서서 사진도 찍었다. 나는 신대원에서 약 25년 종교개혁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거의 매 학기마다 나는 학생들과 함께 칼빈을 만나야 했고, 그의 글을 접해야 했으며, 그의 음성을 들어야 했다. 아니 내 목소리로 그의 글을 읽었다. 그러면서 나는 개혁신학자가 되었고, 그의 신학과 사상에 젖어버렸다. 부정할 수 없는 칼빈주의자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신학과 경건에 매료되었다. 칼빈은 학문적으로 빈틈이 없는 학자이면서, 늘 그의 글에는 경건이 흐르고 있다. 학문적이기에 메말라 있는 것이 아니라, 학문적이면서 경건하고, 경건하면서 그는 늘 논리적이었고, 사상의 깊이를 가지고 있었다. 늘 칼빈은 목회현장을 떠나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한국개혁신학회 회장을 2년 동안 하면서 나름의 강조점을 잊지 않았다. 그것은 목회현장을 바라보는 신학 함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나 역시 신대원생들에게 가르칠 때 마다 이 일에 유념하고 있다.

손봉호 박사는 나에게 공의를 가르쳤다. 내가 좋아하는 그의 저서 중 한 권을 들라면, 『약한 자 편들기』이다. 그는 늘 장애자의 친구로 사셨으며 그들 편에 서기를 요구하였던 분이다. 게다가 그는 날카로운 엄함으로 불의와 위선을 나무랐다. 정직한 목회자, 늘 공부하는 목회자가 될 것을 그리고 기독교세계관에 서서 세상을 바라볼 것을 가르쳤다. 늘 그는 선지자의 모습으로 한국교회의 잘못을 지적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정치목사들, 삯군 목사, 잘못된 설교자들을 엄하게 꾸짖었다. 대학 시절 나는 그로부터 철학을 배웠는데, 한번은 그가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에 대한 레포트를 받은 후, 바로 그 다음 주에 강의실에 들고 들어와서 학생들에게 엄하게 꾸중하며 바닥에 거의 모든 학생들의 레포트를 던지며, 레포트를 다시 써 오라는 것이었다. 나름 열심히 썼지만, 이런 모욕(?)을 당하며, 자존심이 상했다. 지금도 바닥에 떨어진 레포트를 줍던 참담한 심정이 생생하다! 물론 어쩔 수 없이 을로서 다시 써서 학점을 받았다. 나중에(40년 후) 직접 여쭤 알고 보니, 읽지도 않으시고 바로 가져와 그렇게 하셨다는 것이다. 자신의 미국 논문 지도 교수가 하던 방법대로 읽지 않고 그냥 돌려주며 그렇게 호된 꾸중을 하셨다는 것이었다. 물론 엄청난 공부를 하여서 후회는 없다. 지금은 그냥 기쁜 추억일 뿐이다. 선생님께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되었고, 사실은 나의 성경적 통일운동도 손봉호 선생님의 영향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강한 요청에 의해 '통일운동에 대해 잘 모르신다'고 사양하시는 그를 내가 섬기던 기독교통일학회 기조강연을 통해 비로소 통일에 대한 특강을 시작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

김명혁 박사 역시 내가 대학시절 총신대에서 만난 교회사 선생님이시다. 프랑스 영화 배우 아랑 드롱 같은 멋진 콤비와 회색 바지 옷차림으로, 허리가 쏙 들어간 긴 치마의 사모님과 함께 대학 캠퍼스에 등장한 그를 나는 먼발치에서 한 학생으로서 부러운 듯 처음 뵈었다. 그가 유학을 끝내고 1975년 총신대에서 시작한 교회사 강의를 들으며 나는 그의 부드러운 강의에 매료되었다. 주입식이 아닌 학생 스스로 발표하게 하는 새로운 토의식 강의에서 선생님은 나의 발표의 독창성을 높이 사셨다. 부족한 학생인 나에게 용기를 주셨으며 격려하셨다. 그가 독일경건주의에 대해 가르치실 때 나는 어느새 독일로 가 있었다. 결국 나는 독일 유학을 떠났고, 개혁교회경건주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나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하나의 바람이 있는데, 김명혁 선생님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 예수님으로부터 나온 사랑과 온유, 겸손과 지혜 거기다 리더십을 가진 목회자, 학자, 기독 시민운동가로 사는 것이다. 아버지를 죽인 북한 공산당을 한 때는 원수로 여겼으나, 그는 예수님의 심장을 지닌 자로 북한을 안타깝게 여기며, 북한을 위해 기도하고 주님의 순전한 사랑으로 물심양면으로 사랑하신다. 연로한 나이에도 동분서주하시는 선생님, 작은 차 아반떼를 기쁨으로 몰고 다니시며, 진자리 마른자리를 가리지 않고 주의 복음을 마음을 다해 전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은 이를 바라보는 제자를 행복하게 하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개인적으로 나의 졸저 『통일로 향하는 교회의 길』을 뜨거운 사랑으로 15쪽이 넘는 추천사를 써주셨으니, 그의 사랑이 어찌 놀랍지 아니한가! 나는 그의 모습에서 종종 사랑의 사도 요한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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