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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8 (월)

[출애굽기 특강] 이선규 목사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려면" (출23:1-20)

기독일보 편집부 기자 (press@cdaily.co.kr)

입력 2017. 12. 05 07:08  |  수정 2017. 12. 05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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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규 목사
▲이선규 목사(대림다문화센터 대표ㅣ대림중국교포교회 담임)

본장에는 모세를 통해 언약 백성들에게 주어진 각종의 생활 규범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십계명의 제9계명의 거짓증거, 거짓 재판 금지 조항과 함께 원수에게 선을 행하고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 것 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사회는 거룩한 사랑의 공동체내에 공의와 사랑 법과 정의가 힘이 아니라 돈이나 뇌물이 더 큰 위력을 발휘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결코 뇌물로 들어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23:1-10)

우리 육신은 항상 눈에 보이는 크고 많은 것 보이는 힘을 의지 하려고 합니다. 또한 진실한 사람 보다 다수의 힘으로 정의를 결정 짖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류가 점점 발달함에 따라 대중화가 가속 되어 대중 사회 문화로 발달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대중으로 조직된 사회는 조직을 구성하고 있기 마련인데 잘못 형성된 여론에 좌우되기 쉬운 것입니다.

이러한 다수의 여론은 개인이나 소수에 대한 무시와 제재를 가하는 심각한 오류를 발생하고 있는 것도 부인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러한 다수를 따르는 악을 범치 말라고 하십니다.

성경의 정의는 단순히 많다는데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까?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유대 군중들의 소리에 굴복한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다수에 의한 행동과 악행들이 얼마나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공의에 입각하여 다수의 결정이 올바르지 않을 때는 혼자서라도 담대히 진리의 편에 설 수 있어야 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즉 진리에 어긋난 다수편이 되지 말라는 것이지요?

아무리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라 하더라도 정의를 추구하며 억울한 상대의 아픔을 깊이 이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엡4;22절에서 “거짓을 버리고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 가 됨이니라.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한 지체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한 몸 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 끼리 서로 거짓말 하는 것은 자기 지체를 속이는 것이고 자기 양 심을 속이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거짓말 하지 말고 참된 것을 말하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원수를 사랑 하라는 규례

하나님께서는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보거든 그 주인에게 돌려 줄 것을 명령 하셨습니다.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지거든 못 본체 하지 말고’ 그 나귀를 도와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였던 죄인들이 길을 잃고 해매일 때 ‘생명의 길로 인도 하시고 (요14:6)무거운 죄짐 을 지고 지쳐 쓰러져 있는 우리를 일으켜 세워 주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왜 원수까지 사랑 하라고 하시나? 박 씨성을 가진 사람과 김 씨 성을 가진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서로가 원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루는 박 씨가 우연히 길에서 구덩이에 빠진 소를 일으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김 씨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자신과 원수지간 이었습니다.

박 씨가 생각 합니다.

그저 모르 채 하고 지나갈까? 평소에 심보를 곱게 써야지 벌 받은 거야.? 고생 좀 해봐라. 그리고 그 자리를 피하려는데 이때 양심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결국 박 씨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김가에 다가갑니다.

그리고 쓰러진 소를 일으키려고 애쓰는 김가를 도와 소를 일으켜 세웁니다. 김가 옆에서 게면 쩍은 미소를 지어 보입니다. 박가도 동일한 웃음을 짓습니다.

서로 이제 서로 원수가 아닙니다. 다정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이유 중의 하나는 ‘사랑입니다. 즉 율법의 완성을 위해서 오신 대속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한 몸인 지체 이면서도 반목과 질시와 미워함으로 이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은 슬프고 도 괴로운 일입니다. 나무의 뿌리가 살아 있는 한 나무의 가지를 잘라 내어도 그곳에서 더 많은 덧가지들 이 자라납니다.

그리고 벌은 때로 주인을 쏘기도 하지만 그들은 주인을 위해 열심히 꿀을 모읍니다.

이와 같이 우리를 괴롭게 하는 원수를 위해 복을 빌 때 우리를 위하여 여 더 큰 은혜와 축복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랑 이십니다 (요3:16)그 사랑을 받은 우리도 하나님과 이웃을 사랗 하라는 쓰라는 명령을 내리십니다. 사랑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시고 신앙은 이웃과 나누라는 것이요 이웃을 위해 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웃을 위해서 쓰라고 받은 하나님의 사랑은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고 자신의 성숙 을 위해서 주어진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는 자신을 위해서 사용 하지 않습니다. 사랑이 없는 믿음은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 유익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성령을 좇아 행하라.

우리는 육신의 요구대로 살아갈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감독자요 우리의 지도자이신 성령의 뜻을 좇아 살아야 합니다.

거듭난 성도들은 육신을 따르지 않고 성령의 뜻에 순종 할 때만 육신의 상징인 가나안 7곱 족속들을 쳐서 복종 시킬 수가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족속의 신을 섬기지 말고 숭배하지 말고 그들의 주상을 파괴 할 것을 명령 하셨습니다.

여기서 주상은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 있는 사각 기둥을 의미 하는데 이러한 석주들이 바티칸 광장을 비롯하여 미국, 영국 프랑스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습니다.

하늘을 향해 솟아있는 돌기둥은 남성의 심 볼로 상징되기도 하고 영저인 의미로 주상은 육신의 “자아:” 잘 못된 성격이나 고집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계속하여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은 아직도 마음에 주상을 파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의 자아인 주상을 파괴 할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처럼 우리에게 놀라운 평강의 복을 내리실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과의 싸움입니다. (엡 6:12)

하나님께서 이러한 싸움에서 실제로 승리로 이끄시므로 영적인 싸움에 담대해야 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길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일은 여러 가지 면에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한 두 사람이 가는 것이 아니라 20세 이상 남자만도 60만 늙은이 여자들 어린이까지 다 합치면 최소한도 200만 명이 넘는 인구입니다. 거기다 데리고 나온 우양의 떼가 무수하고 더군다나 과거에 전혀 가보지 못한 길을 알려주는 지도나 나침판도 없이 가는 길이니 얼마나 힘들고 아슬아슬한 일이겠습니까?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혼자 보내지 않으시고 그 분이 사자를 앞서 보내시겠다고 하십니다. (23:20,13:21, 14:19)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내 이름이 그에게 있음이라(21) 라는 말씀에서 볼 수 있듯 이 사자의 이름은 놀랍고 전지전능하신 여호와의 이름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은 육으로 나타내신바 되셨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 전파 되시고 영광 가운데 올 리 우심이라. (딤전 3:16) 여기 사자는 하늘에서 보낸 하나님의 사자로 21절에 보면 하나님의 이름을 가진 분임 을 알 수 있습니다 . 곧 천사가 그들 앞서 가시면서 무슨 일을 하시는가?

20절에 “내가 너를 사자를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 (29)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구원의 길에서 이탈하는 자를 막아 주시기도 하십니다.

어렵고 위험한 여행 일수록 하나님의 보호는 더 중요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23) 인도 하시되 아무데나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아모리, 브리스, 가나안, 히위, 여브스 즉 그들이 가야할 올바른 목적지로 인도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인도한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잠언 16:29 같은 인도는 해로운 인도입니다.

인도는 그 목적지가 올 바른 곳으로 인도하여야 합니다 (창세기 24:7절) 대로 하나님의 사자가 아브라함의 늙은 종을 앞서 인도하니 (창 24:27절) 대로 바FMS 인 도 여야 합니다. 시편 107;23-30절에는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 “(시107:3)하신다고 하시니 이러한 인도가 유익한 인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 하시는데 앞서 대적을 파하시고 (27) 쫒아 내신다고 하셨습니다. (28)
하나님께서는 여기에서 약속하신대로 (수24:12)에 그들을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은 마치 애굽을 떠나 가나안을 향해 가는 이스라엘과 비슷합니다. 어떠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르는 위험한 길일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도사리고 있는 위험에서 우리를 대적하는 모든 환란들을 피하시고 쫒아내 주실 것을 믿고 담대하게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우리보다 앞서 가십니다

“나의 사자가 네 앞서 가서 (23) 훌륭한 목자가 그의 양 보다 앞서 가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보다 앞서 가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 인간들이 경험해야 할 일들을 다 경험 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문을 지나 부활의 경험을 통하여 아버지 계신 곳을 먼저 가셨습니다.

그리하여 현재 우리 성도들을 위해 간구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어떻게 행하여야 합니까?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열방의 풍습은 헛된 것이라 (렘10:3)고 말한 선지자 예레미아의 외침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죄악 된 세상 풍조를 따라 가지 말고 헛된 욕망과 우상의 노예의 삶을 떨쳐 버리고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는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백성이 될 때 하나님은 우리를 푸른 초장과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주 너희 하나님께 경배 하고 다만 섬기는 여러분들 다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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