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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3 (화)

[로마서 특강] 이선규 목사 "버려두는 형벌" (롬1:28-32)

기독일보 조은식 기자 (press@cdaily.co.kr)

입력 2018. 08. 13 10:38  |  수정 2018. 08. 13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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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규 목사
▲이선규 목사(대림다문화센터 대표ㅣ대림중국교포교회 담임)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가 같이 살고 있으며 이는 외관상 분별 할 수가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공존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증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인간이 아무리 잘못 했어도 자녀 된 관계를 끊지 않으십니다.

육신의 부모관계도 끊을 수 없는데 어찌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들을 끊으시겠습니까? (롬8:2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 물 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손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그렇지만 때로는 매를 때리기도 하시고 징계도 하십니다. 징계를 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 질 하시느니라.(히12:6) 어떤 때는 많이 잘못해도 징계 하시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즉 징계도 사랑의 표현인데 그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건강을 빼앗는 방법 즉 질병으로 징계하는 방법 (계2:21-22)
2) 재산을 거두어 가심으로 (말3:8-11)
3) 명에를 빼앗아 가심으로 인간은 어떤 의미에서 명에를 소중히 여기는 존재 입니다.

하나님이 이를 빼앗으면 하루아침에 멸시 천대를 받게 됩니다. 그 외에 마음에 기쁨과 평안을 빼앗기도 하고 사랑하는 자녀를 데려 가시기도 하시며 직분을 빼앗기도 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생명을 빼앗아 가십니다.

가장 귀중한 생명도 하나님의 장계가 임하면 거두어 가십니다.

1,하나님의 영이 떠난 자의 모습

하나님의 영이 떠난 사람은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찌르기도 하고 얼굴에 상처를 입히고 긁힐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살아있는 나뭇가지보다 죽어있는 나뭇가지에 긁힐 때가 더 아프다는 것입니다.

영혼이 죽어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상처를 줍니다.

영혼이 죽어 있는 사람은 한 마디로 허물과 죄로 죽은 사람입니다

교만과 불순종으로 하나님께 떨어져 나가 죽은 것입니다.

죽은 사람은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삽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이기심의 가지로 다른 사람을 찌르고 불순종의 가지로 다른 사람을 불쾌하게 만듭니다.

이런 사람들은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하고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사람은 흰옷을 입고 영원히 살아계신 주님과 함께 다닙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의 특징은 타락 입니다. 그것이 곧 육적 타락 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게 하시려는 목적으로 인간을 창조 하셨습니다. 형상대로 창조하셨다는 말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우주를 통치하심 보다 하나님을 섬기게 하심이 더 강조점이 있습니다. 비록 인간이 범죄 타락 후 종교의 씨를 말살 하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계속 적으로 종교의 씨를 공급 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인간들이 종교심을 말살 시키려 해도 결코 말쌀 되지 않습니다. 로마서1:18절에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이란 고의 적으로 적대 행위를 하며 종교 행위를 말살 하려한 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영혼 속에는 신 의식이 있고 하나님의 창조세계는 하나님의 영광과 지헤와 권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고의 적으로 적대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 그러므로 인간의 종교 의식은 인간성의 일부여서 인생의 어그러짐이나 부패는 가능해도 인성의 파괴가 불가능 하듯 신 의식의 파괴와 박멸은 결코 불가능한 것입니다.

2,핑계치 못함

왜 하나님께서 인간의 영혼 속에 계속해서 종교의; 씨를 공급 하시는가?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고 핑계 할 수 없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 지니라. (롬1:20 ) 그런데도 인간은 하나님의 일반 섭리에 대하여 계속 항쟁하고 있습니다. 가인의 불신이 그러했고 바벨탑 사건이 그러 했으며 헬라 철학이나 근세 철학이 그러 했습니다. 불가지론, 회의주의, 초자연신교, 무신론이 하나님을 대항했습니다.

현재 공학 합성 생명이니 우주개발 등은 신에 대한 도전 행위입니다. 일찍이 있었던 자연 진화론은 신의 지헤와 권능과 영광에 대한 도전인 것입니다.

사람은 내세가 없다. 죽으면 그만이다. 하면서도 죽은 자를 위해 제사를 지냅니다. 매우 모 순입니다. 내세도 없고 영혼도 없다면 죽은 자를 위해서 제사를 지낼 필요도 없지 않겠습니까? 피조물의 기본 특성은 의존성입니다.

절대 자에게 의존해야 합니다. 그런데 절대자를 배재했기 때문에 결국 피조물을 절대화 하여 대체하면서 자기를 거기에 매달리게 하고 피조물에 종속 시킵니다.

결국 죄악의 늪에 빠지게 됩니다. 오늘 본문 29-31절 단 세절에 불의 추악, 탐욕으로 시작해서 자그마치 21 가지의 죄악이 나열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32절은 이 죄들 하나하나가 모두 사형에 해당하는 죄인 것으로 하나님이 정해 놓으셨다고 했습니다.

3, 참된 보호막

여러분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고 하나님의 간섭을 거부한 자들은 브레이크가 망가진 자동차와 같습니다. 도덕적인 판단력이 흐려져서 잘못된 방향으로 가면서도 멈출 줄 모르 고 죄악의 구렁텅이로 돌진하고 있으며 멸망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태아는 엄마의 10개월을 동안 자신 지낼 수 있는 최고의 보호막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자궁이라는 안락한 집입니다. 그런데 혹이라도 태아가 이 어머니의 자긍을 찢고 밖으로 뛰쳐나오는 것 보셨습니까?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영적으로는 종종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겠다고 하는 인간의 모습이 바로 이와 똑 같습니다 태아에게 자긍이 가장 안전하고 유일한 보호막인 것처럼 인간에게 있어서 하나님이야말로 가장 안전하고 유일한 보호막인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두려워 할 일은 하나님께 벌을 받는 것이 아닌 그냥 내 버려두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 자식 에게는 매를 들어도 다른 사람의 자식 에게는 함부로 매를 대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이 같은 조치는 똑 같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내버려 둠이라고 표현 했습니다. 이것 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합당하지 못 한 일을 지속하는 것 자체가 매우 심각한 형벌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자가 있습니까? 다시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기를 바랍니다. 그때 영적 어두움은 사라지고 빛이 들어옵니다. 영적 보호막에서 여러분은 참 평안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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