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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8 (수)

김병삼 목사 "기도의 문제는 기도하지 않는 것 아닌, '순종하지 않으려' 기도하는 것"

기독일보 조은식 기자 (press@cdaily.co.kr)

입력 2017. 02. 16 16:36  |  수정 2017. 02. 16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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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교회 주일예배 김병삼 목사
▲주일 설교를 전하는 만나교회 김병삼 목사.

[기독일보 조은식 기자] 만나교회 김병삼 목사가 자신의 SNS를 통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이야기 했다.

“기도의 문제는 기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지 않으려’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김 목사는 '내 기도'가 아닌, 하나님 입장에서의 기도, 순종하고자 하는 기도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렇게 포기하고 순종할 수밖에 없는 일이란, 우리가 가진 것도 능력도 없을 때가 아닐까요? 그렇게 우리가 기도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가진 것도, 스스로 능력도 참 많다고 생각하기에 ‘내 방법’으로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은 아닐까요?"

다음은 SNS에 올린 그의 글 전문이다.

“기도합시다!”

둘 중에 하나입니다.
누군가 ‘기도합시다’라고 한다면, 그 의미가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든지, 아니면 정답이든지 말입니다.
‘기도합시다!’ 라는 말이,
문제가 생기고 사건이 터질 때 마다 외치는 구호가 되고, 강단에서 선포되는 절규임에도 불고하고 때로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한 주간 기도에 대한 생각을 하고 말씀을 준비하며 조금은 답을 알 것 같았습니다.
“기도의 문제는 기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지 않으려’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언뜻 이해가 안 되는 말 같지만,
누군가 비장하게 기도하려고 각오를 하고 작정을 했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기도이기 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피해보려는 수단이 아닌가 의심이 가기도 합니다.

헬무트 틸리케라는 독일의 복음주의 신학자는 기도에 관하여 아주 의미 있는 말을 했습니다.
마태복음 7장에서 예수님이 기도에 대하여 말씀 하실 때, ‘두드리라’고 하신 이유가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구할 것을 구하는 ‘행동’으로 ‘두드림’을 해석했는데, 사실은 하나님 앞에서 ‘두드림’은 존귀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가 서 있다는 뜻이라고 말이죠.
하나님 앞에서 두드리는 행위는 함부로 쉽게 기도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제가 들어가도 되나요? 하나님 제가 기도해도 되나요?”라고 물어야 한다는 것은 그 분의 인격앞에 우리가 서 있다는 증거입니다.
존귀하신 하나님 앞에 문을 두드리며 만나게 될 때, 그 ‘기도의 방’에서 참된 기도가 시작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는 기도란,
내 마음대로 하나님을 통제하려는 아주 불경한 태도가 아닐까요?
사실 기도란 하나님 앞에서 ‘나’를 통제하는 것인데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구하라’라는 말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하라는 의미가 아닐까요?
‘찾으라’라는 말 역시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눈으로 인생의 문제를 찾으라는 의미가 아닐까요?

하나님을 존중하면 세 가지가 보일 것 같습니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하나님’이 보이고,
기도하는 ‘나’가 보이고,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보이죠.
그러면 ‘사명’이 보이지 않을까요?
하나님 앞에서 보이는 나는 참 부끄러운 존재죠. 그래서 회개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세상이 보이면 세상을 생각하고 기도하고 배려하고 할 일이 보이지 않을까요?
기도의 능력은 우리를 사명으로 인도할 때입니다.

본 회퍼가 했던 말이 있습니다.
“경건하려고 하는 기도는 음란 행위다!”
이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그런데 몇 번 쯤 반복해서 읽어보니 의미가 확실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경건함을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죄인임을 확인하고 고백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라는 뜻이구나!

기도의 능력은 우리가 마땅히 구할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격 없는 우리가 겸손하게 나아가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기도합시다!’ 라는 말이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가장 능력 있는 말이 되고,
우리가 처한 모든 상황에 가장 정확한 답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하나님 앞에서 ‘아버지!’라고 외쳤던 절규는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기다렸던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우리가 예측하는 결과를 가지고 떼를 쓰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포기이자 순종의 외침과 같은 것 말입니다.

그렇게 포기하고 순종할 수밖에 없는 일이란,
우리가 가진 것도 능력도 없을 때가 아닐까요?
그렇게 우리가 기도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가진 것도, 스스로 능력도 참 많다고 생각하기에 ‘내 방법’으로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은 아닐까요?
기도할 때 우리가 바라보아야 하는 것,
그리고 기도할 때 우리에게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면,
기도가 우리 인생의 ‘해결책’인지 아니면 ‘걸림돌’인지가 분명해지지 않을까요?

혹시 이 글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드시나요?
기도를 꼭 그렇게 어렵게 생각해야 되나요, 좀 쉽게 기도하면 안 되나요?
그런데 조금 생각해 보세요.
기도를 어렵게 생각하면 쉬운 기도가 아닌 ‘참된 기도’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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