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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0 (토)

"극단주의 무슬림·근본주의 정교회의 개신교 박해 더 흔해질 것"

기독일보 편집부 기자 (press@cdaily.co.kr)

입력 2016. 10. 03 00:35  |  수정 2016. 10. 03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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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와 선교의 현장, 세계 박해순위 18위 에티오피아의 기독교 현실은

현지교회가 불타면서 오픈도어가 제공한 성경도 탄 흔적
현지교회가 불타면서 오픈도어가 제공한 성경도 탄 흔적.

[기독일보=선교] 에티오피아는 2016년 세계 기독교 박해 지수()에서 67점을 획득, 박해 순위 18위를 기록했다. 작년에는 박해 지수 61점에 22위였다. 에티오피아 기독교인의 생활의 모든 영역에 이전보다 더 많은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

에티오피아의 박해상황

1. 박해원인

에티오피아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는 주 요소는 이슬람 극단주의(Islamic extremism)와 교권주의(Denominational protectionism)이며, 부수적인 요인으로 반 기독교적 민족 정서(Tribal antagonism)와 독재 정치(Secular intolerance) 그리고 세속주의적 배척(Secular intolerance) 등이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Islamic extremism): 에티오피아 인구는 기독교인 63%와 무슬림 34%로 구성되어 있다. 아파르 주(Afar)와 소말리 주(Somali) 그리고 오로미아(Oromia) 등 지역에서는 무슬림 인구가 압도적이다. 지역적, 나아가 국가적으로 이슬람 과격주의(또는 이슬람의 정치화)가 성행함에 따라 각 교단의 기독교인들이 생활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압박을 받게 되어 극도로 취약해져 있다. 인구 대부분이 무슬림인 에티오피아 동부와 중남부 지역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무슬림들은 기독교인들을 괴롭히며 그들이 공공재를 사용하지 못하게끔 방해하고는 한다. 심지어 기독교인들은 폭력의 대상이 되는데, 이슬람 과격주의가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소말리아(Somalia)와 수단(Sudan)의 상황이 에티오피아에게 영향을 끼친다.

교권주의(Denominational protectionism): 에티오피아 동방 정교회는 지난 수 년 간 정교회를 떠나 개신교 등 다른 교단에 가입하거나 정교회 내의 개혁 운동에 참여하는 교인들을 극심하게 핍박해 왔다. 이러한 현상은 여러 방면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예로 에티오피아 동방 정교회 교인들은 종종 교회 내부적으로 개혁을 시도하는 단체들에게 공격을 가한다. 또 정부와의 관계를 이용하여 기타 교단의 규모를 축소시키고는 한다. 뿐만 아니라, 개신교단의 확장을 제한시키는 법률을 통과 시키도록 정부에게 탄원하기도 한다. 실제로 종교등록 관련 법률에서 동방 정교회는 등록 대상에서 면제되어 있다.

반 기독교적 민족 정서(Tribal antagonism): 1991년 이래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 민족의 문화, 언어, 역사 등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가 시민 생활의 모든 영역을 지배했다. 이로써 뿌리와 정체성을 되찾는 움직임이 시작되었고, 이 과정에서 일부 개인 및 집단 가운데 기독교인에 대해 적대적 정서가 형성되었다. 1974년 이전에는 에티오피아 동방정교회가 국가를 대표하는 종교였다. 1974년에서 1991년 사이에는 공산주의 정부의 통치가 이루어졌으며, 17년 만에야 여러 민족 세력들에 의해 타도되었다. 1991년 공산주의 정부의 몰락 이후 체결된 에티오피아 과도기 헌장(Ethiopian Transitional Charter)은 각 민족의 문화와 정체성이 존중되며 인정될 것을 보장하도록 했다. 현 정부에 의한 이런 움직임은 정치적으로는 합당한 것으로 보이지만, 일부 민족들은 기독교에 대한 분개심을 품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많은 오로모인(Oromos)들이 토속 신앙 체계인 와케페다(Wakefeta)를 신봉하기 시작했고, 또 다른 민족들은 기독교인들에게 민족 간 분쟁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며, 이에 응하지 않는 기독교인에 대해서는 앙갚음을 서슴치 않는다. 또한 소말리 주와 아파르 주 등 일부 지역에서는 종교와 민족이 깊게 연관되어 있어, 이슬람을 배교하는 것이 곧 민족을 등지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독재 정치(Dictatorial paranoia): 에티오피아의 독재 정치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인민 대표회의 대변인과 수상 등 정부 고위 관리들이 개신교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에티오피아 정부는 종교와 특히 기독교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우선 정부는 종교가 다른 어떤 정치 선동 세력보다도 효율적 그리고 효과적으로 민중들을 소집하고 조직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종교 지도자들이 정부에 대항하기 시작한다면 손쉽게 정권이 교체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정부는 개신교도, 특히 신흥 교회의 개신 교도들이 실상은 정권의 타도를 위한 해외 파견 요원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셋째로 정부는 에티오피아 동방 정교회의 지도자 상당수가 반정부 세력들의 지지자라고 여기고 있다. 따라서 종교 기관의 활동 참여 범위를 제한시키는 법률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에티오피아는 2015년 세계 언론 자유 지수(World Press Index 2015)에서 180개국 중 142위로 발표되었으며 프리덤 하우스(Freedom House)의 2015년 보고서는 에티오피아에 대해 “자유롭지 않음”이라고 판정했다. 간단히 말해 정부는 본질적으로 권력 때문에 기독교를 박해하고 있는 것이다.

세속주의적 배척(Secular Intolerance): 앞서 말했듯이 에티오피아 동방 정교회는 1974년까지 국교였다. 1974년 공산주의 사상의 군사 정권이 수립되었고 사회에서 모든 종교를 일제히 몰아냈다. 그후 17년 간의 내전 끝에 1991년 공산주의 정권이 타도되었다. 반군 세력은 과도기 정부를 수립했고, 이어 1995년에 새로운 헌법이 체결되었다. 새 헌법은 제11조에 “국가와 종교는 서로 분리된다. 에티오피아에는 국교가 없다. 국가는 종교 사무에 관여하지 않으며 종교 역시 국가 사무에 관여하지 않는다”라고 국가의 비종교성을 명시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헌법 변호사들은 세속주의 원칙이 에티오피아에서 과도하게 시행된 나머지 역으로 종교의 자유가 침해되고 있다고 본다. 종교적 목적의 방송 시설 설립 금지, 교육 기관에서의 종교 활동 금지 등은 예배의 자유, 개인의 종교에 대해 가르치고 전파할 자유를 제한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본다.

무슬림들로부터 공격받은 무슬림배경신자 압디사
무슬림들로부터 공격받은 무슬림배경신자 압디사.

2. 박해배경

에티오피아(Ethiopia) 그리스도인들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받는 박해 유형은 다른 나라들과 사뭇다르다. 에티오피아에서는 박해자들이 큰소리를 내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고통이 잘드러나지 않는다. 다음 요점들은 에티오피아에서 일어나는 박해 움직임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우선, 에티오피아에서 기독교과 이슬람교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두 종교는 각자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 시도해 왔고, 그 과정에서 터키와 포르투갈, 이집트와 관련되어 많은 유혈 사태가 일어났다. 둘째, 에티오피아에 있는 많은 부족이 기독교에 모두 호의적이지는 않다. 게다가 아파르(Afar)나 소말리(Somali) 등 몇몇 지역의 부족들은 이슬람교와 연계되어 있다. 셋째, 표현과 집회의 자유를 막기 위해 집권당이 모든 도로를 통제하고, 저항을 막기 위해 모든 종교단체 역시 통제하려 하고 있다. 2009년 정부는 종교, 협회 결성, 표현 및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을 제정했다. 이 법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은 이제 해외에서 자선사업 후원금을 받을 수 없고, 인권 향상과 분쟁 해결은 물론 민주주의와 관련된 어떤 일에도 관여할 수 없다. 집권당은 2015년 5월 총선 결과에서 국회 의석 수를 모두 차지한 것을 바탕으로 지배력을 더 공고히 하고 있다 또한 하일레 마리암 데살렌(Hailemariam Desalegn) 총리는 시민사회를 위한 언론의 자유 등에 관해 국제단체에서 요구하는 탄원을 지금껏 묵살해 왔다. 그럼에도 에티오피아는 국제적으로 원조를 받는 대표 국으로 남아 있다. 넷째, 에티오피안 정교회 기독교인은 내부에서 개신교도와 개혁주의 노선의 단체를 공격하고 있다. 에티오피안 정교회 기독교인 가운데 극단주의자들이 이런 공격을 일삼고 있다. 그들은 잡지나 웹사이트, 신문 등에 ‘신출내기, 거짓 선지자, 성모 마리아를 부정하는 자’와 같은 선동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개신교도와 복음주의자를 공격하고, 그들을 불신자나 이단자로 묘사하기도 한다. 해마다 에티오피아 개신교도는 6.7%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4년 센서스의 조사에 따르면, 기독교 신자가 에티오피아 전체 인구의 61.6%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슬람교 32.8%, 점령술을 믿는 부류 4.6%, 가톨릭 0.9% 순으로 조사되었다. 에티오피안 정교회 그리스도인이 에티오피아 전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반면 개신교도는 10%에 지나지 않는다.

2007년 센서스 조사에서는 정교회 기독교인이 전체 인구의 43.5%, 개신교도 18.6%, 이슬람교도 33.9%로 약간 변화를 보였다. 이러한 종교인구의 변화로 정교회 기독교인과 무슬림은 개신교도를 향해 더 큰 적대감을 갖게 되었다. 한편 개신교도의 증가는 대부분 정교회 기독교인의 유입에서 비롯된 것이다.

3. 기독교 유형들

현재 에티오피아에는 세가지 유형의 기독교가 존재한다.

- 역사적인 기독교 공동체: 에티오피안 정교회 기독교인이 전형적인 예다. 그들은 에티오피아에서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에티오피아에서 일어나는 박해의 원동력이 지닌 복잡성을 설명해 주는 한가지 요인이다. 이들은 박해당하기도 하지만 박해하는 세력이기도 하다. 이들은 주로 정부나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에게 박해당하는데, 부족 중심 지역에서도 같은 압력을 받는다.

- 기독교 개종자: 무슬림 출신 개종자(MBBs)를 포함하여 다른 기독교 교단에서 개종한 사람도 포함된다. 토속신앙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경우 역시 포함된다. 에티오피아에서 개종은 여러 박해 요소 위험에 노출된다. 무슬림이 중심을 이루는 지역에서 무슬림 출신 개종자는 주로 가족, 공동체, 지도자나 다른 종교지도자에게 박해당할 위협에 놓인다. 에티오피안 정교회 기독교인이 중심을 이루는 지역에서는 주로 정교회 추종자들이 이들을 박해한다. 기독교 개종자는 모든 부분에서 정부에 박해를 받는다. 또한 종족간 적대감이 널리 퍼진 지역에서는 전통적인 토착종교를 고수하려는 부류나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여 자신을 과시하려는 무슬림에게 박해를 받는다.

- 비전통적인 개신교 교회: 복음주의나 오순절파와 같은 교회는 현재 에티오피아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개신교 교단이다. 이런 부류의 기독교인 역시 정부와 에티오피안 정교회 기독교인, 이슬람교에 심각한 박해 공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독교 교회는 다른 교단보다 교세가 매우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예수님을 믿는 이유로 순교하신 아버지를 둔 아이 (왓시훈)의 예배
예수님을 믿는 이유로 순교하신 아버지를 둔 아이(왓시훈)의 예배.

4. 삶의 영역에서의 박해 정도와 폭력

*박해유형: 에티오피아(Ethiopia)의 박해 유형은 이슬람 극단주의와 교권주의를 비롯해서 기독교에 대한 적대감, 그리고 독재정치이다. 기독교인에 대한 핍박을 나타내는 다섯 개 영역의 평균점수(11.987)는 작년(10.539)보다 상당히 높다. 가장 큰 증가가 이루어진 영역은 국가와 지역으로 교회, 개인과 가족 영역이 뒤를 이었다. 폭력분야의 점수는 낮아졌지만 2015년 기독교 박해 국가 순위 8.704에서 올해 7.037로 여전히 높은 편이다. 이것은 위의 네 가지 핍박원동력이 결합되어 점점 박해압력의 증가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아래 표의 박해 패턴을 살펴보면, 박해에 대한 압력이 개인영역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으며 지역사회와 교회의 점수 또한 평균을 넘어서고 있다.

*개인 영역: 기독교인들이 가장 큰 고통을 받는 영역으로 개종한 신자들이 반대를 흔하게 경험하고 있다. 무슬림배경신자들(MBBs )에게 있어서 상황은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가족 영역: 가정 안에서 박해는 흔한 일이다. 에티오피아 그리스 정교회(EOC) 신자가 아닌 경우, 무슬림과 정교회(EOC)가 지배하는 지역에서 장례를 치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무슬림이 지배하는 지역에서는 아이들이 이슬람 학교에 다녀야 한다. 또한 대다수의 지역에서 가족의 신앙으로 인해 신자들의 자녀들은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지역사회 영역: 정교회(EOC) 신자들이 다수 거주하는 지역에서 개신교들과 정교회를 떠난 신자들은 정교회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족식구들과 지역사회 주민들로부터 심각한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 몇몇 지역에서 무슬림배경의 신자들에게는 지역사회의 자원을 나누어 갖는 일이 허락되지 않는다. 또 다른 지역에서는 신자들이 취업에서 의도적으로 제외되거나 차별을 받고 있다.

*국가 영역: 국가차원에서 정부는 사회전반을 통제하려는 노력에 노골적으로 사로잡혀 있는 듯 하다. 표현과 유대의 자유금지를 목표로 하는 엄격한 시민사회 법을 이용하여 종교의 자유를 제한하며, 나라안에서 선교사들의 이동을 막기 위해 보안 및 관리와 관련된 이슈들을 터뜨리고 있다. 기독교인들을 상대로 한 폭력을 다루는데 있어 정부의 태만을 지적하는 보고서들도 있다.

*교회 영역: 교회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중의 하나가 등록에 관한 것으로 정부당국은 그리스 정교회(EOC) 또는 무슬림의 등록에 관해서는 강요나 요구를 하고 있지 않지만, 다른 기독교인들에 대해서는 법적인 절차를 밟아 등록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일부 정교회와 연계된 공무원들이 비 정교회 신자들을 감시하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무슬림 다수 지역에서 박해 선동자들에 대해 반대 발언을 하는 것은 위험한 상황을 초래하기 때문에 많은 교회 지도자들은 가해자들을 상대로 공개적인 발언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슬림 다수지역에서는 무슬림출신 신자(MBBs)들이 공격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신의 신앙을 숨기며 생활하고 있다.

*폭력: 위의 박해 패턴에서 살펴보았듯이, 작년과 비교해볼 때 폭력점수가 약간 감소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력과 관련된 많은 사건사고가 발생했다. 한 현지 사역자의 보고에 의하면, 보고기간에 135개의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박해의 주 요인으로는 이슬람 극단주의와 교권주의가 가장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슬람 극단주의가 발생시킨 폭력이 대략 50%를 차지하고 교권주의가 나머지의 25%에 해당한다. 신자 세 명이 살해되었고 피해를 입은 교회가 여러 곳 발생하였다. 또한 기독교인들이 소유한 재산에 대한 폭력적인 공격도 발생하면서 이로 인해 신자들은 집을 떠나거나 숨어 지내야만 했다.

5. 미래전망

에티오피아에서 박해당하는 교회의 미래는 다음 몇 가지 유형으로 나뉠 것이다. 첫째, 그 동안 그래왔듯이 혈연관계 구조와 노골적인 차별은 앞으로도 여러 방면에서 계속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둘째, 정부는 뜻이 다른 세력들을 서로 이간질하여 정치적인 세력 균형을 이루는 전략을 계속 유지할 것이며, 이것은 에티오피아에서 활발하게 교회를 핍박하는 또 다른 요인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정부는 교회나 그리스도인에게 폭력을 가하는 단체에 대항해 어떠한 제재나 압력을 가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셋째, 교회 교파 간의 불화와 단결되지 않는 모습이 외부 핍박에 저항하는 힘을 약화시키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에티오피안 정교회 기독교인들이 다른 교파들을 잔인하게 고소하거나 개신교도를 핍박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정학적인 위치를 들 수 있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정세가 가장 불안한 북동부에 위치해 있다. 에티오피아에는 5백만 명의 소말리아인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것은 에티오피아에 체류하는 외국인 가운데 아주 높은 수치다. 또한 경계가 삼엄하지 않은 국경지대를 다른 나라들과 넓게 맞대고 있다. 소말리아에 있는 극단주의 무슬림은 에티오피아를 기독교 국가라고 주장하며 역사적으로 소말리아의 원수로 생각하고 있다. 소말리아 군 지도자는 무슬림 국가인 소말리아가 기독교 국가인 에티오피아에 침략당했었다고 주장한다. 극단주의 이슬람 세력인 알샤바브(al-Shabaab)는 에티오피아의 주요 시설들을 공격하겠다고 위협했다. 따라서 알샤바브 핵심부가 파괴되지 않는 한 케냐에서 벌어진 것과 비슷한 공격이 에티오피아에서도 계속될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 특히 개신교인을 향한 박해는 앞으로 더 흔해질 것이고 이런 박해는 주로 극단적인 무슬림과 에티오피안 정교회 근본주의자의 주도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국가와 그리스도인을 향한 위협을 계속 넓혀갈 것이다.

에티오피아의 상황을 이해하는 핵심 요소들

-종교를 대신하는 민족주의

에티오피아는 수세기 동안 황제가 다스리는 국가였다. 숨(Aksumite) 제국으로 알려져 있으며 오늘날 예멘, 수단, 에리트레아 및 에티오피아 지역에 해당되며, AD 940년경 멸망했다. 1991년 반군이 군사 정권을 몰아내면서 에티오피아는 전혀 다른 형태의 정부로 변모했다. 1995년 헌법이 재정되기 전까지 반군은 다른 당들과 연합하여 과도 정부를 설립했다. 임시헌장(Transitional Charter)에서는 지방자치권을 허용하고, 각 민족에게는 자신들의 고유 언어로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임시헌장의 내용과 동일하게, 1995년 재정된 헌법에서도 인종에 따라 자치권을 가진 연방정부를 수립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러한 이념은 티그레(Tigre; 에티오피아 북부의 주)지역의 자치를 주장하는 티그레인 인민해방전선(Tigrayan People’s Liberation Fron; TPLF)과 정당에 기반을 둔 다른 민족들의 지지를 얻었다. 티그레인 인민해방전선(TPLF)은 반정부단체인 에티오피아 인민혁명민주전선과 더불어 주요 집권세력이다. 이들은 1970~80년대 발생한 무장투쟁 동안 권력을 잡았고, 에티오피 내 민족성을 강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민족성은 종교를 대신 할 수 있다. 에티오피아의 정체성을 나타내 보이는 방식은 종교보다는 민족성에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어떤 민족 집단에게는 종교가 그들의 정체성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암하라(Amhara; 에티오피아 북서부 지방)와 티그레이(Tigray) 지역은 역사적으로 에티오피아 정교회와 친밀한 관계에 있는 반면, 오가덴(Ogaden)은 소말리아의 이슬람교 민족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정치적 동원은 주로 민족 집단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종교로 인한 갈등이 발생하긴 하지만, 에티오피아의 불안정은 주로 민족에 기반을 둔 무장 세력과 연관돼 있다. 이러한 단체들은 종교에 기반을 두기보다는, 티그레이(Tigray) 중심의 사회 안에서 느끼는 소외감이 갈등의 주요 동기가 된다. 2015년 집권여당은 야당과 겨뤄 국회 의석을 100% 차지했다고 주장했는데, 인권단체 및 민주주의와 법을 위해 애쓰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에티오피아의 종교

역사적으로 에티오피아에 기독교는 깊이 뿌리내려 있다. 에티오피아의 주요 기독교 단체들은 에티오피아 정교회(Ehiopian Orthodox Church) 또는 개신교의 여러 종파에 속해 있다. 개신교는 19세기에 전파됐으며, 이슬람교 역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슬람교는AD 615년 에티오피아 북부 도시 악숨으로 이슬람교도들이 이주했던 히즈라(Hijra)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에티오피아의 정체성은16세기 로마 카톨릭교회(Roman Catholic Church)가 전파되던 시기에 대체로 형성됐다. 사실상, 에티오피아는 이슬람교에 비교해 기독교를 옹호하고 있다. ‘테러와의 국제적 전쟁’이라는 구호는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그렇더라도, 에티오피아에는 상당 수의 이슬람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는데, 수피교(Sufism; 이슬람 교의 신비주의자)는 오랜 전통을 갖고 있으며, 보수적인 살라피스트(Salafist; 이슬람 근본주의자)세력은 1930년대부터 명맥을 이어오고 있으고, 60년대 이후부터 세력이 커져가고 있다. 이러한 이슬람 집단은 에티오피아의 동부지역 주변을 따라 그 세력이 집중되어 왔지만, 지금은 현 에티오피아 정부마저 염려하고 있으며, 에티오피아 국민들에게 영향을 미칠 정도로 그 세력이 크게 성장했다. 이슬람 공동체, 특히 지도층은 자신들의 의견을 더욱 적극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종교적 활동에 영향을 주는 정부의 시도들

연이어 에티오피아 정부는 신앙생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행동들을 계속해서 시도하고 있다. 예를 들면, 현 여당인 에티오피아 인민혁명민주전선(Ethiopian People’s Revolutionary Democratic Front; EPRDF)은 1991년 정권을 장악한 후,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대주교를 교체시켰다. 원래 대주교의 지위는 죽기 전까지 평생 유지되는 직위이다. 이 사건은 정부가 종교 단체에 더욱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을 암시한다. 더욱이, 종교기관을 자기들의 것인 것처럼 취급한 이후부터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정부의 간섭에 분개하고 있다. 게다가, 종교적으로 보면 형식적인 정치조직은 엄밀히 말해 에티오피아에서 금지시 된다. 비공식적이며 정치적으로 조직된 종교 단체들도 존재한다. 이러한 단체들은 특히 에티오피아의 디아스포라(Diaspora)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에티오피아의 정치 체제 안에 있는 민족성과 여전히 관련되어 있다. 이슬람 배경 세력에 맞서 더욱 활발해 지고있으며, 예무슬리모크데이(YeMuslimoch Guday; 이슬람 문제)와 세울 이슬람(Sewtul Islam)과 같은 특정 종교 간행물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갈등 속 개신교의 움직임

이슬람 개종 신자들이나 에티오피아 정교회를 비롯한 개신교의 움직임은 정치에 무관심하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정부와 양존하는 핵심 종파 사이에 고조되는 있는 갈등 속에 내몰리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에티오피아 정부가 종교 보다 민종성을 강조하고, 교회와 이슬람 사원을 마음대로 방문하지 못하게끔 하려 한다. 이것이 정치와 관련 없는 일처럼 보이지만 개신교회를 더욱 억누르려는 정부의 전략이다. 이 전략은 정교회나 이슬람 사원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 같다. 동시에 활발한 개신교 전도활동으로 인해, 정부와 정교회의 박해가 존재 하고 있고, 이슬람 또한 그들의 분노를 개신교도에게 향하고 있다. 에티오피아 전체 국민들의 기독교에 대한 인식이 가시적인 박해를 만들진 않지만, 하위계층에서의 기독교에 대한 인식은 분명한 박해의 요인으로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에티오피아 교회의 실상과 역사

무슬림배경신자들의 소그룹성도들을 위한 기도
무슬림배경신자들의 소그룹성도들을 위한 기도.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인 오래된 국가 중 하나이다. 기독교는 4세기경, 왕조가 신앙을 받아들였던 스마이트(Axumite)시대에 들어왔다. 그리고 점차적으로 기독교 신앙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상위층에 의해 신앙이 받아들여짐에 따라 에티오피아 교회는 이집트의 콥틱 정통 교회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였다. 그 결과 에티오피아 정통교회가 1959년까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부터 대주교임명을 받았다. 이 교단은 1974년까지 국교로 인정되었다.

이 나라에 들어온 두 번째 형태는 로마 카톨릭 이었다. 이것은 16세기 동안 에티오피아와 포르투칼의 관계에서 비롯되었다. 포르투칼은 에티오피아의 국교를 카톨릭으로 바꾸려고 노력하였는데 이러한 시도는 하층민들의 격렬한 저항으로 피를 흘리게 되었다. 이로 인해 카톨릭 선교사들은 나라에서 추방되었고 19세기까지 허락되지 않았다. 에티오피아는 1632년부터 약 150년간 쇄국정책을 유지했다. 오늘날 몇 십만의 로마 카톨릭 신자들이 남아있다. 아디스 아바바의 대주교(Archbishop of Addis Ababa)가 교회를 다스렸다.

세 번째 형태는 신교였는데, 1866년초 스웨덴출신의 루터파 선교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이루어졌다. 20세기 초, ITFB(the Independent True Friends of the Bible)소속의 스웨덴 선교사들이 이 나라에 정착하였다. 스웨덴 루터파 선교사와 ITFB소속의 두 그룹은 연합하여 함께 사역을 이루어 나갔다. 그 뒤를 이어 세계 각국에서 많은 선교사들이 속속 들어왔다. 1927년 독일 선교사들이 입국한 이래로,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스란드, 미국 선교사들이 1940년대와 50년대에 들어왔다. 이들은 루터파 선교사들의 헌신으로 에티오피아 복음교회인 메케네 예수교회(MekaneYesus)에서 함께 사역하게 되었다. 1920년경 미국장로교회가 들어와 오로모 종족(the Oromo people)을 대상으로 선교하였다. 이탈리아가 진군했을 때, 장로교선교사들이 추방되었는데 그들은 떠나기 전, 벧엘 복음교회라는 단체를 조직하였고, 이 단체는 1970년대 중반에 메케네 예수교회와 통합하였다. 에디오피아 정통교회는 대중들 사이에 있는 선교사들의 영향력을 제한하려고 시도해 왔다. 그렇지만 나라에서 유일한 교회로 남으려는 시도는 수단 국내 선교단체(SIM)의 등장으로 소용없게 되었다. SIM는 1927년 토마스 A. 람비에 박사에 의해 광범위한 사역들을 담당하였다.

이탈리아의 축출과 2차 세계대전의 결말은 이 나라에 더 많은 기독교 단체들이 들어오는 배경이 되었다. 1950년 미국의 침례교단은 아디스 아바바의 서쪽인 암보에서 첫 선교단체를 조직하였는데, 그 결과로 두 개의 커다란 토착민 교회가 생겨났다. 이 교회들은 스칸디나이바 오순절단체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다.

1995년 헌법은 국가와 종교의 분리와 함께 종교의 자유를 선언하고 있다. 이 나라의 종교분야에서 여러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에디오피아 정통교회는 여전히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데 영향력을 발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정통교회는 신교의 급격한 성장을 막는 것은 실패하였다.

/글·사진=한국오픈도어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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