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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5 (월)

광야교회 임명희 목사의 "광야의 발자국"

기독일보 편집부 기자 (press@cdaily.co.kr)

입력 2016. 10. 14 21:49  |  수정 2016. 10. 14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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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한복협 월례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 개최

임명희 목사
과거 돈없는 나그네들도 누구나 들어와 오붓이 앉아 커피도 마시고 추위도 피하는 커피숍 '동키호테'의 오픈예배에서 (가운데)임명희 목사가 설교하고 있다. ©광야교회

[기독일보] 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김명혁 목사, 이하 한복협)가 14일 오전 명성교회(원로 김삼환 목사)에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0)라는 주제로 10월 월례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를 가졌다. 다음은 임명희 목사(광야교회)의 발표 "광야의 발자국" 전문이다.

"광야의 발자국"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이런 자리를 마련하여 주신 한국복음주의협의회에 감사를 드리며 광야교회의 사역을 잠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표어 :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살자.

2. 실천사항
1) 주다가 망하자
2) 다 같이 돌자 동네 한바퀴
3) 사랑은 미워도 다시 한 번
4) 버티기를 잘하자
5) 기도! 멈추지 마라

3. 사역의 동기
1987년 6월 청량리역에서 전도하다가 만난 노숙인들에게 “어디사십니까?” 물었더니 “영등포 역 에끼마이 골목에서 산다.”고 했습니다. 그들에게 찾아가겠다고 약속을 하고 헤어진 뒤 생필품을 준비하여 9월에 찾아 갔습니다.

처음 영등포를 방문하는 날 길 옆에 즐비하게 쓰러져 있는 분들과 무리지어 술 마시며 욕지거리를 하고 있는 모습과 씻지 않아 진동하는 냄새를 풍기며 지나가는 사람의 모습을 보고 “아니 서울 하늘 아래 이런 동네가 있다니!” 라며 깜짝 놀랐습니다. 또한 여기저기 우두커니 서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험상궂은 얼굴로 날카롭게 살피는 눈들과 방세를 못 내고 쫓겨나 주저앉아 술 마시는 모습과 어떤 이는 창문도 없는 조그마한 판잣집에서 병든 몸을 이끌고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 거리에 서서 울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눅 10장의 강도 만나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떠올라왔습니다. “이들이 바로 강도만나 죽어가는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하며 울고 있는 저에게 주님은 “네가 이들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여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살자”라는 표어아래 지금까지 30여 년 째 사역을 해오고 있습니다.

4. 사역의 시작
이곳을 방문한 첫날 하야시의 가게에 들어가 전도를 하고 있는데 그때에 자기 동생이 술에 취해 소리를 지르며 들어오자 “저 새끼나 사람 만들어 보세요.” 해서 그 동생에게 다가가 예수를 믿으라고 하자 제 멱살을 움켜쥐고 밖으로 끌고 나가면서 “야! 예수가 밥을 주냐 돈을 주냐?”했습니다. 저는 목 좀 놓아주라 한 뒤 “네에 예수는 밥도 주고 돈도 주고 그보다 귀한 것도 주십니다.”고 했다. 그랬더니 “야! 그럼 술 좀 먹게 돈 좀 주라”했습니다. 저는 술값은 줄 수 없지만 밥은 사드릴 수 있습니다. 했더니 “그럼, 밥 좀 사주라”해서 국밥을 사주는 것이 인연이 되어서 그 후 이분을 전도하기 위해 십여 년간 애를 쓰게 됩니다.

또한 쓰리꾼 왕초로 알려진 미남이라는 사람에게 전도를 하였습니다. 석 달을 문을 두드렸지만 들은 체도 안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문을 두드렸더니 드디어 문을 열고 말을 했습니다. “쌀 좀 사다 줄 수 있냐?” 해서 쌀을 사다 준 뒤로 연탄불도 갈아주고, 약도 사다주고, 배추 다듬는 일을 도와 드리고, 싸우다 다친 무릎이 퉁퉁 부었을 때에 주사기로 물도 빼주고, 좋은 주사도 놔 드리고, 안마도 해주면서 그가 마음을 열 때 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봐! 전도사 양반! 당신 여기서 교회하고 싶어?” “예”
그러니까 하는 말이 “당신 여기서 일 년도 못 버티고 두둘겨 맞고 울고 나갈 걸” 하더니 조금 있다가 허허어~ 웃더니 “당신이 여기서 한 사람만 변화시켜도 기적이지, 내 밑에 똘마니가 44명이나 있었는데 이 새끼들을 얼래고 달래고 별 짓거리를 해봐도 사람이 안 되더라”라고 하면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때에 “네에, 저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할 수 있습니다” 그랬더니,
“아! 그러면 해보라우” 그러면서 “여보! 내가 이날 평생 교도소만 들락거리며 잘 못 살아왔는데 죽기 전에 좋은 일 한 번 하겠수다. 내가 하꼬방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시가로 70만원은 받을 수 있지만 좋은 일 한 폭 잡고 싹뚝 잘라서 13만원만 받을 테니 그걸 사서 거기서 교회를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가서 보니 바퀴벌레와 쥐들이 우글거리는 사람이 죽어나간 한 부분이 찌그러진 방이었습니다. 그것을 사서 화판으로 집을 짓고 천막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광야교회”라는 간판을 걸고 기도했습니다. “주여! 뱀과 전갈이 우글거리는 이곳을 복음으로 정복하게 하소서!” 감격스러운 눈물이 흘러 나왔습니다.

5. 사역의 내용
1) 무료급식
1989년 성탄절부터 1주일에 한번 급식을 시작하였습니다.
1992년 50여명과 공동체 생활을 하며 하루 세끼 식사를 제공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계속 식사를 나누고 있습니다.
지금은 하루에 700-800여명이 식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예) 전 BH 집사
부산대를 나와 은행원으로 돈을 많이 번 뒤에, 경마 · 경정 · 경견 · 경륜 등 경에 빠져 경을 치고 망했습니다. 이혼 후에 넥타이로 목을 매어 자살하기 위해 영등포역을 배회하는데 배가 고파왔습니다. 마침 역에 있는 노숙인들이 동네로 들어가길래 “어디로 가냐고?” 물었더니 저기 가면 밥을 준다고 하여 ‘죽더라도 밥을 먹고 죽자’생각하고 따라와서 밥을 먹은 뒤 ‘일주일만 지내다가 가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드리는 예배에 참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다보니 예수를 믿게 되었고, 살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세례를 받고 집사가 되었는데 그 후로 경비로 일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는 여전히 “경”자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2) 자활 쉼터 운영
쉼터 내에 약 90여명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부활 생명 안에서 살게 하며, 인생의 목표를 세워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어서도록 돕습니다.

예) 김 SK 형제
고향에서 돈을 모아 잘 살면서 IMF때에 보증을 서준 형님이 빚을 갚지 못하게 되자 자살하게 됩니다. 충격을 받은 김은 고향을 떠나 다른 곳에서 일을 시작해보려고 하지만 마음이 잡히지 않아 정리를 하고 아들에게 “나를 찾지 말라”는 유서를 남겨놓고 농약제초제를 사서 서울로 상경합니다. 약을 먹고 한강에 빠져 생을 끝내려는 마음으로요.

    먼저 서울역에서 며칠을 있다가 죽어야지 했는데 쉽게 죽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쉼터를 알아보게 되던 중 광야교회를 알게 되었는데 문득 “광야”라는 단어가 마음에 와 닿아서 오게 되었답니다. 난생 처음으로 예배를 드리며 설교를 듣다보니 너무 감동적이어서 며칠이 지난 뒤 죽을 마음을 버리고 열심히 일을 하며 살기로 마음을 먹고 지금은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답니다.

예) 나 KG 집사
기둥서방 출신인 그가 만취상태로 쉼터 앞에 와 쓰러졌습니다. 그대로 두면 얼어 죽을 수 있는 11월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그를 안으로 데려다 보살폈더니 그 은혜에 보답하며 살겠다고 열심히 노동일을 나갔습니다. 한 자매를 데리고 살아 달라 했더니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나는 돈도 없고, 배움도 없어서 아무것도 해드릴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보답하는 양으로 저 자매를 데리고 살겠습니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합동결혼식을 올리는데 사람들이 “야! 네가 결혼해서 일 년만 산다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 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결혼한 후 13년째 한잔에 300원씩 하는 커피를 팔면서 잘 살고 있습니다.

3) 쪽방 상담소 운영
우리 동네는 쪽방이 560개 정도에 약 6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홀로 사시는 분들이고, 여러 장애와 중독을 갖고 있으며, 노인들과 윤락에 종사하는 분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들을 대상으로 방청소, 도배, 빨래, 도시락 및 쌀과 생필품지원, 병원치료 도움 및 장례 등으로 오랫동안 돕다 보니 포주, 펨푸, 여성 등도 교회에 나오고 있습니다.

예)SSS
약 20년을 기도하며 전도했더니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세례를 받고 교회를 나오는 어느 날 함께 사는 사람들 전도 겸 심방을 갔는데 눈물을 줄줄 흘리며 가슴을 치는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우리가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잖아요? 근데, 그러고도 계속 이런 죄를 지어도 구원 받습니까?” 저는
“네, 그래도 구원 받습니다. 예수 믿고 나서 잘 사는 우리의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습니다. 계속 교회에 나오게 되면 주께서 은혜를 주셔서 그 일을 그만두게 하실 것입니다.”
그 뒤 그 자매님은 약 2년 뒤에 그 일을 완전히 그만두게 되었고, 지금은 집사로서 심방대원으로 동네 전도를 다니고 있습니다.

4) 합동결혼식
2002년부터 지금까지 13회, 45쌍을 결혼시켰습니다. 이 중에 배우자의 사망으로 가정이 깨진 사람이 3분의 1정도이고 나머지는 부부로서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가정이 탄생하는 결혼식 때에는 먼저 결혼한 부부들이 나와서 축가와 선물로 격려해 준답니다. 그 모습이 폐기된 자재를 가지고 집을 짓는 것처럼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어느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가정의 탄생은 노숙의 끝이라고.”

예) 김 GM, SjI
역전에서 술 마시고 싸우며 방황하며 반건달로 살아온 김집사와 S집사는 2005년 제 4회로 결혼식을 올렸다. 자매는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무당으로 신 내림을 받으라고 종용을 받았지만 거부하고 뛰쳐나와 따라다니는 귀신에게 여러 시련을 겪다보니 정신과 약을 먹어야 했다. 그러다 교회 와서 안정을 얻은 뒤 결혼해서 잘 살고 있으며, 남편은 관리자로 아내는 세탁실 담당자로 큰 일군이 되어있다.

5) 돈키호테 카페
몇 년 전에 카페를 열게 된 동기는 이렇습니다. 입김이 훅훅 날리는 추운 겨울철인데도 노숙인들이 밖에서 덜덜 떨면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눈에 밟혀 추위를 녹이며 음악을 들으며 따뜻한 공간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아주 조그마한 카페를 열게 되었습니다. 카페를 이용하는 한 달 이용자가 약 1000명에서 1500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예) 담당 권YG 집사
우리 교회에 온지 6-7년이 되어 가는데, 맡겨놓은 일들을 잘하다가 1년 정도 되면 모은 돈을 가지고 나가서 빈털터리가 될 때까지 다 쓰고 “저 다시 가도 되나요?” 문자를 합니다. 그러면 또 다시 오라해서 그렇게 “왔다 갔다”를 5번 정도 하였습니다. 지금도 믿고 일을 맡겨 놓았답니다.

6) 알코올 중독자 치료원
몇 년 전에 낡고 조그마한 건물이 세 동이 있는 알코올 중독자 치료원을 충북 음성에 빚을 얻어 준비했습니다. 약 10여명의 적은 수가 자연 속에서 생명체를 키우는 일의 기쁨과 영적 수련을 통해 나를 세움으로 중독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곳입니다. 아직 열매를 보지 못하고 계속 실패하고 있습니다.

예) 담당 최전도사 부부
교회 온지 16년으로 전과 27범, 알코올 병원에 실려 간 횟수도 25번 정도, 한 번 술을 마시면 150-160병을 마시고 인사불성이 되어 방안에서 오줌 싸고 수영하며 나 뒹구는 중독자, 교회에서 모든 직원들이 다 내 보내야 된다고 건의한 사람, 똥물까지 토해내고 비틀거릴 때에 영양제를 가지고 가 기도하고 놔줬더니 “예수님의 피가 수혈 되서 들어오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고 하면서 술이 깨어 하는 말이 “나 같은 중독자들을 위해 신학을 가겠습니다.” 해서 41살에 고등학교를 보내어 2년 만에 졸업시키고, 대학을 보내서 8년 반 만에 졸업하고, 신학대학원을 3년 만에 졸업을 하고 지금 치료원 책임자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3년 전에 합동결혼식을 치르고 어렵게 잘 살고 있습니다.

7) 전도사역
우리는 계속 밖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매주 화요일 밤 자정에 말씀과 나눠줄 라면을 가지고 역전 대합실로 전도 집회를 나가고, 금요일 저녁에는 역전 광장 노방전도를 나갑니다. 주일 예배 후에는 동네를 돌며 회개의 복음을 외치고, 토요일에는 쪽방 속에 들어가며 한 사람 또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또한 추수 감사 주일을 전후로 “광야인의 날” 행사를 열어 복음전도와 위로 공연 및 월동잠바를 나눠드리고, 연말에는 10여 일 간 매일 저녁 역전 대합실에서 연말 자정 전도 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어느 추운 날 이런 시가 나왔습니다.

“광야로 나가는 이유”

거기에 가면
야인이 있고

거기에 가면
찬바람이 있고

거기에 가면
서성이는 빈 그림자가 있기에,

거기에 가면
사람들이 버려버린
이리저리 밀려다니는 짐짝 같은 이들이 있고

거기에 가면
말이 없는 영혼들의 탄식이 있고

거기에 가면
영혼을 사냥하는 으르렁대는 어둠의 악령들이 있기에

나는
광야로 나간다.

나눠줄 따뜻한 라면과
적들을 무너뜨릴 말씀의 쌍칼을 차고. . .

예) 사주 관상 보던 자매
인터넷에서 매일의 운세를 담당해 오던 사주 관상으로 3년 정도 뜨던 자매가 연말 자정전도 집회 때에 예수를 믿고 돌아와 그런 쪽의 사람들을 전도하기 위해 대학의 복지학과를 다니고 있고 내년에는 신학을 할 것입니다.

6. 사역의 실패
하야시 동생을 변화시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 보이므로 동네에 전도를 하려는 목적으로 열심히 돌보았습니다. 세평의 예배당에서 술을 마시러 나가지 못하도록 같이 손목을 묶어놓고 잠들기도 하고, 같이 노동일과 수세미 장사를 나가고, 영등포를 떠나서 같이 수련회를 가고, 마대 자루로 매를 때려 보기도 했지만 중독을 끊지 못했습니다.

   하도 술을 마시니까 “앞으로 술을 마시기 전에 5분간 기도하고 마시세요.”라고 지시를 했더니 거리에서 술을 따라놓고 “하나님!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을 때에 뭐하고 있었습니까? 그 때에 막았더라면 죄가 우리에게 들어오지 않았을 것 아닙니까? 근데 왜 또 술은 만들어 놓고 못 마시게 하는 겁니까? 병 주고 약주고 하는 얄궂은 하나님! 그래도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주변에 많은 사람이 모여 웃습니다.

   변화는 안 된 채 10여 년의 세월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야에 소주를 7병을 따라 마신 후 심장마비로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저의 사역은 완전히 실패했고 하나님은 무능력한 분으로 낙인이 찍혔습니다. 벽제 화장터에 이분을 장례 치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동안 쌓아올렸던 공든 탑이 가슴속에서 와르르’ 무너져 내렸습니다. 차에서 내려 허공을 딛는 듯한 비틀걸음으로 동네에 들어오는데 동네 건달이 “목사님! 이 새끼들이 변한다면 모래알이 싹틀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제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소리쳤습니다.
“아니다! 이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고, 성령의 능력이 임하면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일어난 것처럼 일어날 수 있어!”

7. 사역의 열매
* 1년 버티면 기적이라는 곳에서 30여 년째 사역을 하고 있다는 것.
* 매일 세끼의 만나가 공급되고 있습니다.
* 한 사람 변화시키면 기적이라는 곳에서 포주, 펨푸, 기둥서방, 윤락여성, 중독자, 노숙인등이 바꿔지고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정치가 아니고 사상이다.” : <노예의 길> 하이에크
저는
“세상을 바꾸는 것은 사상이 아니고 복음이다.”라고 말씀드립니다.

8. 우리의 비전
1) 앞으로 제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치하므로 약 500만개의 일자리를 잃게 될 것으로 예견하면서 동시에 수많은 실직자들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봅니다. 그들이 실망하며 방황하다가 노숙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많은 상황에서 노숙인 사역은 계속 될 수밖에 없으리라 내다봅니다.

2) 이미 수백 만 명의 중독자(2014.7.9. 중독포럼)가 사회에 만연함으로 교회는 중독자 사역에 관심을 갖고 중독자 치료를 위한 목회자와 전문 사역자를 양성해야 할 것으로 내다보면서 우리는 알코올 중독, 야동 중독, 방랑중독, 사주관상 등의 특별한 부분에 관련한 사역자를 양성하려고 합니다.

3) 세계 도처와 대도시의 다운타운에 늘어나고 있는 홈리스들을 위한 홈리스 센터를 세우고, 그들을 돌보고 섬기는 일을 통해 복음을 증거 하려고 합니다. 또한 할 수만 있으면 시리아 난민들을 위한 센터를 터키 쪽에 세우려고 합니다.

노숙자 아리랑(2)

아 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다같이)

청 천 하늘에 잔별도 많고 우리 동네엔 노숙자도 많아
아 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가족이 버리고 세상도 버린 몸 어디 가서 이 한 몸 의지 하리오.
아 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

사랑도 소망도 아스팔트에 묻고 내 이름 석 자도 잊었다오.
아 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

사람들은 희망 속에 살아가지만, 우리들은 절망 속에 죽어간다오.
아 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

한 사람도 찾지 않는 노숙자지만, 하나님이 찾으시는 귀한 양이라오.
아 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

천국도 사랑도 믿어지지 않지만 죽어서는 저 천국에 가고 싶다오.
아 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

말씀을 들으면 믿음이 생긴다지만 말씀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아 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

예수님 성령님 믿음을 주셔서 이죄인 천국가게 도와주소서.
아 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

노숙하던 야곱이 하나님 만났듯이 이 시간 여러분도 만나기를 바라네.
아 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

하나님! 하나님! 불쌍한 이죄인 자비와 은혜를 비나이다.
아 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

/글=한복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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