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마음공동체의 수요 기도모임이 '우리가락 3분박 찬양'으로 시작됐다. 구수한 '우리가락'의 리듬에 '얼씨구나 좋다 지화자 좋네' 가사가 등장하기도 했다. '주께서 왕위에 오르시다(원제: 주께서 왕이시라)' 찬양의 후렴구인데, 주께서 왕이시니 '얼씨구나 좋다 지화자 좋네' 하는 내용이었다.

일렉기타가 어울리는 찬양이 아니라 어디선가 장구패가 뛰어 들어올 것 같은 찬양들이 이어졌다. 손해석 목사(셈의장막 대표, 전 예수전도단 간사)가 만든 '거룩한 성전' 찬양은 굳거리장단, 다른 찬양들도 자진모리, 종모리 장단이다.

23일 오전 11시 마포구 세선회관 2층 예수마음공동체 예배실에서 진행된 이날 모임에는 탈북자들과 탈북자 선교 관심자들도 와 있었다. 북한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 남한으로 직접 망명해온 탈북자들, 중국이나 제3국을 통해 남한으로 온 탈북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박정희 정권 시절 북한에서 강화도로 수영해 남한으로 온 귀순용사가 처음 나와 인사하자 다들 기뻐하고, 어느 한 탈북자와는 같은 고향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더한 반가움을 나누기도 했다.

예수마음공동체 원장 구영능 목사(가명)는 궂은 날씨에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어드리기 위해서 이 자리에 온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것이다"며 "둘로 갈라진 이 땅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을 기억하자"며 기도했다. 그는 남한에 온지 10년이 됐고, 중국에서 신학교를 다니다 한국에서 더 공부해 2년 전 목사 안수를 받았다고 했다.

중국 공항서 삼성, LG 광고판 보고 '아...우리가 속았구나'

탈북 작가 림일씨가 간증하고 있다.   ©오상아 기자

그리고 간증자를 소개했다. 이날 간증자는 1997년 한국에 왔다는 탈북 작가 림일씨였다. 그는 1968년 평양에서 출생해 평양에서 줄곧 살았다. 사회안전부 13처, 대외경제위원회에서 근무하다 쿠웨이트 파견 근무를 나갔다 한국으로 입국하게 됐다.

한국에서는 '소설 김정일 1, 2', '평양으로 다시 갈까?' 등 저서 7권을 냈고 통일신문 논설위원 조선일보 논설위원, 통일교육자문위원 등을 역임하고 있다.

그는 "해외근무를 3년 임기로 가서 5개월 하고 한국으로 왔다"며 "해외에 나가보니 세상은 너무 달랐다. 중국 공항에서 환승하면서 공항 앞에 LG, 삼성, 대우 기업 광고를 보니 우리는 속았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자전거도 수출을 못 하는데 '우리는 거지였구나'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한에서 18년째 살고 있는데, 보면 북한 주민은 남한 국민보다 10배는 더 일한 것 같다"며 "그런데 그 결과는 대한민국은 세계 13위 경제대국이고 북한 168번째이다. 땀과 노력은 더 많이 바쳤는데 결과는 엉뚱하게 됐다. 김일성 우상화만 했다"고 했다.

그는 "외화를 벌어다 김일성 박물관, 별장, 호화시설만 만들었다"며 "김일성은 죽어서도 20억 달러짜리 궁전에 있고, 거기 관리비가 일년에 3억씩 든다"며 "그것만 없어도 평양시민 배급을 정상적으로 줄 수 있다. 죽은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20억 달러가 쓰여진다"고 개탄했다.

림일 작가는 "북한에서 살면서 사회의 내부 모습을 깊이 보면서 사람의 삶이 아닌 것 같다고 고민했다"며 "싫든 좋든 수령의 초상화를 모시고 살고, 아침마다 저녁마다 닦아야 되고 지방 친인척 집을 가는 것도 국가 승인을 받아야 되고, 신문에 실린 김일성 사진을 훼손해도 감옥에 가야 된다. 이게 제가 겪는 북한 동포의 현실이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대한민국에 와서 살아도 하나님을 모르고 살면 북한주민과 별 차이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한이 왜 이렇게 축복받았냐 하면 우리나라 잘 살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서이다"며 "일은 (북한 주민보다)적게 했지만 기도해서 이런 축복을 받았다. 여기는 1200만 기독교인이 아침 저녁 부르짖었으니까 하나님께서 들어주셨다"고 말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오해가 있었다. 그는 "한국교회 에 처음 와서 '하나님 아버지'라 부르니까 처음에는 오해했다. 우리 민족이 아버지 복이 많아서 북한은 김일성 아버지가 있고 남한에는 하나님 아버지가 있어서 이렇게 괴롭히는가 했다. 똑같으니까, 판박이니까 싫어했다"고 했다.

그는 "그래서 등을 돌리고 7년을 방황하면서 살았는데 7년간 임진각에 가서 부모들 부르고 두고 온 친인척 이름을 불러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다 "저희 교회(상암감리교회) 선교사님 전도를 받으면서 제가 저를 위해 십자가에 피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이 계셨기에 이땅 대한민국에 왔다는 것을 알고 됐다"고 했다.

그는 "말씀을 들으면서 김일성, 김정일이 하나님으로 둔갑해서 부모 형제들을 못살게 했구나 깨닫게 됐다"며 또 "그 전까지는 김일성 김정일이 뛰어난 독재자이고 영재니까 인민들 괴롭히고 통치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마귀에 홀려서 인민의 영혼을 꼭 쥐고 군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을 알았을때 그가 참 불쌍한 지도자이고 하나님께 회개해야 할 첫번째 인물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평양의 '박제된' 교회, 쿠웨이트서 만난 '성경책'은...

또 림일 작가는 "평양에 교회가 3개가 있지만 울타리가 있고 요원들이 지키고 있어서 밖에서만 보았다. 국가에서 관리하는 건물이다"며 "가끔 관광버스에서 사람이 우르르 내려서 교회 들어갔다 나와서 플래카드를 걸고 사진찍고 가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에서 고등교육 11년을 받으면서 교회, 성경, 목사님, 전도사님, 찬송, 하나님, 예수님 이런 말을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며 "평양에서 교회 건물을 겉에서만 봤다"고 했다.

그러다 1994년에 김일성이 죽고 95년에 평양시에 배급 중단되며 96년 11월에 쿠웨이트로 갔다고 했다. 그는 평양의 시민은 잘 먹고 산다고 생각하지만 권력기관이나 외화벌이 기관이나 괜찮지 일반 평양 시민은 지방과 별 차이가 없었다고 했다.

림일 작가는 "당에서는 순수 인건비만 벌러 내보낸다"며 "2000명 근로자가 14-15시간씩 일한다"고 했다. 8시간은 기본 근무 시간이고 이외 3-4시간은 '충성의 야간작업'이라고 했다.

그는 "당에서 임명한 사람이 지시하면 몇천명이 앉아 있어도 '너나 해라' 하는 사람이 없다"며 "숙명적으로 '예'밖에 없다"고 했다. 당에서 임명한 사람의 지시에 태클을 거는 것은 당, 즉 수령에게 거역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럼에도 힘들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14시간씩 땡볕에서 사막에서 일했지만 세끼 밥을 먹어서 힘들지 않았다"며 "북한에서 간부 말고 일반 노동자나 농민이 세끼 쌀밥과 고깃국을 먹는 것은 실현은 불가능하고 평생 가도 꿈도 못꾸는 일이다"고 했다.

그는 "4개월간 일하고 월급을 못받아도 당에서 아직 주라는 지시가 없다고 하면 불평을 못 한다"며 "2천만 주민이 사람인데 할아버지(김일성)부터 3대까지 (독재가)잘못됐다는 것을 알지만 말을 하면 목을 치기 때문에 말을 못한다"고 했다.

이어 "(김정은의)고모부도 화염방사기로 죽였는데, 일반 인민들은 벌레나 같다. (말을 하면)짓밟아버린다"고 했다.

림일 작가는 '성경책' 단속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현장에서 일하다 이상한 물체를 볼 수 있는데 장편소설 부피만하고 시꺼멓고 지퍼까지 달려 있는데, 이걸 보면 공안사무소에 반납하기 바란다고 나흘이 멀다 하고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에 나와본 경험이 있는 친구한테 '그게 뭐냐'고 물어보니 절대 비밀이라며 귀에 대고 하는 말이 '성경책'이라고 했다"며 "그게 뭐냐고 하니까 많이 알면 피곤하고 위험하다고 해 그래도 알고 싶다고 하니 '성경책, 글자 그대로 성적으로 야한 사진이 들어있는 책이다'고 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리고 "근무하면서는 성경책은 못 봤다"고 덧붙였다.

한국대사관 가면 환영할 줄 알았는데...

쿠웨이트에서 한국 대사관을 찾았던 그때를 기억하기도 했다. "순수하게 북한에서 남한으로 가고 싶은 평범한 시민입니다 아무런 조건 없습니다"하고 들어갔다고 했다.

그는 "한국대사관에 들어가면 '어서오십시오. 환영합니다' 할 줄 알았는데 '왜 왔냐? 서울에서 이런 저런 사정 있는데 나가줄 수 없겠냐?'하면서 왠만하면 안 받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림일 작가는 "그래도 한국 대사관에 들어갈때까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각오하고 갔는데 쉽게 돌아설 수 없었다. 평양에 들어오면 영구 수감이고 총살감이다. 해외에서 일하다 도망쳐서 실패해서 잡혀온 사람도 수없이 봤다"며 "북한에 무슨 법이 있고 변호사가 있나 당의 지시가 변호사이고 법이다"고 했다.

그렇게 1997년 3월에 한국대사관에 4일간 체류하고 서울행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들어왔다고 했다. 그는 "들어오면서 서울 상공에서 보고 놀란 것이 뾰족뾰족한 십자가였다"며 "그 십자가를 보고 남조선은 사고의 천국이니까 병원이 우추죽순처럼 있구나 생각했다"며 '나는 비싼 대가를 치르고 왔으니 자동차 옆에도 가지 않겠다' 생각했다고 했다.

그러고는 3개월이 지난 어느 날 교회에 한번 나가보지 않겠느냐는 지인의 권유에 선뜻 따라나섰다. 그는 "평양에서는 못가봤으니까 진짜 가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그런데 십자가 밑으로 데려가길래 교회 가기 전에 병원에 들러서 내 정신이 이상이 있나 없나 체크해 보려나보다 싶었다"며 "흰 가운 입은 분이 인사하며 '주님의 집'이라고 해서 정말 그분이 주치의인줄 알았다"고도 했다.

그리고는 "한 시간 예배를 드리는데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느낌었다"고 했다. 왜냐하면 예배할 때 듣는 설교, 축도, 헌금은 북한 주민이 7살부터 죽을때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는 "하나님 예수님 이름에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이 들어가고 성경처럼 김일성 저작집 시리즈가 있다. 김일성 찬송가는 500~600곡 이상 있다"며 "교회의 십계명 같은 노동당 10대 강령이 있다"고 했다.

또 북한에는 한국교회의 수요예배를 생각나게 하는 하는 수요학습이 있고 금요기도회와 대치되는 금요강연이 있었다. 교회의 십자가 대신 김일성, 김정일 사진이 걸려 있고 교회에 성화 그림이 있듯이 북한에는 김일성 김정일 사진 곳곳에 있다고 했다.

한국에 교회가 있듯이 북한에는 전 지역의 도시에는 혁명역사 연구실 등 김일성의 개인 기념 박물관 꼴인 김일성 관련 시설이 있었다. 그는 평양에 있는 조선혁명박물관은 세종문화회관보다 3배가 더 크다고 했다.

탈북민, 성경책 갖고 밝은 얼굴로 고향 가는 것 최고의 전도

마지막으로 림일 작가는 "남북한의 통일은 전쟁이 아닌 방법이라면 복음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반도와 연관된)대국들이 있다고 하지만 한반도 통일이 자기들한테는 이롭지 않을 것이다"며 "2만 7천 탈북민은 하나님께서 복음 통일을 위해 내려보낸 미래의 선교사들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이분들이 잘 돼서 밝은 모습으로 성경책을 들고 고향땅을 밟는 게 최고의 전도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가면 '남조선 가서 받은 돈 탕진해서 주색해 빠져서 죽었다 하던데 여기 왜 있어?'할 것이다. 그때 '나는 하나님 열심히 믿고 주일예배 꼬박꼬박 드리고 글 열심히 썼어' 하면 '교회가 뭐야? 성경책이 뭐야?'할 때 교회 데리고 오면 된다"고 했다.

림일 작가는 "여기 남한분들이 번쩍번쩍한 물품을 많이 싣고 올라가서 몇년 해도 안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통일이 돼도 하나님을 잘 믿는 통일이 돼야지 그렇지 않으면 순식간에 해가 더 많아질 통일이다"며 "엄청난 비극이 초래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 나라가 복잡하고 시끄럽고 싸워도 하나님이 주관하시니 흔들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며 "남북한 문제도 기도하면 반드시 축복할 것이다"고 말했다.

덧붙여 "저는 탈북 작가이니 북한 주민의 비참한 실상 알려야될 것이다. 또 남한 사람에게는 이 땅에서 숨쉬는 것에 감사해야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며 '이 땅에 발 붙이고 숨쉬고 사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말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신 나라이지, 하나님께서 손 놓으시면 북한과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27명 중국 공안 붙잡힌 탈북민 위해 긴급기도

이어 진행된 기도 시간에 27명 탈북민이 중국 공안에 잡혀서 북한에 들어갈 채비하고 있다며 이를 위한 긴급기도가 필요하다는 요청이 들어왔다.

구영능 목사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야고보서 1:15)는 성경 구절을 전하며 "그들이 잡혀가는 이면에는 누구의 욕심이 있을까?" 질문을 던지며 "오직 생명은 주께 있사오니 그들 중 믿는 자들에게 여호와 하나님만을 찬양하는 축복을 달라고, 끝까지 그 믿음을 지킬 수 있는, 순교의 피 앞에 여호와의 이름을 만백성 앞에 외칠 수 있는 담대함을 허락해달라"고 기도하며 눈물을 흘렸다.

또 "그 일들을 위해 우리들 입술의 기도가 끊어지지 않게 도와달라"고 기도했다.

한편 예수마음공동체는 2만7천명의 탈북자들을 신앙을 중심으로 남한 사회에 정착시키고 성경적으로 시대적 사명을 감당케 하고자 예배 공동체, 기도 공동체, 직업 공동체로 서고자 한다. 현재 20여명의 탈북자들과 북한선교 관심자들이 모여 주일예배, 수요 기도모임, 금요 백마산기도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핵심 사역은 복음의 정체성 회복, 민족의 정체성 회복, 한국교회의 정체성 회복, 탈북민 정체성 회복으로 삼고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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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마음공동체