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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2 (금)

영화 '서서평...' "트라우마가 남을 살리는 에너지로"

기독일보 오상아 기자 (saoh@cdaily.co.kr)

입력 2017. 05. 04 22:33  |  수정 2017. 05. 06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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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 관객과의 대화 (上)

[기독일보=사회·문화] 지난달 26일 개봉해 개봉 4일만에 누적 관객수 4만 명을 넘어서며 한국 기독 다큐 중에서 최고 흥행 속도를 기록하고 있는 영화 「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 관객과의 대화(이하 GV 시사회)가 지난 2일 오후 8시 대한극장에서 진행됐다.

영화 '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는 32살의 독일계 미국인 선교사 서서평(본명: 엘리자베스 요한나 쉐핑)의 아름다운 섬김과 헌신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서서평 선교사는 미국 장로교가 선정한 '가장 위대한 여선교사 7인' 중 유일한 한국 파견 선교사이기도 하다.

이 날 GV 시사회에 참석한 '스윗소로우' 김영우 이다혜 씨네21 기자는 스스로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고 소감을 밝혔다. 아래는 이날 이 기자와 김영우의 영화에 대한 대담이다.

영화 서서평 GV시사회
▲영화 '서서평...' GV시사회에 초청된 씨네 21 이다혜 기자(왼쪽)가 영화에 대해 말하고 있다.ⓒ김세준 객원기자

# '서평' 이라는 이름이 주는 울림

이다혜 기자(이하 이): 일단 서서평이라고 하는 제목부터가 인물 자체를 잘 표현해주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중요한 게 자기가 스스로 지은 이름이잖습니까? 보통은 누구의 이름을 지을 때 대체로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이걸 한번에 욕심껏 담아 이름을 지으려는 경향이 있어요.

김: 스윗소로우 그룹 이름 지을 때도 뭔가 있어 보이게 지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웃음)

이: 그런데 오히려 '서평'이라는 이름은 그런 걸 담기보다는 덜어내려는 이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만약에 자기 이름을 자신이 지을 수 있다면 무슨 이름을 지을까 생각했을 때 '서평'이라고 하는 이름이 주는 울림의 깊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김영우(이하 김): 저는 ('서평'이라는 이름을 보면서) 그녀의 삶이 다시 태어났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어머니를 통해 버림 받았던 삶이 신앙을 통해 구원을 받은 삶으로요. '쉐핑'이라는 버림 받은 이름에다 '서평'이라는 이름을 스스로 부여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 하늘에서도 받았다고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영화  서서평 GV 시사회
▲영화 '서서평...' GV 시사회에 초청된 스윗소로우 김영우(오른쪽)씨가 말하고 있다.ⓒ김세준 객원기자

# 이름 없는 여성에게 '이름'을

김: 그리고 제가 영화를 보면서 놀라웠던 것은 보통 우리가 트라우마라고 표현하는 것들, 나의 억압, 상처, 아픔은 분노로 표출되거나 다른 사람을 향한 공격으로 표출되는 경우를 많이 봐요. 내 속에서도 그것들을 많이 보고요.

그런데 서서평 선교사의 경우 그것이 온전히 남을 돕기 위한 에너지, 남들을 살리는 에너지로 사용됐다는 것이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본인의 아픔을 극복하고 나면 저 같으면 인정받는 쪽으로 갈 것 같은데 서서평 선교사는 자신과 똑같은 처지에 있는 여성들을 불쌍하게 여기고 자기 마음 속에 품고 살았다는 게 놀라워요.

노예와 같이 살던 이름 없었던 여성들의 이름을 지어주고 그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주고요. 그때 당시 여성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얘기하며 너희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지어진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줬기 때문에 훨씬 더 놀라운 지평을 우리에게 열어주었던 선교사님이 아니었는가 싶어요.

이: 이 영화에서 너무 좋았던 부분이 뭐냐면 말씀해주신 것처럼 이름을 지어주는 거에요. 지금 우리들은 상상하기 어렵죠. 출생신고 자체가 이름을 신고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때는 여자들한테는 이름을 안 지어줬어요. 영화에서도 보면 중간 중간에 서서평 선교사의 영향을 받아서 이후에 공부를 한 사람들을 추적하며 여자를 찾는 과정을 보시면 아버지 누구의 딸로 나오지 이름이 안 나와요. 정확하게 이름이 누군지 알 수 없고 이름이 기록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일을 한다고 해도 거기에 대한 인정이 뒤따르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김: 그 당시에는 사실 여성들을 교육시킨다는 것 자체도 한국 사회에서 많은 제약이 있었을 것 같아요. '남자들 많은데 왜 굳이 여성들을 교육시키려고 하느냐?' 이런 시각이었겠죠.

이: 어쨌든 공부를 시킨다는 것은 그 아이한테 일을 시키지 않는 거죠. 그 자체가 굉장히 큰 선택이에요. 그 이후 60-70년대까지도 굉장히 많은 경우에 집안에서 정말 최소한의 아이들, 특히 장남에게는 공부를 시키고 다른 아이들은 장남을 뒷받침하면서 집안을 지탱하는 분위기였죠.

김: 정말 보고 나면 여성에 대한 문제를 생각을 안 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이 있죠. 그리고 대체로 남자들을 보조하는 역할로 여자 선교사들이 일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고요. 그렇기 때문에 예를 들면 병원은 남자가 세우고 여자들은 간호사들을 양성하는 일을 한단 말이죠. 그런 상황에서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내가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도 의미가 있어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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