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를 마치고.
행사를 마치고. ©김규진 기자

[기독일보 김규진 기자] 23일 오후 AW컨벤션센터에서는 "한국교회와 펜"이란 주제로 '2016 한국기독언론포럼'이 열렸다.

행사에서는 김명혁 목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가 "한국교회가 가야할 방향"을, 이용규 목사(한국기독교총연합회 증경회장)가 "한국교회와 기독언론의 관계"를, 고시영 목사(세계한인기독교총연합회장)가 "한국기독언론의 윤리성과 책임"을 주제로 각각 발표했다.

또 패널 토론자로는 한은수 감독(예감 웨슬레총회장)과 유영대 기자(국민일보 종교국 차장)가 수고했으며, 지덕 목사(한국기독교언론사후원재단 고문)가 총평을 했다. 포럼 전 예배에서는 강춘오 목사(한국기독언론협회 대표회장)와 유달상 장로(한국기독교신문방송협회 대표회장), 고정량 목사(크리스천언론인협회 대표회장)가 공로패를 받기도 했다.

한편 행사는 한국기독교언론사후원재단과 한국기독교평신도총연합회가 공동주최했으며, 한국기독언론협회와 한국기독교신문방송협회, 크리스천언론인협회가 공동주관했다. 다음은 김명혁 목사의 홈페이지에 공개된 발표 전문이다.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

평화한국 광복70주년 기념세미나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장) ⓒ 자료사진

부족한 사람이 “한국교회가 나아갈 방향” 이라는 중요한 제목으로 발표하게 된 것은 분에 넘치는 부적절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에 생각하던 것을 발표해보려고 합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복음의 기본과 본질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교회는 거의 예외 없이 모두 40년, 50년, 60년, 70년이 지나지 못해서 세속화되고 되고 변질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아시아에 흩어져 있는 일곱 교회들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셨는데 다섯 교회들이 모두 복음의 기본과 본질에서 벗어났다고 지적하시면서 “회개하라”는 말씀을 다섯 번이나 반복하셨습니다. 그러면 복음의 기본과 본질이 무엇인지를 다섯 가지로 간단 간간하게 생각해보겠습니다.

첫 번째 복음의 기본과 본질은 “회개”를 계속하면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제일 처음에 전파하신 말씀이 바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말씀도 “회개”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파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24:47,48). 예수님께서는 부활 승천하신 다음에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에게 편지하시면서 “회개하라”는 말씀을 다섯 번이나 반복하셨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오순절 날 제일 먼저 전파한 말씀도 “회개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소아시아 선교지에서 전파하고 증거한 것도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행 20:18,21) 이었습니다.

“회개”는 “신앙생활”의 입문이고 과정이고 출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회개”는 자기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고 자기를 부인하고 항복하는 것인데 “회개” 없는 믿음은 가짜 믿음입니다. “회개”를 계속해서 가장 많이 가장 처절하게 한 사람이 다윗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윗은 밤 낮 울면서 “회개”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시 51:1-3). 사도 바울도 다윗의 뒤를 이어 처절한 “회개”의 제사를 평생토록 계속해서 드렸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24).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한국교회 신앙의 선배님들의 처절한 “회개”의 고백들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아간과 같은 죄인입니다”(길선주 목사). “나는 죄인 중의 괴수외다”(이기풍 목사). “이 놈이 주님이 차지하여야 할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습니다”(주기철 목사). “나는 어릴 때부터 범죄를 계속한 불의하고도 불충한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나는 큰 죄인임을 깨닫고 두렵게 떨며 울었습니다”(손양원 목사).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며 티끌 같은 미말의 존재입니다”(이성봉 목사). “나는 고멜과 같은 음녀입니다”(김치선 목사). “나는 신사 참배하는 죄인입니다”(한경직 목사). “나는 83년 묵은 죄인입니다”(박윤선 목사).

복음의 기본과 본질은 “회개”를 계속하면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제사는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회개”의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시 51:17). 자기 주장과 자기 고집이 센 이기적인 사람들과 근심 걱정 원망 불평이 많은 사람들은 “회개”를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셔서 날마다 “회개”의 제사를 드리는 복음의 기본과 본질을 지니고 살아가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복음의 기본과 본질은 정성껏 “예배” 드리면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배”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니라”(요 4:23).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 받은 죄인들이 제일 먼저 우선적으로 하여야 할 일이 몸을 하나님께 제사로 드리는 “영적 예배” 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사실 출애굽의 목적도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 위함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바로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8:1).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들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시는 목적은 우리 죄인들로 하여금 우리들의 몸과 마음과 눈물과 시간과 정성과 물질과 생명을 다 쏟아 바치며 하나님께 제사와 예배를 드리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는 “제사”와 “예배”의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성막과 성전에서 “제사” 드리게 하셨고, 신약시대와 교회 시대에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교회에서 “예배” 드리도록 하셨습니다. 올바른 복음의 기본과 본질은 “예배”를 정성껏 드리면서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교회에서 정성껏 “예배” 드리는 것이 기독교 복음의 중심입니다. 주님께서 주일 날 부활하셨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날은 모두 주일 날 새벽과 주일 날 저녁이었습니다. 청교도들이 가장 강조한 것은 주일 성수와 예배였습니다. 한국교회도 그 초기부터 주일 성수와 예배를 강조해 왔습니다. 주일에는 하루 종일 모든 세속적 업무를 중단하고 예배와 전도와 봉사에 바쳐야 할 것을 엄격히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는 점점 주일 성수의 영적인 유산을 저버리고 세속화와 인간화와 편의주의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주일 저녁 예배를 폐지한 교회가 너무 많은데 이것은 가장 무서운 타락의 죄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불행한 일이고 너무 안타까운 일입니다. 방지일 목사님께서 한국교회가 주일 저녁 예배를 폐지하고 있는 것을 기가 막히는 일이라고 지적하셨고 총신대의 박용규 교수님이 한국교회의 영적 침체가 주일 저녁 예배를 폐지한 데서 비롯했다고 올바로 지적했습니다. 복음의 기본과 본질은 주일을 종일 거룩하게 지키며 정성껏 “예배” 드리는 일에 모든 정성을 쏟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을 베푸셔서 주일을 종일 거룩하게 지키면서 정성껏 예배 드리면서 살아가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복음의 기본과 본질은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을 몸에 지니고 “섬김”과 “도움”의 손길을 펴면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 산상 설교를 하시면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반드시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을 지니고 “섬김”과 “도움”의 손길을 펴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마 5:7).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마 6:14).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눅 6:36).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예수님께서는 산에서 내려오시면서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을 몸에 지니시고 각색 병자들과 죄인들의 몸을 만지시면서 “섬김”과 “도움”의 손길을 펴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믿음이 중요하지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이 없고 “섬김”과 “도움”이 없는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고전13:2). 그리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을 베풀며 “섬김”과 “도움”의 삶을 살라고 권면했습니다. “너희는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골 3:12-14). 성 프랜시스와 손양원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이야말로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을 몸에 지니고 모두에게 “섬김”과 “도움”의 손길을 펴면서 사신 너무너무 귀중한 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사이 한국교회가 “회개”와 주일 성수의 “예배”는 물론 “섬김”과 “도움”의 실천을 소홀히 하고 그 대신 각종 프로그램과 행사에 치중하고 있는데 너무너무 불행한 타락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것들을 다 집어치워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회개”와 주일 성수의 “예배”와 “섬김” 실천에 전력을 다한다면 교회는 기쁨과 감사가 충만한 아름다운 모습을 되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번째 복음의 기본과 본질은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약 성경 창세기는 야곱과 에서의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의 아름다운 장면을 묘사했고 요셉과 그의 형들과의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의 아름다운 장면을 묘사했습니다. 구약 성경은 또한 이스라엘과 유다는 물론 이방 나라들과도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이루는 것이 성부 하나님의 뜻이고 섭리라고 지적했습니다.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겔37:17). “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사19:23). 성부 하나님께서는 성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므로 “평화”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이름은 평강(평화)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9:6).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사53:5). “화해와 평화와 통일”은 인류를 향하신 성부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약 성경은 성부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우리들끼리만 아니고 세상과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이루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후5:18,19). 신약 성경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이루신 것이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 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화해)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2:14-16,18).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1:10).

“화해와 평화와 통일”은 하나님의 뜻과 비전입니다. “화해와 평화와 통일”은 성경의 목표이며 역사의 완성 점입니다. “화해와 평화와 통일”은 부수적인 것도 아니고 선택적인 것도 아닙니다. “화해와 평화와 통일”은 본질적인 것이고 필수적인 것입니다. 남북의 “화해와 평화와 통일”은 물론 모든 민족과 세계와 우주의 “화해와 평화와 통일”은 하나님의 뜻과 비전이고 성경의 목표이며 역사의 완성 점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 안에서 온 세계와 온 우주가 즉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모두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이루게 될 것을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계7:9,10). 지금 우리 한국 교회와 사회와 남북한에 가장 필요한 것은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함께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실현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야곱처럼 요셉처럼 무릎을 꿇고 서로 부둥켜 안고 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이 평생토록 염원하며 기도하여야 할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도 “화해와 평화와 통일”의 소원을 몸과 마음과 영혼에 지니고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이루는 제물 되는 삶을 살다가 제물 되는 죽음을 죽게 하시옵소서" 라는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다섯 번째 복음의 기본과 본질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천국 소망”을 지니고 가볍게 그리고 기쁘게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8복을 말씀하시면서 첫째 복과 여덟 번 째 복은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는 복이었고 팔 복의 결론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5:12)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면서 하늘을 우러러 보셨다고 말씀했습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요 11:41). 사도 바울도 항상 하늘을 바라보면서 “천국 소망”을 지니고 가볍고 기쁘게 살았습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 하노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고후 5:1-3). 사도 요한이야말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서 “천국 소망”을 지니고 가볍고 기쁘게 살았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계 4:1).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계 20: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계 21:1).

복음의 기본과 본질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천국 소망”을 지니고 가볍게 그리고 기쁘게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믿음의 조상들은 모두 이 세상의 본향을 바라보지 않고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며 사모했다고 기록했습니다(히 11:16). 이 세상은 잠시뿐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밤의 한 경점”(시 90:4) 같고, “아침에 돋는 풀”(사 90:5) 같고, “없는 것” 같고(시 39:5),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게”(약 4:14)와 같다고 모세와 다윗과 야고보가 고백했습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마라나타” 라는 인사를 주고 받았는데 “마라나타” 라는 말의 뜻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였습니다. 한국교회의 아버지 길선주 목사님은 요한계시록을 만 독을 하고 암송을 하며 하늘을 바라보면서 “천국 소망”을 지니고 한 평생을 살았습니다. 한국교회의 무디라고 불리던 이성봉 목사님은 밤에 자다가 옆집 방앗간에서 방아 찢는 소리만 들려도 주님이 오시지 않나 하고 밖으로 나가서 하늘을 쳐다보곤 하셨다는 간증을 저는 중학생 때 여러 번 들었습니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도 감옥에 갇혀 있을 때 힘들고 지칠 때마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손수 지은 “주님 고대가”를 불렀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는 천국 신앙을 포기하고 세상의 정치 경제 문화 음악적인 유행에 정신이 빠져서 하늘대신 세상을 바라보면서 무겁게 그리고 어둡게 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우리들에게 하나님게서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들로 하여금 세상 대신 하늘을 바라보면서 천국소망을 지니고 살아갈 수 있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세속화에 깊이 빠져있는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복음의 기본과 본질을 회복하는 길인데 첫째는 “회개”를 계속하면서 살아가는 삶이고 둘째는 주일을 성수하며 예배를 정성껏 드리면서 살아가는 삶이고 셋째는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을 몸에 지니고 “섬김”과 “도움”의 손길을 펴면서 살아가는 삶이고 넷째는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삶이고 다섯째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천국 소망”을 지니고 가볍게 그리고 기쁘게 살아가는 삶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끄러운 우리 한국교회를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람을 베풀어주셔서 주님을 바라보고 신앙의 선배님들을 바라모면서 복음의 기본과 본질을 회복하고 십자가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김명혁 목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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