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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전후 고난의 시대...이용도 '고난 받으시는 예수' 강조

기독일보 오상아 기자 (saoh@cdaily.co.kr)

입력 2015. 02. 12 15:44  |  수정 2015. 02. 12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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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바른교회아카데미 연구위원 세미나, '기도의 신학, 경건의 실천' 주제로 개최

▲류금주 교수   ©서울장신대

[기독일보 오상아 기자] 제18회 바른교회아카데미 연구위원 세미나가 9~10일 '기도의 신학, 경건의 실천'을 주제로 양평 코바코 연수원에서 개최됐다.

이날 '이용도의 고난 받으시는 예수신비주의' 라는 주제로 발제한 서울장로회신학대학교 류금주 교수(교회사)는 "이용도(1901-1933)는 감리교회의 목사로서 한국 교회 최초의 신비주의자로 알려져 있다"며 "신비주의는 대개 하나님과의 합일(合一)을 추구하는 신앙의 형태라고 본다. 그런데 이용도는 고난 받으시는 예수와의 합일, 즉 고난에서 예수와 하나가 되는 것을 연모하여 간 삶의 흔적이 뚜렷하다. 그래서 그의 사상을 '고난 받으시는 예수' 신비주의라고 명명할 수 있다. 이 명칭은 물론 '고난 받으시는 그리스도' 신비주의로도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용도 자신은'그리스도'보다는 '예수'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했기에 '고난 받으시는 예수'라고 이름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흔히'역사의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라는 말을 사용하곤 한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그들이 본 역사의 예수 곧 성육신하셔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예수'가 바로 신앙의 그리스도 곧 자신들을 구원하시고 만유의 주가 되시며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시며 이내 심판주로 오실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는 일에 그들의 전 생애를 바치고 있었다. 그만큼 예수는 그분의 성육신과 이 지상 생애에서의 사역을 강조하는 이름임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편 '그리스도 신비주의'는 기독교회 안에 유일하게 가능한 신비주의의 형태를 일컫는 말이다. 즉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를 잇는 유일한 중보자요 메디아(media)가 된다"며 "그런데 고전적 신비주의는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데서 어떠한 중보자도 매체도 용납하지 않는다. 신과 직접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 그들의 목표이다.중간에 누군가가 끼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고전적 신비주의는 기독교와 양립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다시 말하면 기독교회 안에 유일하게 가능한 신비주의 형태가 바로 '그리스도 신비주의' 인데 이를'예수 신비주의'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신비주의 자체가 현실과 세상을 경원시하는 경향을 띠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육신과 지상에서의 삶을 강조하는'예수'를 포함한'예수 신비주의'라는 말은 거의 쓰이지 않는 표현이다"며 "그런 의미에서 이용도가 현실과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신비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그리스도'라는 표현보다는'예수'라는 표현에 집중했던 것은 독특한 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우리 믿음의 대상으로서의 그리스도 보다는 성육신 하셔서 고난당하신 예수와 하나 되기를 애모해 마지 않았던 것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점에서 볼 때, 이용도의 경우 성부ㆍ성자ㆍ성령 하나님 중에서 고난 받으시는 성자의 이미지가 압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즉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이 신비주의자의 이상(理想)이라고 했을 때, 이용도에게서 이 하나님은 바로 성자 하나님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용도가 예수의 고난에 집중하고 고난에서 예수와 하나가 된다는 '고난 받으시는 예수 신비주의'로 그의 사상을 굳히게 된 이유에 대해서 첫째 그가 살던 시대가 바로 고난의 시대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류 교수는 "이용도가 한국교회 현장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때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강원도 통천에 파송을 받아 목회하던 1928년부터였다. 그리고 1933년 지병인 폐병으로 그의 생을 마감하기까지 만 5년여의 시간을 한국 교회 현장에서 살다가 갔다. 즉 1930년대를 전후한 그 시기가 이용도가 그의 신비주의를 실험해갔던 시간이다"며 "1929년은 세계적인 경제대공황으로 각인되어 있는 해로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의 경우 그것은 정치적인 독립 상실에 이은 경제적인 독립 상실의 격변으로 체감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교인의 대부분이 농민이었던 한국 교회도 식민지 한국의 경제적 시련의 참경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교인들은 살 곳을 찾아 만주로 간도로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다. 세계 경제대공황의 여파로 해외 선교본부의 선교비 지원 삭감도 불가피했다. 게다가 3ㆍ1운동 이후 일본의 강압으로 선교사들이 한국 교회 현장에서 선교 기관과 같은 교회 후방으로 인퇴하게 됨에 따라 한국 교회는 선교 역사가 채 40년도 되지 못한 어린 나이로 선교사의 후견 없이 역사의 격랑을 헤쳐 나가야만 하는 형편이었다"고 소개했다.

또한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전환하면서 갑자기 그 통제가 해체된 세속문명의 쇄도, 3ㆍ1운동의 실패로 인해 한국 지성사회에 만연했던 허무주의와 비관주의, 러시아의 공산화에 따른 공산주의와 유물론의 국내 침투, 일본의 물질문명 중심의 근대화 추진과 한국 사회의 정신적인 피폐 획책과 피폐상 등 이런 것들이 대개 이용도가 활동하던 시대의 한국 교회가 마주한 역사적 정황이었다"고 했다.

그는 "이용도가 활동하던 1930년을 전후한 시기는 경제적 고난과 정신적 고난이라는 역사의 대전환기를 나이어린 한국 교회가 스스로 헤쳐가노라 애쓰고 있었다. 이러한 고난의 시대에 대한 응답의 하나로서 나타난 것이 이용도의 신비주의였다"며 "시대의 고난에서 예수의 고난을 몸으로 겪으며 고난 받으시는 예수와 하나가 되어 고난의 시간을 말없이 겪어나갔던 것이다"고 보았다.

두 번째 이유로는 이용도 개인의 삶이 고난의 연속이었음을 들었다. 이어 "이용도는, 예수를 믿노라 핍박을 받다가 자살도 여러 번 생각하시던 어머니의 신앙과 그 기도 때문에 자신이 주의 일을 위해 나서게 되었다고, 고백한 일이 있다"며 "겨우 밥이나 먹는 사람이 부자로 불릴 정도로 가난했던 그 시절, 이용도는 빈한하기만 했던 가정의 불화와 신앙으로 인한 핍박을 겪으며 성장했다. 그는 결혼하고 나서도 주의 일을 하노라 집안을 돌아보지 않는다는 원망을 부모와 형제와 아내로부터 종종 듣고 있었다. 가난했던 그의 결혼생활은 불행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더욱이 일곱 명의 자식을 낳았으나 그 중 장남 영철만이 살아남는 참척(慘慽)의 아픔을 여섯 번이나 겪었다"고 했다.

또 "자신의 병고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동생까지 병으로 앞세우는 슬픔까지 겹친 그였다"며 "'구약 때에 욥이 있고 신약 때에 욥이 있고 현대의 욥 내가 있는가?' 이것은 자식을 앞세우고 난 이용도의 토로이다"고 말했다.

류 교수는 "이용도의 '고난 받으시는 예수' 신비주의가 오늘의 한국교회에 울리는 여운이 없지 않다"며 "첫째, 시대의 요청에 응답하는 신앙이다. 이용도는 정신적 고난과 경제적 고난에 시달리는 한국의 겨레와 교회를 고난 받으시는 예수와의 합일에서 위로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어 "둘째, 그의 사상의 실존적 형성이다. 이용도의 신비주의는 그의 삶과 불가분리의 것이다. 고난으로 점철된 그의 삶에서 그의 신비주의가 형성된 것입이다. 자신이 몸으로 겪은 고난을 신앙적으로 승화한 것이 그의 '고난 받으시는 예수' 신비주의였기에 당시 한국 교회에서 울린 이용도의 메시지는 그토록 호소력을 지닐 수 있었다"고 했다.

또 "셋째, 남의 문제를 내 문제로 아는 신앙의자세다. 이용도는 그의 신비주의의 지역적 전개 과정에서 한국 겨레와 교회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는 또한 자신과는 다른 모습으로 시대의 격랑을 헤쳐 나가는 한국 교회와 끝까지 동행하였다"고 했다.

마지막으로는 "'주의 역' 이론에서 보인 그의 사명의식이다. 주님의 일을 하는 자를 통해서 주님이 나타난다는 그의 말은 우리의 옛사람은 그리스도와 합하여 죽고 이제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이라는 크리스천의 실제를 명료하게 보여준다"며 "곧 우리 다 하나님의 일을 맡아 할 뿐, 그 일을 통해 우리 자신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는 투철한 종(從)으로서의 사명의식이 그에게서 빛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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