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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9 (수)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우리 기독교에 제2의 3∙1절이 필요하다

기독일보 편집부 기자 (press@cdaily.co.kr)

입력 2018. 02. 27 06:45  |  수정 2018. 02. 27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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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만석 목사
▲한국교회언론회 대표 유만석 목사. ©기독일보DB

올해가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99주년이 된다. 3∙1독립만세운동은 우리 역사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1919년 3월 1일, 서울의 탑골 공원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확산되므로, 우리 민족의 독립에 대한 소망을 불어 넣게 된다.

그 여파로 해외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게 되고, 만주지역에서는 항일무장 독립투쟁이 시작되었다.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고등교육을 위한 대학 설립을 위한 움직임이 비롯되었고, 국산품 애용과 근검절약운동이 벌어지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3∙1독립만세운동은 그 자체로는, 뜻하는 바를 당장 이루지는 못했으나, 후에 설립된 상해임시정부가 '민주공화정'을 밝히므로, '백성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세우겠다'는 의지가 표명되었고, 독립에 대한 분명한 뜻을 만천하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또 세계 여러 나라의 독립 의지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중국에서는 북경대학생들을 중심으로 5∙4운동이 일어났고, 인도에서는 마하트마 간디를 중심으로 비폭력/무저항 운동이 일어났으며, 필리핀/베트남/이집트/터어키 등의 독립운동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진다.

3∙1독립만세운동을 결행함에 우리 기독교의 역할은 대단하였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 가운데 기독교인이 16명, 3∙1독립만세운동을 점화한 48명 가운데 24인이 기독교인이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벌어진 311개 지역 가운데, 기독교가 주동이 된 지역이 78개소, 기독교와 천도교가 합작한 지역이 42개 지역이다. 그러고 보면, 기독교의 참여율은 25~38%에 달한다.

또 그 해 3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체포/투옥된 사람이 9,458명인데, 이 중에 기독교인은 2,087명으로 22%를 차지한다. 당시 한국의 인구가 1,600만 명인데, 기독교인은 20만 명 정도였다. 그렇다면 전체 인구에서 1.3~1.5%를 차지하는 기독교인들이 독립만세 운동에 참여한 운동량은, 인구 비율에 따르면 10배 이상 높은 것이었다.

왜 기독교인들의 참여율이 높았는가? 기독교 신앙이 정의/자유/평화에 기반한 것이며, 자주/평등/해방을 목표로 한 민족주의가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즉 신앙과 민족주의가 잘 결합되어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다.

또 한 가지는 한국 교회 장로교의 경우를 보면, 1907년 독노회를 구성하고, 1912년 총회를 조직하므로 교회를 통한, 전국적인 네트-웍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1918년 일제가 조선기독교를 장악하기 위한 압력조직을 만들려 하므로, 3∙1독립만세운동에 기독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결국 당시 기독교는 소수이며, 신흥종교이면서도, 3∙1독립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함으로 독립의 의지와 정신을 함양하였고, 이후에 해방과 건국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3∙1독립만세운동을 어떻게 바라보며, 그 정신을 어떻게 계승해 나갈 것인가?

첫째는 국민의 주권을 지키도록 하여야 한다. 당시 일제는 우리나라 국민들을 나라를 빼앗기고도 분노를 느끼지 못하는 '열등민족'으로 보았다. 우리는 지금도 여러 국제적인 관계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어디에도 예속되는 '식민지'적 발상은 거부해야 한다. 최근에 정치권에서 '중국몽'이라는 말이 나왔다. 어찌하여 우리가 중국과 같은 꿈을 꾸어야 하는가?

둘째는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 3∙1독립만세운동은 당시까지 한 번도 있지 않았던, 백성이 주인이 되는 '민주공화정'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였다. 그 후 독립된 대한민국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다. 이것이 국가의 정체성이며, 지금까지의 국가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셋째는 세계 평화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당시 "독립선언서"를 보면, 우리 민족의 독립이 동양의 평화, 세계의 평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 또 압제국이었던 일본을 향해서도 '공존'과 '호혜'를 강조함으로, 우리 민족이 독립 후 나아갈 길을 제시하였다. 지금도 한반도를 핵으로 무장하려는 시도에 대하여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칼을 가진 자는 칼로 망하기' 때문이다.

넷째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당시 독립을 위해서는 기독교, 천도교, 불교 등이 합력하였다.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산다. 그런데 요즘 정치권에서부터 불거져 나오는 것은 '분리주의' '남남 갈등' '지역 갈등' '분권주의' '분파주의'가 난무하고 있다. 99년 전, 독립만세운동을 펼칠 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을 것은, '화합'과 '단결'이 이뤄져야 한다.

99년 전, 기독교에 의하여 대대적으로 벌어졌던, 3∙1독립만세운동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원동력이자, 밑거름이 되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일제에 의한, 무력과 속임수로 인하여 국권을 잃었지만, 정신만은 빼앗기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당시 기독교는 국가와 민족을 위한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였다. 현재도 국가가 혼란하다. 그러므로 이제 한국 교회가 분연히 일어나, 3∙1독립만세운동정신을 계승해 나가는 것은 물론, 다시 태극기를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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